[시론] 제약사 생산부 `약사 기근 현상'
심창구
필자는 약학대학 교육의 3대 목표는 제약 (製藥), 용약 (用藥, 또는 임상약학) 및 신약개발이라고 믿는다. 오늘은 이중에서 제약에 관련된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부터 국산의약품의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만큼 외국의 제약기업은 매출이 증가해 기쁨을 감추기 위한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의약분업제도에 의해 처방전이 공개됨에 따라, 의사들이 환자들의 오해를 두려워하여 국산약 대신 오리지날 회사약 처방을 선호하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수한 국산 의약품을 만들어온 국내 제약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의사들의 오해가 안타깝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사실 과학적 근거 없이 국산약을 나쁜 약으로 오해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약업의 현황을 보면 머지 않은 장래에 우수한 의약품의 생산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제약회사의 생산부에 근무하는 약사수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의약품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 즉 약사에 의해 제조, 관리, 공급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한 상품이다.
그러나 의약분업 후 약국 관리약사로서의 근무 조건이 좋아지면서 제약회사 생산부에 근무하려는 약사가 거의 없어지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마침 우리나라 전반에 만연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과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수년간 더 지속된다면 제약회사의 생산부에 근무하는 약사가 전멸하게 되는 날이 오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국산의약품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제약업계는 약사의 생산부 기피 현상이 우리나라 제약업의 미래를 좌우할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지금 당장 해결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협회와 약학대학협의회 및 관련 기관의 진지한 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약학대학은 졸업생의 진로 지도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의 3대 목표중의 하나인 제약이 이처럼 약사 이외의 비전문가 손에 맡겨지는 현실을 타파할 의무를 갖고 있으며, 또한 제약회사는 국민에게 우수한 의약품의 공급하는 것이 회사의 중요한 존재이유이기 때문에, 두 기관은 우선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의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나 우선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방안은 회사가 약사를 고용하는 기본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즉 회사는 이제 더 이상 “같은 값이면 약사를 쓰겠다”는 무모한 발상을 접어야 할 것이다. 연공서열을 따지고 타 학과 출신과의 형평성을 운운하는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제는 값싼 약사를 여러 명 쓰려는 태도는 포기해야 한다. 대신 실력이 확실한 제조관리약사 한두 명만을 파격적인 연봉으로 채용하고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격적인 연봉이란 대충 타 사원 연봉의 2배 이상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수한 제조관리약사를 생산부서로 유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다.
사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직장 내에서 이공계 출신의 입지(立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기술자가 공돌이(?)로 비하되는 세상에서는 우수한 제품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국산 의약품의 품질은 '제조관리 약사'라는 타이틀이 회사 내에서 최고의 명예로 인식되는 날, 세계 최고로 인식되게 될 것이다.
약학대학 재학생들이 제약회사의 '관리약사'가 되는 것을 포부로 삼아 공부하는 시대가 왔을 때, 우리나라 의약품의 품질은 드디어 완성될 것이며,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2002-04-12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