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약품이 9월 15일로 창사 110주년을 맞았다. 동화약품은 현존하는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서, 기네스북에도 국내 최초의 제약회사, 제조회사 등 4개 부분에 걸쳐 등재돼 있다. 그러나 11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다는 놀라움보다 더욱더 인상적인 것은, 110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서민들의 건강을 책임져 왔다는 사실이다. 동화약품은 '활명수', '후시딘'과 같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약으로 우리들과 함께해 왔고, 이러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동화약품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 지금 속이 안 좋아…, 어제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어…"
음식을 잘못 먹어 채하거나, 넘어져 다친 상처는 우리 삶 속의 흔한 경험들 중에 하나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배탈이 나서 손가락 마디마디를 바늘로 따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무릎에 시커먼 상처딱지를 달고 학교에 갔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과 무릎에 입을 대고 호호불어 주시던 어머니의 입김은 아직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훈훈한 옛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픈 배와 상처를 어루만져준 것이 비단 할머니의 손길, 어머니의 입김 뿐만은 아니었다. 우리들 곁에서 비록 일상의 작은 불편함이지만 큰 관심을 보였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활명수'와 '후시딘'으로 유명한 동화약품 식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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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 국민건강 책임진 '약손'
[사진1 캡션: 초창기 활명수 제품]동화약품의 활명수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당시, 궁중에서 사용되던 생약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취해 국민에게 널리 보급하고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다.
"먼저 큼직한 가마솥에 위장약계통 각종 한약건재를 넣은 다음 물을 붓고 한참 달이면, 생약의 약물이 우러나와 진한 팅크로 변한다. 이것이 복방방향팅크(複方芳香丁幾) 추출과정이다. 다음은 이 팅크를 솜을 놓은 고운체로 걸러내는 여과과정. 여과과정을 거친 후 곱게 빻아낸 수입약재 아선약(阿仙藥)과 정향(丁香)가루를 타고 멘톨(박하)을 묘미있게 배합한다."
이는 당시 활명수 비방(秘方)의 내용 중 일부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원시적인 제조형태이지만, 당시 집에서 다려먹는 탕약밖에 몰랐던 시대상에 비추어 보면 양약의 제조방법을 적용해 탕약의 과학화를 시도한 획기적인 제조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활명수 개발자이자 동화약품 창업주의 아버지인 민병호 선생은 선전관으로서 궁중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비방을 익히 알 수 있을 만큼 한약 지식에 능통했다.
선전관이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 겸 경호실장이다. 민병호 선생은 이러한 궁중비방을 일반 백성이 다리지 않고 복용할 수 있도록 양약의 장점을 취해 혼합처방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이다.
활명수 이전에는 급체, 소화불량이 흔한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약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약이라고는 달여서 먹는 탕약밖에 없어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시기에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으면서도 복용이 간편한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活命水)'로서 국민의 생활을 널리 이롭게 했다.
필자도 예전에 식사 후 활명수를 4홉들이 활명수 병뚜껑에 따라 식구들과 나눠마시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활명수는 110년간 국민의 속을 편안하게 해줬던 대중적인 '명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후시딘', 상처치료제 역사를 다시 쓰다
활명수와 함께 국민과 함께했던 동화약품의 또 다른 약으로 후시딘을 들 수 있다.
후시딘이 나오기 이전에는 '이명래 고약', '머큐로크롬액(일명 빨간약)' 등 30~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상처치료제들이 있었다.
노란 기름종이에 펴서 종기에 붙이면 노란 고름이 쏙 빠져 질환을 치료하는데 특효를 발휘했던 '이명래 고약'은 국내 종기치료제의 대명사였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마땅한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이명래 고약'은 대중적 사랑과 부를 동시에 누렸다. 하지만 치료 후엔 반드시 흉터가 남고 종기가 생긴 후에 치료할 수밖에 없는 '사후약방문'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이와 함께 일명 '빨간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머큐로크롬액'은 자극성이 없고 점막, 구창 등 각종 상처소독약으로 널리 사랑받았으나 살균력이 약하고 흘러내리고 색이 옷 등에 묻어나는 사용상의 불편함 때문에 오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상처치료를 위한 마땅한 약이 없고, 이후 생활수준이 높아져 미에 대한 가치가 변해가면서 후시딘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명래 고약'과 '머큐로크롬'의 단점을 동시에 해결하는 등 작은 상처지만 치료에 불편함을 겪었던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 이후 후시딘은 상처치료제 시장의 역사를 다시 썼을 뿐만 아니라 스테디셀러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됐다.
