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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7> 환자 중심적인 치료 (2) – 긴밀하고 투명한 의사소통의 필요성
“NP님, 제 견해로는 이제 인슐린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NP는 일차의료제공자가 당뇨병 치료에 관해 내게 협진의뢰를 해서 만나게 된 환자이다. 3개월전 처음 만났을 때 당화혈색소가 목표치인 7%미만 보다 약 두 배가량 높은 13.3%여서 나는 처음부터 인슐린을 권했었다. 하지만, NP는 식사 등 생활습관 개선요법을 우선 시도해 보고 싶어 해서 인슐린 치료를 미루었었다. 하지만, 오늘 측정한 NP의 당화혈색소는 11.3%로 약간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목표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제가 인슐린에 대해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인슐린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이 인슐린을 사용할지 결정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NP의 동의를 받은 나는 환자가 인슐린에 대해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즉, 인슐린의 효과, 부작용, 투여방법, 하루 투여횟수, 부작용이 일어났을 때 치료방법, 정기적인 혈당측정의 필요성 등을 알려 주었다. 또,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가 있음에도 왜 인슐린이 NP에게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NP가 인슐린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해서 대답해 주었다.
“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슐린을 시작해도 될까요?”
“네, 사용해 보겠습니다.”
환자와 투명하고 긴밀한 소통은 환자중심적인 치료에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환자가 치료방법의 종류와 결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건강관련종사자와 함께 치료방법을 결정할 때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요즘 환자들은 예전과는 달리 인터넷 등을 통해 치료 방법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환자들이 스스로 얻은 치료방법에 대한 정보와 건강관련종사자가 권유한 치료방법이 다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치료방법을 결정할 때 치료방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건강관련종사자와 충분히 상의되지 않으면 환자들은 처방받은 치료방법을 잘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환자가 여러 치료방법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은 다음, 건강관련종사자와 함께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좋은 치료결과를 낳는 방법이다.
환자와 투명하고 긴밀한 소통은 치료과정내내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투명하고 긴밀한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환자와 건강관련종사자간에 신뢰가 형성되고 이러한 신뢰가 궁극적으로 좋은 치료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자의무기록은 치료기간내내 환자와 글로 소통하는 좋은 수단 중 하나다. 특히, 미국은 2021년 4월부터 환자들이 자신의 의무기록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그래서 의원이나 병원을 방문한 다음 의사가 작성한 의무기록과 검사결과를 환자가 온라인 등으로 접근해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2020년에 손가락 근육통때문에 카이저 퍼머난테 (Kaiser Permanente)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를 여러 번 만났었다. 아래 이미지는 내가 카이저 퍼머난테 병원의 웹사이트에 있는 내 계정에 접속해서 갈무리한 물리치료사의 의무기록이다.
이처럼 환자가 자신의 의무기록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은 건강관련종사자와 환자간의 투명한 의사소통에 큰 도움을 준다. 또, 환자가 의무기록을 읽어 볼 수 있기 때문에 의사, 물리치료사, 약사 등 환자를 직접 보고 의무기록을 남겨야 하는 사람들이 의무기록을 더 잘 쓰도록 신경을 쓸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의무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의료의 질을 높이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전자의무기록은 환자와 건강관련종사자간의 직접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는 병원의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의무기록 계정으로 들어가서 치료를 담당한 건강관련종사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경우, 건강관련종사자는 의무기록을 스마트폰 앱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환자가 의무기록 계정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면 스마트폰 앱이 이를 바로 알려주기 때문에 건강관련종사자는 바로 그 메시지를 읽어 보고 환자와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환자만 건강관련종사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관련종사자도 환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이를 환자가 의무기록 계정을 통해 직접 볼 수 있다. 이처럼 전자의무기록은 환자와 건강관련종사자간의 긴밀하고 투명한 의사소통에 아주 유용한 수단이며 환자 중심적인 치료를 수행하는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전자의무기록과 같은 인프라와 더불어 환자와의 긴밀하고 투명한 소통에 필요한 것은 건강관련종사자의 좋은 의사소통기술이다. 환자와의 소통은 주로 구두와 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건강관련종사자는 구두소통능력 (oral communication skills)과 글로 소통하는 능력 (Written communication skills)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과 글로 전달하는 정보가 쉽고 명확하며 정확해야 하며, 잘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좋은 의사소통기술은 공부만 잘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잘 하지만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경청할 줄 모르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UCSF 약대는 학생선발단계에서부터 의사소통능력을 입학선발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지원자들의 구두의사소통 능력을 multiple mini-interviews라는 인터뷰 방법를 통해 평가한다. 이 인터뷰는 녹화가 되어 입학사정위원회의 교수들이 이를 보고 평가한다. 또, 글로 소통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지원자들은 학교에 인터뷰를 하러 온 동안 에세이를 써 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약대교육과정내내 의사소통기술이 강조된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은 실기실습 (Skills lab)이라는 과목을 첫 2년내내 수강해야 한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환자와 상담하는 법, motivational interview 기술 등 구두의사소통기술과 SOAP 노트 작성법 등을 배운다, 그리고, ‘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s’이라는 시험을 이용해서 의사소통기술을 평가하는데, 이것은 배우 등이 환자 역할을 맡는 시뮬레이션 시험이다. 또, 의사소통기술은 3학년 실기실습의 평가항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기술은 졸업 후 과정, 가령 레지던시에 지원할 때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
요약하면, 환자중심적 치료를 위해 환자와 건강관련종사자간의 긴밀하고 투명한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에게 여러 치료방법에 대한 장단점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서 환자가 치료방법을 함께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치료기간내내 건강관련종사자와 환자는 전자의무기록 등을 통해 긴밀하고 투명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좋은 치료결과를 낼 수 있다. 이를 위해 건강관련종사자는 좋은 의사소통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는 치밀한 학생 선발계획과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다음 편(환자중심적인 치료 3>에서는 여러 직역간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2-04-27 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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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6> 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
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
나는 1990년대에 서울대 약학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내가 다니던 때만 해도 –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 약학대학 학생들은 여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소속한 약학과는 정원 40명 중 70%인 28명이 여자였다. 남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우리 남자들은 여러가지 설움을 겪어야 했다. 예를 들어 봄에 버들골에서 과단합대회를 할 때 남자들이 좋아하는 축구보다는 여자들이 선호하는 피구와 같은, 적어도 나에게는 별로 신나지 않은 놀이를 해야만 했다.
이처럼 약대의 학부생활에서 남성이라는 성별은 소수자가 되어 다수인 여성의 의견을 따라야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는 갑자기 큰 장점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학부를 졸업하는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지원했기에 일부 인기있는 실험실은 떨어지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치열한 경쟁은 주로 여자 지원자들에게 해당했다. 왜냐하면 실험실들이 남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실험실이 남자를 선호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석박사 통합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석사과정을 먼저 거쳐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은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면 이것으로 군대를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 병역특례제도 – 일단 석사과정에 입학한 남자들은 박사과정이 끝날 때까지 약 7여년간 실험실의 일꾼이 될 수 있다. 반면 여자들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꼭 진학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험실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일꾼으로 보기 어려웠다. 또 학위 과정 중 결혼하게 되면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가정일에 좀 덜 매이기 때문에 실험실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원생을 선발할 때 이러한 실험실의 남자 선호경향이 학부때의 학업성적보다 더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남자들보다 성적이 우월한 여자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입학하고 첫 2~3년동안 대부분의 남자들이 학업보다는 과외할동에 치중하는 동안 여자들은 수업을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숙제도 베끼지 않고 스스로 다 해내었다 (아마 여자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들끼리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을지 모르겠다). 이처럼 여자들의 학부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대학원에 지원한 남자들의 합격률은 여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내 기억으로는 떨어진 남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 준비동안 나는 선배들로부터 들은 말로 안심이 되곤 했다:
“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
지금 우리나라의 성평등 정도는 30년전보다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남녀고용평등법도 제정되었고 여성의 사회진출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할 점이 있어 보인다. 다시 약대의 예를 들어 보자. 서울대, 성균관대, 중앙대 약대의 여성 교수진 비율은 각각 27%, 24%, 30%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주요 약대 교수진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다. 반면, UCSF 약대의 전체 교수진 104명 중 47%가 여성이다 (여성학생의 비율이 60~70%에 달하는 UCSF도 아직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 약대의 경우 과거에 있었던 실험실의 남자학생 선호 영향으로 여성 교수진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낮을 수 있다.
실제로 젊은 교수진인 부교수와 조교수의 여성 비율을 보면 서울대는 38% (8명 중 3 명)로 전체 교수에서의 비중보다 약 10%정도 더 높다. 이는 개선된 비율이기는 하지만 UCSF 약대의 같은 직급에서의 비율인 64% (22명 중 14명)와 비교할 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물론 약대 교수진의 남녀비율이 한 나라의 성평등 정도를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약대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이 입학하는 곳이다. 따라서, 약대의 여성 교수진의 비율이 낮으면 남자들이 전통적으로 더 선호해온 다른 직군에서 여자들의 비율은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성평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등 법적으로 성평등을 뒷받침하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지 모르겠다. 법으로 성평등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차별은 오랜 기간동안 사회적 문화적으로 뿌리깊게 자리 잡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여성차별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은 바로 여성과 관련된 언어일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 대학생은 그냥 대학생으로 부르지만 여자 대학생은 여대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다. 기자, 배우, 교수 등 직업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에도 남성을 나타내는 “남”은 들어가지 않지만 여성을 나타내는 “여”가 들어간다. 이처럼 “여”가 들어가는 이유는 여자가 그 직군에서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따로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소수가 다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별이 ‘다르다’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런 단어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여성차별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키는 데 기여한다.
또, 우리가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나 행위들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표현이나 행위들을 영어로 microaggession (미세하게 괴롭히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라고 부르는데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 후보가 형수에게 했다는 욕설의 표현은 그 대상이 남성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또, 여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 미디어에서 보도할 때 남성에 비해 좀 더 부정적이고 센세이셔널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외에도 “노처녀 히스테리”와 같은 표현들도 여성에 대한 microaggression이다. 이와 같이 여성차별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남녀고용평등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남성지원자에게는 물어보지 않는 사항들 - 남자친구가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 아기 가지면 그만 둘 거냐, 군대에 가지 않았으니 월급을 덜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 등을 여전히 물어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microaggression의 예).
UCSF는 이러한 구조적 편견과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직원들에게 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교수의 임용과 승진심사에도 대상 교수가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도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 위한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는 작년에 네 시간씩 이틀, 총 8시간동안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diversity, equity, inclusion)에 대한 워크샵을 들었었다. 이 때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나도 소수자들에 대해 편견과 차별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고 언어와 행위를 통해 나타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은 오랜기간동안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면 개선이 가능하다. 그리고, microaggression을 목격하게 되면 가해자에게 이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피해자를 지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microaggression을 보고도 침묵하면 이를 계속 지속시키는 공범이 되기 때문이다.
30년전 대학원 진학 때 남자로 때어난 것을 위안으로 삼았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같은 과 여자친구들에게 미안하다. 이제 “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나의 힘을 보탤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2-03-31 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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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5> 환자 중심적인 치료 (1)
“이 환자는 인슐린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약사 레지던트는 내 클리닉에 오늘 처음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환자인 NP의 당뇨병 치료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말했다. 내 클리닉에 실습오는 수련인들은 클리닉이 시작하기 전에 환자들의 차트를 모두 읽고 자신만의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환자를 만나기 전에 나와 함께 이에 대해 토론한 다음 치료계획을 확정한다. 물론, 환자를 직접 만나는 동안 환자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이에 따라 치료계획을 수정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환자를 만나기 전에 나와 함께 미리 치료계획을 세워보면 아직 임상 경험이 적은 수련인들이 환자를 좀 더 효율적으로 또 자신있게 볼 수 있다.
“좋은 생각이야. 이 환자는 메트포민 (metformin), 글리피지드 (glipizide), 리나글립틴 (linaglipitin) 등 세 가지의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긴 하지만 환자의 당화혈색소 (hemoglobin A1c) 수치가 너무 높아서 인슐린이 필요해 보여.”
