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심, 정치 그리고 거듭남
신완섭 지난 13일 설 민심에 관하여 한나라당 대변인이 발표했던 성명에 대해 말들이 많다. 현 정권의 실정을 `3파탄(정권도덕성의 파탄, 민생경제의 파탄, 각종인사의 파탄)', `2불안(외교안보 불안, 사회안전망 불안)'으로 꼬집었고, 이 중 사회안전망 불안은 졸속 의약분업 탓이라는 거였다.
사실 명절 때마다 불거지는 민심의 향방은 대개가 인색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올 설의 민심 이탈은 전반적인 산업경기의 경색과 연봉제 실시 이후 현격히 줄어든 특별상여금이나 떡값 탓만은 아니었다. 어딘지 불안하다는 거였다. 그 불안의 강도가 지나쳐 집단 조울증을 일으킨 결과였다.
불안의 원천을 들여다보자. 이미 오래 전부터 노출된 정권의 말기현상, 비방과 따돌림으로 얼룩진 국회, 거꾸로 심판받는 사법부, 부패로 만연된 사회 분위기들, 어디를 둘러보아도 믿고 따를 구석이 하나 없다. 이러고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정상이 아닐지 모를 정도다.
이런 판국에 약사회가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 대응태도는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지난 22일 대약 총회에선 정치 참여를 본격 가동키 위한 `약정회'를 발족하고, 약권수호를 위해 정치판에 나서는 회원들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300억 원 모금을 기치로 걸고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단체의 발표가 있은 지 오래지 않은 일이라 어슬픈 카운터펀치를 노리는 신인 권투선수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정치적인 맞대응인 셈인데, 영 개운치가 않다.
그런 가운데 보도된 전년도 대약 상임위원회의 편중되면서도 저조했던 활동자료를 보면 쓴맛이 더해진다. 17개 상임위 중 1년 내내 회의 한번 하지 않은 상임위가 있고 절반 정도는 형식치레에 그친 정도였다. 약사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분장된 대약의 상임위 활동이 이 정도인 상태에서 국정 참여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양치기소년의 외마디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약사사회가 참된 지식인 사회로 거듭나야 된다고 본다. 지식인이란 온갖 모순과 갈등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옹호하며, 그 진실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된 정치 또한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병든 육신을 건강하게 돌봐주는 약사 직분의 열정과 이웃 사랑이 곧 그들에게는 정치(正治)가 아닐까.
끝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조정래의 대하소설 읽기를 권한다. 소설 10권을 다 읽노라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피와 땀, 오욕의 역사 속에 불현듯 살아 숨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인고의 세월을 담고 긴긴 흐름을 이어온 한강의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교훈이 거듭남의 단서가 되길 바란다.
2002-02-22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