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약대 정원은 늘려야 한다
심창구〈서울대 약대 교수〉
우리 나라 약대의 정원은 대개 매우 적다. 전국적으로는 약 1200명 정도가 되지만, 이 정원을 20개 약대가 나누어 가지다 보니 대학당 평균 60명 정도에 불과하다.
정원이 가장 많은 중앙대와 이화여대도 겨우 120명이고, 강원대, 충남대, 경성대, 경희대, 원광대, 전주우석대, 동덕여대는 40명, 심지어 삼육대학은 30명에 불과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학도 몇 년 전까지 80명이 정원이었는데 BK, 지원대학이 되면서 그나마 10%를 줄여 72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약대 정원도 우리처럼 적은 줄로 아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다. 일본의 경우, 필자가 아는 곳만 해도 호시약과대학이 300명, 동경약과대학이 400명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남경에 있는 China Pharmaceutical University는 무려 2000명의 정원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대개 120명 정도가 보통이고 우리 나라처럼 30∼40명을 뽑는 대학은 한군데도 없다.
우리 나라 약대 정원이 이처럼 적다 보니 약대 교수인원도 전국적으로 25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줌도 안 되는 연구인력 중에서 대학마다 동일한 전공의 교수가 반복되다 보니 새롭고 다양한 전공이 약학교육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올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처럼 영세한(?) 인력을 가지고 오늘날 이만큼의 약업과 약학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대견스럽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약사면허의 제1활용처인 약국에서는 물론이고, 우수한 국산 의약품의 제조와 공급을 담당해야 할 제약공장, 그리고 신약개발 분야에 이르기까지, 약학과 약업이 이처럼 영세한 규모로 영위되어야 할 당위성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필자는 교육의 효율화나 대학 경영의 합리화를 위해서 현재의 약학대학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기성 약사들은 약대의 정원을 늘리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약대 정원이 늘어나면 약사가 늘어날 것이고, 결국은 개업 약사가 늘어나 약국간 경쟁이 과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약대 정원은 늘리되 약사 수는 늘리지 않는 방안이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즉 일본처럼 대학 정원은 대학과 교육부에서 결정하되 해마다 배출되는 약사의 수는 복지부에서 정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렇게 되면 정원은 늘더라도 약사수는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비약사인 약학사(약사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약대 졸업생)가 늘어나게 되고, 이들은 자연히 약국이 아닌 제약업이나 약학연구, 관계 등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니 인력의 약국 편중이라는 약학·약업계의 고질적 난제가 일거에 해결되고 여러 분야가 균형 있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혹자가 걱정하는 대로 약대가 지나치게 약사면허시험 준비교로 전락하거나, 정치적 흥정에 의하여 약사 정원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우려가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두번째 아이디어로는 약대의 통폐합을 추진하는 아이디어이다. 마치 기업의 M&A처럼 필요에 따라 약대끼리 사고 팔기를 해서 대학의 규모를 키우는 아이디어이다.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약대를 팔겠다는 사립대도 있을 것 같고, 사거나 정원을 갖겠다는 국립대도 있을지 모르겠다.
구체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로 심사숙고해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올망졸망한 규모의 20개 약대 체제가 약학교육에 비효율적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필자는 서울대 약대의 경우, 학생정원은 200명으로, 교수 정원은 100명(현재 40여명)으로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다양한 분야로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약학과 약업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리고 서울대학 내의 타 대학이나 타 학과와의 경쟁에 있어서 기본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규모는 최소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약대는 미니대학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비전을 갖자.
2002-05-24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