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타이틀 텍스트
<6> 다섯번째 이야기_어려웠던 시험치루다 ②
입력 2007-11-20 17:26 수정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

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케이블 영화채널을 신청하느니 사다가 집에서 보는 것이 훨씬 싸다고 좋아하며 사들이기 시작한 DVD들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할 무렵,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시점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인터넷으로 NAPLEX와 CPJE 각각의 시험장소를 결정해서 3일 간격을 두고 예약하고, 또 시험 전날 머물 호텔도 잡고 나니 이젠 정말 카운트다운이었다.

그 동안 어느새 노는 체질로 변해버렸는지 다시 공부하는 페이스를 잡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 절박한 시점에도 여전히 집에서는 공부가 안되어서 화요일 낮에는 동네도서관에 가고, 일하는 날 저녁에는 11시까지 영업하는 반스앤노블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사놓고 앉아 문닫기 직전까지 공부했다. (심장이 약해서 커피를 거의 못 마시던 내가 그 진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NAPLEX 시험 일주일 전부터 off를 받아 마지막 정리를 한다고 앉았는데, 세 번을 보라고 하던 소위 ‘노란책’은 절반 남짓, 실전문제가 가득한 ‘빨간책’은 앞부분 조금밖에 못 본 상태였고, 그 와중에 APhA에서 나온 ‘파란책’까지 새로이 도착하는 바람에 그것도 또 뒤적거리느라 결국 어느 것도 끝까지 한번을 다 보지 못한 채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래도 낯익은 문제들이 약간은 눈에 띄었던 덕분에 어느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평소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길이 주말 나들이 차량들 때문에 5시간을 넘기며 끝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 종일 시험장에 앉았다가 그대로 운전대를 잡은 터라, 이제 허기를 지나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고 있을 즈음, 드디어 길이 뚫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욕심에 제한속도 70마일 구역을 80마일로 잠깐 달렸는데, 평소 같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을, 그날따라 고속도로 경찰이 쫓아왔다. 사정해 볼 기운조차 없어 그대로 딱지를 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문인지 어쩐지 3일 뒤로 닥친 CPJE를 준비하며 약사법규 교과서를 이틀이나 붙들고 있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CPJE는 말로만 캘리포니아 약사법규 시험이지 법규관련문제는 거의 안 나오고 까다로운 임상문제만 줄줄이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바지 귀중한 시간을 엉뚱한 데 허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험 전날이 되어 우 약사의 전화를 받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임상문제들을 보기 시작했지만 시간은 태부족이었다.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이 시험 전날 밤새서 공부한다는데, 내가 꼭 그랬다. 대학입시 때부터 이어져온 벼락치기 공부의 전통(?)은 이번에도 깨어지지 않고 또 반복되었다. 시험 전날 겨우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 길까지 헤매다가 가까스로 정시에 시험장에 도착해서 지정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처음부터 끝까지, 답을 정확히 안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CPJE가 객관식으로 바뀐 이후 합격률이 치솟자 캘리포니아주 보드에서 문제의 난이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치 학력고사 수학 II를 볼 때처럼, 그냥 열심히 찍었다. 조금 지나고 나니 졸음까지 몰려왔다.

비몽사몽간에 시험을, 아니 찍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곧바로 재시험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었다.

시험에 4번 떨어지고 나면 여기 친구들은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더하면 시험을 또 볼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걱정스러웠지만, 그보다도 한번 떨어지면 3개월 후에나 재시험을 볼 수 있다는 규정이 눈앞에 닥친 큰일이었다.

이미 아이를 못 본 지 7개월째였고, 눈물샘이 바닥 난 시기를 지나 이제는 우울증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후 열흘쯤 지나 NAPLEX 합격 소식이 도착했지만,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나 다 합격하는 시험이라고 해도 시험은 시험인데, 합격통지를 받아 들고도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로부터 2주일쯤 지난 어느 토요일에 머릿속을 스쳐갔다.

시험에 붙든 떨어지든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가 아이 얼굴을 한번 보고 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무작정 다음 주말에 떠나는 비행기편을 예약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우편함을 열었는데, 캘리포니아 보드에서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다.

토요일에 배달된 편지들을 미처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는데, 내 점수는 보이지 않고 합격 커트라인 점수만 가운데에 적혀 있었다.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숫자라고 적힌 건 그것밖에 없고, 대신 ‘Congratulations’라는 한 마디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

제서야 그게 바로 내 점수라는 걸 깨달았다. 딱 커트라인 점수로 합격이었던 것이다. 턱걸이로 합격한 것이 창피하고 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장에 집으로 뛰어들어가 인터넷을 열고서 일주일 뒤로 예약했던 항공편을 이틀 뒤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월요일에 출근해서 Frank에게 합격소식을 전하고 2주간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원래는 지역매니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먼저 PDM은 다른 지역으로 가고 새로 오기로 한 PDM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공백기간이라, 그냥 Frank 선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처음 미국에 올 때 이민가방 세 개와 기내가방 두 개에 바리바리(?) 짐을 싸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달랑 기내가방 하나만을 들고서 다음날 바로 부산행 항공편에 올랐다.

다행히도 아기는 엄마를 잊지 않고 반겨주었고, 내가 잠깐 화장실에만 가도 어느새 찾으러 달려오는 등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유난히 엄마를 챙겨주고 내가 집에 있을 때면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이런 반복된 만남과 이별의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하고 가끔 생각한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AI, 먼 미래 아닌 약국 현장의 도구"…경기약사학술대회가 보여준 변화
연제덕 경기도약사회장 "AI, 약사 대체 아닌 직능 고도화 도구"
“포장은 더 이상 마지막 공정 아니다”…카운텍, 제약 자동화 전략 확대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6> 다섯번째 이야기_어려웠던 시험치루다 ②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6> 다섯번째 이야기_어려웠던 시험치루다 ②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