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약국] <165>블루존 다이어트의 진실
정재훈 약사.블루존 다이어트가 흔들리고 있다. 관련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런던 대학교의 사울 뉴먼 박사는 2024년 9월 12일 이그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한 것으로 웃기지만 사람들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과학적 성과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뉴먼은 2019년 내놓은 출판 전 논문에서 백세인과 슈퍼백세인(110세 이상인 사람들)이 많은 지역들이 부실한 기록 관리로 인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블루존(Blue Zone)이라는 용어는 2004년 학술지 실험 노인학(Experimental Gerontology)에 실린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논문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의 백세인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연구자들은 특별히 장수하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 섬 지도의 일부를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블루존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은 영양과 생활방식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추측이었다.이후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 실린 장수 연구자 댄 뷰트너의 특집 기사에서 장수 인구가 많은 세 지역(일본 오키나와, 캘리포니아 로마 린다, 사르디니아)를 빗대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블루존은 더 유명해졌다. 블루존에 사는 사람들은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식단, 충분한 신체 활동,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경향과 같은 생활 습관 덕분에 90대와 100대까지도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블루존은 단순하며 매력적이다. 하지만 듣기에 너무 좋은 이야기는 사실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뉴먼은 2016년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에서 장수 연구의 상당수가 기록상 오류에 의한 것이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2019년에 내놓은 출판 전 논문에서도 뉴먼은 같은 맥락의 주장을 이어갔다.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은 기록 관리가 부실한 지역일 뿐 실제로 장수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뉴먼의 연구 결과, 빈곤한 지역에서 태어나 제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노인이 실제로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든 친족이 사망했지만 연금을 타기 위해 아무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서 사망한 사람이 호적상으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 경우도 흔했다. 블루존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뿐 빈곤과 사기로 인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이야기다.아직 논란은 진행 중이다. 뉴먼의 연구가 이그 노벨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논문은 아직 정식 출판되지 않았다. 장수 지역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은 최근 연구에서는 출생증명서와 사망증명서와 같은 서류 외에도 다른 여러 정보를 확인하므로 기록상의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반론한다. 블루존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균형잡힌 식단, 충분한 신체 활동, 튼튼한 공동체가 사회 구성원이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장수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실험이 아닌 관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당뇨약 메트포르민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기 위한 임상시험이 이미 9년 전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진행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블루존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연구가 나온다고 해서 블루존의 인기가 쉬이 사그다들지는 않을 것 같다. 장수 마을의 허구성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일본 교토대학 의료진이 히말라야의 훈자마을을 방문했다. 장수인구가 많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훈자마을 사람들을 진료한 결과, 그들 중 90퍼센트가 기생충을 갖고 있고, 상당수가 갑상선종, 결막염,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으며, 다양한 감염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훈자 마을하면 장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원하는 것에 쉽게 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어떤 섭식법을 따르더라도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난 완벽한 건강을 얻을 수는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건강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지만 삶의 목표는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은 진실을 탐구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2024-11-11 09:24 |
[약사·약국] <164> 약에 대한 흔한 궁금증 7가지
정재훈 약사.많은 사람이 약사에게 궁금해하는 질문들 중 빈도가 높으며 답이 비교적 간단한 것들을 2회에 걸쳐 살펴 본다.1. 당뇨약이나 혈압약처럼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약들도 있는데 이런 약을 오래 먹으면 내성이 생길 수 있을까?그렇지 않다. 혈압약, 당뇨약과 같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약의 사용량이나 가짓수가 늘어나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내성 때문이 아니라 질환 자체가 악화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왕 약을 복용 중일 때 약만 믿고 생활습관 조정을 미루기보다 최대한 바꿔나가면 오랫동안 최소한의 약으로도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2. 어떤 약에 내성이 생기나? 약 성분 중에 중추신경계, 쉽게 말해 뇌에 작용하는 약의 경우에 내성이 생겨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편 계열 진통제를 처음에 복용하면 졸음이 유발되지만 계속해서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는 졸음 부작용이 많이 줄어든다. 뇌가 약의 효과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비와 같은 부작용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위산 분비를 줄이는 약 중에 파모티틴과 같은 히스타민차단제의 경우에도 연속으로 사용하면 빠르게 내성이 생길 수 있다.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내성이 생기는 약이 그리 많지는 않다. 3. 소화제를 많이 먹으면 위가 무기력해지나? 그렇지 않다. 소화제 중에 돔페리돈과 같이 위장 운동을 촉진시키는 약이 주성분인 제품(멕시롱, 그린큐, 크리맥)이 있긴 하지만 이런 약을 자주 먹는다고 해서 소화기관이 운동능력을 잃어버리거나 위무력증이 생기지는 않는다. 반대로 위장 경련을 완화하는 진경제, 위산을 중화하는 제산제도 위장배출을 지연시킬 수 있어서 위무력증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4. 식전 약과 식후 약의 차이는 무엇인가?식전 약은 쉽게 말해 성격이 매우 예민한 약이라고 볼 수 있다. 위산에 불안정하거나 다른 약, 음식과 함께 복용하면 흡수가 방해받는 경우가 많다. 식후 약은 음식과 함께 먹으면 흡수가 더 잘 되거나 또는 음식과 함께 먹어야 위장에 부담이 덜한 약이다. 대개는 식전, 식후에 관계없이 복용이 가능한 약이 많다. 하지만 빈속에 그냥 알약 자체만으로도 불편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런 약도 식후에 복용하는 게 낫다. 5. 약봉투에 표시된 식후30분 복용을 꼭 지켜야 할까?식후 30분을 반드시 기다렸다가 복용할 필요는 거의 없다. 식후30분을 기다리다가 약 복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2017년부터 서울대 병원에서는 복용기준을 식후30분에서 식사직후로 바꿨다. 소염진통제처럼 빈속에 먹으면 위장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약일때는 식사 직후에 복용이 낫고, 바로 복용하지 못한 경우에는 식후 1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게 안전하다. 식전 복용은 식후 복용보다 더 엄격하게 시간을 맞추어 최소한 식사 30분 전에 약을 복용해야 알약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6. 아이에게 어른용 해열제를 반으로 쪼개먹여도 될까? 절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위험하다. 알약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기 힘들어서 용량을 제대로 맞추기 어렵다. 약품에 표시된 체중과 연령 중 체중을 기준으로 복용량을 정하는 게 원칙이며 나이는 체중을 잘 모를 때만 사용한다. 7. 일반약과 전문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가 여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병의원에 방문하지 않고 자신의 증상에 따라 판단하여 복용해도 대체로 안전한 약은 일반약, 의사와 상담하여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약은 전문약이다. 다만 일반약이라고 해서 부작용,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 함께 먹으면 안되는 병용 금기 약물이 없지 않다. 또한 증상에 따라 일반약 사용을 중지하고 병의원에 방문해야 할 경우도 있다.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 일반약의 경우에도 주의사항을 충분히 읽어보고 사용하는 게 좋다. 잘 모르는 점이 있을 때는 가까운 약국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을 습관으로 하자.
2024-10-02 10:29 |
[약사·약국] <163> 혈압약 언제 먹는 게 좋은가?