후시딘은 현재 출시 이후 한번도 넘버원 자리를 놓치지 않을 만큼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연간 500만 튜브 이상 생산되는 거대품목으로 성장했다. 이 규모는 한 가구당 후시딘을 1~2개가량을 상비하고 있을만한 수량이다. 후시딘은 1994년에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가정상비약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우리들의 생활 속에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
활명수, 후시딘이 국민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동화약품의 원칙주의 경영을 핵심경쟁력으로 꼽을 수 있다.
'동화정신'으로 표현되는 원칙주의 경영은 제약 본연의 임무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고, 창의적인 인재 육성에 역점을 두며, 제약 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함과 함께 양약(良藥)으로써 국가와 사회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경영방침을 말한다.
갖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동화약품을 지켜온 이 정신은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는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의 유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동화정신' 4개항 중 제2항에도 "천만금이 생긴다고 해도 부정이나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자"는 동화약품의 정도경영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동화정신'은 이러한 정도경영 방침을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준수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세계 유수의 제약사들이 추구하는 행동윤리 강령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 치고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62주년 맥을 잇는 민족기업 '동화약품'
광복절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고, TV에서도 3ㆍ1운동이나 상해임시정부 같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그러나 제약기업인 동화약품에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이었던 상해임시정부 비밀연락기관이 있었고, 창업주를 비롯한 역대 사장 3명이 투철한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화약품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인연이 닿는 이유는 초대사장인 민강(1883~1931) 선생 스스로가 독립투사였기 때문이다.
민강 선생은 1909년 당시 안희제, 윤세복, 서상일, 김동삼 등 80여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대동청년당을 조직, 국내외에서 민족을 위해 지하공작을 감행하고 남대문에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를 세우고 2세 교육에 힘썼다.
이런 와중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민강 선생은 여러 동지들과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결의를 하고, 1919년 3.1 운동을 거치면서 비밀결사조직인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게 된다.
대동단은 제1차 행동으로 의친왕 이강 공(李堈 公)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탈출은 압록강 건너 안동 역에서 실패로 끝나고 민강 선생도 이 일로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는다.
이 기간 중 동화약품에는 비밀리에 서울연통부(聯通府)가 설치된다. 서울연통부는 1919년 7월 상해임시정부가 시행한 비밀연락 행정의 첫 조치로, 국내외 연락을 위해 서울에 설치한 비밀 행정부서였다.
연통부는 1922년 일제에 의해 전국조직이 발각되기 전까지 국내 각 시ㆍ도ㆍ군ㆍ면에 조직을 갖추고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활약을 했다.
이 같은 동화약품의 활동은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서울시에서 동화약품 본사 부지에 연통부 기념비를 설치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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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이 동화약품의 미래 성장 동력
동화약품은 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과감한 도전정신과 꾸준한 연구개발투자로 성장을 거듭해왔으며, 현재 감염증 치료제 및 골다공증 치료제 분야를 중심으로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동화약품은 2007년 자체 개발한 신약물질을 해외 유수의 제약회사에 제약 산업 역사상 최고가로 기술이전 하는 등 국내 제약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우선 2007년 6월 12일 美 퍼시픽 비치 바이오사이언시스(Pacific Beach BioSciences)와 퀴놀론계 항균제 'DW224a' 기술이전 계약 체결을 통해, 계약금을 포함한 기술수출료 총액(Milestone)으로 미화 5,650만 달러와 별도 상업적 매출에 따른 로열티수입을 올리게 됐다.
'DW224a'는 그람양성균, 호흡기 감염균, 폐렴균 등 다양한 감염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신규 퀴놀론계 항균제로, 안전성과 내성균에 대한 유효성이 개선된 신약이다.
이어 7월 2일에는 110년 국내 제약역사상 최대 금액규모로 P&G(Procter & Gamble Company)의 자회사인 P&G Pharmaceuticals, Inc(이하 P&GP)와 골다공증 치료제인 'DW1350' 및 그 후속물질의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했다.
'DW1350' 및 그 후속물질은 새로운 개념의 골다공증 치료제로, 동화약품은 이번 계약 체결로 인해 계약금을 포함하여 미화 5억1,100만 달러에 달하는 기술수출료(Milestone)와 상업적 매출에 따른 로열티 수입을 올리게 됐다.
아울러 동화약품은 최근 'DW224a', 'DW1350'의 신약수출 및 성공적인 제품화 추진을 위해 세계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cGMP급 충주 신공장을 건설 중에 있다.
