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는 곧 해고 통지서"... 약가개편, '노동 리스크' 암초 만났다
한국노총, 정부 약가 개편안에 제동... "제네릭 수익은 R&D와 일자리의 원천"
재정 절감 명분에 '고용 생태계 붕괴' 경고장... 노-사 공동 전선 공고히 구축
입력 2026.01.30 06:00 수정 2026.01.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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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이재명 정부가 핵심 국정 과제인 '바이오·헬스 강국 실현'과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꺼내 든 '약가 제도 개편' 카드가 중대한 암초를 만났다.

그동안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제약업계(사용자)의 반발은 있었으나, 이번에는 노동계의 맏형 격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전면에 나서 "약가 인하는 곧 고용 쇼크"라며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보 재정 절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노동계는 이를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를 파괴하는 근시안적 처방'으로 규정하며 의제를 확장했다.

'가격 통제'의 나비효과... "기업 수익 감소는 노동자 해고로 직결"
29일 한국노총이 발표한 성명의 핵심은 약가 정책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성명서에서 "무분별한 약가 인하는 결국 노동조건 악화와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국민의 건강권까지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는 국내 제약산업의 독특한 수익 구조에 기인한다. 대다수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복제약) 판매로 얻은 안정적인 현금 창출(Cash Cow)을 바탕으로 인력을 고용하고, 그 수익을 다시 신약 R&D에 투자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기계적인 약가 인하를 단행할 경우, 기업들은 당장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인력 감축 ▲임금 삭감 ▲연구개발비 축소라는 가장 손쉬운 '비용 절감'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분석이다. 결국 정부의 재정 절감 칼날이 노동자들에게는 해고 통지서라는 '청구서'로 돌아오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재정 아끼려다 R&D 생태계 붕괴? '교각살우' 우려
정부 역시 고령화로 인한 약품비 급증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한국노총 또한 "약품비 증가 속도가 전체 진료비 증가율을 상회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각론인 '해법'에서 정면으로 충돌한다.

정부는 직접적인 '가격 통제'를 최우선 순위로 두는 반면, 노동계와 산업계는 이를 산업 경쟁력 자체를 갉아먹는 자충수로 본다. 제네릭 약가 인하로 기업의 기초 체력이 약화되면, '제약 주권'의 핵심인 필수의약품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신약 개발 동력이 상실되어 오히려 해외 의약품 의존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 과제로 내세운 '바이오 강국 실현'과도 모순된다. "R&D 재원이 될 제네릭 수익을 깎으면서 어떻게 신약을 개발하라는 것이냐"는 현장의 항변이 노동계의 입을 통해 확인된 셈이다.

'밀실 행정' 논란... 노-사 '생존' 위한 연대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노총은 현재의 정책 추진 방식이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자와 환자를 배제한 채 '밀실 행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투명한 근거 공개와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 기구 마련을 촉구했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전례 없는 '노-사 공조'의 형성이다. 통상적으로 임금과 복지를 두고 대립하던 제약업계 노사가 이번 약가 이슈 앞에서는 '산업 생존'을 고리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약계 5개 단체가 함께하는 약가 개편 비대위 등 사측의 논리에 제1노총의 강력한 조직력이 더해져 정부의 개편안 강행에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약가제도 개편은 이제 단순한 보건 의료 정책을 넘어 '노동 정책'이자 '산업 정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정부가 건보 재정 안정화를 꾀하면서도 '고용 쇼크'와 'R&D 위축'을 막기 위해서는, 단순한 일괄 인하가 아닌 정교한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 앞선 분석처럼 제네릭의 옥석을 가려 불필요한 거품은 걷어내되, 그 재원을 R&D 투자 기업과 고용 창출 우수 기업에 확실한 인센티브로 되돌려주는 '재정 스위칭' 전략이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정부가 2026년 상반기, 거센 투쟁의 예고장 앞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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