NP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는 7%미만이었는데 최근 측정한 당화혈색소 수치가 13.3%로 거의 두 배나 더 높았다.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들은 각각 당화혈색소를 0.5-1.5% 정도 떨어뜨리기 때문에 NP의 당화혈색소 수치를 목표치까지 낮추기 어려워 보였다. 따라서, 당화혈색소를 무한정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인슐린이 NP에게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니?”
NP를 다른 진료실에서 만나보고 온 약사 레지던트에게 물었다.
“NP가 인슐린을 시작하는 것을 꺼려해요.”
“왜?”
“음식, 운동 등의 생활습관 조절을 먼저 해 보고 싶어해요.”
“그래? 같이 가서 NP와 얘기해 보자.”
우리가 NP를 만나자마자 레지던트는 인슐린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NP의 표정과 태도를 보니 인슐린을 처방받는다고 하더라도 안 사용할 것 같았다. 또, 그의 현재 사정을 들어보니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서 좀 힘들게 생활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굶는 날도 꽤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음식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슐린을 투여하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저혈당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생활습관 조절방법을 더 강화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의 제안을 들은 NP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생활습관 조절로는 충분하지 않을수도 있으니 인슐린 대신 저혈당의 위험이 낮은 리라글루타이드 (liraglutide)라는 약을 오늘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기존에 드시고 계신 약들과 새 약, 그리고 생활습관조절을 3개월 시도해 보고 당화혈색소를 다시 측정해 봅시다. 만약 그 때에도 당화혈색소가 7%보다 더 높으면 인슐린을 시작해도 될까요?”
NP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NP가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샌프란시스코시가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을 알려 주었다.
3개월 뒤, NP의 당화혈색소를 측정해 보니 11.3%로 목표치인 7%미만보다 아직 많이 높았다. 이러한 치료결과를 본 NP는 인슐린을 시작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NP 에게 인슐린을 처방하고 2~3주간격으로 환자를 모니터하면서 인슐린 용량을 조절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측정한 당화혈색소는 7.9%로 크게 개선되었다.
이처럼 치료방법을 결정할 때 환자의 의견과 생활환경을 반영하면 치료결과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환자 자신의 선호도, 가치, 생활환경 등을 고려하여 환자와 함께 치료방법에 대해 결정하는 것을 환자 중심적인 치료(Patient-centered care)라고 부른다. 환자 중심적인 치료는 환자를 건강관련종사자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협력자로 대한다. 즉, 환자를 치료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하는 것이다.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처방한다. 하지만, 이는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도 환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처방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방법에 대한 환자의 동의와 참여는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 필수적이다.
환자의 선호도, 가치, 생활환경 등을 반영하여 환자와 함께 치료방법을 결정하면 환자는 합의한 치료방법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리고, 위의 NP의 예처럼, 합의했던 치료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제안하는 다른 방법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즉, 환자의 의견을 반영해 주기 때문에 그 치료방법에 대한 순응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환자 중심적인 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증가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만성질환은 증상이 거의 없고 약을 이용한 장기적인 조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환자의 치료방법에 대한 동의와 참여없이는 이 질환들에 대한 장기적인 조절이 쉽지 않다. 그런점에서 환자 중심적인 치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다음편에서는 환자 중심적인 치료를 위해 임상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루기로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2-02-28 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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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4> 오미크론에 감염되다
오미크론에 감염되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1월 10일부터 목이 칼칼하기 시작하더니 11일에는 기침이 나왔다. 뿐만 아니다. 잠을 잘 잔 것 같은데 피곤해서 낮잠도 자고 싶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나?’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면 지난 1월 7일에 대면해서 환자를 보았던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클리닉이 가장 유력한 장소였다. 왜냐하면, 학교 방침에 따라 1월에는 캠퍼스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만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방문했던 장소 중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실내 공간으로는 클리닉이 유일했다.
1월 7일 클리닉에서 나는 만성질환에 대한 약물치료를 위해 네 명의 환자를 직접대면으로 보았다. 그 때, 코로나 증상을 가지고 있거나 코로나 검사 양성이었던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환자와 나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만났다. 특히, 나는, 병원의 방침대로, N95 마스크를 줄곧 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2월30일에 코로나 부스터접종도 받았었다.
“요즘 상황이 팬데믹기간 중 가장 나빠요. 그래서, 병원은 지금 코로나 증상으로 오는 환자들로 붐비고 있어요.”
클리닉의 간호사 말대로 미국의 상황은 아주 나빴다.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된 이후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1월 둘째 주에는 일주일 평균 신규 감염자수가 팔십만명을 웃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작년 1월에 세운 최고치에 거의 세 배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샌프란시스코도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시내 일주일 평균 신규 감염자 수가 지난해 1월 최고치였던 350명대보다 약 6~7배가 더 많은 2천명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백신접종 완료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높지만 오미크론의 강한 전염력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1월 12일,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일단,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또, 만약 양성이면 14일에 클리닉에서 보기로 한 환자들의 예약을 다른 날로 빨리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학교의 MyChart라는 온라인 개인 의무기록 웹사이트를 통해 당일 오전으로 검사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나온 PCR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여러 변종 (variant) 중 나를 감염시킨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전체 코로나 환자의 99.5%를 감염시키고 있는 오미크론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내 증상은 약간의 기침과 피곤함이 전부일 정도로 가벼운 감기를 앓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 쉬는 것 외에는 따로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증상은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미크론에 감염되었을 때에는 대부분 가벼운 증상만을 겪는다는 기존의 보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오미크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부스터를 포함한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암과 같은 기저질환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오미크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회가 세심하게 배려해 주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오미크론의 전파력은 무서웠다. 내가 감염된 다음, 나와 함께 생활하던 아내와 아들이 차례로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감염된 경위를 생각해 보아도 오미크론의 전파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나는 팬데믹 내내 클리닉에 나가서 환자들을 대면으로 보아왔다. 내 클리닉이 속한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시내 저소득층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밀집된 생활환경, 대면접촉을 피할 수 없는 직업 등으로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율이 더 높다. 그래서, 내 환자들 중 상당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무증상 감염자들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미크론은 달랐다. 1월 7일은 이 변종이 유행하기 시작한 다음 내가 처음으로 환자를 본 날이었는데 그 날 일한 후 바로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백신접종을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미크론은 델타에 비해 전염력이 2~3배 더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오미크론의 강한 전파력을 고려할 때 유증상 또는 무증상 감염자와 생활을 함께 하는 가족 구성원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감염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많은 수의 감염자가 짧은 기간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감염자 수가 폭증하게 되면 검사 수요가 폭증하여 검사를 제때 받지 못할 수 있다. 병원을 가진 학교의 교원 신분이었던 덕분에 나는 원하는 때에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보험이 지불해 주는 병원에서 검사를 제때에 받을 수 없었던 아들은 개인 돈을 써서 사설기관에서 받아야만 했다. 또, 자가 검사 키트는 모두 동이나 구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런데,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된 사회에서 증상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들이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모든 검사에는 비용이 든다. 보험이 비용을 지불해 주는 경우, 이 검사 비용은 보험 가입자들이 낸 돈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 직접 방문하여 검사를 받거나 약국에서 검사 키트를 대면으로 구입하는 경우, 의료기관종사자, 환자, 약국 종사자들이 감염력이 강한 오미크론에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검사는 그 결과가 치료방법의 결정에 끼칠 때에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스터를 포함한 백신 접종을 완료한 건강한 사람이 확진자와 밀접접촉을 한 다음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 검사를 통해 감염을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방법 – 집에서 쉬기 – 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내는 검사를 아예 받지 않았다. 물론, 생업에 종사하거나 여행 등 일정변경이 힘든 분들의 경우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예정대로 일을 계속할 수 있으므로 검사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은 학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가려고 비행기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검사를 받아야 했다). 따라서, 검사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지침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의료기관과 약국 종사자, 환자들이 오미크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우편 등을 이용한 비대면으로 신속항원 자가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감염자가 폭증하게 되면 감염자에 대한 효율적인 추적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검사 양성을 판정받은 뒤 나흘이 지나서야 샌프란시스코 시로부터 감염자의 격리 사항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이처럼 감염자에 대한 추적관리가 어려운 경우, 웹사이트 등을 통해 격리와 이에 대한 해제의 조건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감염자가 이를 보고 따를 수 있다. 오미크론은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1-2일전부터 증상이 나타난지 2~3일 이후까지 가장 감염력이 높기 때문에 현재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지침은 검사 양성인 날로부터 5일동안 격리하고 증상이 호전된 경우 6일째부터 얼굴에 잘 맞는 마스크를 쓰고 나다니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의 웹사이트에서는 오미크론 감염에 대한 격리 지침을 쉽게 찾기 힘들다.
감염자가 늘고 이들이 일정기간동안 격리되면 일터에서 인력공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나의 경우처럼 의료기관종사자들은 감염자에게 노출되기 쉽고 이들이 격리됨에 따라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 사실 이 인력공백으로 인한 의료체계의 마비는 미국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클리닉에서 일한 날인 1월 7일, 클리닉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수가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 들어 환자 채혈 등의 업무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 기술하였듯이, 의료체계의 마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기관종사자들이 감염자에게 불필요하게 노출되는 것을 줄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검사결과가 치료방법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감염자들이 검사받는 것을 자제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감염자에게 노출되거나 증상이 나타난 의료기관종사자들이 코로나 검사를 빨리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학교 병원과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다음 90일동안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기간동안 가짜 양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도 격리 후 10일이 지난 다음 재검사없이 환자를 대면으로 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증상이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이었다. 특히, 나처럼 온 가족이 감염되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격리기간동안 외출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생필품을 배달시켜야 했다. 그런데, 필요한 물건이 모두 배달되지 않아 가족 중 감염력이 가장 낮아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가게가 가장 한가한 시간에 나가서 무인계산대를 이용해 물건을 사와야 했었다. 감염자 폭증으로 음식물 등 생활용품 공급이 어렵게 되면 우리가족과 같은 상황에 처할 사람들이 늘 것 같다.
이처럼 우연히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불편한 생활을 겪었지만 이 감염이 가져다 준 혜택이 한 가지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화이다. 부스터까지 모두 백신접종을 완료하고 오미크론까지 걸렸으니 당분간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나와 같이 백신접종을 완료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백신접종만을 완료한 사람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를 증강된 면역력 - super immunity – 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델타 변이에 감염된 사람은 오미크론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지 않지만 오미크론에 감염된 사람은 델타변이에 대해서도 면역력이 생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델타는 오미크론보다 훨씬 사망률이 높은 변종이다. 따라서,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경미한 증상과 생활의 불편함을 며칠 겪음으로써 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증강된 면역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아직은 잘 모른다. 또, 새로운 변이가 나타났을 때에도 면역력이 유지되는지도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감염이 끝났는데에도 증상이 계속 될 지도 모른다 (Long COVID). 무엇보다 오미크론이 심한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오미크론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오미크론에 우연히 감염되어 나타난 가벼운 증상으로 격리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조언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며칠의 불편함을 견디고 나면 적어도 앞으로 몇 달동안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2-01-24 1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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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3> 스타틴과 간독성
“아토바스타틴 (atorvastatin)이 많이 남아 있군요. 혹시 이 약에 대해 우려하고 계신 것이 있나요?”
JM은 2형 당뇨병과 고혈압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60세의 환자이다. 그런데, JM이 약을 처방한 대로 잘 복용하는 것 같지 않아 일차의료제공자가 나에게 진료의뢰를 보내 오늘 처음 만났다. 그는 복용하고 있는 약의 약병들을 모두 가지고 왔는데 유독 아토바스타틴만이 약병에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약이 간을 상하게 한다고 친구들에게 들었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먹고 싶지 않습니다.”
