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약분업이 바로서기 위한 제언
철저한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제도임을 명심해야
주사제는 물론 차광주사제도 분업에 포함해야
주사제를 애당초 의약분업에 포함시킨 것은 한 가지 이유, 즉 주사제가 의약품 오·남용의 원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이것을 제외시키자는 것은 주사제의 오·남용이 사라졌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현재 의약분업에 포함된 주사제는 주사제의 적은 일부분이다.
주사제 중에서 소위 遮光(차광)주사제는 현재도 예외로 되어 있다.
업계에 의하면 이 제외된 주사제가 전체 주사제의 2/3쯤은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주사제는 분업에서 제외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3차 의료기관을 제외하고는 의원급의 의료기관에서 주사제를 써야 할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장마비나 격심한 알러지 반응에 대비한 응급의약품을 제외하고는 의원급에서 주사제를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 감기, 몸살, 또는 진통의 목적으로 주사제를 남용했기 때문에 항생제 내성 같은 문제가 생겼다. 이제 의약분업을 계기로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할 때가 되었다.
주사제를 취급한다고 해서 실거래가제도 아래서 의사들에게는 금전적인 이득도 없다. 주사제를 계속 분업에 포함시킴으로써 주사제의 사용량도 줄어들 것이고 의약품의 오·남용도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복지부가 걱정하는 보험재정부담도 다소 해결될 터이니 실로 一石三鳥(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대체조제의 제한, 정부 스스로 권위를 실추
소위 대체조제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일반명(generic name)처방은 제한 없이 실시되어야 한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늘어나는 의료비 때문에 정부가 고민하지 않는 곳은 공산주의국가이거나 국민의 의료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는 후진국들뿐이다. 지금 의료계에서는 소위 생동성시험을 빌미로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허가한 의약품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정부가 허가한 의약품 중에 약효가 나은 것이 있고 덜한 것이 있다는 논리이다.
만일 그렇다면 정부는 여태까지 중대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제약업계가 이 생동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품목에 수천만원씩 들이는 일은 옳지 않다.
만일 문제가 있는 품목이 있다면 이것은 복지부의 업체에 대한 또는 품목에 대한 사후관리로서 풀어나갈 일이고 약품을 취급하는 약사나 또는 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모니터링을 함으로써 충분히 不良(불량)한 의약품이 있다면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아직도 generic industry라고 불리울 만큼 자체 개발한 original product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명품을 처방하지 않겠다는 것은 original 품목이 많을 수밖에 없는 多國籍(다국적)제약회사만을 옹호하자는 논리나 다름없다. 또한 이는 결국 보험재정의 부담을 확실하게 늘리는 방법이다.
일반의약품의 확대, self medication 범위 넓혀야
의약품은 대체로 처방의약품(rx drug)과 일반의약품(otc)으로 구분하고 있다. 처방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을 요하고 일반의약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 두 가지 약의 비율은 6 대 4 정도로 처방의약품이 많다(정확하게는 61.5%, 1만7,188품목 대 38.5%, 1만775 품목). 물론 이 비율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옳다는 기준은 없다.
그러나 大勢(대세)는 나라마다 점점 일반의약품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우선 특허가 끊어지는 의약품의 otc전환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정부도 의료소비자의 self medication(자가치료)을 장려하고 의사나 약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의사들의 處方權(처방권) 자체도 소위 physician extenders(의사의 역할을 보조하는 직업인들)에게 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nurse practitioner(개업 간호사), midwife(산파), podiatrist(발의사), physician's assistant(의사보조원), chiropracter(척추의사), optometrist(검안사) 심지어는 어떤 주에서는 약사도 처방을 하게끔 허락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처방권(prescriptive authority)은 더 이상 의사의 專有物(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한국의 의사들에게도 똑같은 역할로 그들의 prestige를 높이자는 것은 지나친 주문일까? 그들은 질병을 진단하는 전문가(diagnotician)가 더 소중하지 아니한가?
처방료는 폐지하여 진료수가에 포함돼야
의약분업을 실시하면서 복지부가 저지른 가장 큰 미스테이크의 하나는 처방을 쓸 경우, 처방료(prescription fee)를 주기로 한 것이다. 환자를 볼 때마다 처방을 써야 하는 動機(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처방을 하나 쓰는데 3,000원씩이면 하루 100명의 환자를 보면 30만원, 한달이면 900만원, 1년이면 1억이 넘는 이익이 생기고 하루 50매의 처방만 발행한다해도 1년에 5,000만원의 수익이 생기는데 이런 유혹을 뿌리칠 의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는 처방료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따른 약품비와 약사의 조제료 등으로 이어져 보험재정을 파탄으로 이끈 한 원인 되었을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의료수가 중 진료수가가 터무니없이 적다면 사실을 적정하게 평가하여 조정하는 것이 옳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를 인식, 조정하기로 결정했다니 뒤늦게나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반복조제(refill)의 허용
질환에 따라서는 똑같은 의약품을 계속해서 오랜 기간 복용해야 할 경우도 있다.