정재훈 약사.고혈압 약물 복용 시간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럽심장학회(ESC) 학회에서 발표된 두 개의 새로운 임상시험 결과이다. 결론은 고혈압 약물 복용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항고혈압약을 밤에 복용한 환자와 아침에 복용한 환자 사이에 사망률이나 심혈관 사건 발생률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그동안 혈압약 저녁 복용이 좋다는 2019년 연구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었다. 특히 재현성 문제를 지적한 연구자가 많았다. 2010년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동일 연구팀이 주도한 것이란 한계점이 있었다.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인가 확인이 필요했다. 실제로 확인에 나선 연구자들이 있었다. 우선 2022년 영국 연구자들이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내놓은 TIME 임상시험에서는 아침과 밤 복용 사이에 결과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8월 31일 유럽심장학회에서 발표된 두 건의 캐나다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줬다. 혈압약으로 얻는 유익이나 부작용 위험은 복용 시간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앨버타 대학 가정의학과 스콧 개리슨(Scott Garrison) 교수가 발표한 이번 임상시험(BedMed)에서는 캐나다의 3357명의 고혈압 환자들을 무작위로 취침 전 또는 아침 혈압약 복용 그룹으로 나눠 최대 6년 동안 추적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하루 한 번(54%) 또는 두 번(33%) 고혈압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함께 발표된 다른 임상시험(BedMed-Frail)은 유사한 설계로 진행되었지만 요양원에 거주 중인 77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42개월 추적했다. 사망 또는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뇌졸중,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이 약 복용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비교했다. 두 건의 임상시험에서 결과는 동일했다. 취침 전 혈압약 복용이 아침 복용에 비해 특별히 해롭지도 더 유익하지도 않았다. BedMed 임상시험에서는 취침 전 그룹에서 심혈관 사건 또는 사망이 9.7%, 아침 복용 그룹에서 10.3%, 장기요양시설 환자를 대상으로 한 BioMed-Frail 임상시험에서는 각각 40.6%, 41.9%였다. 기립성 저혈압, 낙상과 같은 부작용 위험 면에서도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다.유럽심장학회에서 리키 터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임상약학 교수가 이어 발표한 체계적 리뷰와 메타분석 결과에서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발표된 두 건의 임상시험(BioMed, BioMed-Frail)과 이전의 스페인 연구 2건(Hygia, MAPEC), 영국 연구 1건(TIME)을 포함시켜 분석한 결과, 아침 복용과 저녁 복용 사이에는 심혈관 사건이나 사망 위험 면에서 차이가 없었다. 유의할만한 점으로 이번 캐나다 연구는 편향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스페인 연구 2건에는 일부 편향 우려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그렇다면 언제 혈압약을 먹어야 할까? 아침이든 저녁이든 혈압약 복용으로 인한 유익과 부작용 위험에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복용하는 사람의 선호도와 일정이 중요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잊지 않고 복용하는 게 핵심이다.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잘 맞는 편리한 시간에 복용하면 된다. 보통 아침에 약을 복용할 때 기억하기 쉽고 복약 이행률이 높다.이뇨제처럼 아침에 복용해야 화장실에 가기 수월해서 더 나은 약도 있다. 아침 복용은 약 복용을 깜박 잊을 경우 낮 동안에 생각해내서 복용할 여지가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단, 기억난 시간이 이전 복용시간보다 다음 복용 시간에 더 가까울 경우에는 복용을 건너뛰는 게 낫다.) 하지만 저녁에 혈압약을 복용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칼슘채널차단제처럼 저녁에 복용하면 발목이 붓는 부작용이 덜한 약도 있다. 야간 고혈압 관리 때문에 저녁에 약을 복용하도록 의사의 특별한 지시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번 연구를 발표한 개리슨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말 한 마디만 기억하면 된다. “특정 시간에 약을 복용하고자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환자들의 경우, 본인이 복용 시간을 판단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2024-09-19 09:52 |
[약사·약국] <162> 사람은 어떻게 늙는가?
정재훈 약사.서서히 나이드는 게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늙는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지난 8월 14일 학술지 <네이처 에이징>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그런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108명의 성인에게서 채취한 135,000여 종의 분자와 미생물이 참가자들이 나이들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했다. 이들 분자와 미생물의 수는 연령에 따라 증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전환점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44세와 60세에 극적 변화를 보인다는 것이다.연구진은 3~6개월마다 참가자들의 구강, 피부, 비강 면봉 검사와 혈액 및 대변 샘플을 통해 다양한 분자와 미생물을 채취했다. 참가자의 연령은 25세에서 75세 사이였고 건강하고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샘플에서 RNA, 단백질, 대사물질을 포함한 약 135,239개의 서로 다른 분자와 미생물을 분석했다.그 결과, 추적 대상으로 한 분자의 대다수인 81%가 연속적으로 변동하지 않고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을 중심으로 크게 변화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연령대에 나타난 변화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모두 존재했다. 우선 심혈관 질환, 카페인 대사, 피부 및 근육과 관련된 분자의 변화는 40대 중반, 60대 초반에 공통적으로 두드러졌다.하지만 알코올과 지질 대사와 관련된 분자들의 변화는 40대 중반에 주로 나타났다. 면역 조절, 신장 기능, 탄수화물 대사와 관련된 분자들의 변화는 60대 초반에 큰 걸로 나타났다. 나이든다고 에너지 대사가 저하되지 않는다는 2021년 허먼 폰처의 연구를 이번 연구가 반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이들면서 음식이 분해되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40대 중반부터는 대개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 든다. 술을 웬만큼 마셔도 끄덕도 안하던 애주가도 중년에 접어들면서 주량이 줄어들곤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이 어쩌면 인체 내 분자 수의 변화 때문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심혈관 질환, 암이 60대부터 증가하고 신장기능, 면역기능이 저하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이번 연구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우선 연구자들이 발견한 분자의 변화가 40대 중반과 60대에 집중되는 이유를 모른다. 인과관계도 불분명하다. 쉽게 말해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에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져서 관련 분자 수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 즈음 주량이 늘어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참가자 수도 1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적은 편이었고 연구 기간도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추적 관찰 기간은 1~7년으로 중앙값은 2년에 불과했다.