JM의 의무기록을 보니 아토바스타틴은 그가 2형 당뇨병 진단을 새로 받았을 때인 6개월전에 시작하였다. 그 때, 그가 받은 간기능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당뇨병은 심근경색, 뇌경색 등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당뇨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은 심순환기 질환의 병력을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했던 사람들에게서 기존의 심순환기 질환이 재발하거나 새로운 심순환기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장 높다. 즉, 심근경색의 병력을 가진 사람은 심근경색이 다시 발생하거나 뇌경색 등이 새로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뇨병을 가진 사람들도 이들과 비슷한 정도로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뇨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순환기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당뇨병 치료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당뇨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순환기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혈당,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을 모두 잘 조절해야 한다. 이 중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을 조절하는 데에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약이 스타틴이다. 그 이유는 스타틴은 당뇨병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한 여러 임상시험에서 심순환기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을 위약보다 20-40% 정도 낮추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심장학회와 심장내과의사 협회, 그리고 당뇨병 협회는 당뇨병을 가진 환자들이 스타틴에 대한 금기 사항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스타틴을 복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스타틴의 부작용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 간독성이다.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을 확인하기 위해 보통 혈액을 이용한 간기능 검사가 사용된다. 스타틴이 간독성을 일으키면 간세포가 죽게 된다. 그러면, 간세포내에 있는 알라닌 아미노트랜스퍼레이스 (alanine aminotransferase; ALT)와 같은 효소가 혈액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따라서, 혈액에 ALT의 양이 얼마나 늘어나 있는지 측정하면 스타틴이 간독성을 일으켰는지 또 그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ALT 대신 SGPT또는 GPT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스타틴은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혈중 ALT 양을 측정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허가받아 사용되고 있는 일곱 종류의 스타틴 모두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간독성이 일어나면 혈중 빌리루빈 (bilirubin)의 양도 증가하며 복통, 구토, 황달, 무력감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빌리루빈은 헤모글로빈이라는 적혈구의 성분이 분해되어 만들어지는 물질로, 간은 빌리루빈을 담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으로 간기능이 떨어지면 빌리루빈이 담관으로 잘 배출되지 않아 혈중 빌리루빈의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은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스타틴을 시작한 뒤 첫 6개월 동안 발생한다. 그리고,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은 스타틴의 용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저용량보다는 고용량이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간독성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고용량을 피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은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여러 임상시험에 따르면, 스타틴을 시작한 다음 혈중 ALT의 양이 증가한 시험 참가자들은 전체의 1-3%정도였다. 그런데, 혈중 ALT가 증가했다고 해서 꼭 간독성이 나타났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올라가거나 간독성의 증상을 보이지 않고 혈중 ALT검사 수치만 약간 증가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스타틴을 시작한 후 혈중 ALT의 양만 정상치보다 3배 이내로 증가하는 것은 비교적 자주 관찰된다. 이 경우 혈중 ALT의 양은 스타틴을 중단하지 않더라도 대다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상으로 돌아온다. 스타틴을 시작한 후 혈중 ALT의 양이 정상보다 3배 이상 증가하고 혈중 빌리루빈 수치도 2배 이상 증가한 경우는 십만명의 스타틴 사용자 중 한 명의 빈도로 드물게 나타난다. 그리고, 스타틴을 시작한 후 심한 증상을 동반한 급성 간독성이 나타나는 경우는 더 드물어 백만명에 한 명의 빈도로 발생한다. 이처럼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은 매우 드문 것이다.
예전에는 혈중 ALT 검사를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스타틴을 시작한 첫 해에는 매 3달에 한 번씩 하고, 그 결과에 이상이 없으면 두번째 해부터는 매년 한 번씩 수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이 아주 드물고 혈중 ALT 검사가 이를 정확하게 판별해 내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2016년에 미국 식의약청은 혈중 ALT 검사를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하고, 그 이후에는 간독성의 증상이 의심될 때에만 수행하도록 변경하였다.
한편, 스타틴은 만성 간질환이 잘 조절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다. 스타틴의 간독성 때문에 예전에는 만성 간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복용을 피하도록 권장하였다. 하지만,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이 매우 드물고, 간염이나 간경변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이 질환들이 약과 생활습관 개선으로 잘 조절되고 있으면 스타틴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임상 연구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래서, 미국 위장관 협회는 고지혈증에 의한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이들에게 스타틴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시 글머리의 JM 환자로 돌아가자. 나는 그에게 스타틴에 의한 간독성은 매우 드물고 그가 당뇨병을 진단받았기 때문에 스타틴에 의한 이득인 심순환기 질환의 예방효과가 간독성의 위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JM은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스타틴이 간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듣자 그는 조금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잘 알겠습니다. 한 번 복용해 보도록 하죠.”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2-01-03 1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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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2>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들 중 일부는 환자와 가입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지불약이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미국의 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과 비교할 때 그렇다. 물론, 이익창출이 목적인 사보험이 대부분인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기 때문에 보험이 지불해 줄 약을 정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재원은 보험가입자, 즉 국민이 낸 돈으로 마련된다. 따라서, 건강보험은 환자의 치료 혜택을 최대로 하면서 건강보험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로 할 수 있는 약들을 지불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들은 환자와 가입자 중심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들의 일부가 환자와 가입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선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DPP-4 (dipeptidyl peptidase-4) 억제제이다. 이 계열의 약들은2019년에 우리나라에서 5천억여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4개의 DPP-4억제제가 사용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현재 아홉 개의 DPP-4억제제들이 쓰이고 있다.
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DPP-4 억제제 (2021년 현재)
보험가는 약학정보원 (www.health.kr)에서 상품명의 최고 용량에 대한 가격임.
위와 같이 한 계열에 여러 약이 있는 경우, 미국의 보험은 이 약들에 대한 여러가지 사항을 서로 비교한 뒤 계열당 두 개 정도로 지불해 줄 약을 선택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효과와 부작용을 비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약이 다른 약에 비해 효과가 더 뛰어나고 부작용이 덜하다면 그 약은 우선적인 지불대상이 된다. 그런데, 위 아홉개의 약은, 지금까지의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효과와 부작용이 비슷하다: 이 약들은 혈당 감소의 지표로 널리 쓰이는 당화혈색소를 0.5-1%정도 낮춘다. 그리고, 이 약들을 당뇨병 환자에게 투여해서 서로 비교한 임상 시험에서 혈당 감소 정도와 부작용 발현율에 대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처럼 효과와 부작용이 비슷한 경우라면 다른 여러 가지 사항,가령 복용 횟수, 독특하거나 심각한 부작용, 약물 상호 작용, 가격 등을 비교하여 지불할 약을 결정한다. 위 아홉 개의 약 중 일곱 개는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데 두 개는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것이 두 번보다 훨씬 편리하고, 환자의 복약 순응도 (즉, 의사가 처방대로 복용하는 것)도 높다. 그렇다면,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하는 아나글립틴이나 빌다글립틴을 보험이 지불해 줄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두 번 복용해야 하는 약이 한 번 복용하는 약보다 가격이 싸다면, 복용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약제비를 절약하고 싶은 환자를 위해 보험이 지불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글립틴을 하루 복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738원 (즉, 두 번 복용해야 하므로 369원 곱하기 2)으로 하루 한 번 복용하는 에보글립틴의 737원보다 더 비싸다 (물론, 지불여부가 결정된 다음 보험가를 결정할 것이므로 만약 아나글립틴을 지불해 준다면 이 약을 하루에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약들보다 싸도록 보험가가 정해져야 할 것이다). 빌다글립틴의 경우, 약을 하루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896원으로 시타글립틴 다음으로 비싼 약이다. 2017년에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빌다글립틴을 함유하는 약에 대해 600억원 정도를 지불해 주었다.
테네리글립틴은 DPP-4억제제 중 유일하게 심장 돌연사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이 부작용은 드물기는 하지만 다른 8개의 약은 이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보험이 테네리글립틴을 지불해 줄 필요가 있을까? 2019년 건강보험이 테네리글립틴를 함유하는 약에 지불한 돈은 300억원에 달한다.
삭사글립틴, 에보글립틴, 제미글립틴은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약물상호작용이란 여러 개의 약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약효가 줄거나 부작용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삭사글립틴, 에보글립틴, 제미글립틴은 간에서 CYP3A라는 효소에 의해 대사된다. 그래서, 이 효소의 작용을 증가시키거나 방해하는 약과 함께 쓰면 삭사글립틴, 에보글립틴, 제미글립틴의 효과가 줄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6개의 DPP-4 억제제는 약물상호작용의 위험이 없다. 당뇨병 환자들은 고혈압, 고지혈증 등 다른 만성질환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약을 보험이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에 일부 당뇨병 치료제들이 심근경색, 뇌경색 등의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 관찰되어 미국의 FDA는 모든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들이 반드시 임상시험을 통해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에 대한 보험 지불 여부를 결정할 때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 위 아홉 개의 DPP-4억제제들 중 알로글립틴, 리나글립틴, 삭사글립틴, 시타글립틴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DPP-4억제제들은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받지 못했다 (임상시험 결과, 알로글립틴, 리나글립틴, 삭사글립틴, 시타글립틴 모두 전반적으로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5개의 DPP-4억제제들은 이러한 임상시험이 수행되어 있지 않아서 이들이 심순환기 질환에 대해 안전한지 현재로써는 불명확하다. 만약 모든 DPP-4억제제가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어떤 것이든 차별없이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는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어 있고 다른 것들은 안전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보험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시타글립틴은 위에서 언급했던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지불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약은 하루 한 번 복용하면 되고 심장 돌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 약물상호작용이 없고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도 검증받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가격이다. 이 약의 오리지널 상품인 ‘자누비아’는 표에서 보듯이 하루 복용 비용이 910원으로 DPP-4 억제제 중 가장 비싸다. 그런데. 시타글립틴은 제네릭 약이 허가되어 사용된다. 제네릭 시타글립틴의 보험가는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오리지널 약인 자누비아보다 싸고, 가장 싼 것은 오리지널보다 약 40% 낮은 541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오리지널과 제네릭 약들 중 가장 싼 것을 선택해서 지불해 주는 것이 환자의 치료 혜택을 최대로 하면서 건강보험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로 하는 방법이 아닐까?
이상과 같이 DPP-4 억제제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지불해 줄 약을 선정하는 데는 개선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이 피땀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재원인 만큼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불할 약을 선정해야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12-01 0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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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1> 코로나바이러스 mRNA백신과 심근염의 위험
화이자(Pfizer)사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다. 2020년 12월, 미국에서 허가받은 이 백신은 기존의 백신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생기게 한다. 즉, 단백질을 이용하는 대신 mRNA라는 물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mRNA를 이용하여 면역이 생기도록 하는 백신을 mRNA 백신이라고 부르고, 화이자사와 모더나(Moderna)사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이 이런 종류이다.
이 백신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음에도 별다른 심각한 부작용이 임상시험 중에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실제 임상현장에서 사용하는 동안 일부 접종자들에서 발생한 심근염(myocarditis)과 이 백신들과의 연관성이 의심되고 있었다. 지난 10월에 의학잡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과 미국의학협회 내과학회지(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Internal Medicine; JAMA Internal Medicine)에 이 백신들과 심근염의 연관성에 관한 세 편의 연구들이 발표되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심근염은 심장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심장은 전신에 혈액을 보내는 역할을 하므로 심장근육에 염증이 생기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심장근육의 염증으로 인해 가슴부위가 아플 수 있고 몸의 조직들이 혈액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피곤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심장은 정맥으로부터 혈액을 받아 동맥으로 보낸다. 그래서, 심장이 혈액을 동맥으로 잘 보내지 못하면 많은 양의 혈액이 정맥에 머무르게 되어 다리 등이 붓고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근염의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에는 심장기능이 크게 떨어져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심근염은 매우 드문 질병이며 대부분 감기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발생한다.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심근염은 다른 대부분의 바이러스성 감염증처럼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 대신, 염증과 통증 등의 증상을 줄이기 위해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 등을 쓴다. 다행히 대부분의 심근염은 이런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로 나아지고 이에 따라 심장기능도 정상으로 회복한다.
심근염을 가장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심장조직검사이다. 즉, 심장 근육조직을 떼어내어 심장 근육에 염증과 바이러스 또는 다른 원인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출혈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아주 심한 심근염의 증상이 나타난 환자들에게 주로 수행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면서 혈액 검사 등을 통해 쉽게 진단할 수 있는 다른 질환들 (예를 들어 심근경색증)의 가능성이 제외되면 심근염으로 진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diagnosis of exclusion). 즉, 다른 질환들이 아니니 심근염일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자, 이제 최근에 발표된 세 편의 연구들을 살펴보자. NEJM에는 두 편이 발표되었는데 모두 이스라엘에서 수행한 것들이다. 이스라엘은 화이자의 백신을 접종해 왔기 때문에 이 연구들은 모두 2020년 1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은 약 2백만명에서 5백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반면, JAMA 내과학지에 발표한 연구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7월중순까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접종한 약 2백만명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대상이었다. 이 세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전체적으로 심근염 발생 빈도는 매우 낮으며 대부분은 가벼운 증상이다.
