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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네번째 이야기_행복했던 인턴시절 ②
입력 2007-11-06 11:04 수정 최종수정 2007-11-0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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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

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처음에는 상품명에 익숙하지 않아서 약 이름 스펠링이나 환자 이름, 의사 이름을 재차 물어야 했는데, 친절하게 다시 말해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약간 짜증스러운 어투로 변하거나 심지어는 “Are you a pharmacist?”하는 반응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오금이 저리면서도 약사에게 넘기지 않고 “Sorry, I’m an intern. Could you give me the spelling again?”이라고 말하며 꿋꿋이 버티기를 두 달쯤 하고 나자, 어느 날부터인가 전화처방 받기가 갑자기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듀라제식 패취를 두러지~직이라고 하는 등 발음이 낯설어서 멀쩡히 아는 약이 모르는 약으로 둔갑하던 경우도 점차 사라졌다.

캐쉬어로 pick-up window에서 일하면서 환자들 이름을 못 알아들어 메모지에 스펠링을 받아 적곤 하던 일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매달 찾아오는 고정 고객들과 안면을 익히게 되면서부터는 안부를 묻기도 하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또 자신 있는 약들에 대해서는 질문 있냐고 counseling을 제공하기도 했다. (모르는 약에 대해 질문 있냐고 했다가 정말 질문이 있으면 큰 일이니까…흠) 또 과테말라 여행 중에 두어 달 배웠던 스페인어가 조금은 남아 있어, 영어를 전혀 못하는 히스패닉계 환자를 상대로 처방전 접수나 간단한 복약지도를 하는 정도는 스페인어 할 줄 아는 직원이 오도록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바쁜 시간에는 도움이 되었다.

다만 지금도 가끔씩 마음에 걸리는 것은 ‘one half 사건(?)’이다. 전화로 어린이 시럽제 처방을 내며 dosage를 ‘one half teaspoonful t.i.d’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1&1/2 tsp t.i.d’로 적었고, 그대로 조제가 되어 나갔다.

한달 쯤 지나 다른 처방을 받던 중에 문득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던가 하는 깨달음이 스쳐갔다.

그래서 곧바로 옆에 있던 Frank-할아버지 약사-에게, 내가 예전에 one half라고 하는 것을 one and half로 생각하는 바람에 1/2 tsp 대신 1&1/2 tsp라고 받아 적은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워낙 어떤 문제든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이 되는 사람이라 괜찮다고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만일 그게 Phenergan이었고 환자가 2세 미만의 영아였다면, 그리고 실제로 CNS suppression event가 일어났다면 스스로가 아니라 강제로 실수를 깨닫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두 주 후에 친정부모님께서 아기를 데리고 건너 오셨는데, 아직은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던 데다 약국에서도 모르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약사에게 떠넘길 수 있는 편리한 입장이었고, 또 하루 8시간만 일하고 돌아오면 엄마엄마 반기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아기와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비록 생활은 힘들었어도 마음은 늘 행복으로 가득했고, 이 행복이 꿈이라면 깨지 말았으면 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순간은 금세 다가왔다. 캘리포니아주 약사가 되려면 인턴 1,500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당시에는 1,000시간을 일하고 나면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고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나머지 500시간을 채우면 되었으므로 12월에 시험을 볼 계획을 세웠고 부모님께서는 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10월 말에 한국으로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시겠다고 했다.

관광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6개월을 다 채우지 못한 채 4개월 만에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12월에 시험을 치르고 나면 곧 다시 불러올 것이니 2개월 정도의 이별일 뿐이라 생각하며 떠나 보냈다.

할머니 등에 업혀 출국장 안으로 들어갈 때 밖에 서있는 엄마를 이상하다는 듯 자꾸만 돌아보면서도 멋모르고 바이바이 손 흔들던 아이가, 비행기가 날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또 끝없이 날기만 하는데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드디어 눈치를 챘는지 깨어있을 때가 아니라 등에 업혀 잠든 중에만 흑흑 흐느끼더라는 이야기는, 그 후로도 일년이 넘게 지나 전해 들었다.

어려워진 시험을 치르다

그런데 11월에 응시서류를 준비하던 중 보드에서 갑자기, 외국출신 인턴들은 1,500시간을 채우고 나야 시험을 볼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12월에 시험을 보려던 나의 계획은 3월로 밀리게 되었다.

아이를 떠나 보낸 후유증을 심하게 앓으면서도 시험이 한 달 남았다는 사실 때문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것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나는 이제 매주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나는 스터디 모임에 참석하고 모리스코디 클래스에 가는 것 외에는 그 동안 못 보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모든 여유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케이블 영화채널을 신청하느니 사다가 집에서 보는 것이 훨씬 싸다고 좋아하며 사들이기 시작한 DVD들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할 무렵,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시점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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