과거 다른 연구에서는 78세가 되면 급속한 노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연구는 75세까지만 대상으로 해서 이에 대해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요약하면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분자 변화가 노화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이번 연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이들면서 생기는 변화가 실제 분자 수준에서 변화와 관련될 수 있단 걸 인정하고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알코올과 커피에 대한 대사 능력이 44세와 60세 즈음에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생각해보자. 만약 40대 중반에 갑자기 커피에 전보다 민감해지는 게 느껴진다면 하루 커피 마시는 양을 3-4잔에서 1-2잔으로 줄이는 게 변화를 무시하고 전처럼 커피를 들이키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다.주량, 식사량도 같은 맥락에서 40대 중반부터는 조절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지질 대사, 탄수화물 대사와 관련한 변화가 두드러진다니 이삼십대처럼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번만 과식해도 체감하는 여파가 전과 다른 데 분자 수준의 이유가 존재한다는 걸 기억하고 그저 적게 먹는 게 낫다. 끝으로 이번 연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실을 하나만 더 추가한다면 40대 중반부터는 정기적 건강 검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
2024-08-30 10:33 |
[약사·약국] <161> 영양제 상호작용 정말 중요한가
유튜브나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소개되는 영양제의 상호작용 중에는 과장되거나 불필요한 것들이 많다. 어떤 글이 주의를 끄는지 아니까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실제보다 위험을 과장할 때가 많다. 맞는 말과 틀린 말, 과장된 말을 뒤섞는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만 불러일으킨다.미네랄 성분의 상호작용, 흡수 저해에 대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호작용이 의미있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칼슘과 철분을 같이 먹으면 효과가 감소한다는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빈혈 진단을 받아 철분 보충제를 복용 중인 사람이라면 철분제는 칼슘보충제와는 따로 먹는 게 좋다. 칼슘보충제가 철분의 흡수를 절반으로 줄어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칼슘과 철분의 상호작용은 누가 왜 철분을 섭취 중이냐에 따라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종합비타민제 한 알에는 칼슘 210mg, 철 5mg, 아연 11mg이 들어있다. 칼슘은 하루 영양성분기준치의 30%, 철은 42%, 아연은 129%이다. 제약회사에서 상호작용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왜 이들 미네랄을 함께 넣은 종합비타민제를 만드는 걸까? 이 정도 양을 섭취할 때 이들 미네랄 간의 상호작용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칼슘, 마그네슘, 철분, 아연과 같은 미네랄은 우리의 장에서 비슷한 경로를 통해 체내로 흡수된다. 고용량으로 함께 복용하면 서로 경쟁하여 흡수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빈혈 때문에 철분, 골다공증 때문에 칼슘을 보충제로 먹어야 하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 평소에 영양 불균형을 걱정하여 종합비타민제를 먹는 경우라면 그런 상호작용은 무시해도 될 정도이다.약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서 미네랄을 섭취할 때도 약간의 상호작용은 일어날 수 있다. 우유 속에는 칼슘, 마그네슘이 함께 들어있다. 양으로는 마그네슘이 칼슘의 10% 정도로 적게 들어있다. 하지만 우유 속 마그네슘이 칼슘 때문에 흡수가 줄어들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200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유 한 잔을 마시면 우유 속 마그네슘의 75%가 흡수된다. 미네랄의 상호작용에 대해 요약하면 이러하다. 여러 미네랄을 함께 섭취하면 각각을 따로 먹을 때보다 흡수가 줄어든다. 그렇지만 식사에 부족한 미네랄을 보충할 목적으로 하루 권장량 정도의 미네랄을 섭취하는 사람에게는 그 영향이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알약 하나에 다양한 미네랄이 함께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아연, 칼슘, 철분, 마그네슘을 각각 다른 알약으로 먹어야 할 정도로 결핍이 심한 사람은 드물다. 그렇게 다 따로따로 먹으려다가 힘들어 포기하는 것보다는 그냥 한두 알로 한번에 먹는 게 꾸준한 섭취 차원에서도 낫다.하지만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처방받은 약과 함께 먹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칼슘보충제, 철분보충제는 갑상선 호르몬제와 결합하여 흡수를 방해한다. 이들 미네랄보충제는 갑상선 호르몬제와 최소한 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복용하는 게 좋다. 아침 빈속에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갑상선 호르몬제는 커피, 에너지드링크와 같은 카페인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약성분 흡수가 절반 이상(55%까지) 줄어들어서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골다공증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도 카페인과 상호작용에 주의해야 한다. 골다공증약 가운데 대표적인 알렌드로네이트라는 약성분은 커피와 같은 카페인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약 흡수가 60%까지 감소할 수 있다. 게다가 카페인으로 인해 조금이기는 하지만 칼슘 흡수가 방해받을 수 있고, 몸밖으로 칼슘 배출이 조금 증가하기도 한다. 커피를 즐겨마시는 사람이라면 우유, 유제품, 아몬드, 진녹색채소 같은 식품으로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다. 음식으로 적절한 수준의 칼슘 섭취가 어렵다면 추가로 칼슘보충제를 먹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칼슘보충제, 종합비타민제에 들어있는 미네랄로 인해 항생제 효과가 감소할 수도 있다. 모든 항생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테트라사이클린계(독시사이클린, 테트라사이클린), 플루오르퀴놀론계 항생제(시프로플록사신, 레보플록사신)은 칼슘, 마그네슘 보충제와 함께 먹으면 흡수가 줄어든다.항생제는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약이므로 항생제 효과가 떨어지는 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항생제와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미네랄 보충제를 먹어야 이런 상호작용을 피할 수 있다. 약, 영양제의 상호작용이라고 모두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히도 유튜브 세상에는 불필요한 불안을 부르는 가짜 정보를 거르는 알고리듬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를 건 거르고 챙길 건 챙길 줄 아는 지혜이다.
2024-08-22 23:17 |
[약사·약국] <160> 항생제와 얼굴색
정재훈 약사.항생제를 먹고나서 얼굴이 하얗게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세균성 비염으로 항생제 처방을 받아서 복용 중이었는데 피부색이 밝아지거나 여드름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기본적으로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인체로 흡수된 약 성분이 한 곳에 모이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여러 조직과 장기로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먹는다고 해서 약이 코로만 가주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장에 그대로 남기도 하고 일부는 피부로 가는가 하면 심지어 혈관을 타고 이리저리 돌다가 혀에 남는 녀석들도 있다.알약을 삼키고 나서 한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혀에 쓴 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흡수된 약이 여러 곳으로 퍼지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피부에 간 항생제는 간혹 문제를 일으킨다. 피부세포들이 햇빛에 과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켜 뾰루지나 두드러기가 돋게 할 수도 있다. 항생제는 피부에서 세균들과 맞닥뜨리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그런데 부작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해서 늘 해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 몸에는 다양한 세균이 거주한다. 이들 대부분은 사람과 오랫동안 공생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온 것들이라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균형이 깨질 때 발생한다. 