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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번째 이야기_인턴자리를 구하다
입력 2007-10-02 15: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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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

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아직 학교를 졸업 못한 남편 때문에 미국행을 수년 후로 미룰까 생각하며 시집살이를 하던 중 친정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를 봐 줄 테니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인턴을 시작하라는 말씀이었다.

못마땅한 결혼을 한 딸이지만, 그러고 사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어 큰 결심을 하신 것이었다. 미국인 친구에게 부탁하여 내가 작성한 이력서를 몇 차례 수정한 후 이메일에 첨부하여 Walgreens와 Rite Aid에 보냈는데, Rite Aid 리크루터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특별히 인터뷰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전화로 간단한 몇 가지 질문에 답변을 했고, 시간당 임금이 얼마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에 대한 정보가 회사변호사에게 넘겨져 서류수속이 시작되었다. 중간에 이메일 배달사고로 한 달 이상 연락이 두절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 해 취업비자 마감일 하루 전날 간신히 접수가 되었다.

그 이후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어 Fedex로 I-797이 날아왔고, 그걸 들고 미 대사관에 가서 취업비자 스탬프를 받은 후 짐을 쌌다.

아기는 부산 친정에, 남편은 일산 시댁에 남겨 두고서 LA행 항공편에 올랐는데, 뭔가 다 안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의젓하게 손을 흔들던 아이 얼굴이 떠올라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실연당하고 한국땅을 뜨는 여자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소셜 번호 없이 취업비자만 달랑 들고 미국으로 온 선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만일의 경우 되돌아 갈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도 하고서, 2004년 4월 26일, 미국땅을 밟았다.

Pasadena의 한 친척집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소셜 번호 신청도 하고(걱정했던 것이 우습게도, 너무나 당연히 진행되는 절차였다), 근무하게 될 도시로 가서 PDM을 만나고, 혼자서 온 도시를 3일간 뒤져 값싸고 괜찮은 아파트도 잡아놓고서는 LA로 향했다.

토요반에서 함께 공부하는 내내, 인턴수속 절차를 하는 내내 크게 도움을 받았던 우 약사의 반강제적인 강권으로 모리스코디 클래스에 등록했는데, 1년에 걸친 강의내용을 한꺼번에 몰아서 강의하는 Intensive Course가 5월 10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소셜 번호가 나오기를 기다려 보드에 연락한 후 인턴 면허를 받아야 인턴을 시작할 수 있었으므로, 빠듯하나마 시간이 좀 있다고 판단하고 PDM과는 상의도 없이 그냥 결정해버렸다. 원래는 어려운 주관식 문제로 악명이 높던 캘리포니아 보드 시험을 대비하는 강의로 자국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였으나, 보드 시험이 100% 객관식인 CPJE로 바뀌고 난 후로는 수강생의 대다수가 외국인 약사들이었다.

거기서 우리 말고도 이런 저런 경로를 거쳐 미국약사시험을 준비하고 계신 한국 약사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살을 에는 듯한 강의실에 앉아있다 호텔에서 잠만 자고 또 강의실로 돌아오는 생활이 2주간 계속되었다.

‘따뜻한 LA’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터라 바닷가 지역은, 더구나 해가 들지 않는 실내는 겨울처럼 춥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우리는 죄다 반팔 옷에 기껏해야 얇은 윗도리 하나씩을 챙겨온 게 전부였기에, 가진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겉옷은 2주 내내 똑같은 것만 입고 버티는 상황이 되었다.

어떤 강의는 그래도 따라갈 만하였지만, 일부 강의는 그냥 듣고 있기만 해도 정신이 없어서 도저히 필기할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속도가 빨랐다.

토요반에서 들었던 강의 덕분에 그나마 소 귀에 경읽기 신세까지는 안되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또 아직 인턴생활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자료교환을 끝으로 그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작별을 고했다. (이 때 알게 된 한 세르비아 출신 친구와는 그 이후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강의가 끝난 후 PDM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간 나와 연락이 두절되어 내가 실종된 줄 알았다고 했다. 언제 일을 시작하느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캘리포니아 ID card를 팩스로 보내라고 하는데, 왜 처음 만났을 때 말해주지 않은 것인지 좀 화가 났다.

그때까지 운전면허도 못 따고, 또 셀폰도 없이 잠적해 있었던 나도 잘못이지만, 이제 와서 운전면허증도 아니고 발급받는데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는 ID를 내놓으라니 어이가 없었다.

일단 DMV에 가서 ID를 신청하고, 세 번째로 운전면허 실기시험에 도전했다. 가볍게 생각했던 운전면허 시험이 미국 생활의 시작에 걸림돌이 되다니 이럴 수가 있나, 생각하며 치른 세 번째 시험이 다행히 합격선을 넘어, 종이로 된 임시 면허증을 받자마자 PDM에게 팩스로 보내 이거면 되겠지? 했는데도, 그 PDM 아저씨, 여전히 내 사진이 붙은 ID 사본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요령부득이었다.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 나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른 친구들은 그냥 인턴 면허만 가지고 잘들 시작하던데 위에다 물어보든가 어떻게 좀 해보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하더니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와서는,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DMV에 신청했던 ID는 일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나서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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