동화약품은 82645m (3.3m 2만5천, 3.3m =1평) 규모로 건설될 충주 신공장을 통해 앞으로 완제의약품 및 원료의약품의 수출에 박차를 가하여 세계속의 동화로 발전시켜 나갈 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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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약품이 9월 15일로 창사 110주년을 맞았다. 동화약품은 현존하는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서, 기네스북에도 국내 최초의 제약회사, 제조회사 등 4개 부분에 걸쳐 등재돼 있다. 그러나 11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다는 놀라움보다 더욱더 인상적인 것은, 110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서민들의 건강을 책임져 왔다는 사실이다. 동화약품은 '활명수', '후시딘'과 같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약으로 우리들과 함께해 왔고, 이러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동화약품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 지금 속이 안 좋아…, 어제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어…"
음식을 잘못 먹어 채하거나, 넘어져 다친 상처는 우리 삶 속의 흔한 경험들 중에 하나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배탈이 나서 손가락 마디마디를 바늘로 따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무릎에 시커먼 상처딱지를 달고 학교에 갔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과 무릎에 입을 대고 호호불어 주시던 어머니의 입김은 아직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훈훈한 옛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픈 배와 상처를 어루만져준 것이 비단 할머니의 손길, 어머니의 입김 뿐만은 아니었다. 우리들 곁에서 비록 일상의 작은 불편함이지만 큰 관심을 보였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활명수'와 '후시딘'으로 유명한 동화약품 식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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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 국민건강 책임진 '약손'
[사진1 캡션: 초창기 활명수 제품]동화약품의 활명수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당시, 궁중에서 사용되던 생약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취해 국민에게 널리 보급하고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다.
"먼저 큼직한 가마솥에 위장약계통 각종 한약건재를 넣은 다음 물을 붓고 한참 달이면, 생약의 약물이 우러나와 진한 팅크로 변한다. 이것이 복방방향팅크(複方芳香丁幾) 추출과정이다. 다음은 이 팅크를 솜을 놓은 고운체로 걸러내는 여과과정. 여과과정을 거친 후 곱게 빻아낸 수입약재 아선약(阿仙藥)과 정향(丁香)가루를 타고 멘톨(박하)을 묘미있게 배합한다."
이는 당시 활명수 비방(秘方)의 내용 중 일부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원시적인 제조형태이지만, 당시 집에서 다려먹는 탕약밖에 몰랐던 시대상에 비추어 보면 양약의 제조방법을 적용해 탕약의 과학화를 시도한 획기적인 제조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활명수 개발자이자 동화약품 창업주의 아버지인 민병호 선생은 선전관으로서 궁중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비방을 익히 알 수 있을 만큼 한약 지식에 능통했다.
선전관이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 겸 경호실장이다. 민병호 선생은 이러한 궁중비방을 일반 백성이 다리지 않고 복용할 수 있도록 양약의 장점을 취해 혼합처방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이다.
활명수 이전에는 급체, 소화불량이 흔한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약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약이라고는 달여서 먹는 탕약밖에 없어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시기에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으면서도 복용이 간편한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活命水)'로서 국민의 생활을 널리 이롭게 했다.
필자도 예전에 식사 후 활명수를 4홉들이 활명수 병뚜껑에 따라 식구들과 나눠마시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활명수는 110년간 국민의 속을 편안하게 해줬던 대중적인 '명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후시딘', 상처치료제 역사를 다시 쓰다
활명수와 함께 국민과 함께했던 동화약품의 또 다른 약으로 후시딘을 들 수 있다.
후시딘이 나오기 이전에는 '이명래 고약', '머큐로크롬액(일명 빨간약)' 등 30~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상처치료제들이 있었다.
노란 기름종이에 펴서 종기에 붙이면 노란 고름이 쏙 빠져 질환을 치료하는데 특효를 발휘했던 '이명래 고약'은 국내 종기치료제의 대명사였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마땅한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이명래 고약'은 대중적 사랑과 부를 동시에 누렸다. 하지만 치료 후엔 반드시 흉터가 남고 종기가 생긴 후에 치료할 수밖에 없는 '사후약방문'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이와 함께 일명 '빨간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머큐로크롬액'은 자극성이 없고 점막, 구창 등 각종 상처소독약으로 널리 사랑받았으나 살균력이 약하고 흘러내리고 색이 옷 등에 묻어나는 사용상의 불편함 때문에 오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상처치료를 위한 마땅한 약이 없고, 이후 생활수준이 높아져 미에 대한 가치가 변해가면서 후시딘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명래 고약'과 '머큐로크롬'의 단점을 동시에 해결하는 등 작은 상처지만 치료에 불편함을 겪었던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 이후 후시딘은 상처치료제 시장의 역사를 다시 썼을 뿐만 아니라 스테디셀러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됐다.