코감기가 제대로 낫지 않아 코 안 점막 세균이 득세하면 세균성 비염을 일으킨다.마찬가지로 피지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거나 쌓이면 피부 세균이 과도하게 증식하고 결국 염증의 원인이 된다.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는 사춘기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스트레스나 호르몬 변화 또는 짙은 화장으로 모공이 막히면 피부 염증이나 여드름이 나타나며 피부가 붉어질 수 있다.항생제는 피부에서 세균이 지나치게 번식하는 것을 막아서 균형을 바로잡아준다. 결과적으로 미세한 염증이 줄어들고 피부색이 밝아질 수 있다. 코 속 세균을 진압해서 비염을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두 경우 모두 세균이라는 공통의 원인이 하나의 항생제로 진압되는 셈이다.비염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먹었는데 피부에 효과가 나타나니 신기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피부질환이나 여드름을 치료하는 데 항생제가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니다.항생제가 피부에 미치는 영향은 장 때문일 수도 있다. 장내에는 피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세균이 살고 있다. 사람과 공생하는 이들 세균은 장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과 대사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흔히 항생제는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해서 장 건강에 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항생제가 반드시 장 건강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항생제 때문에 장내 세균의 균형을 깨뜨려 설사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세균성 설사를 항생제로 치료하기도 한다. 유해균을 항생제로 진압해서 장내 세균들 간의 세력 균형이 다시 맞춰주는 것이다. 하지만 항생제 내성과 같은 문제가 있고, 장과 피부와의 관계 역시 아직 가설 수준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흔히 약을 열쇠, 인체에서 약이 작용하는 부위를 자물쇠에 비유한다. 약이라는 열쇠 하나로 여러 가지 자물쇠를 열 수 있다. 열지 말아야 하는 자물쇠를 열었을 때가 약으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런 부작용이 늘 해롭기만 한 건 아니어서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항생제를 먹고 나서 피부의 염증이 줄어드는 걸 응용해서, 코가 빨개지는 주사(rosacea)를 치료하는 약으로 개발한 게 이런 경우다.사람의 피부에는 기질 금속단백분해효소(MMP)라는 아주 복잡한 이름의 효소가 있다. 이 효소는 원래 상처가 났을 때 다친 부위를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외선이 센 날 바깥에 나가면 피부에 손상을 입는 것도 이 효소가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독시사이클린이나 미노사이클린과 같은 항생제는 금속단백분해효소를 가라앉혀서 염증을 줄여주는 효과를 나타낸다.한 가지 약은 몸의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작용하여 효과를 나타낸다. 이로 인해 우리에게 불쾌한 부작용이 생길 때도 있지만, 유익한 방향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어떻게 하면 유익만 얻고 해를 피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것은 과학자의 몫이지만, 약에 대해 잘 알고 사용하는 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
2024-07-24 14:16 |
[약사·약국] <159> 항우울제 때문에 체중이 는다면
정재훈 약사.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복용 중인 항우울제 때문에 살찌는 듯한 의심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와 상담하여 다른 항우울제로 약을 바꾸는 것에 대해 고려해볼 수도 있다. 2024년 7월 2일 학술지 <내과학 연보>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모든 항우울제가 체중 증가 부작용에서 동일한 것이 아니라 일부 항우울제가 다른 약보다 체중을 늘리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연구자들은 미국에서 20~80세 성인 183,118명의 전자 건강 기록(Electronic health record)을 24개월 동안 추적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자료를 사용했고 약 사용 시점부터 6, 12, 24개월 뒤 체중을 조사했다. 졸로푸트(성분명:설트랄린)를 기준으로 하여 8가지 항우울제의 체중 증가 부작용 정도를 비교했다.분석 결과 약 복용을 시작한 지 6개월 뒤 렉사프로(에스시탈로프람), 팍실(파록세틴), 심발타(둘록세틴)를 복용한 환자들은 졸로프트 사용자들에 비해 약을 먹기 전 체중의 5% 이상 체중이 늘어날 위험이 10~15% 더 높았다. 프로작(플루옥세틴) 사용자는 졸로푸트 사용자와 체중 증가 위험 면에서 비슷한 수준이었다. 웰부트린(부프로피온)을 복용한 경우 약 때문에 체중 증가를 경험할 가능성이 졸로푸트 복용자보다 15% 더 낮았다. 이 연구에서는 위에 나열한 브랜드 약품 외에도 제네릭으로 동일성분을 복용 중인 사람을 모두 포함한 자료를 썼다.체중 증가량은 얼마나 될까? 6개월 후 렉사프로나 팍실을 복용한 사람은 졸로푸트를 복용한 경우보다 평균적으로 약 0.4~0.5 kg 체중이 늘었다. 심발타, 이펙사(벤라팍신), 또는 셀렉사(시탈로프람)를 복용한 사람들도 졸로푸트보다 체중이 늘긴 했지만 체중 증가량은 이보다 낮은 0.1~0.3kg 수준이었다. 웰부트린을 복용한 경우 졸로푸트를 복용한 경우보다 체중 증가량이 0.2kg 적게 나타났다.항우울제 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약 사용시 체중이 증가하긴 증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체중 증가가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가령 우울증으로 식욕이 떨어진 사람이라면 항우울제가 효과를 내면서 기분 저하와 같은 증상이 나아지고 식사를 덜 거르게 되어 체중이 조금 늘어날 수도 있다. (우울증으로 체중 감소가 심할 때는 레메론(미르타자핀)처럼 식욕과 체중 증가 효과가 있는 항우울제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체중 증가에는 식단, 운동을 포함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늘어나기 마련이므로 연구 기간 동안 사람들의 체중이 늘었을 수 있다.이번 연구에는 항우울제를 복용하지 않는 비교 그룹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관찰 연구여서 약으로 인한 체중 증가의 인과성을 따지기 어렵기도 하다. 참가자의 체중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6, 12, 24개월 차에 체중 측정치가 보고된 경우는 전체 자료의 15~30%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항우울제 복약이행률에 대해 따로 조사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약과 체중 변화의 연관성을 제대로 따지기 어렵다. 항우울제를 생애 첫 사용한 것으로 가정하고 연구했지만 실제로 각 참가자가 처음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는 한계점도 존재한다.이런 요인들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 연구 결과가 통상적으로 알려진 상식과 달라보이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웰부트린, 프로작이 체중 증가가 적게 나타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졸로푸트보다 체중 증가 위험이 높은 걸로 나타난 렉사프로, 심발타도 체중 증가 위험이 적은 편이어서 체중관련 부작용을 우려하는 경우에 자주 쓰인다. 체중 증가 때문에 항우울제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을 앓고 있거나 당뇨병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는 체중 증가 부작용이 중요한 문제이다. 약으로 인한 체중 증가를 의심하여 항우울제가 효과적이더라도 스스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이다. 입원 위험, 우울증 증상 재발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항우울제로 인한 체중 증가가 의심 또는 고민된다면 의사, 약사와 먼저 상담해보는 게 중요한 이유이다.다만 이번 연구에서도 그러했지만 항우울제로 인한 체중 증가는 대개 약을 시작한 지 4-6개월 쯤에 주로 나타나며 크기가 작은 편이다. 모든 약에는 효과와 부작용이 존재한다. 약을 바꾸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운동, 식단 변화를 시도하거나 체중 조절을 위해 GLP-1 유사체와 같은 다른 약을 추가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체중 증가를 피하기 어렵고 다른 모든 생활상 요인보다 복용 중인 항우울제가 의심된다면 그 때는 약으로 인한 유익과 부작용 중 무게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보는 게 좋다.