백만명의 접종자당 심근염 발생 빈도는 이스라엘 연구들은 약 7-38명, 미국의 경우 약 1-6명으로 매우 낮은 편이었다. 이스라엘 연구들에서 접종자 백만명당 심근염 발생 빈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연구들의 백신 접종 후 심근염 추적기간이 21일에서 42일로 미국 연구의 10일보다 더 길었기 때문이다. 또, 앞서 설명했듯이, 대부분의 심근염의 진단이 심장조직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이루지지 않은 것도 연구마다 발생 빈도가 다른 이유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두 연구에서 각각 136명과 54명이 심근염 진단을 받는데 이들 중 약 95%인 129명과 76%인 41명이 경증이었다. 하지만, 두 연구에서 각각 1명의 환자가 중증의 심근염으로 사망하였다. 미국의 연구에는 15명이 심근염 진단을 받았는데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한명도 없었으며 모두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였다.
2. 심근염의 발생 위험은 2차접종 후에 크게 늘어난다.
두 회사의 mRNA 백신들은 각각 3주 또는 4주 간격으로 두 번 접종한다. 그런데, 위 세 연구 모두에서 1차접종보다 2차접종 후 심근염이 발생할 위험이 훨씬 더 높았다. 예를 들어, 미국 연구의 경우, 1백만명의 접종자당 심근염의 발생빈도는 첫번째 접종 후에는 0.8명였지만, 두번째 접종 후에는 5.8명으로 약 6배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연구에 따르면 두번째 접종 후 1주일안에 심근염이 발생할 위험이 가장 높았다.
3. 심근염 발생의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남성, 특히 16-29세 사이의 젋은 남성들이다.
세 연구 모두에서 심근염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었다. 미국의 연구에는 심근염 진단을 받은 환자 전원이, 이스라엘의 연구들은 91-94%가 남성이었다.
이스라엘의 두 연구에서 심근염 진단을 받은 전체 환자 중 약 60%가 16세에서 29세 사이의 청소년과 젊은 남성들이었다. 이를1백만명 접종자 당 발생 환자 빈도로 계산하면 84-107명으로, 이는 30대 이상의 남성 접종자들에 비해 약 5배 정도 더 높은 것이었다.
특히, 심근염 환자의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대는16세에서 19세 사이의 청소년으로 백만명당 164명에서 심근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발생 빈도는 약 6500명의 접종자 중 한 명 꼴로 나타나는 것으로, 같은 연령대의 비접종자들과 비교했을 때 약 9배나 더 높은 것이다. 이 결과에 따라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화이자 백신을 맞추었을 때 심근염 발생 환자수는 약 100일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33만명의 고등학생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여성분들과 30대 이상의 남성분들은 코로나바이러스 mRNA 백신, 특히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을 때 심근염이 발생할 우려를 많이 덜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심근염 발생 고위험군으로 나타난 16세에서 29세 남성분들의 경우,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첫째,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과 위험을 비교해야 한다. 백신 접종의 가장 큰 이득은 입원치료가 필요한 증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것일 것이다. 이들의 중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에 대한 자료를 미국 질병통제센터 (CDC)에서 따로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12세에서 17세의 자료가 있어 이를 참고하기로 하겠다. 이 자료에 따르면, 1백만명당 약 630명에서 중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했는데 이는 16세에서 19세사이의 청소년1백만명당 심근염 발생 빈도수인 164명보다 약 4배 더 많은 것이다.
따라서,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이 위험보다 더 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전체적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빈도가 훨씬 낮다. 10월 9일 현재까지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는 우리나라가 인구 10만명당 약 600명인데 비해, 미국은 이보다 20배이상 많은 약 13,000명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16-29세 사이의 젋은 남성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아 미국 젋은 남성들에 비해 백신접종에 따른 이득이 더 적어질 수 있다.
둘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과 심근염 중 어느 것이 더 사망률이 높으며 후유증이 오랜기간동안 지속되는가이다. 두 질병에 의한 청소년과 젋은 남성들의 사망률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중 약 40%가 넉달이상 장기간동안 증상을 앓아 일상적인 삶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반면, 앞서 소개한 연구들은 접종 후 심근염이 발생한 청소년과 젋은 남성환자들 중 90%이상이 정상적인 심장기능을 회복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세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다. 천식, 소아당뇨, 심장질환 등의 동반질환을 가진 청소년과 젊은 남성분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중증으로 진행되어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남성들은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을 더 크게 볼 것 같다.
네째, 가족 등 자주 접촉하는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고혈압,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때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분들과 함께 살거나 자주 접촉해야 하는 젊은 남성들은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이 더 커 보인다.
마지막으로 심근염의 위험은 접종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올라간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이는 16세에서 29세의 남성들이 3차 접종 등 부스터 (booster) 접종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앞서 소개한 연구들에 따르면, 1차 접종과 비교할 때 2차 접종이후 심근염 발생의 위험이 3-6 배 더 높았으므로 3차 접종이후 이 위험이 더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충분한 연구결과가 나온 다음 mRNA 백신의 부스터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11-01 1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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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90> 교훈이 되는 미국의 백신접종 상황
“우리 학교에서는 올해 연말까지 20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모든 수업 – 대그룹 수업 - 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다시 크게 늘고 있기 때문에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내릴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대신 최대 20명이 참여하는 소그룹 수업은 계속 대면으로 진행합니다.”
8월 중순, 교수회의에서 학교의 교육 부학장 (Vice Dean for Education)이 발표한 가을학기 수업에 관한 지침을 듣고 나는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모든 대그룹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10월에 시작하는 내 코스의 계획을 크게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우리학교는 모든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해 왔다. 하지만 백신 접종으로 미국 전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가 만명대로 크게 줄자 7월부터 시작한 여름학기에는 소그룹 수업에 한 해 대면수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학기부터는 대그룹 수업도 대면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가 다시 매일 15만명을 넘길 정도로 크게 늘자 대그룹 수업을 비대면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가 다시 크게 증가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 미국 질병 통제 센터 (CDC)에 의하면 이 변이 바이러스는 홍역에 비견될 정도로 기존의 것보다 감염력이 훨씬 강하다. 즉,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의 바이러스에 비해 감염력이 50% 정도 더 높고 50%정도 더 빨리 감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의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의 전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중 델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은 6월 초순만 해도 8-1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99%를 차지할 정도다. 그리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전세계적인 유행이므로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감염력이 강하기는 하더라도 현재 허가받아 사용하고 있는 백신들은 이 변이 바이러스에 의해 심각한 감염증이 일어날 위험을 줄여 준다. 이는 최근 CDC가 발표한 미국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먼저, 올해 4월 초에서 7월 중순까지 발생한18세 이상의 성인 감염자를 살펴보았을 때,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접종한 사람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11배, 병원에 입원할 위험은 13배, 사망할 위험은 무려 16배나 더 높았다. 또,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지던 6월에서 8월 사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미국내 9개 주의 병원에 입원한 성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허가받은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들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심각한 감염증을 비교적 잘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백신들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83% 낮추어 주었다. 또, 백신 제조회사별로 보면, 얀센 백신이 60%, 화이자 백신은 80%, 그리고 모더나 백신은 95%의 예방 효과를 보여 모더나 백신이 가장 높은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 그리고, 이 백신들의 중증 감염 예방 효과는 18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 감염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미국내에서 델타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진 기간이었던 6월20일부터 7월 31일 사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청소년은 접종한 청소년에 비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이 8배 더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연구당시 미국에서 허가받은 백신들은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델타 바이러스에 의한 심각한 감염증을 잘 예방해 준다.
중요한 점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경우 3-4 주 간격으로 두 번 접종 – 즉, 접종완료 – 해야만 이와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12세 이상의 접종완료율은 9월 29일 현재 고작 65%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가 다시 크게 증가한 이유는 낮은 접종완료율에 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했으며, 다른 나라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백신을 사재기해 놓은 나라이다. 따라서, 미국의 접종완료율이 낮은 이유는 백신접종을 늦게 시작했거나 백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러면, 왜 접종완료율이 낮을까?
미국에서 아직까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접종 거부 이유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백신이 너무 서둘러 만들어져서 그 효과와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세 가지 이유 중 일면 이해되는 점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이 기존의 다른 백신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동안 임상시험을 마치고 허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백신들 중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에서 그 효과와 부작용을 체계적으로 오랜기간동안 추적하고 있는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지난 2월에 접종을 받으러 갔을때 나자신도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였지만 지금은 백신을 아직까지 접종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접종을 권유하고 있다. 두번째 부류는 비과학적인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백신에는 빌 게이츠가 만든 전자칩이 들어 있어 백신을 맞으면 자신들이 조종당하게 된다는 식이다. 이러한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과학적인 증거를 보여주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부류는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로 주로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백신 접종에 대한 결정은 개인의 자유 의사에 따라야 하며 정부가 접종을 강요하는 것은 개인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할 때 벌어졌던 마스크 착용여부에 대한 개인의 자유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일면 그럴싸한 주장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앞서 기술한 CDC의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현재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중 대다수는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환자수가 증가하면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들도 감염될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학교의 예처럼 학생들이 교육효과가 떨어지는 비대면 수업을 받아야 하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접종자로부터 전염되어 사망하는 접종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 일부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은 아직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닌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내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학교로 몰려가 선생님들을 위협하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접종완료율이 올라가지 않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월초에 연방정부기관과 100명이상 근무하는 개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는 명령에 서명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종완료율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일지 또 위헌요소가 없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그동안 이러한 방식을 꺼려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백신접종을 빨리 완료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접종완료율이 낮아 계속 환자가 발생하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약 이 변이 바이러스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백신에 대해 저항성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다시 팬데믹이 처음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을 늦게 시작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증가하여 9월 29일 현재 접종 완료율이 전체 인구의 45%를 넘은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백신접종을 빨리 완료하는 것이다. 이는 12세 이상의 접종완료율이 80%가 넘자 마스크를 벗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애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간 덴마크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과 덴마크의 상황을 거울삼아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잘 설득하고 접종완료율을 높여서 우리나라도 정상적인 삶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10-01 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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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9>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학부정 사건의 이슈와 교훈
지난 8월 24일, 부산대학교는 지난 2015학년도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졸업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학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산대학교는 졸업생에게 이러한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하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이 지원했을 당시의 신입생 모집 요강에 의하면 입학을 위해 제출한 서류의 기재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합격 처리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비록 해당 졸업생이 기재했었던, 사실과 다른 경력이 주요 합격요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이는 “대학본부가 입학취소 여부를 판단할 때, 지원자의 제출 서류가 합격에 미친 영향력 여부는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부산대는 학교 규칙이 정한 청문절차를 거쳐 징계를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에 대해 일부에서는 1) 어머니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져” 헌법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2) “본인의 행위가 아닌 어머니의 행위에 대한 형사재판 결과를 인용해 딸의 입학을 취소하는 사실상의 연좌제를 범하는 반헌법적인 처분”이며 3) 설령 법원 판결이 맞다 하더라도 입학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아 다른 지원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의 학업 부정행위 (academic misconduct)로 열린 청문회 (hearing)에 여러 번 참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부산대학교의 결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
대학입학 부정행위는 미국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2019년에 밝혀진, 무려 53명이 관련된 대규모 입학 부정행위 사건에서는 영화배우 등 부유층 부모들이 돈을 주고 자녀들의 성적을 조작해 여러 유명 대학교에 자녀들을 입학시킨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에 대한 형사재판은 모두 끝나지 않았지만 재판이 끝난 사람들은 죄질에 따라 징역 14일에서 6개월의 형과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에서는 학교가 학생들의 동의없이 학업성적과 징계 등에 대한 정보를 제 삼자에게 공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 이 사건과 관련된 학생들이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예일, 스탠포드, 남캘리포니아 대학교 등 관련된 학교들의 규정에 따르면 학생이 입시 비리 사건에 직접 관련되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즉 본인이 직접 성적, 서류 등의 조작 또는 제출에 가담했을 경우, 입학 취소 등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사건에 관련되었던 한 학생은 그 다음 해에 정상적인 입시과정을 통해 다른 대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보아 그 학생은 먼저 다니던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던 것 같다.
