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가 '신약의 혁신 가치 보상'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화',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대대적인 약가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정책이 사전영향평가 등 필수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제약바이오산업계는 국내 신약 개발 생태계를 한 단계 도약해야 하는 시기에 이번 개편안이 제약업계 발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약가제도 개편과 연계한 인하 조치를 검토·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와 공식적인 협의 절차나 심도 있는 영향 분석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책 방향을 미리 확정해 놓고 산업계에 통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정부의 이러한 일방적인 행보가 정책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약가 인하는 제약사의 매출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재투자 여력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산업 현장에 미칠 경제적 충격과 의약품 공급망 불안 등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의사결정을 서두르는 것은 위험한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국정 과제, 정면 배치
특히 이번 정책 추진 과정이 현 정부의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이라는 국정 과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자국 제약 산업 공급망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는 흐름과 달리, 우리 정부는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도 제약바이오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으나, 실제 정책 집행 과정을 보면 의구심이 든다"며 "정부가 산업계를 진정한 파트너로 보고 있는지, 육성 의지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번 약가 인하가 단순한 가격 조정 차원을 넘어, 국내 기업들 신약 개발 역량에 중장기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임상 비용 증가 등으로 R&D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급격한 약가 인하는 기업의 투자 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신약 파이프라인 축소와 글로벌 임상 철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산업계 목소리를 외면하고 강행하는 정책은 산업 생태계 지속 가능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결국 의약품 품질 저하와 공급 부족 등을 야기해 국민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2년 일괄약가인하, 제약업계에 남긴 '상흔'
매출 1조 7천억 증발... 'R&D 암흑기' 초래 자체 개발 대신 다국적사 약 파는 '도매상' 전락 부작용도
현재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 움직임에 제약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배경에는 2012년 4월 단행된 ‘일괄약가인하’ 악몽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이유로 기등재 의약품 6,506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14% 인하했다. 특히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제네릭(복제약) 가격을 기존 68~80% 수준에서 53.55%로 일괄 조정하며 산업계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겼다.
실제 당시 정책은 제약 생태계에 크게 네가지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 영업이익 반토막과 R&D 동력 상실
가장 직접적 타격은 수익성 악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2012년 일괄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업계 전체적으로 약 1조 7,000억 원 규모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당시 상위 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으며, 중소 제약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문제는 이로 인해 미래 성장 동력인 연구개발(R&D) 투자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점이다. 생존이 급박해진 기업들이 당장 줄일 수 있는 비용인 R&D 예산부터 삭감하면서, 국산 신약 개발의 시계가 수년 간 늦춰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 '남의 약' 대리 판매(상품매출) 비중 급증
수익성이 떨어진 제약사들은 외형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을 들여와 파는 '코프로모션(공동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체 개발 의약품(제품) 비중은 줄고, 남의 물건을 떼다 파는 상품 매출 비중이 기형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매출 방어에는 도움이 됐으나, 결과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의 영업이익률을 낮추고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종속도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업계 일각에서 "한국 제약사들이 다국적사의 도매상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 것도 이 시기부터다.
□ '박리다매'식 과당경쟁과 리베이트의 음성화
약가가 떨어지자 기업들은 줄어든 마진을 보전하기 위해 판매량(Q)을 늘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같은 성분의 제네릭 약가가 53.55%로 동일해지면서 품질이나 브랜드 경쟁보다는, 처방을 유도하기 위한 영업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과정에서 음성적인 리베이트가 다시 고개를 들거나, 영업 현장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는 등 유통 질서가 혼탁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 고용 위축의 "V자형" 충격 (2012~2013년)
약가 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가 현실화되자,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1순위 생존 전략으로 선택했다. 이로 인해 2011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제약업계 종사자 수가 2012년과 2013년에는 역성장(감소)하는 흐름을 보였다.