2024-07-10 13:33 |
[약사·약국] <158> 자일리톨
정재훈 약사.자일리톨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2배 이상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일리톨은 1그램당 2.4kcal로 설탕보다 칼로리가 40% 적다. 다이어트 중이거나 혈당 조절이 필요한 사람도 자주 찾지만 입가심을 위해 자일리톨 캔디나 껌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나도 차에 자일리톨 캔디를 두고 자주 먹는다. 당알코올이라고도 부르는 감미료 자일리톨이 녹을 때 주변의 열을 흡수하므로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게 기분 좋기도 하지만 입냄새가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일리톨이 입냄새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억제하여 나타나는 효과이다. 그런데 자일리톨이 심장마비(심근경색),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니 그야말로 깜짝 놀랄만한 소식 아닌가.하지만 문제점이 여럿 보인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스탠리 헤이즌 박사는 작년에도 당알코올 에리스리톨이 심혈관계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대중 매체의 커다란 관심을 받았던 사람이다. (헤이즌이 주도한 에리스리톨 연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다룬 이전 글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3,000명 이상의 금식 중인 참가자들의 혈액을 검사하여 자일리톨 혈중 농도와 심혈관계 사건 발생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다. 3년 동안 추적 관찰하는 동안 참가자 일부가 심장마비, 뇌졸중 같은 심혈관 사건을 겪었다.연구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심혈관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혈중 자일리톨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혈중 자일리톨 수치가 왜 높은가에 대해서는 추적하지 않았다. 자일리톨은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당알코올 중 하나다. 딸기, 자두, 귀리, 시금치, 가지, 양상추에도 자일리톨이 들어있다. 게다가 자일리톨은 인체에서도 포도당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소량 생성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혈중 자일리톨 농도와 심혈관 사건의 위험에 연관성이 나타나긴 했지만 인과관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연구에는 자일리톨이 혈전 생성 위험을 높여서 심혈관 사건 위험을 높이는 것일지 모른다고 암시하는 결과가 포함됐다. 이 부분에서 일부 국내 기사는 오보를 냈다. 헤럴드 경제에는 “자일리톨 함유 식품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순식간에 1000배나 높이고 이같은 상태는 4~6시간 유지된다는 점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명백하게 틀린 설명이다. 자일리톨을 먹는다고 콜레스테롤을 순식간에 1000배나 높일 수는 없다. 원래 내용은 콜레스테롤 함유 식품 섭취로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10~30% 증가하지만 자일리톨이 많이 든 식품을 섭취하면 혈중 자일리톨 농도가 원래보다 1000배로 상승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이 부분에서 연구 자체의 한계도 드러난다. 자일리톨 함유 식품을 먹어도 자일리톨 혈중 수치는 4~6시간 뒷면 원래 상태로 복귀하므로 연구에서 조사한 혈중 자일리톨 농도와 심혈관계 질환의 상관성은 식품으로 섭취한 자일리톨이 아니라 체내에서 생성된 자일리톨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논문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10명의 건강한 자원자로부터 자일리톨로 달게 한 음료를 마시기 전과 마신 후 30분에 혈액을 채취하여 혈전이 더 쉽게 형성되는지 조사했다. 얼마나 많이 줬냐고? 무려 자일리톨 30g을 물 300ml에 녹여서 마시도록 했다. 자일리톨 크리스탈 캔디 30~40g 가격이 3~4천원이다. 한 번에 한 통을 다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런데 그 한 통에 해당하는 양을 한번에 다 먹도록 한 다음 혈중 농도가 1000배 증가했다고 발표한 것이다.자일리톨의 혈중 농도가 매우 낮아서 0에 가까우니 조금만 증가해도 1000배가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동물 실험에서 자일리톨을 투여하면 동맥을 일부러 손상시킨 부위에서 혈전이 더 빠르게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이는 자일리톨을 먹어서는 잘 흡수하지 못하는 생쥐에게 정맥 주사로 자일리톨을 억지로 주입하여 얻은 결과이다.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어려우며 이런 결과로 인과성을 입증하기도 힘들다. 개에게는 자일리톨이 저혈당을 유발하여 치사적일 수 있지만 사람에게 그런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매일 같이 자일리톨 캔디나 껌을 한 통씩 비우는 사람이 흔하진 않겠지만 자일리톨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장내 가스참, 복통, 설사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그저 입가심으로 자일리톨 캔디를 조금 먹는 사람이 심혈관계 위험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사람은 부정적 뉴스에 끌리기 마련이어서 긍정적 뉴스를 더 좋아한다고 답하는 사람조차 부정적 온라인 뉴스를 고르는 경향을 보인다. 건강 관련 연구 결과에서도 그러기 쉽다. 덕분에 크게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될 부정적 연구 결과를 다루는 뉴스가 지나치게 많이 보인다. 자극적이지만 별 도움이 안 되는 건강 뉴스를 어떻게 피하고 거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2024-07-10 13:32 |
[약사·약국] <157> 크레아틴 보충제 효과 있을까?
정재훈 약사.운동하다보면 크레아틴 보충제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크레아틴은 화학구조상 아미노산은 아니지만 아미노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미노산 3종(글리신, 아르기닌, 메티오닌)이 관여하는 반응을 통해 체내에서 합성된다. 하루 약 1g이 주로 간과 신장에서 만들어지며 췌장에서도 소량 합성된다.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젊은이가 노인보다 더 많은 크레아틴을 합성한다. 몸속 크레아틴의 95%는 골격근에 존재하며 나머지 5%는 뇌, 간, 신장, 고환에 있다. 근육에 크레아틴이 저장되는 것은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적색육, 생선, 가금육에 모두 크레아틴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음식을 통해 크레아틴을 섭취할 수 있다. 보통 하루 1g을 음식으로 얻게 된다. 크레아틴의 절반은 인체가 직접 만들고 절반은 음식으로 얻는 셈이다. 근육에 저장된 크레아틴은 에너지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포의 에너지원 ATP를 빠르게 재생성하는 데 사용되므로 특히 격렬한 운동을 할 때 필요하다. 크레아틴 섭취를 운동과 병행하면 근육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크레아틴은 체내에서 크레아티닌으로 대사되어 소변으로 배설된다. (참고로, 신장 기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혈중 크레아틴이 아니라 그 대사체인 크레아티닌 농도이다.) 하루에 필요한 만큼 인체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크레아틴으로 충분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크레아틴을 섭취하면 운동 능력을 향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래서 보충제를 통해 크레아틴을 추가로 섭취하기도 한다.크레아틴 보충제는 격렬한 운동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중량 운동, 단거리 전력 질주처럼 순간적으로 더 강한 힘을 내야 하는 운동에서 ATP를 빠르게 재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과연 필요한가는 생각해볼 일이다. 적당한 중량으로 반복해서 운동하거나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주말에 축구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크레아틴이 필요 없다. 크레아틴으로 얻을 수 있는 실제 효과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적 효과는 크다. 나도 매일 경험한다.)하지만 근육량을 늘리는 차원에서는 크레아틴 보충제를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35개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2022년 연구 결과, 크레아틴 보충제는 나이에 상관없이 성인의 린 바디 매스(Lean Body Mass, 뇌, 신경, 심장 등에 존재하는 필수 지방 외의 체지방을 제외한 체중으로 줄여서 LBM이라고 쓴다)를 0.68kg 증가시켰다. 운동하지 않고 크레아틴 보충제만 섭취한 연구 결과를 포함시켰을 때 수치이다. 중량 운동을 크레아틴 보충제 섭취와 병행한 경우만 놓고 보면 LBM을 평균 1.1 kg 증가시켰다. 근육량 1kg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생각해보면 이 정도 차이는 작지만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중장년층에게도 크레아틴 보충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낙상 예방 차원에서도 근육량을 늘리고 순간적으로 힘을 내는 파워 근력을 향상시키는 게 중요하다. 크레아틴은 근육뿐만 아니라 뇌에도 존재하는 물질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크레아틴 보충이 기억력, 인지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크레아틴 보충제로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량으로 보충제를 복용하는 경우 약간의 위장 장애, 복부 팽만감이 나타날 수 있다. 크레아틴이 남성 호르몬을 증가시켜 탈모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에 떠돌아 다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크레아틴을 장기 사용하는 경우에 대한 안전성 정보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한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크레아틴을 로딩 도즈 차원에서 처음에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하루 3-5그램을 섭취하는 정도로도 근육에 저장되는 크레아틴의 양을 늘리고 근성장, 근력 향상, 운동 뒤 회복을 돕는 효과 면에서 충분하다. 이 정도 용량에서는 건강한 사람의 신장에 해로운 영향을 주기도 어렵다.다양한 형태의 크레아틴 보충제가 있지만, 이제까지 연구 결과는 주로 크레아틴 모노하이드레이트에 대한 것이 주류이므로 크레아틴 보충제를 섭취할 경우에는 크레아틴 모노하이드레이트 형태를 고르는 게 좋다.
