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타이틀 텍스트
인도네시아 의료봉사활동 (하)
전미숙 <송파구약사회 부회장>
입력 2007-10-10 07:16 수정 최종수정 2007-10-09 17:41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자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처방전 속에서 시간 시간 약의 소모 속도를 체크하고, 질병의 경중을 보아 소진이 빠른 약과 느린 약을 조절해가며 조제를 하는데도 약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봉사활동이 끝나기 전에 약이 먼저 떨어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엔 첫날 오전 진료에 약의 2/3 정도가 소모되는 바람에 부랴부랴 인도네시아 시내를 뒤져 약을 구해오고, 그것도 모자라 나중엔 삐콤과 소화제만으로 조제를 해주기도 했었다.

작년의 경험을 되풀이 않기 위해 약을 많이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올해엔 더 많은 환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또다시 약 부족 발생.

보통 첫날 오전엔 환자수가 많아도 150명을 넘어가지 않는데 작년 봉사활동의 반응이 좋았던지 올해엔 첫 날 오전 중에 환자수가 이미 300명을 훌쩍 넘겨 버렸다. 어쩔 수없이 약을 하루 3회에서 2회로 줄여 5일분씩 조제했는데도 불구하고 재고가 불안.

별 수 없이 몇 사람이 약 성분이 적힌 쪽지를 들고 4시간동안 차를 타고 나가 헤맨 끝에 약을 구해오는 수고를 해야 했고, 난 약을 더 적게 쓰면서 효과가 있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약의 소모량을 조절하는 일은 솔직히 가슴 아픈 일이다.

물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이곳은 특히 혈압이나 당뇨,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일을 많이 하는 농촌의 특성상 대부분 관절염을 지니고 있고, 목이나 몸에 혹이 있는 사람들도 꽤 된다.

약값이 비싸 차마 사 먹진 못하고 우리에게 약을 받으려고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찾아와 우리가 미처 일어나기 전부터 기다리던 그 사람들. 몇 개월, 몇 년, 혹은 평생 동안 약을 먹어야 하는 그 사람들에게 그나마 만성질환이랍시고 15일분, 상태가 특별히 심각해야 한 달 분량 정도 조제해서 보내는 심정은 안타깝다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기곤 했다.

해외의료봉사를 간다고 했을 때 일부는 국내에는 불쌍한 사람이 없어서 외국으로 나가느냐는 비아냥거림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나가서 그 절절한 사정들을 보면 고통의 정도(객관적인 비교가 어렵겠지만), 의료혜택의 절실함의 정도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번 봉사활동 기간은 4박5일. 오고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실제적인 진료는 단 이틀뿐이었다. 그 이틀 동안 진료 받고 약을 조제해간 환자는 대략 1,400명 정도.(정확히는 1426명) 그것도 가나안 농군학교 측에서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주민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 작년에 진료를 받지 않았던 사람에게만 표를 나눠주어 인원을 제한한 결과랬다.

아침에 도착한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주다 보니 오전 중에 그날 진료표가 모두 동나버리는데, 그 때문에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가야만 했고, 오후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농군학교 측에서는 도시락을 점심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봉사활동은 그 자체가 고생의 연속이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느껴지는 시간이고,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약국에 배치된 팀원들 대부분은 한국에서는 알만한 교수님들, 판사님, 연구원, 고생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사모님들이었다.

덥고 습한 날씨, 전신이 땀으로 젖고, 다리 허리 등까지 뻐근한 상황에서도 마당쇠를 자처하며 웃겨주던 나이 지긋한 교수님의 낮아짐, 약을 분말로 갈아주는 "갈쇄"를 자청하다 유발에 구멍을 내는 바람에 그날 내내 구박을 당해야 했던 수줍음 많은 교수님의 성실,

"저 사람들 전에는 나에게 전혀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었거든. 속으론 무시하고 그랬지. 여기서 귀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다보니 부끄럽고 그러네..."라고 고백하던 현지교민의 고백들이 흔하게 배울 수없는 무언가를 나에게 남겨 주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귀찮아하고, 쉽게 짜증내고, 이기적이고, 때로는 교묘하게 내세우는 내 모습들을 순간순간 대면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의료봉사 활동에 있어서 약국은 "의료봉사활동의 꽃"이다. 

수술로 혹을 떼어내고 아픈 이를 빼주는 것도 물론 고마워하는 일이지만 약이 없으면 아무리 정확한 진료를 한 들 그들에게는 탁상공론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떠난 처음 몇 해는 약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약사가 없어도 처방은 의사가 해줄 테니 글자만 알면 조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약사는 단순히 처방전대로 조제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   과민한 탓인지는 몰라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이젠 빈말일지언정 약사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고들 호들갑이다. 나 스스로도 약사로서의 자존감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의약분업 이후 약사가 마치 약을 포장하는 사람쯤으로 인식되어가는 요즘, 시간여유를 논하지 말고 봉사활동에 참가해서 약사로서의 능력을 한번쯤은 과시해보는 기회도 갖고, 스스로 남을 배려하면서 느끼게 되는 가슴 뻐근한 절절함과 애달픔, 사소한 것들에 뛸 듯이 기뻐하는 그들을 보는 감격을 한번쯤 누려보시기를 권한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AI, 먼 미래 아닌 약국 현장의 도구"…경기약사학술대회가 보여준 변화
연제덕 경기도약사회장 "AI, 약사 대체 아닌 직능 고도화 도구"
“포장은 더 이상 마지막 공정 아니다”…카운텍, 제약 자동화 전략 확대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인도네시아 의료봉사활동 (하)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인도네시아 의료봉사활동 (하)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