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조제 넘어 지역 돌봄 거점"…세계는 이미 '환자 중심 약료'로
서울시약사회 국제심포지엄서 대만·일본·유럽·미국 약료 모델 공유
복지부·서울시·건보공단·약사회 "다제약물관리·방문약료 제도화 필요"
입력 2026.06.01 06:00 수정 2026.06.0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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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1회 서울특별시약사회 학술제 국제 학술 심포지엄 '돌봄과 약료, 세계는 지금' 종합토의 모습.  ©약업신문=전하연 기자

초고령사회와 통합돌봄 시대를 맞아 약사의 역할이 조제를 넘어 지역사회 돌봄과 약물안전 관리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방문약료, 단골약사, 다제약물관리 체계가 제도화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국내에서도 통합돌봄 기반 지역약료 모델 구축 필요성이 강조됐다.

서울특별시약사회는 5월 31일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1회 서울특별시약사회 학술제에서 ‘돌봄과 약료, 세계는 지금’을 주제로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은 양취매 서울시약사회 국제이사가 사회를 맡아 진행됐으며, 대만·일본·유럽·미국의 지역사회 약료 및 다제약물관리 사례 발표와 국내 통합돌봄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종합토의로 이어졌다.

김위학 서울시약사회장은 인사말에서 “돌봄통합법 시행으로 지역사회 돌봄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고, 그 변화 한가운데 약사가 있다”며 “오늘 발표와 토론이 현장에서 더 나은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왕명원 대북시약사공회 상무이사, 이누부세 히로오 동경도약제사회 상무이사, 이주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약업신문=전하연 기자

첫 발표에 나선 왕명원 대북시약사공회 상무이사는 초고령사회 속 대만의 ‘가정약사(Home Pharmaceutical Care)’ 제도를 소개하며, 약사의 역할이 약국 안에서 지역사회 생활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타이베이시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이미 24%를 넘어섰다. 왕 상무이사는 “시민 4명 중 1명이 노인인 상황에서 다중 만성질환과 다제약물 복용 문제는 공중보건 과제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약물 위험이 병원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정, 장기요양시설 등 일상 공간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짚었다. 실제 현장에서 약사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문제로는 중복복용과 약품 오사용, 관리 부적절, 치료 목적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언급됐다.

대만은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약사회-현장약사’가 역할을 분담한 가정약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타이베이시 정부 위생국이 정책과 재원을 지원하고, 대북시약사공회가 사업 운영과 교육·품질관리를 맡으며, 가정약사들이 직접 돌봄 현장을 방문해 약물 이력 확인과 복약상담, 지속 추적관리를 수행하는 구조다.

왕 상무이사는 “약국을 넘어 시민 삶 속으로 확장되는 약료 돌봄”이라고 표현하며 “약사의 역할도 조제 중심에서 환자 중심 약료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만은 시설형 약료 돌봄과 재택 약료 서비스, 지역사회 통합 약물관리 서비스를 통해 2016년부터 올해까지 약 1만7991건의 약료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양방향 의뢰 체계와 방문 약 배송, 무장애 약국 운영 등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이어 이누부세 히로오 동경도약제사회 상무이사는 일본의 ‘단골약사(주치약사) 제도’를 중심으로 지역포괄케어 체계 안에서의 약국 역할 변화를 소개했다.

일본의 단골약사 제도는 2016년 도입됐다. 환자가 특정 약사와 지속 관계를 맺고 약물 치료와 건강·간병 관련 상담을 받는 구조다. 단순히 처방전을 조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의 약물을 일원화 관리하고 부작용과 중복 처방 위험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누부세 상무이사는 “중요한 것은 단발성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계속 관리하는 것”이라며 “당연한 약사의 역할인데 이것이 특별한 사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약사 직능의 과제”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약국을 ‘지역 의료의 입구’라고 표현했다. 경증 환자의 건강 상담과 OTC 의약품 활용, 필요 시 병원 연계까지 수행하며 지역사회 첫 상담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처방전을 받는 약국이 아니라 지역 의료의 첫 번째 상담 창구가 돼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일본 지역포괄케어 정책 속 약국의 방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실제 일본 에히메현에서는 약사들이 지역 행사와 검진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아웃리치형 건강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다직종 협업과 주민 설문조사, 건강상담 활동을 통해 단골약사 인지도가 50% 미만에서 약 70% 수준까지 상승했다고 이누부세 상무이사는 설명했다.

다만 이누부세 상무이사는 “일부 약국은 수가 산정만을 염두에 두고 형식적으로 단골약사 계약을 늘리는 부작용도 있다”며 “제도 이름만 남고 실제 환자 중심성이 약화되는 문제는 경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주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미국과 유럽, 호주, 독일 등 해외 다제약물관리 체계를 소개하며 “약사의 약물관리 역할은 이미 세계적으로 제도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WHO의 ‘Medication Without Harm’ 이니셔티브를 언급하며 “다제약물관리와 고위험 약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약물 위해를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MTM(Medication Therapy Management), 영국 SMR(Structured Medication Review), 독일의 약물관리 법제화 사례 등을 소개하며 “해외는 10~20년에 걸쳐 다제약물관리 체계를 구축해왔다”며 “우리나라도 약물관리를 약사의 공식 업무로 제도화하고 건강보험 기반 상담 모델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AI가 약사의 시간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약사는 약물 전문가로서 독립적 검토와 환자 상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약국 기반 서비스뿐 아니라 1차의료팀 협력 모델, 요양시설 특화 모델 등 다양한 약사 참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혜은 보건복지부 통합돌봄정책과장, 서희경 서울시 건강통합돌봄팀장, 가정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이용지원팀장, 장진미 서울시약사회 지역사회약료사업본부장. ©약업신문=전하연 기자

2부 종합토의에서는 정부·지자체·건보공단·약사회 관계자들이 한국형 통합돌봄과 지역사회 약료 모델 구축 방향을 논의했다.

정혜은 보건복지부 통합돌봄정책과장은 “통합돌봄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를 중심에 두는 제도”라며 “사는 곳에서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이 핵심인 만큼 방문 복약지도 등 지역사회 방문약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다제약물관리 사업이 본사업화되기 위해서는 복약순응도 개선, 입원 감소, 의료비 절감 등 효과성 평가 근거가 축적돼야 한다”며 “약사법 등 관련 법령 정비와 제도적 정합성 확보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희경 서울시 건강통합돌봄팀장은 “서울시 통합돌봄 우선관리 대상은 약 39만명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다제약물관리 필요군”이라며 “현재 11개 자치구가 약사회와 협력해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도와 규정만으로는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며 “의료·간호·약료·복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정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이용지원팀장은 “지역약국 역할은 중요하지만 약사 인력과 지원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현실”이라며 “장기요양시설 모형도 지난해 53개 시설에서 올해 208개 시설로 확대되는 만큼 약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 팀장은 다제약물관리의 핵심 키워드로 ‘연결’을 꼽았다. 그는 “통합돌봄과 의료진, 지속관리 체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진미 서울시약사회 지역사회약료사업본부장은 “서울시약사회는 세이프약국과 다제약물관리사업, 취약계층 약물관리 등 지역사회 약료 확대를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왔다”며 “미래 약료는 단순 조제를 넘어 예방과 돌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단골약국이 존재하고 지역주민 건강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시민 누구나 약국을 매개로 다학제와 연결되는 약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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