매년 2,000~3,000명씩 뽑던 신규 채용문이 닫히고, 영업직이 구조조정되면서 업계 분위기가 급랭했고, 기존 인력에 대한 권고사직(ERP, 희망퇴직) 뿐만 아니라, 신규 공채를 취소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채용 동결'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2012년의 과오 반복해선 안 돼”
전문가들은 2025년 현재 논의되는 약가인하 정책이 2012년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당시에도 충분한 영향 평가 없이 재정 절감 논리만 앞세운 탓에 산업 경쟁력이 후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2년 당시 입은 내상을 회복하고 이제야 글로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라며 "또 다시 졸속으로 약가를 깎는다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회복 불가능한 'R&D 빙하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정당한 협의체 구성과 평가 절차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불통 행정'이라는 오명을 벗고 산업계와의 신뢰 회복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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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산업계는 국내 신약 개발 생태계를 한 단계 도약해야 하는 시기에 이번 개편안이 제약업계 발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약가제도 개편과 연계한 인하 조치를 검토·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와 공식적인 협의 절차나 심도 있는 영향 분석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책 방향을 미리 확정해 놓고 산업계에 통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정부의 이러한 일방적인 행보가 정책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약가 인하는 제약사의 매출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재투자 여력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산업 현장에 미칠 경제적 충격과 의약품 공급망 불안 등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의사결정을 서두르는 것은 위험한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국정 과제, 정면 배치
특히 이번 정책 추진 과정이 현 정부의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이라는 국정 과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자국 제약 산업 공급망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는 흐름과 달리, 우리 정부는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도 제약바이오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으나, 실제 정책 집행 과정을 보면 의구심이 든다"며 "정부가 산업계를 진정한 파트너로 보고 있는지, 육성 의지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번 약가 인하가 단순한 가격 조정 차원을 넘어, 국내 기업들 신약 개발 역량에 중장기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임상 비용 증가 등으로 R&D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급격한 약가 인하는 기업의 투자 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신약 파이프라인 축소와 글로벌 임상 철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산업계 목소리를 외면하고 강행하는 정책은 산업 생태계 지속 가능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결국 의약품 품질 저하와 공급 부족 등을 야기해 국민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2년 일괄약가인하, 제약업계에 남긴 '상흔'
매출 1조 7천억 증발... 'R&D 암흑기' 초래 자체 개발 대신 다국적사 약 파는 '도매상' 전락 부작용도
현재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 움직임에 제약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배경에는 2012년 4월 단행된 ‘일괄약가인하’ 악몽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이유로 기등재 의약품 6,506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14% 인하했다. 특히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제네릭(복제약) 가격을 기존 68~80% 수준에서 53.55%로 일괄 조정하며 산업계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겼다.
실제 당시 정책은 제약 생태계에 크게 네가지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 영업이익 반토막과 R&D 동력 상실
가장 직접적 타격은 수익성 악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2012년 일괄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업계 전체적으로 약 1조 7,000억 원 규모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당시 상위 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으며, 중소 제약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문제는 이로 인해 미래 성장 동력인 연구개발(R&D) 투자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점이다. 생존이 급박해진 기업들이 당장 줄일 수 있는 비용인 R&D 예산부터 삭감하면서, 국산 신약 개발의 시계가 수년 간 늦춰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 '남의 약' 대리 판매(상품매출) 비중 급증
수익성이 떨어진 제약사들은 외형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을 들여와 파는 '코프로모션(공동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체 개발 의약품(제품) 비중은 줄고, 남의 물건을 떼다 파는 상품 매출 비중이 기형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매출 방어에는 도움이 됐으나, 결과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의 영업이익률을 낮추고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종속도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업계 일각에서 "한국 제약사들이 다국적사의 도매상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 것도 이 시기부터다.
□ '박리다매'식 과당경쟁과 리베이트의 음성화
약가가 떨어지자 기업들은 줄어든 마진을 보전하기 위해 판매량(Q)을 늘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같은 성분의 제네릭 약가가 53.55%로 동일해지면서 품질이나 브랜드 경쟁보다는, 처방을 유도하기 위한 영업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과정에서 음성적인 리베이트가 다시 고개를 들거나, 영업 현장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는 등 유통 질서가 혼탁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 고용 위축의 "V자형" 충격 (2012~2013년)
약가 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가 현실화되자,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1순위 생존 전략으로 선택했다. 이로 인해 2011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제약업계 종사자 수가 2012년과 2013년에는 역성장(감소)하는 흐름을 보였다.
매년 2,000~3,000명씩 뽑던 신규 채용문이 닫히고, 영업직이 구조조정되면서 업계 분위기가 급랭했고, 기존 인력에 대한 권고사직(ERP, 희망퇴직) 뿐만 아니라, 신규 공채를 취소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채용 동결'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2012년의 과오 반복해선 안 돼”
전문가들은 2025년 현재 논의되는 약가인하 정책이 2012년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당시에도 충분한 영향 평가 없이 재정 절감 논리만 앞세운 탓에 산업 경쟁력이 후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2년 당시 입은 내상을 회복하고 이제야 글로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라며 "또 다시 졸속으로 약가를 깎는다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회복 불가능한 'R&D 빙하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정당한 협의체 구성과 평가 절차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불통 행정'이라는 오명을 벗고 산업계와의 신뢰 회복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