2024-06-19 21:53 |
[약사·약국] <156> 뇌 건강에 정말 좋은 음식
정재훈 약사. 유튜브에는 뇌 건강에 이 음식이 좋다, 저 음식이 좋다는 동영상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렇게 특정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뇌 건강에 해롭다. 나이 들수록 골고루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게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더 효과적인 전략이다.2024년 4월 학술지 <네이처 정신 건강 Nature Mental Health>에 실린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 참가자 181,990명의 식습관과 뇌 건강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여 식단의 종류에 따라 정신 건강과 인지 기능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조사했다.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참가자들은 140종의 음식과 음료에 대한 음식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때 각각의 음식에 대해 9점 척도로 얼마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답하게 된다. 1점은 극도로 싫어한다(극혐), 9점은 극도로 좋아한다(극호)를 뜻한다.식음료는 10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진다. (술, 음료, 유제품, 향신료, 과일, 생선, 육류, 스낵, 전분질 식품, 채소)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음식 선호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로 정신 건강이나 인지 기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 전체 참가자 중 18%가 과일, 채소, 단백질 식품은 좋아하지만 빵, 파스타 같은 전분질 음식은 안 먹거나 덜 먹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었고, 6%는 채식주의자, 19%는 고단백 저섬유질 선호자였다. 나머지 57%는 모든 음식을 비슷하게 선호하여 음식을 골고루 먹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연구 결과, 다양한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정신 건강이나 인지 기능 면에서 제일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낮을수록 좋은 정신질환 관련 점수에서 이들이 제일 낮았고, 높을수록 좋은 정신 건강 관련 점수에서 이들이 제일 높았다. 자극에 대한 반응도 이들이 제일 빨랐다. 뇌 MRI 검사 결과도 균형 잡힌 식단 그룹이 고단백 저전분질 선호자나 고단백 저섬유질 선호자에 비해 더 나았다. 일반적 상식과 달라 보이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과일, 채소를 고단백 식품보다 더 선호하는 채식 선호 그룹이 불안, 우울 같은 증상을 겪을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이번 연구 결과만으로 식단과 뇌 건강 사이의 인과 관계를 알 수는 없다. 참가자를 한 곳에 가둬두고 식단을 달리 주면서 연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비용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식품에 대한 선호를 조사했으며 실제 식단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국 바이오뱅크에 참가한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일반 대중보다 더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하지만 음식 선호도와 뇌 건강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음식을 골고루 먹는 사람이 편식하는 사람보다 정신 건강과 인지 기능 면에서 유리하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루를 멀다하고 “OO을 먹으면 몸의 변화가”라는 식의 기사가 쏟아진다.오늘 아침에 본 기사 제목은 “육개장에 대파 듬뿍 넣어 먹었더니...중년의 몸의 변화가”였다. 실제로 실험해본 것도 아닌데 마치 무슨 대단한 연구라도 한 것처럼 떠든다. 그러나 사람은 잡식동물이다. 나무에 매달려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 사는 코알라는 두개골 속 빈 공간을 61% 밖에 채우지 못할 정도로 뇌가 작다.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잡식동물 인간의 뇌는 그보다 훨씬 크다. 우리의 뇌 건강은 대파를 많이 먹느냐 적게 먹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육개장도 먹고 밥도 먹고 다양한 반찬도 먹는 데 달려있다. 균형잡힌 식단으로 먹되 과식만 피하자.
2024-05-22 11:33 |
[약사·약국] <155> 운동을 약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운동을 너무 하기 싫으면 상상에 빠지곤 한다. 운동 대신 먹을 수 있는 약은 없을까? 답은 “아직 없다”이다. 하지만 그런 약을 지칭하는 용어는 이미 존재한다. 운동의 효과를 일부 흉내내거나 운동 효과를 강화할 수 있는 약을 Exercise mimetics이라고 부른다.운동은 면역과 관련된 신호를 전달하는 사이토카인 분비를 증가시킨다. 운동한 사람들의 근육에서는 IL-6(인터류킨-6)과 같은 사이토카인이 분비되어 운동이 끝나고 나서도 4시간 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운동하면 근육에서 분비되는 이들 물질을 엑서카인exerjube이라고 부른다. IL-6는 경우에 따라 해로울 수도 있고 유익할 수도 있다. 과식을 하고 앉아서 쉴 때 생겨나는 IL-6는 염증을 유발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키며 2형 당뇨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과 연관된다. 하지만 고강도 운동을 할 때 근육에서 방출되는 IL-6는 오히려 염증을 낮춰주는 쪽으로 작용하여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낼 수 있다.운동을 하면 미토콘드리아에서 생겨나는 활성산소종(ROS)도 마찬가지로 인체를 보호하고 복구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배가 부른데도 음식을 먹어도 활성산소종이 만들어지고 산화스트레스가 증가한다. 하지만 우리 몸은 같은 깃발이어도 누가 언제 드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인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지만 괴롭히는 것(스트레스 신호)이 운동 때문인지 과식 때문인지 구분한다. 운동으로 적절한 스트레스를 주면 회복하면서 더 건강해지지만 과식으로 스트레스를 주면 결국에는 뇌, 심혈관계, 내분비계, 면역계가 모두 지쳐 쓰러진다. 왜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는지 어떤 신호전달물질이 운동의 효과를 내는지 알아내면 그런 신호를 대신하는 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운동 효과를 약으로 모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운동은 인체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생리적 반응을 동시에 일으킨다. 약물 분자 하나로 이같은 복잡한 반응을 모두 흉내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약 성분을 한 알에 모아 동시에 투여하는 방법은 어떤가? 이 방식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운동의 효과가 여러 장기와 조직에 나타난다는 것도 약으로 운동을 대신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운동은 심혈관계, 근골격계, 면역계, 내분비계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다. 하지만 운동 효과를 모방하는 약은 주로 근육에 미치는 운동의 작용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이런 약으로 운동 효과를 부분적으로 흉내낼 수는 있겠지만 몸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다양한 작용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요즘 들어 운동의 효과를 모방하는 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위고비, 젭바운드와 같은 비만 신약의 영향이 크다. 체중을 15~20% 이상 감량할 수 있는 이들 약의 사용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늘어나면서 체중 감량에는 성공했지만 근육이 같이 줄었다는 푸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약 사용과 운동을 병행하면 근육 감소와 요요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이미 약으로 살을 빼본 사람에게는 약으로 근육 감소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더 이끌릴 수밖에 없다.비마그루맙이라는 약물을 세마글루티드(위고비, 오젬픽의 주성분)과 함께 투여해서 근육 감소를 막을 수 있는지 이미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항체치료제를 이용하여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수용체를 막아 근육량 감소를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임상시험도 올해 중으로 시작 예정이다. 병상에 누워 운동을 할 수 없는 신체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이런 약물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방향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다만 약으로 살도 빼고 운동 효과를 흉내내어 근육도 늘리는 게 과연 옳은 생각인지는 좀더 고민해봐야 할 거 같다. 내 몸을 내 뜻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삶에서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 운동의 효과를 흉내낸 알약이 나오더라도 운동만큼은 내 몸으로 직접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05-16 11:15 |
[약사·약국] <154> 여성에게 두통이 더 많은 이유