후시딘은 현재 출시 이후 한번도 넘버원 자리를 놓치지 않을 만큼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연간 500만 튜브 이상 생산되는 거대품목으로 성장했다. 이 규모는 한 가구당 후시딘을 1~2개가량을 상비하고 있을만한 수량이다. 후시딘은 1994년에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가정상비약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우리들의 생활 속에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
활명수, 후시딘이 국민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동화약품의 원칙주의 경영을 핵심경쟁력으로 꼽을 수 있다.
'동화정신'으로 표현되는 원칙주의 경영은 제약 본연의 임무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고, 창의적인 인재 육성에 역점을 두며, 제약 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함과 함께 양약(良藥)으로써 국가와 사회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경영방침을 말한다.
갖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동화약품을 지켜온 이 정신은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는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의 유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동화정신' 4개항 중 제2항에도 "천만금이 생긴다고 해도 부정이나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자"는 동화약품의 정도경영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동화정신'은 이러한 정도경영 방침을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준수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세계 유수의 제약사들이 추구하는 행동윤리 강령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 치고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62주년 맥을 잇는 민족기업 '동화약품'
광복절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고, TV에서도 3ㆍ1운동이나 상해임시정부 같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그러나 제약기업인 동화약품에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이었던 상해임시정부 비밀연락기관이 있었고, 창업주를 비롯한 역대 사장 3명이 투철한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화약품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인연이 닿는 이유는 초대사장인 민강(1883~1931) 선생 스스로가 독립투사였기 때문이다.
민강 선생은 1909년 당시 안희제, 윤세복, 서상일, 김동삼 등 80여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대동청년당을 조직, 국내외에서 민족을 위해 지하공작을 감행하고 남대문에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를 세우고 2세 교육에 힘썼다.
이런 와중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민강 선생은 여러 동지들과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결의를 하고, 1919년 3.1 운동을 거치면서 비밀결사조직인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게 된다.
대동단은 제1차 행동으로 의친왕 이강 공(李堈 公)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탈출은 압록강 건너 안동 역에서 실패로 끝나고 민강 선생도 이 일로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는다.
이 기간 중 동화약품에는 비밀리에 서울연통부(聯通府)가 설치된다. 서울연통부는 1919년 7월 상해임시정부가 시행한 비밀연락 행정의 첫 조치로, 국내외 연락을 위해 서울에 설치한 비밀 행정부서였다.
연통부는 1922년 일제에 의해 전국조직이 발각되기 전까지 국내 각 시ㆍ도ㆍ군ㆍ면에 조직을 갖추고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활약을 했다.
이 같은 동화약품의 활동은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서울시에서 동화약품 본사 부지에 연통부 기념비를 설치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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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이 동화약품의 미래 성장 동력
동화약품은 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과감한 도전정신과 꾸준한 연구개발투자로 성장을 거듭해왔으며, 현재 감염증 치료제 및 골다공증 치료제 분야를 중심으로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동화약품은 2007년 자체 개발한 신약물질을 해외 유수의 제약회사에 제약 산업 역사상 최고가로 기술이전 하는 등 국내 제약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우선 2007년 6월 12일 美 퍼시픽 비치 바이오사이언시스(Pacific Beach BioSciences)와 퀴놀론계 항균제 'DW224a' 기술이전 계약 체결을 통해, 계약금을 포함한 기술수출료 총액(Milestone)으로 미화 5,650만 달러와 별도 상업적 매출에 따른 로열티수입을 올리게 됐다.
'DW224a'는 그람양성균, 호흡기 감염균, 폐렴균 등 다양한 감염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신규 퀴놀론계 항균제로, 안전성과 내성균에 대한 유효성이 개선된 신약이다.
이어 7월 2일에는 110년 국내 제약역사상 최대 금액규모로 P&G(Procter & Gamble Company)의 자회사인 P&G Pharmaceuticals, Inc(이하 P&GP)와 골다공증 치료제인 'DW1350' 및 그 후속물질의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했다.
'DW1350' 및 그 후속물질은 새로운 개념의 골다공증 치료제로, 동화약품은 이번 계약 체결로 인해 계약금을 포함하여 미화 5억1,100만 달러에 달하는 기술수출료(Milestone)와 상업적 매출에 따른 로열티 수입을 올리게 됐다.
아울러 동화약품은 최근 'DW224a', 'DW1350'의 신약수출 및 성공적인 제품화 추진을 위해 세계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cGMP급 충주 신공장을 건설 중에 있다.
동화약품은 82645m (3.3m 2만5천, 3.3m =1평) 규모로 건설될 충주 신공장을 통해 앞으로 완제의약품 및 원료의약품의 수출에 박차를 가하여 세계속의 동화로 발전시켜 나갈 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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