2019년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미국 대학교들은 입학 부정행위가 밝혀졌을 당시 이와 직접 관련된 학생이 이미 졸업했을 경우에 어떤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펜실베니아 대학교 (University of Pennsylvania)와 같은 학교들은 입시 비리가 확인되면 해당 졸업생의 학위를 취소시킨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이는 입학을 취소시킨 부산대의 결정과는 약간 다른 것이지만 좀 더 일리있는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여 경기를 마친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이 발견되었을 경우 실격시킨다. 즉, 이미 출전 완료한 경기를 출전하지 않은 것처럼 만들지 않고 경기 중 만든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업을 모두 마친 졸업생은 그 기록인 학위를 뺏는 것이 입학 취소보다 좀 더 논리적이다 (부산대도 해당 학생이 이미 졸업했을 경우에 대한 징계 규정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입학지원요강 사항에 포함된 입학취소로 결정했을 수도 있다).
대학교가 입시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학생들에게 입학 또는 졸업 취소라는 중징계를 내리는 이유는 이것이 학업 부정행위이기 때문이다. 학업 부정행위는 자신이 혼자 힘으로 하지 않은 일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꾸미는 것, 쉽게 말하면 거짓말인 것이다. 학업 부정행위의 대표적인 것은 표절 (plagiarism)이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생각, 말, 저작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허가 받지 않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받지도 않은 표창장을 받은 것처럼, 또는 이수하지 않은 인턴쉽을 완료한 것처럼 입학지원 서류에 기재하는 것도 혼자 힘으로 하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한 것처럼 꾸미는 학업 부정행위이다. 또, 자기소개서에 표창장 수료나 인턴쉽 완수를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거짓 자료를 제출했다면 학업 부정행위이다. 왜냐하면, 거짓 자료를 제출했다는 행위 자체가 학업 부정행위이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의 딸은 의전원에 지원했다. 의사 등 건강관련종사자들은 높은 윤리의식과 전문직업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업 부정행위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건강관련종사자의 지시와 조언을 어떻게 환자가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학업 부정행위가 확인되었을 경우, 그 행위가 이를 범한 학생 자신이나 다른 학생들의 학업 성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학업 부정행위 자체가 대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academic integrity에 반하기 때문이다. 몇 년전 우리학교 학생이 다른 학생의 것을 일부 베껴서 과제물로 제출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 과제물은 그 과목 전체 성적에 5%밖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또, 우리학교는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학업성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 학생의 성적이 다른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학교는 이 학업 부정행위에 대한 징계로 그 학생에게 F학점을 주었다.
내가 참석한 학업 부정행위에 대한 거의 모든 청문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것은 해당 학생이 학업 부정행위를 알고 있었느냐이다. 따라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청문회에서도 이것이 이슈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청문회에서 학생들이 거짓인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은 잘못하는 일인 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거짓인 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어야 할 정도로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기 떄문에 청문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 의학전문대학원을 지원할 때 해당 학생은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의 신분이었다. 따라서, 입학지원 서류의 내용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제출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해당 학생 자신이다.
일반적으로 학교내의 청문회는 외부가 아닌 학교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학업 부정행위 사건의 경우, 그 성격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 예를 들어, 학교는 표창장을 위조하는데 사용된 컴퓨터를 압수해서 조사할 권한이 없다 - 외부, 즉, 검찰의 조사와 재판 결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학교가 결정을 미루었어야 했다는 것은 일부 일리있는 주장이다. 부산대학교도 이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법원이 어머니 정경심 교수의 혐의에 대해 판단하는 관점과 학교가 해당 학생의 학업 부정행위에 대해 판단하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법원이 정경심 교수가 거짓으로 만든 입학지원 서류들이 학교의 업무를 방해했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더라도, 다시 말하면,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무죄라고 판결하더라고 이것이 해당 학생이 학업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학업 부정행위의 이슈는 제출한 자료가 거짓인지 아닌지이지 그 제출한 자료가 학교나 다른 지원자들의 당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해당 학생이 제출한 입학지원 서류의 내용 중 단 하나라도 사실과 다르다면 이는 학업 부정행위이다. 따라서, 청문회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학교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본인의 입학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미국 대학교는 학교마다 청문회에서 확정할 수 있는 사안이 다르다. 어떤 학교는 징계 여부와 내용을 모두 다룰 수 있는 반면, 우리 학교처럼 징계 내용은 다룰 수 없고 징계 여부만 확정할 수 있는 학교도 있다. 어떤 경우이건 학교의 징계를 학교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징계의 일관성 (consistency)이다. 즉, 학교가 지금까지 발견한 모든 비슷한 학업 부정행위들에 대한 징계 여부와 내용에 대해 일관성있는 결정을 내려야만 학생들은 학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부산대학교의 발표로 보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과 비슷한 입학 부정행위 케이스는 학교로서는 처음 발견한 것 같아 청문회에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입학 부정행위 사건은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업 부정행위에 대한 윤리기준을 한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학생들의 학업 부정행위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 대학교의 징계 결정과 과정에 대해 의아해 했던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2020년 한 의과대학에서 약 90명의 학생이 온라인으로 치뤄진 단원 평가와 중간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지만 해당 시험을 0점 처리하는 징계만을 내리고 말았다. 또, 부정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교수는 “실수를 겸허히 반성하고 정직하게 시험 본 동료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건설적인 방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학생들을 설득하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반면, 캘리포니아의 한 주립대는 수년 전 한 온라인 퀴즈의 부정행위에 관련된 40여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F 학점을 준 적이 있었다. 이 퀴즈는 과목 전체 성적에서 고작 1%에 불과하지만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므로 학교는 이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관련된 학생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던 것이다.
입학 부정행위가 입학 취소 사유가 되면 졸업 부정행위도 졸업 또는 학위 취소사유여야 한다. 그동안 표절한 논문으로 졸업하여 이에 대해 사과한 우리나라 장관 후보자들을 여러 번 보았지만 이들에 대해 대학이 졸업 또는 학위취소라는 징계를 내렸다는 보도를 본 적은 거의 없다. 징계의 일관성을 위해 앞으로는 졸업 후에도 표절 등 학업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대학은 장관 후보자일지라도 졸업 또는 학위를 취소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업 부정행위로 징계를 받는 학생들일지라도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 성적과 징계 여부에 대한 정보를 기밀로 다루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사건과 관련된 학생들에게도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학교는 징계 여부와 내용에 대한 결정을 당사자와 사건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 예를 들어, 의사면허를 관리하는 보건복지부에만 알려야 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 내 학업 성적이나 징계 기록을 내 허락을 받지 않고 제 삼자가 알게 된다면 좋겠는가? 조국 전 장관 딸의 입학 부정행위 사건이 우리나라 대학들의 학생 인권 제고에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부산대학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2017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기호 5번 후보에게 투표했었다는 것을 밝힌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9-01 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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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8>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자
“저희 약국으로 보낸 메트로니다졸 (metronidazole) 처방을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환자분이 여기 계신데 자신은 감염증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요.”
지역약국의 약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해당 환자의 의무기록을 찾아 보니, 아뿔싸, 당뇨병약인 메트포민 (metformin)을 처방해야 했는데 실수로 약이름이 비슷한 metronidazole이라는 항생제를 처방한 것이었다! 전자의무기록으로 처방할 때 “met”를 치면 met로 시작하는 여러 약들이 뜨는데, 오늘따라 클리닉이 너무 바빠서 약이름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처방전을 보낸 것이다. 다행히 지역약국의 약사가 환자에게 복약지도를 하는 동안 처방 실수를 발견하고 이를 알려 주어 매우 고마왔다.
처방 실수 (prescribing errors)는 비교적 흔하다. 지역과 의료 시스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1000개의 처방당 3-100개의 빈도로 처방 실수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방 실수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연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컬럼에서 여러 번 다루었듯이, 처방 실수는 드물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약의 모양이나 이름이 비슷한 것이 여러 개 있으면 처방 실수가 일어나기 쉽다. 위의 metformin과 metrodinazole이 좋은 예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약들을 ‘look alike, sound alike’ (비슷한 모양이나 비슷한 이름)이라고 구분하고 이런 약을 처방하고 조제할 때 처방자와 약사 모두 좀 더 조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처음으로 허가받은 오리지널약만이 상품명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지널약 뿐만 아니라 제네릭약도 상품명을 가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네릭약의 상품명이 비슷한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베아베린과 베아셉트는 상품명이 비슷한 제네릭약들이다. 그런데, 베아베린은 프로피베린 (propiverine)이 성분으로 요실금에 쓰이는 약인 반면, 도네페질 (donepezil)이 성분인 베아셉트는 치매에 쓰인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다른 적응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상품명을 가진 제네릭약이 많아 약이름의 혼동으로 인한 처방 실수가 일어나기 더 쉽다.
의사가 처방 실수를 하더라도 약사가 이를 발견하고 의사에게 알려 고칠 수 있도록 하면 환자가 처방 실수로 인해 해를 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위에서 기술한 대로, 내 처방 실수를 잡아내 고치도록 한 지역약국의 약사가 좋은 예이다. 이 약사는 복약지도 과정에서 처방 실수를 발견했지만 이 과정에서 처방 실수를 모두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환자가 적응증을 모르거나 같은 적응증을 갖지만 금기 등으로 인해 환자에게 쓸 수 없는 약을 처방한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약사가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을 읽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무기록에는 의사가 왜 이 약을 처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을 접근할 수 있지만 지역약국의 약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미국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기관 (Institute of Safe Medication Practice; ISMP)은 처방전에 적응증 또는 진단명을 기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즉, 처방전에 적응증 또는 진단명이 담겨 있으면 약사가 왜 이 약이 처방되었는지 알 수 있어 처방전을 좀 더 꼼꼼히 검토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환자에게 잘못 처방된 약이 전달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부 약의 처방에 한해서 의사가 처방전에 진단명을 기입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17년부터 오하이오 주 등 일부 주에서는 오남용으로 부작용의 폐해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모르핀과 같은 아편계 진통제를 처방할 때 진단명이 빠지면 약국에서 교부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다.
처방전에 진단명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널리 이용하는 것이 질병분류기호이다. 질병분류기호는 국제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가 분류한 질병들을 간단하게 기호로 만든 것으로 현재 국제 표준으로 쓰이고 있는 질병분류기호는 ICD-10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코드이다. 예를 들어, 2형 당뇨병의 ICD-10 코드는 E11 이며, 고혈압은 I10이다. 질병분류기호는 의사가 어떤 진단을 내렸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써 누구나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해볼 수 있어서 이 기호를 보면 어떤 질병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질병분류기호는 우리나라에서 처방전에 기입해야 하는 항목 중 하나이다. 이는 약물을 안전하게 사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제도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왜냐하면, 환자의 요구가 있으면 의사는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는 것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난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처방전이 이곳을 비워 두고 있다. 실제로, 2017년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의원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의사도 어머니에게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을 생략하는 것을 원하는지 물어 보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받은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난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환자의 요구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질병분류기호의 기입을 생략하는 이유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처방전이 약사를 제외한 제 3자의 손에 들어 가면 개인정보가 누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처방전에는 신용카드 정보 등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연결되어 있는 주민등록번호도 기입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환자에게 처방전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법이 규정한 대로 처방자로 하여금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 또, 환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약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질병분류기호에 따른 진단명 등 처방전에 기입된 모든 환자 개인정보를 제 3자에게 알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경우, 처방전의 질병분류기호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하기도 하다. 따라서, 첫 진료를 받을 때부터 질병분류기호가 기재되어 있는 처방전을 발급받는다면 실손보험에 청구하기 위해 필요한 질병분류기호가 빠진 처방전 때문에 의원이나 병원을 다시 방문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처방전의 질병분류기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가 빠져 있다면 이를 기입하도록 환자가 요구해야 한다. 아, 그리고, 의사가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재하는 것에 대해 환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무료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8-02 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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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7>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에 의한 혈전증 위험을 증가시킬까?
고혈압, 고지혈, 또는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이 아스트라제네카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을 경우 혈전증이 나타날 위험이 더 커진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즉, 이런 기저질환은 그 자체만로도 혈전증의 위험을 증가시키는데 여기에 혈전증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 AZ나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혈전증의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 중 일부는 AZ나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접종을 받지 않으시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정말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에 의한 혈전증 위험을 증가시킬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 이유는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에서 나타나는 혈전증과 AZ 또는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은 발생 기전과 장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기저질환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발생 기전과 장소를 살펴 보기로 하자.
