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탈, 그러나 어여쁘도록 능동적인 비약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시조임을 잊지 말자고 달달 외우던 송강정철의 이 ‘장진주사(將進酒辭)’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애송되는 권주가 중 하나다. 단절된 정서 교감의 복원을 구실 삼은 끼리끼리의 은밀한 밀회.
혼자 감내하기 버거운 벅찬 기쁨을 몇 배로 배가시키기 위해, 울퉁불퉁 겹 꼬인 슬픔의 무게가 반 이하로 줄어들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풀며 무진 무진 먹세 그려, 라며 소란스런 현재를 제압하듯 호기롭게 마주 앉아 괜찮다 괜찮다고 뇌까리는 이심전심 공명통.
이처럼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 한잔 술의 주성분은 대뇌피질 뉴런에서 열 충격 경로를 활성화시키는 알코올이다.
고열·감염·산소부족 등의 스트레스에 노출되게 될 때 스스로 작동되는 자기보호작용(열충격반응)의 활성화는 대뇌피질 기능을 항진시켜 흥을 돋우고, 그 기댓값은 일상(각성)으로부터의 일탈(취함)에 있다.
우당탕퉁탕, 시끌벅적…… 그날이 그날, 그 일이 그 일인 기계적 일상의 파편들이 숨어서 키운 ‘이것이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인가?’ 라는 의문부호, 그리고 그 답을 찾아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공간조차 셈하지 않아도 좋은, 관성의 힘이 지배하는 따분한 일상의 틀 밖으로 머리라도 내밀어보는 소극적 일탈!
허나, 그 매너리즘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주흥(酒興)만을 탐한다면, 몸을 지탱하는 장기(臟器)들은 동시다발적으로 경고등을 번쩍이며 스트라이크를 일으킨다.
알코올의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의 말초혈관 확장작용으로 내장의 혈류가 나빠지면, 그 방어기전으로 중추혈관 수축작용이 일어나 두통·오심·구토…… 급기야 우리 몸의 가장 무거운 장기인 간(肝)세포의 손상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9할의 각성(일상)과 1할의 취함(일탈)은 여전히 삶을 이끌어 가는 두 축 중심이 된다. 익숙한 일상의 한 중심에서 생경한 일탈의 다른 중심으로의 외출이 가져다주는 그 ‘익숙한 낯설음’의 생동감!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의 저변을 보이지 않게 관류하는 그 잔영으로 하여 우리네 삶이 보다 촉촉해지는 것이다.
이에 합목적적으로 태어난 것이 음악·미술·공연·여행 및 각종 스포츠 등을 포괄하는 문화활동이다.
OECD국가들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부여받은 대한민국 국민인 그네들은,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면 서초동 동아홀로 모여든다. 조화롭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합창소리로 누적된 일상의 티끌을 털어내고, 날선 부대낌으로 균열된 감정의 골조차 깁는 그 능동적 비약의 어여쁨이여!
2008-07-23 0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