약국에 가벼운 두통약을 사러 오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일 경우가 많다. 여성에게 실제로 두통이 더 많이 생길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국내에서 편두통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남성보다 여성이 2.5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다. 2021년 미국 설문 조사에서는 두통이나 편두통을 겪은 여성의 인구 수가 남성의 2.8배였다.두통에는 긴장성 두통, 편두통, 군발두통이 있다. 보통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두통은 긴장성 두통이다. 머리에 안 맞는 작은 띠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통증이 심하진 않은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편두통은 이름처럼 보통 머리 한쪽에서 나타나며 머리 속에서 심장이 뛰는 듯 쿵쿵 울리는 박동성 통증이 나타난다. 편두통은 긴장성 두통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 중간에서 심한 정도로 통증이 4시간에서 72시간까지 지속된다. 편두통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쉬운 이유이다. 편두통이 시작되기 2~48시간 전에 피로감, 졸음, 감정 변화, 무력감 등이 나타날 수 있고 감정 변화, 무력감, 피로감은 두통이 지나가고 나서 24시간 동안에도 후유증상으로 남아 환자를 괴롭히기도 한다. 여성에게 편두통이 더 흔하게 생기는 이유는 우선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과 관련된다. 대체로 사춘기 전에는 두통 빈도에 성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여성에게서 편두통이 훨씬 더 흔해진다. 사춘기부터 폐경기 사이에 여성에게 편두통이 잦은 이유이다. 편두통 때문에 고통을 겪는 여성의 절반 이상에게서 편두통과 여성호르몬 변동성이 관련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6년 미국 연구에 따르면 편두통을 겪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배란기나 월경시 에스트로겐 수치가 더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에스트로겐 변동이 왜 편두통을 유발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에스트로겐이 대뇌피질의 흥분성을 높여 편두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임신 중에 편두통의 빈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것도 여성호르몬 변동성과 관련된다. 폐경기가 가까이 오면서 여성호르몬 변동이 심해지면서 편두통이 악화되는 듯하다가 호르몬 수준이 안정되면서 전보다 편두통이 덜 자주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긴장성 두통도 여성에게 더 많이 생긴다. 여성은 남성보다 긴장성 두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1.5배 정도로 높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호르몬과 스트레스 같은 요인이 관련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편두통과 마찬가지로 월경 전후로 여성에게 긴장성 두통이 더 자주 발생한다. 여성이 직장, 사회적 또는 가족 의무로 인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므로 두통을 더 자주 겪게 된다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수면 부족이 숨은 이유일수도 있다. 대개 여성이 남성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는 두통이 빈발하는 것과 연관된다. 남성에게 더 많이 생기는 두통도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군발두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군발두통은 10만 명당 100~200명에 나타나는 정도로 드물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두통이다. 편두통처럼 머리 한쪽만 아플 때가 많지만 눈이 빨개지고 코가 막히며 해당 편측의 콧구멍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기까지 한다. 하루에 여러 차례씩 15분에서 3시간까지 이르는 두통이 수주 또는 수개월에 걸쳐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한동안 두통이 안 생기다가 생길 때는 몰려서 경험하게 되므로 군발두통 또는 군집성 두통이라고 부른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군발 두통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도 이유가 명확하진 않지만 여성보다 남성이 흡연, 음주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관련될 수 있다. 보통 군발두통은 흡연자나 음주자들 사이에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이전보다 더 많은 효과적인 두통 치료약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두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약 외에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두통일기를 쓰는 것이다. 스트레스, 수면, 호르몬, 탈수, 기상 변화, 약물 복용, 알코올 섭취와 같은 다양한 요인 중 어떤 요소가 자신의 두통과 관련되는지 알면 두통 빈도를 줄이거나 미리 치료약을 준비해두는 데 도움이 된다. 두통은 완치할 수는 없지만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다.
2024-05-16 11:13 |
[약사·약국] <153> 오트밀 다이어트 효과 있을까?
정재훈 약사. © 약업신문입에 착착 감기는 문구라고 사실은 아니다. 건강 트렌드에 관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다. 요즘 틱톡에서 뜨고 있는 오트젬픽 이야기가 그렇다. 오트(귀리)와 체중 감량 효과로 잘 알려진 당뇨약 오젬픽을 합성해서 만든 말이다. 물 한 컵에 오트밀 반 컵, 라임 반 개를 넣고 갈아 만든 음료를 마셨더니 두 달만에 체중이 18kg 줄었다는 식의 경험담이 틱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귀리에 영양학적으로 몇 가지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귀리를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살이 더 잘 빠지거나 오젬픽에 필적할 정도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귀리는 다른 곡물에 비해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귀리는 통곡물로 가공하는 경우가 많다. 부드러운 알곡에 속껍질이 딱 달라붙은 구조여서 이를 떼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귀리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도 많이 들어있다.가공하지 않은 통곡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데는 단점도 있다. 조리 시간이 75분에 이를 정도로 길다. 장기 보관할 때 지방 산화로 인해 변질될 가능성도 더 높다. 채소를 가열 조리하면 산화효소의 작동을 정지시켜서 산화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귀리도 증기로 쪄서 지방 산화효소의 작동을 정지시키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귀리를 쪄서 롤러로 누르면 오트밀이 된다. 더 얇게 눌러 만든 것일수록 조리시간이 더 짧다. 우유에 오트밀을 넣어 전자레인지에 2분만 가열해도 부드럽고 걸쭉한 오트밀을 만들 수 있는 이유이다.오트밀은 피부에 바르는 보습 로션이나 크림에 성분 중 하나로 들어가기도 한다. 보습 크림에 오트밀을 넣는 것은 쿠키, 팬케이크, 수프, 스튜와 같은 요리에 오트밀을 넣는 것과 목적 면에서 비슷하다. 수분을 붙잡는 귀리의 독특한 물성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오트밀을 미세하게 분쇄하여 콜로이드 오트밀로 만들면 피부 가려움증을 완화하고 피부를 보호해주는 보습제가 된다. 귀리에 풍부한 전분과 식이섬유가 수분을 붙잡아주기 때문이다.귀리에는 특히 베타글루칸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있다. 베타글루칸은 물을 빨아들여 끈적끈적한 젤처럼 되는데 여기에 장으로 배출된 콜레스테롤이 붙잡힌다. 원래는 장에서 다시 흡수되어 재활용되어야할 콜레스테롤이 흡수되지 않고 변으로 빠져나가게 되니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다. 약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효과는 아니지만 혈중 콜레스테롤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이 때때로 밥 대신 오트밀을 먹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베타글루칸 같은 수용성 식이섬유의 또다른 장점은 혈당을 천천히 높인다는 것이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끈적끈적한 물성을 가지고 있어서 위에서 장으로 천천히 배출된다. 이로 인해 포만감이 증가하고 오랫동안 든든함이 유지되면서 동시에 당분 흡수도 느려진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사람이 소화시킬 수 없지만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될 수 있다. 귀리에는 불용성 섬유도 많이 들어있다. 불용성 섬유는 변의 부피를 늘려주어 변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오트밀 음료를 사서 먹든 집에서 만들어 먹든 두 달 만에 18kg을 빼는 마법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2018년 학술지 <애퍼타이트>에 실린 연구에서 귀리 베타글루칸 4그램을 아침식사에 더해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한 결과 귀리 베타글루칸을 먹은 경우 식욕이 줄기는 했지만 식사량에는 차이가 없었다. 2024년 노르웨이 연구에서는 베타글루칸 성분을 강화한 귀리 빵과 통밀빵을 먹은 경우, 귀리 빵을 먹은 쪽이 식후 혈당과 인슐린 수치 변화가 다소 완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연구에서 모두 GLP-1 호르몬 수치에 변화는 없었다. 귀리를 먹는다고 해서 오젬픽 같은 효과를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오트밀로 오젬픽처럼 살을 뺀다는 오트젬픽은 그저 지나가는 유행일 뿐이다. 누군가 정말 대단한 다이어트 효과를 본다면 오트밀에 강력한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전체 칼로리 섭취량을 줄이고 체중 감량을 위해 생활습관을 조절했기 때문일 거다. 장기적으로 체중을 건강하게 관리하려면 특정 식품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유행 다이어트(fad diet)보다는 전체 식습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현명하다. 진부한 답이라고? 인간의 몸이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2024-04-11 10:40 |