혈관내에 생기는 혈전은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기전에 의해 발생한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 기저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혈전은 동맥내벽에 쌓인 여러 물질에 의해 발생한다. 동맥혈관 구조상 피에 직접 접촉하고 있는 부분을 동맥내벽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쌓이는 물질들은 주로 콜레스테롤, 지방, 죽은 염증 세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물질들은 막으로 덮여져 있어 혈액과는 직접 접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 이유는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막이 깨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막 아래의 물질들이 혈액과 직접 닿게 되고 혈전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물질들에는 혈액으로 하여금 혈전을 생성하도록 유도하는 물질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의 질환은 동맥내벽에 이런 물질들이 쌓이는 것을 촉진한다. 동맥내벽에 상처가 생기면 여기에 물질들이 쌓인다. 그런데, 고혈압은 동맥내벽 상처의 원인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혈압이 높으면 동맥내벽에 상처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즉, 건물의 벽에 미치는 압력이 세면 벽에 균열이 생기기 쉬운 것처럼 혈관내벽에 작용하는 압력이 높으면 상처가 쉽게 나는 것이다. 동맥내벽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혈액 속에 돌아다니는 콜레스테롤과 지방 등이 혈관내 상처에 쌓인다. 따라서,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으면, 즉 고지혈증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양의 콜레스테롤이 동맥내벽에 난 상처에 쌓일 수 있다. 또, 피부에 상처가 나면 염증반응이 일어나듯이 동맥내벽에 상처가 나도 염증반응이 일어난다. 그런데,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으면 동맥내벽의 상처에 쌓여 염증반응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산화된 콜레스테롤의 양도 증가한다.
또, 당뇨병으로 혈당이 높은 경우에도 동맥내벽의 상처에 발생한 염증반응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염증반응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동맥내벽에 쌓이는 물질들의 양도 커지고 이 물질들을 둘러쌓고 있는 막도 얇아져 쉽게 깨질 수 있다. 따라서,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 기저질환은 동맥내벽에 쌓이는 물질들의 양을 늘리고, 이들이 쉽게 혈액과 접하게 하여 동맥내에서 혈전이 발생할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서 혈전이 발생하면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하여 심장근육이 죽게 된다 (심근경색). 만약,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혈전이 생기면 뇌세포가 죽게 된다 (뇌경색).
동맥내벽에 콜레스테롤, 지방, 염증세포 등이 쌓여 발생하는 혈전과는 달리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면역반응을 일으켜 혈전을 만든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21년 4월30일자 컬럼“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 –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약물 알러지?” 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즉, 백신의 성분이 우리몸 안의 혈소판 인자 4라는 것과 결합함으로써 혈소판 인자4 구조를 변형시키고 이에 대한 항체 생성을 유도하여 혈전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혈전은 동맥이 아닌 주로 정맥에서 발생한다. 이처럼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 기저질환은 혈전증을 일으키는 기전 및 발생 장소가 완전히 다르다.
혈전증을 일으키는 기전과 발생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혈전증 발생 위험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증가시키지 않는다. 또, 임상시험에 따르면, 이 두 백신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예방효과도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다르지 않다. 오히려,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백신 접종에 의한 혜택이 더 크다. 왜냐하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사망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은 백신에 대한 금기사항이 없다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접종받으시기를 권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7-02 1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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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6> 스타틴과 근육 부작용
“약사님, 스타틴의 사용에 관한 질문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제 환자 중 과거에 스타틴에 의해 근육통이 발생하여 지금은 스타틴을 복용하지 않고 있는 60세의 환자가 있습니다. 이 환자에게 스타틴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건가요? 만약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스타틴을 써야 할까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내게 자주 진료의뢰를 보내는 일차의료제공자가 병원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상의 메신저 기능을 이용하여 질문을 보내왔다.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말초혈관질환의 병력을 가진 이 환자는 2년전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근육통을 호소했고, 당시 혈중 크레아티닌 키나제 (creatinine kinase; 영어로는 “크레아티닌 카이네이스”로 읽는다)의 수치가 좀 높았다. 그래서, 담당 의료진은 환자가 그동안 복용하던 아토바스타틴(atorvastatin) 40mg을 중단시켰고 이후로 이 환자는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말초혈관질환(peripheral vascular disease 또는 peripheral arterial disease)는 팔, 다리 등에 있는 동맥에 콜레스테롤과 같은 지방 등이 쌓여 발생하는 질병인데, 심근경색증을 일으키는 관상동맥질환에 준하여 치료한다. 그 이유는 두 질환의 발병과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두 질환 모두 동맥에 콜레스테롤과 같은 지방 등이 쌓여 동맥이 좁아져서 발생하는 데 이를 동맥경화 (atherosclerosis)라고 부른다. 이 동맥경화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주로 발생하면 관상동맥질환이 되고, 팔, 다리 등에 있는 동맥, 즉 말초혈관에 주로 나타나면 말초혈관질환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 두 질환은 동맥경화가 심하게 발생한 동맥의 위치만 다를 뿐 그 발생과정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동맥경화는 전신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말초혈관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관상동맥에도 동맥경화가 많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말초혈관질환을 관상동맥질환의 치료에 준하여 치료하는 이유이다.
동맥경화의 발생과정에서 콜레스테롤의 축적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을 줄일 수 있는 약물의 사용이 권장된다. 특히 아토바스타틴의 예처럼 약의 이름이 스타틴으로 끝나 ‘스타틴’이라고 불리는 약물 계열이 권장된다. 그 이유는 여러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관상동맥질환이나 말초혈관질환의 병력을 가진 환자들에게 이 약물들을 사용했을 때 심근경색증이나 뇌경색증을 발생할 위험 뿐만 아니라 사망률도 낮추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치료지침서는 관상동맥질환과 말초혈관질환의 치료에 스타틴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스타틴의 부작용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근육통이다. 스타틴에 의한 근육통은 스타틴을 시작한 첫 해 동안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스타틴을 사용하는 동안에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 이 근육통은 손가락처럼 작은 근육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 가슴, 어깨 등 큰 근육에서 나타난다. 또, 한쪽 다리나 팔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양다리, 양팔에 동시에 발생한다. 심한 경우에는 근육 세포가 죽어버려서 심한 근육통, 코카콜라 색깔과 같은 오줌, 죽은 근육 세포들이 신장에 쌓여 신장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횡문근 융해증(rhabdomyolysis)이 일어날 수 있다. 근육 세포가 죽게 되면 근육 세포내의 단백질 중 하나인 크레아티닌 키나제가 혈액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글머리에서 기술한 환자의 예처럼 스타틴을 복용중인 환자가 근육통을 호소하면 혈중 크레아티닌 키나제의 양을 측정한다.
그런데, 임상시험에서 보고된 근육통 발생률은 스타틴군에서 위약군보다 높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0.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스타틴을 복용하는 동안 근육통을 호소하는 환자들 중 스타틴이 근육통을 직접 일으킨 경우는 매우 적다는 뜻이다. 근육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무거운 것을 들거나 달리기를 하면 근육통이 나타날 수 있다. 또, 근육을 많이 쓰게 되면 죽는 세포들이 생기므로 혈중 크레아티닌 키나제의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 중 일부는 이런 활동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은 노시보(nocebo) 효과이다. 노시보 효과란 환자가 부작용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나타난 부작용을 말한다. 즉, 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니 진짜 부작용이 아니라 가짜 부작용인 셈이다. 스타틴은 워낙 많이 사용되고 있으므로 환자들이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근육통이 스타틴의 흔한 부작용이라고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스타틴을 시작할 때 근육통이 나타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근육에 조그마한 통증이라도 느끼게 되면 이를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근육통이 대부분 노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임상시험이 작년말에 발표되었다. 삼손(SAMSON)이라 불리는 이 임상시험은 스타틴을 시작한 후 2주내에 근육통을 호소해서 약을 중단한 60명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던 동안, 참가자들의 크레아티닌 키나제 수치가 정상치의 5배를 넘지 않아야 했다. 시험참가자들은 아토바스타틴 20mg 30알이 담긴 약병, 위약 30알이 담긴 약병, 그리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약병을 각각 4개씩 총 12개의 약병을 받았다 (위약은 아토바스타틴과 동일한 모양과 색깔로 만들어져서 시험참가자들은 둘을 구분할 수 없었다).
다음, 매달마다 약병의 순서를 무작위로 배정받아 알약을 하루에 하나씩 복용하고 근육통 여부와 그 정도를 매일 인터넷을 통해 보고했다(아무것도 들지 않은 약병을 배정받으면 그 달에는 아무것도 복용하지 않았다). 즉, 모든 참가자가 1년동안 아토바스타틴 20mg, 위약, 빈병을 각각 총 4개월씩 복용했지만 각 달마다 무엇을 복용하는 지는 달랐던 것이다. 이처럼 매달마다 복용하는 약의 순서를 무작위로 바꾼 이유는 복용하는 약의 순서가 근육통의 발생과 정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빈병을 둔 이유는 약을 복용하는 행위자체가 근육통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지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즉, 빈병을 사용하는 동안, 즉 아무것도 복용하지 않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은 자연발생하는 근육통이다.
따라서, 위약을 복용하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에서 빈병을 사용하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를 빼면 약을 복용하는 행위 자체에 의해 생기는 근육통의 정도 – 즉, 노시보 효과의 정도 - 를 측정할 수 있고 이를 A라 하자. 그리고, 아토바스타틴 20mg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에서 빈병을 사용하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를 빼면 이는 아토바스타틴 20mg과 약을 먹는 행위에 의해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가 되고 이를 B라 하자. 이 때, A에서 B를 나눈 비율은 스타틴에 의해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노시보 효과에 의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위 임상시험 결과에 의하면 이 비율은 무려 90%에 이르렀다. 즉, 스타틴에 의해 발생한 근육통의 90%는 노시보 효과에 따른 것이다.
또, 시험 참가자의 23%가 스타틴을 복용하는 달에, 20%는 위약을 복용하는 달에 근육통으로 약을 중단했으니 진짜로 스타틴에 의해 일어나는 근육통은 스타틴을 근육통으로 중단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다. 시험이 종료된 다음, 연구자는 시험 참가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시험결과를 알려주고 6개월 뒤에 연락해서 스타틴을 다시 시작했는지 물어보았다. 이 때 시험참가자 중 50%가 성공적으로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임상시험 결과는 이전에 발표된, 근육통으로 스타틴을 중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임상 시험 결과들과 일치한다. 즉, 근육통으로 스타틴을 중단한 사람들 중 절반 정도만 진짜로 스타틴 때문에 근육통이 일어났고 나머지는 노시보 효과 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근육통으로 스타틴을 중단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스타틴을 안전하게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
글머리에 기술한 환자로 돌아가 보자. 비록 이 환자는 2년전 혈중 크레아니틴 키나제의 수치가 높아져 있었지만 그 정도가 정상치의 약 2배 정도로 아주 높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말초혈관질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타틴이 필요한 환자였다. 또, 스타틴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켜 근육통이 일어날 위험을 증가시키는 약물을 같이 복용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환자에게 스타틴을 다시 시도해 볼만 했고, 앞에 기술한 임상시험의 예에 따라 아토바스타틴 20mg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도록 추천했다. 그리고,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크레아티닌 키나제를 측정하는 것도 함께 추천했다.
많은 환자들이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다. 스타틴은 심근경색증과 뇌경색증의 발생, 그리고 이들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어 준다고 여러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된 약들이다. 반면 스타틴에 의한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은 매우 낮다. 이처럼 스타틴을 복용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해보다 훨씬 크므로 담당의사의 지시에 따라 스타틴을 꾸준히 복용하기를 권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6-01 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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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5>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 –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약물 알러지?