고혈압, 당뇨병, 갑상선질환, 관절염, 녹내장 등 그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이런 때에는 일단 초기에 의약품의 선택과 용량의 조정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반복조제(refill)를 허용함이 타당하다.
또한 약국에서는 이를 위해 처방마다 처방번호(rx number)를 부여하고 환자가 반복조제를 원할 경우 원처방의 기록을 쉽게 볼 수 있는 데이터 관리시스템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환자에게 family physician(단골의사)을 선택하고 또 단골약국을 갖게 해서 환자가 필요할 때 의료인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처방이 一回性(일회성)일 경우는 정부의 진료비 과다지출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과잉투약의 가능성까지 있다.
그러나 반복조제의 허용이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그 세부규정을 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한번에 한달분을 허용한다든가, 석달분을 허용한다든가, 또는 반복조제의 횟수를 정해 최고 6개월분까지 또는 1년분까지를 허용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할 것이다.
compounding개념의 처방이 아닌 dispensing개념의 처방 전환
우리는 `처방조제'라는 말을 별 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調劑(조제)란 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약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는 `조제'란 말은 저항 없이 쓸 수 있었다. 모든 처방이 여러 가지 성분을 섞어서 나누어 포장하는 분말일 경우는 散劑(산제), 液體(액체)일 경우는 엑기스제제, 드물게는 캅셀제, 坐劑(좌제)이었다.
그러나 제약산업의 발달은 대부분의 약품이 單味(단미, single ingredient)로 정제, 캅셀제 등으로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이들 정제, 캅셀제 등에는 물론 유효성분(active ingredient) 외에도 정제, 캅셀제를 만들기 위한 부형제(excipient)를 함유하고 있다. 이런 정제, 캅셀제 등을 4가지, 5가지, 심지어 9가지 또는 그 이상 봉투에 넣어 복용케 한 현재의 조제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여러 가지 약을 먹을 때는 따라서 필요 없는 부형제 같은 것도 많이 먹게 된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환자의 이름, 주소, 날짜, 약이름, 용법은 물론 심지어는 어느 약국에서 조제한 것 인지의 표시가 없다. 만약에 한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을 경우 남의 약을 잘못 복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하루 두 번 먹을 것을 세 번 먹는 사고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한 처방용지에 한 약품만을 쓰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는 조제료의 算定(산정)에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보다는 하향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렇게 처방이 쓰여지며 또 조제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dispensing(공급)이라 한다.
조제라고 하면 옛날식의 `조제'를 말한다. 최근 미국 FDA는 이 `조제'행위가 의약품의 `제조'행위가 아닌가 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이렇게 조제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dispensing이 될 때는 현재의 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화제, 비타민제 등의 일반의약품 등에 대해서 정부가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필요한 경우 환자는 그냥 약국에서 구입하여 복용하면 된다.
on-line 청구 시스템의 개발
Dispensing이 될 때 또 한가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電算(전산)시스템을 이용하여 보험청구(reimbursement)가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컴퓨터에 입력하고 또 이를 우송하고 기다리는 시간 낭비가 없어지고 약국의 컴퓨터에서 곧바로 보험공단의 시스템에 접속하면 곧바로 적합, 부적합을 판정하여 약국에 금액을 on-line으로 알려주고, 보험공단은 일정기간 한번씩 돈을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 여러 보험회사가 하고 있는 일이다.
야간할증제도와 수가차등제도 등의 예외
어떤 제도든 예외가 많은 제도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의약분업 제도에서 대표적인 예외는 야간에 조제료를 더 주는 소위 할증제도이다. 이 제도는 소아 또는 노인들을 분업에서 예외로 인정하자는 얘기 만큼이나 불합리한 제도이다. 약국은 환자가 있으면 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여는 것이다.
의원도 환자가 있으면 여는 것이다. 억지로 보통 업무를 보는 시간을 넘어 정부가 장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의약분업은 돈 많이 드는 제도란 분명한 인식을
필자는 때때로 본란을 통해 의약분업의 문제점들에 대한 견해를 피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이었으므로 정부가 보험재정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정리해서 관계자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한다.
물론 필자의 의견이 모범답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약업신문을 통해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이는 미국에 약사로서 일하면서 보고 느끼고 그리고 내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이다.
의약분업으로 오·남용이 줄어들지 않을 것을 말했고 약제비 또는 의료비가 줄어들지 않을 것을 얘기했다. 시민단체나 약사회의 분업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필자는 그러나 지금 와서 “I told you so(내가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비아냥거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잘못 시작된 정부 시책이었으나 이미 의약분업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돌이키기에는 더 큰 혼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의약분업이 돈이 많이 드는 제도, 의사나 약사의 개인적인 이익의 추구보다도 철저한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제도임을 확실히 아는 데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01-05-30 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