[약사·약국] <152> 간헐적 단식과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정재훈 약사. © 약업신문간헐적 단식이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직 정식 논문은 아니고 미국심장학회 모임에서 발표된 결과이다.연구팀은 2만 78명의 미국 성인의 식사습관과 건강에 대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추적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 16시간을 굶고 8시간 동안만 식사하는 사람이 하루 12~16시간 동안 먹는 보통 사람보다 심장질환 사망 위험이 91%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심장질환이나 암을 앓고 있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간헐적 단식으로 인한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증가가 관찰됐다. 심장질환자가 16:8 간헐적 단식을 하면 심혈관질환 사망위험이 2배, 암환자의 경우는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16:8은 16시간 단식, 8시간 식사를 의미한다.)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연구 결과다. 연구를 이끈 빅터 웬즈 종 중국 상하이 자오퉁의대 교수는 이번 연구로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기존에 심장질환이나 암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 먹는 걸 8시간으로 제한하는 간헐적 단식과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왜 이런 상관성이 나타나는지도 이번 연구로 알 수 없긴 하다. 하지만 8시간 식사 그룹이 12-16시간 식사 그룹보다 근육량이 적은 편이었고 그런 차이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종 교수의 추측이다. 식사 시간보다는 무엇을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중해 식단이나 DASH 식단(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 고혈압을 막기 위한 식사법)을 따르는 게 건강에 더 유익하다는 주장이다.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엉성한 부분이 많다. 무려 2만 명이 넘는 사람을 15년 동안 추적하긴 했지만 식단에 대한 조사는 24시간 회상법으로 단 두 번의 자료를 이용했다. 설문조사 두 번으로 누구를 간헐적 단식 그룹에 넣고 누구를 일반 식사 그룹에 넣을지 결정한 셈이다.게다가 간헐적 단식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남성, 흡연자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8시간 식사하고 16시간 굶는다고 답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간헐적 단식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식사할 여유조차 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N잡러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차이를 모두 보정하면 양쪽 집단에 아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후속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그렇다면 이번 연구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적게 먹을 때는 영양 균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면 된다.2020년 미국 연구에서 116명의 과체중 또는 비만인 성인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의 간헐적 단식과 삼시 세끼 식사의 효과를 비교한 결과 체중 감량은 간헐적 단식 쪽이 0.94kg, 삼시 세끼가 0.68kg으로 체중은 간헐적 단식 쪽이 조금 더 줄었지만 근육량 감소도 간헐적 단식 쪽이 조금 더 컸다.하지만 2022년 4월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중국 연구에서는 간헐적 단식을 하든 소식(칼로리 제한) 다이어트를 하든 근육량에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39명의 비만인 남녀 대상으로 한 12개월 동안 다이어트를 수행한 결과, 체중 감량은 간헐적 단식 쪽이 8.0kg, 소식은 6.3kg으로 간헐적 단식이 조금 더 빠졌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할 정도는 아니었다.2020년 미국 연구와 2022년 중국 연구의 차이는 탄단지 균형에 있었다. 중국 연구에서는 간헐적 단식이든 소식이든 하루 섭취 열량에서 탄수화물 40~55%, 단백질 15~20%, 지방 20~30%이 되도록 영양 균형을 맞췄다. 많이 먹을 때는 어떻게든 필요한 영양 섭취를 다 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으로든 소식으로든 적게 먹을 때는 탄단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건강에 해로우며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실제 생활에서 운동과 식단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균형잡힌 식사에 더해 근육을 자극하는 운동을 더해줘야 나이들면서 근육량 감소를 늦출 수 있다. 체중과 근육량을 늘려야 할지 유지해야 할지 줄여야할지 여부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공통 원칙은 동일하다. 골고루 적당히 먹고 운동하면 된다. (대개의 경우 적당히는 ‘지금보다 적게’를 의미한다.)
2024-04-05 11:34 |
[약사·약국] <151> 진통제 사용을 줄이는 방법
정재훈 약사. © 약업신문진통제 복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운동을 하면 된다. 운동이 일반적 통증뿐만 아니라 암과 관련된 통증에 대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2024년 2월 12일 학술지 <캔서>에 실렸다.암 관련 통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암으로 투병 중인 사람은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 요법, 장기간의 약물 치료로 인한 부작용 등 치료 자체로 인한 통증을 겪을 수 있다. 종양이 신경을 압박할 때처럼 종양 자체로 인한 통증을 겪을 수도 있다.2016년 메타분석 연구 결과, 약 항암치료 중인 사람의 55%, 항암치료를 마친 사람의 40%가 환자가 통증으로 고생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심하면 항암치료를 중단하게 만들 수 있다. 통증을 잘 관리해야 치료를 계속할 수 있으므로 암으로 투병 중인 사람에게 통증 관리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진통제와 같은 약을 너무 많이 먹고 싶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에 운동이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번 연구는 6만 명이 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운동과 통증의 관계를 들여다봤다. 이들 중 암 병력이 있는 사람은 10,651명, 암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은 51,439명이었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주당 150분 이상의 중강도 활동 또는 주당 75분 이상의 고강도 운동을 한 참가자들은 운동하지 않거나 적게 한 사람들보다 통증을 호소할 확률이 16% 낮았다. 운동은 특히 중간 정도에서 심한 정도의 통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운동을 하면 통증이 덜 느껴지는 효과는 암 병력이 있든 그렇지 않든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참가자의 연령대가 70-80대이므로 이번 연구 결과를 젊은 층에까지 적용하기는 어렵다.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이므로 인과관계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한계점도 있다. 하지만 운동이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여럿이다.노르웨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 운동하는 사람의 만성 통증의 유병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38%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은 목 통증, 요통, 골관절염, 근막통, 섬유근육통과 같은 다양한 통증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75건의 연구를 메타분석한 2019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얼마큼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운동이 통증 조절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운동은 통증 부위에서 사람의 통증 역치를 높일 수 있다. 쉽게 말해 뇌에서 통증의 인식을 억제하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운동이 중추신경계에서 통증을 억제하는 경로를 활성화함으로써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023년 캐나다 연구에 따르면 12주 이상 운동을 계속하면 만성 통증으로 고생 중인 사람의 뇌 기능이 향상되고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염증을 줄이고 혈류가 개선된다. 이런 효과도 운동이 통증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심리적 요인도 운동이 통증을 낮추는 효과의 숨은 이유일지 모른다. 암 진단을 받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통증 역치가 낮아질 수 있다. 이럴 때 운동은 기분을 나아지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어 통증에 더 잘 버틸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신체적으로 활동적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도 더 활동적이다. 혼자 있으면 더 아프다. 운동을 하면서 사회적 지원을 느끼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모임에 참여하면 피로감, 통증과 같은 암의 부정적인 효과와 끝없이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사회적 연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함께 운동하는 모임에 참여하면 탄력을 받아 활동량을 더 늘릴 수 있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자전거 타는 사람을 만나면 자전거를 더 많이 타게 되고 산책하는 사람을 만나면 산책할 일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활동적인 사람들과 만나게 될 때 전보다 더 활동적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물론 질환의 정도에 따라 운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운동한다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운동은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통증을 관리하는 데 훌륭한 해결책이다.
2024-03-18 09: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