아스트라제네카 (AZ)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백신 접종 후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혈전증 (thrombosis) 때문인데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AZ 백신의 접종 대상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에서 허가받은 얀센 (Janssen; 미국에서는 회사명이 Johnson & Johnson으로 불린다)의 백신도 혈전증에 대한 우려로 인해 미국의 연방정부는 이 백신의 접종을 약 1 주일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이 백신들이 어떻게 혈전증을 일으키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의학잡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되었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을지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혈전증이란 혈관내에서 피딱지(혈전)가 생김으로써 산소 및 영양소를 운반하는 혈액의 흐름이 막혀서 조직이 죽는 것을 말한다. AZ 백신을 맞은 후 혈전증이 발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위 연구들에 따르면 혈전증은 첫 번째 접종 후 5-24일사이에 발생했다. 얀센 백신을 맞고 혈전증이 발생한 환자들도 접종 후 비슷한 기간내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혈전은 주로 뇌정맥에 나타났지만, 내장 혈관, 다리 정맥, 폐정맥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특정 장기에 국한되어 발생하는 국소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전신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젊은 여성에게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영국에서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23명의 환자 중 40%는 남성이었으며 30%는 50세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 두 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가장 큰 특징은 혈소판 수의 감소 (thrombocytopenia)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혈소판은 혈액내의 성분 중 하나로 혈전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즉, 혈소판은 혈전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혈액 성분으로 혈소판의 수가 적다는 것은 혈전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는 성분의 수가 적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혈소판 수가 감소하면 일반적으로는 출혈의 위험이 증가한다. 그런데, 백신을 접종받고 발생한 것은 출혈이 아니라 혈전증이었다. 그러면, 왜 혈소판 수가 줄어들었을까? 그 이유는 혈소판이 혈전을 만드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혈소판을 혈전 만드는데에 많이 써 버려 혈소판 수가 적어진 것이다.
이처럼 혈소판 수 감소와 혈전증이 함께 일어나는 현상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하는 자가면역 HIT를 참조하기 바란다). 반면, 앞서 설명했듯이 혈소판 수가 감소하면 출혈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훨씬 더 흔한 현상이다. 그런데, 혈소판 수가 감소하면서 혈전증이 일어나는 현상은 항응고제인 헤파린 (heparin)을 투여했을 때 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를 헤파린이 유도한 혈소판 수 감소증 (heparin-induced thrombocytopenia; HIT)이라고 부른다.
글머리에 소개한 연구들에 따르면, 백신 접종후 발생한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은 HIT과 유사한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HIT에 의해 혈전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먼저 알아보자. HIT에 의한 혈전의 생성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로는 헤파린, 혈소판 인자4 (platelet factor 4), 항체가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한다.
헤파린은 시술, 수술할 때는 물론이고 혈관에 링거 같은 수액을 투여하기 위해 관을 삽입할 때 등 혈전 생성 방지의 목적으로 병원에서 아주 널리 사용되는 약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 헤파린을 투여받지 않은 환자는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데, 헤파린은 분자 구조적으로 볼 때 그 구조가 크고 음이온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분자 구조적인 특징으로 인해 헤파린은 우리몸의 혈액에 들어 있는 혈소판 인자4라는 단백질과 잘 결합할 수 있다. 이 혈소판 인자4는 혈소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양이온이 많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음이온은 양이온과 잘 결합하기 때문에 음이온이 많은 헤파린은 양이온이 많은 혈소판 인자4와 결합할 수 있는 것이다.
헤파린이 혈소판 인자4와 결합하게 되면 혈소판 인자4의 구조가 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파린으로 인해 혈소판 인자4의 구조가 변해도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의 몸에서는 혈소판 인자4에 대해 항체가 만들어져 혈전이 생긴다.
항체는 면역반응을 매개하는 단백질로 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우리몸과는 다른 단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면 우리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따라서, 항체는 우리몸과는 다른 세균과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인지하여 이들을 죽임으로써 우리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몸이 항체를 만들도록 투여하는 것이 백신이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만든 단백질에 대해서도 항체를 만든다. 헤파린과 결합한 혈소판 인자 4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헤파린과 결합한 혈소판 인자 4에 대한 항체는 공교롭게도 혈소판과 반응하여 혈소판이 혈전을 생성하는데 소비되도록 만든다.
따라서, HIT으로 혈전증이 발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헤파린이 혈소판 인자 4와 결합 → 2) 혈소판 인자 4의 구조 변형 → 3) 혈소판 인자 4에 대한 항체 생성 → 4) 혈소판이 혈전 생성에 소비 → 5) 혈소판 수 감소와 혈전증 발생
AZ 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도 일부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혈전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즉, 백신의 성분이 혈소판 인자 4와 결합함으로써 혈소판 인자4 구조의 변형과 이에 대한 항체 생성을 유도하여 혈소판을 혈전생성에 사용하도록 하여 혈전증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 때, 혈소판 인자 4와 결합하는 백신의 성분은 아데노바이러스 (adenovirus)의 DNA인 것으로 추정된다. 파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과 달리 AZ 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은 감기 바이러스 중 하나인 아데노바이러스의 DNA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DNA가 혈소판 인자 4와 결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헤파린처럼 DNA도 그 구조가 크고 음이온이 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헤파린을 투여받은 적이 없는데에도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을 자가 면역 HIT – autoimmune heparin-induced thrombocytopenia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가면역 HIT는 헤파린을 투여받지 않았음에도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헤파린을 투여받은 뒤 일어난 HIT보다 백신에 의한 혈전증에서 혈전이 발생과정과 좀 더 유사하다. 그래서, 글머리에 소개한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자가 면역 HIT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직까지 혈전증과 뚜렷한 연관이 보고되지 않은 파이자나 모더나의 백신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백신들은 미국의 사재기로 당분간 다른 나라에 다량으로 공급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이 백신들이 공급되기 전까지는 AZ 백신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AZ 백신의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데 위의 연구결과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첫째, AZ 백신의 첫번째 접종 후 혈전증이 발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두 번째 접종을 할 때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혈전증이 발생한 사람들은 첫번째 접종을 한 후 5-24일사이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둘째, AZ백신에 의한 혈전증은 부작용이라기 보다는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에 더 가까와 보인다.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면역반응을 매개로 나타나듯이 백신에 의해 혈전이 생성되는 과정도 항체 형성이라는 면역반응이 관여한다. 또,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드물게 나타나듯이 백신에 의한 혈전증도 백만명에 한 명에서 네 명이라는 빈도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4월 19일 현재 AZ 백신을 1백만명 이상 접종한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의 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백신을 접종한 다음 발생한 혈전증 사례는 백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사람에게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나타날지 알 수 없듯이, 현재까지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미리 찾아낼 수 있는 수단은 아직까지 없다.
그런데, 백신에 의한 혈전증을 알러지 반응으로 보게 되면 백신 접종을 받을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약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치료에 필요하고,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빈도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헤파린을 투여받은 환자들 중 HIT의 발생률은 약 1% 정도이지만 HIT때문에 헤파린 사용을 피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치명적일 수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예방을 위해 백신은 필요하고 백신에 의한 알러지 반응의 빈도는 매우 낮다 - AZ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발생률은0.0001-0.0004% (백만명 중 1-4명)에 불과하니 헤파린에 의한 HIT보다도 2,500-10,000배나 더 낮다.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발생하는 과정이 밝혀지기 전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을 몰랐기 때문에 치사율이 높았다.
예를 들어,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발생한 일부 환자들에게 낮은 혈소판 수치를 보정하고자 혈소판을 수혈한 것 같은데 이는 혈전증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혈소판 수혈을 피해야 하고, 대신 면역 글로뷸린 (IV immunoglobulin G)이라는 약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증상을 빨리 인지하고 이에 따라 조기에 치료한다면 치사율과 후유증이 나타날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다.
4월29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의하면, 혈전 발생의 위험으로 접종이 잠시 중단되었던 얀센 백신을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맞으려고 한다고 한다. 두 번 맞아야 하는 다른 백신들보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얀센 백신의 혈전발생의 위험은 AZ백신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얀센 백신에 거부감을 적게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선정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과학적 데이타를 바탕으로 백신 접종에 관한 이익과 위험을 객관적으로 보도해 온 미국 언론에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4-30 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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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4>다파글리플로진 (포시가)와 엠파글리플로진 (자디앙) – 새로운 심부전증 치료제
“이것이 이번에 새로 처방받으신 약이군요!”
Mr. T는 45세의 환자로 지난 주 심부전증 (heart failure)이 악화되어 4일간 입원했었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가정의학과는 모든 환자들이 퇴원 후 2주안에 자신들의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나도록 하고 있다. 일차의료제공자는 환자 돌봄에 있어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므로 환자가 입원했을 때 받았던 치료를 검토한 후 외래에서는 어떻게 치료할지 결정하고 주도하기 위해 환자가 퇴원한 뒤 만나는 것이다. 이때 일차의료제공자의 진료를 돕기 위해, 심부전증 같이 여러 약을 동시에 써야 하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은 가정의학과 소속 약사를 일차의료제공자보다 먼저 만나서 약에 대해 교육과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네, 이 약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새로 시작한 약입니다.”
Mr. T가 새로 시작한 약은 다파글리플로진 (dapagliflozin), 상품명으로는 ‘포시가 (Farxiga)’라고 불리는 약이다.
“저는 이 약이 당뇨병에 쓰이는 약이라고 들었는데 당뇨병이 없는 저한테 왜 처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파글리플로진은 SGLT2 억제제로서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다. 그런데, 이 약과 또 다른 SGLT2 억제제인 엠파글리플로진 (empagliflozin)은 최근 발표된 여러 임상시험에서 심부전증 치료제로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미국 심순환기 학회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는 금년초에 개정한 치료지침서에서 심장의 수축능력이 떨어져 발생한 심부전증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체, 알도스테론 억제제 등과 더불어 SGLT2 억제제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심부전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SGLT2 억제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한 임상시험은 현재까지 두 개로, 2019년에 발표된 DAPA-HF라 불리는 임상시험과 2020년에 발표된 EMPEROR-Reduced라고 불리는 임상시험이 그것이다 (소타글리플로진 – sotagliflozin - 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한 SOLOIST-WHF라는 임상시험이 2021년 초에 발표되기는 하였지만 이 임상시험은 심부전증과 당뇨병을 동시에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DAPA-HF시험와 EMPEROR-Reduced시험은 각각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이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낮추는지를 위약과 비교하였다. 이 두 시험에서, 다파글리플로진은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26%, 엠파글리플로진은 25% 낮추었다. 또, 두 약은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각각 30% 줄였다. 뿐만 아니라, 다파글리플로진은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도 18%나 낮추었다 (엠파글리플로진은 심순환기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을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낮추지는 못하였다).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이 이처럼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줄이는 것이 이 두 임상시험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미국 심순환기 학회가 이 두 약을 심장의 수축능력이 떨어져 발생한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사용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심부전증은 심장의 수축 능력이나 이완 능력이 떨어져 발생하고, 이 두 부류의 심부전증은 치료 방법이 좀 다르다. 그런데, DAPA-HF시험과 EMPEROR-Reduced 시험 모두 심부전증 환자들 중 심장의 수축 능력이 떨어진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은 심장의 수축 능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또, 두 임상시험은 당뇨병 여부에 관계없이 심부전증의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Mr. T와 같이 당뇨병을 가지지 않은 심장 수축 능력의 저하로 인해 생긴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심장 수축 능력의 저하로 인해 생긴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복용하는 환자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알도스테론 억제제 등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이 약들 역시 심장의 수축 능력이 저하되어 발생한 심부전증 환자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낮춰주는 것이 그동안의 여러 임상시험에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DAPA-HF시험과 EMPEROR-Reduced 시험 모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 약들을 복용하도록 하였기에 시험에 참가한 환자의 70%이상이 이 약들을 SGLT2 억제제와 같이 복용하고 있었다.
둘째,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혈압, 체중, 신장기능, 혈당, 비뇨생식기 감염, 정상혈당을 동반한 당뇨병성 케톤산증 등을 모니터해야 한다. SGLT2 억제제는 혈압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DAPA-HF시험과 EMPEROR-Reduced 시험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95-100 mmHg미만인 환자들을 제외시켰다. 즉, 수축기 혈압이 95-100 mmHg미만인 환자들은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 또, 시험기간 중 두 약은 수축기 혈압을 평균 2 mmHg 정도 낮추었으므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 만약 혈압이 많이 낮아지면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잠시 중단하는 것이 좋다.
또, 심부전증 환자들은 부종이 쉽게 생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뇨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뇨제와 SGLT2 억제제는 모두 오줌의 양을 늘리고 혈압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할 때 이뇨제의 용량을 미리 줄이는 것은 혈압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 된다. 또,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는 않은 혈압약들, 예를 들면, 칼슘 차단제나, 클로니딘 (clonidine)을 중단하는 것도 저혈압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체중은 심부전증 환자의 치료 효과를 알아보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심부전증이 악화되면 몸안의 물의 양이 늘어나고 체중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체중이 하루만에 1 kg 이상 늘거나 일주일 사이에 3 kg 이상 증가하면 이는 심부전증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몸안의 물의 양이 늘어나기 전의 체중 – 영어로는 dry weight라고 하고 우리말로 기준 체중이라고 하겠다 – 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SGLT2 억제제 자체가 체중을 줄일 수 있으므로 기준 체중도 줄일 수 있다. 가령, SGLT2 억제제를 시작하기 전의 기준 체중이 70 kg인 환자가 SGLT2 억제제를 시작하고 나서 체중이 2 kg 줄었다면 68 kg이 새로운 기준 체중이 된다. 따라서, 약을 시작한 이후에 체중의 변화를 잘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SGLT2 억제제는 신장기능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DAPA-HF시험에서는 신장기능을 알려주는 지표인 사구체 여과속도 (eGFR; estimated glomerular filtration rate의 약자로 단위는 ml/min/1.73 m2이다)가 30미만인 환자들, EMPEROR-Reduced시험에는 20미만인 환자들을 시험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약을 시작하고 첫 한달동안 신장기능이 5-10% 정도 떨어질 수 있으므로 혈액 검사 등을 통해 이를 잘 모니터해야 한다. 그리고, 신장기능이 30%이상 저하되면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SGLT2 억제제가 장기적으로는 신장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장기능이 갑자기 크게 저하되지 않는 이상 약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SGLT2 억제제는 원래 당뇨병약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혈당을 떨어뜨린다. 다행인 점은 SGLT2 억제제가 혈당을 떨어뜨리는 정도는 혈당 수치에 비례하기 때문에 혈당이 정상인 환자들의 경우 SGLT2 억제제에 의해 저혈당이 일어날 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비뇨생식기 감염은 SGLT2 억제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다. 비뇨생식기 감염은 SGLT2 억제제에 의해 소변의 포도당 양이 증가하기 때문에 비뇨생식기 주변에 사는 곰팡이가 번식하여 발생한다. 중요한 점은 이 감염증은 보통 항진균제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비뇨생식기 감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비뇨생식기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변을 본 뒤 휴지로 잘 닦아 피부에 소변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SGLT2 억제제는 정상 혈당을 동반한 당뇨병성 케톤산증 (euglycemic diabetic ketoacidosis)이라는 드물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당뇨병성 케톤산증을 의심할 수 있는 메스꺼움, 구토, 복통, 정신 혼미, 숨쉴때 나는 과일 냄새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빨리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정상혈당을 동반한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탈수, 감염 등에 의해 나타날 수 있으므로 평소에 물을 충분히 마시고 감염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며 감염이 생겼을 때에는 빨리 의사를 만나 치료해야 한다.
Mr. T는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알도스테론 억제제를 다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하기 전부터 처방받아 복용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수축기 혈압은 110으로 95-100보다 높았으며, 어지러움과 같은 저혈압의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의무기록을 보니 다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하기 전에 측정한 사구체 여과 속도는 70으로 30보다 훨신 높았다. 그리고, 다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다. 또, 저혈당, 비뇨생식기 감염, 또는 정상혈당을 동반한 케톤산증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 다파글리플로진을 계속 복용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리고, 신장 기능을 모니터하기 위해 한달 뒤 재진을 예약해 주고 혈액을 검사하도록하였다. 아직 젋은 나이인 Mr. T가 처방받은 약들을 잘 복용하여 증상이 개선되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4-01 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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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3> 의사 등 건강관련 전문직이 면허를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예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인이 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등 의료법 외의 법률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최장 5년간 취소시킬 수 있는 법률안을 심의 통과시켰다. 단, 의료 행위중 발생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예외를 두었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들은 “범죄의 종류나 유형을 한정하지 않은 채, 사실상 모든 범죄로 하여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오히려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면허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오히려 자율징계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직역의 경우, 직역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비자 (건강관련 전문직역의 경우, 환자)의 신뢰이다. 그런데, 일반 공무원처럼 직역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면허의 관리를 맡기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타율적인 조직으로 보이며 스스로의 자정 능력조차도 없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직역들은 오래전부터 면허관리 행정에 직접 참여해 오고 있다. 이번 컬럼은 캘리포니아주에서 건강관련 전문직역의 면허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소개함으로써 직역의 자율적인 면허관리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면허제도의 목적
캘리포니아 제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면허제도의 목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면허는 기본적으로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어 적어도 최소한의 능력 (minimum competenc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부기관이 인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지원자는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는 데 필요한 적어도 최소한의 도로교통법 지식과 운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면허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면허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운전 면허 소지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을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등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다. 그 이유는 면허 소지자가 차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의사와 약사와 같은 건강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면허도 마찬가지다 - 만약 건강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건강 상태나 행위 등이 그들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면허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건강관련 종사자의 면허관리제도는 면허 소지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유지하며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지를 정기적으로 검증, 관리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2. 면허관리 주체와 방식
미국은 각 직업군마다 상임위원회 (Board)라는 조직에서 면허를 관리한다. Board라는 영어 단어는 어떤 조직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가 있으므로 이 상임위원회는 면허와 관련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소비자 사업부 (Department of Consumer Affairs)에 의사 상임위원회 (Medical Board of California), 약사 상임위원회 (Board of Pharmacy), 간호사 상임위원회 (Board of Nursing) 등 직역별로 약 40개의 상임위원회들이 있다 (소비자 사업부 소속이기 때문에 이 직역에는 건강에 관련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각 상임위원회는 해당 직역의 면허와 직역의 행위 (practice)를 관리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건강에 관련해서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따라서, 각 상임위원회는 면허 발급과 갱신, 직역의 재교육과 벌칙 (discipline), 및 직역에 관련된 법과 규정을 제안하고 만드는 역할을 한다.
상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각 직역에 관한 법률과 규정에 따른다. 가령, 약사 면허를 관리하는 약사 상임위원회는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7명은 캘리포니아 주 여러 곳에서 일하는 약사들이고 6명은 일반인이다. 약사 7명과 일반인 4명은 주지사가 임명하며, 나머지 2명은 주의회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지명한 일반인들 (대개는 법률가)이다. 상임위원회 구성원의 임기는 4년이며 최대 8년동안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보듯이,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역종사자들이 상임위원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직역이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으로 법률가 등 일반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상임위원회가 직역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면 이들이 내린 중요한 결정, 가령, 규정을 어긴 면허 소지자의 벌칙에 대한 결정 등이 직역에 유리하게 내려져서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상임위원회의 임무가 건강에 관련되어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상임위원회가 어떤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일반인들의 관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상임위원회는 직역을 관리하는 법과 규정을 만드는 일도 하므로 법률가의 관점도 필요하다. 따라서, 직역 혼자 면허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 등을 포함한 일반인과 함께 협력하여 하고 있는 것이다.
3. 면허의 발급, 갱신 및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벌칙
미국의 면허 발급과 갱신의 주체는 각 직역의 상임위원회이다. 즉, 상임위원회가 면허 소지자격의 기준을 정하고 면허시험을 집행한다. 또, 상임위원회는 해당 직역 면허 소지자의 징계와 벌칙을 조사하고 결정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면허에 관련된 모든 행정상의 업무가 상임위원회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면허에 관련된 정책의 설정과 집행이 효율적이며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면허 취소와 정지는 관련 법을 어긴 면허 소지자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와 벌칙이다. 그리고, 징계와 벌칙의 사유와 내용은 각 직역에 관련된 법률과 규정에 정해져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의료법은 비직업적인 행위 (unprofessional conduct)가 징계와 벌칙의 중요한 사유로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처방 (clearly excessive prescribing), 과량의 검사 (clearly excessive use of diagnostic procedures), 환자에 대한 성적인 비행 (sexual misconduct) 등을 비직업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성적인 비행은 성폭행 뿐만 아니라 성희롱, 동의없이 이루어진 성적인 행위, 가령 만지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런 비직업적인 행위는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이는 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비직업적인 행위는 건강관련 종사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건강관련 종사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치료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치료를 건강관련 종사자에 맡기는 것은 건강관련 종사자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뢰가 깨지면 성공적인 치료를 이룰 수 없다. 그리고, 그 직역의 존립 자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각 건강관련 직역의 상임위원회는 환자의 신뢰를 깨뜨릴 수 있는 행위 – 성적인 비행, 과처방, 과잉검사, 부당청구 등 – 에 대해 형사처벌과 별도로 징계와 벌칙을 내리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건강관련종사자의 면허 취소와 징계 과정은 다음과 같다. 환자 등이 상임위원회에 신고를 하면 조사가 진행되고 여기서 법규를 어긴 것과 징계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상임위원회가 이를 검찰에 알린다. 이 때, 면허 소지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면허 소지자는 청문회를 요구할 수 있다. 청문회는 정식 재판은 아니지만 재판과 비슷한 과정을 따른다. 청문회를 주관하는 사람은 행정법 판사 (Administrative Law Judge)로 이 판사는 청문회가 끝난 뒤 판결 결과를 상임위원회에 보낸다. 이 때 상임위원회는 이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거나 바꾸거나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조사와 징계 결정의 주체는 면허의 발급과 갱신을 책임지고 있는 상임위원회이다. 또, 조사 결과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상임위원회가 검찰에 알려 형사소송도 따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즉, 면허 정지나 취소와 별도로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 이중처벌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면허소지자는 면허를 갱신할 때마다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지 또는 병원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 싱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면허소지자가 그런 적이 있으면 상임위원회는 처벌과 징계의 이유가 직역을 수행하는 동안 환자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 면허 갱신 여부 - 면허 정지나 취소 여부 - 를 결정한다.
(의사 면허 갱신때 형사처벌 또는 징계 받았는지를 보고해야 한다는 안내문. 미국이나 외국에서 $300 이상 벌금 - 우리돈으로 약 30만원 - 낸 것은 모두 보고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캘리포니아주의 전문직종의 면허관리제도를 통해 보았을 때 전문직역이 자율적으로 면허관리를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1) 면허관리주체의 일원화
면허 정책에 대한 일관성과 효율성을 위해 한 주체 (예를 들면, 상임위원회)가 면허관리에 대한 모든 것 (면허 발급, 갱신, 면허관련법 제안 및 면허 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벌칙) 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면허 소지자의 징계와 벌칙에 대한 행정을 면허 발급, 신고 (우리나라는 면허관리 주체가 소지자의 면허 유지 자격을 다시 검토하는 갱신제가 아니라, 이보다 덜 엄격한 – 면허관리 주체의 검토없이 소지자의 신고로만 면허가 유지될 수 있는 - 신고제이다)에 대한 행정과 분리하는 것은 면허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떨어뜨리며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2) 직역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환자를 보호하는 면허관리 주체
면허 정책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문직역의 특성과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전문직역의 특성과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전문직역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면허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데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면허관리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이므로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참여해햐 한다. 그리고, 면허의 발급주체는 정부이고 면허관리제도의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이므로 면허를 관리하는 주체는 이익단체가 아닌 정부기관 소속이어야 한다.
3) 소비자 및 환자 보호를 위해 제정된 면허관리법
면허관리는 면허를 관장하는 법에 따라야 하며 이 법의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이다. 그런데, 현재 집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법과 약사법은 이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환자에 대한 성적인 비행 등 비직업적인 행위에 대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저질러서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를 담보할 수 없는 면허소지자도 면허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 등의 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경력이 있는 면허소지자의 경우, 면허관리주체는 처벌과 징계의 이유에 따라 면허소지자가 직역을 수행하는 동안 환자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서 면허 유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다 (신고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4) 법에 따른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은 면허관리 주체의 임의가 아닌 법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면허관리에 관련된 법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라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이익단체가 최선을 다해 자율적으로 관리를 하려고 하더라도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건강관련직종의 면허제도는 소비자 및 환자 보호라는 목적아래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제도의 여러가지 미비점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현행 면허제도는 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전문직역, 정부, 소비자 단체들이 협력하여 보다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3-02 15: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