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Compromise(타협)의 신비
안승호〈한국유나이티드제약 중앙연구소 소장〉
1559년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내린 예배통일령에 순종치 않고, 로마 가톨릭적인 제도와 의식을 배척하여 영국을 떠나 네덜란드와 기타의 지역으로 피신하여 지내다가, 타락된 교회상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퓨리턴 즉 청교도들은 May Flower호를 타고 영국의 플리머스를 떠나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하여 1640년 12월에 현재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항구에 도착, 정박하여, 이 곳을 정든 고향의 이름을 따서 플리머스라고 하였다.
처음 이 곳에 도착한 Pilgrim Fathers는 102명이었으며, 쫓기고, 박해를 받아 온지라 배고프고 병에 시달려 희생자도 여럿 나오게 되었다.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부녀자들은 아파서 신음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과의 소위 말하는 영토분쟁 속에서 초조와 불안감으로 진퇴양난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극한 상황과 유사했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히도 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과 타협의 책상에 앉게 되어 서로를 양보하며 서로를 지킬 수 있었다.
Pilgrim Fathers들은 파종을 하여 밀이나 옥수수를 기르는 법을 인디언에게 가르쳐 주었고, 대신 인디언은 고기 잡는 법이며,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어 공생, 타협의 길을 열어 주게 되어 Compromise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미의회의 의결제도나 법원의 배심원제도가 확립되었고, 나아가서 오늘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인내, 용서, 이해가 Compromise의 기본 골격이 아니겠는가?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낸다면,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에 악의를 품고 있다면,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로 말미암아 보복의 무서운 범죄행위를 보인다면 과연 문제의 해결이 있었겠는가?
얼마전 세계적 명화로 알려진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본 주제는 흑인과 백인의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인권에 엉킨 부조리를 타파하는 것이지만 저변에 흐르는 명제는 역시 Compromise이다.
엄마는 일찍 죽고 변호사인 아빠가 아들(9살)과 딸(6살)을 키우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대로 착하고 모범생이나, 딸은 말괄량이여서 툭하면 사내아이들과 싸우곤 했다.
그 날도 딸아이가 한 사내아이와 싸우고 집에 돌아와서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는데 아빠는 영 난감한 표정이었다.
사랑하는 딸아이를 어떻게 이해를 시키고 달래어 학교에 가게 할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딸아이에게 Compromise(타협) 할 것을 제안했다.
내용인즉 딸아이가 학교를 가면 매일 저녁에 딸아이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어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을 했더니, 딸이 수긍을 하여 타협이 이루어졌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자기의 귀여운 딸에게 진지하게 제안한 Compromise! 얼마나 자랑스런 아빠인지 정말 눈물어린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포용하는 마음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자아낸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변호사, 아빠, 친구, 이웃, 형, 누나, 동생 그리고 엄마들이 많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우리는 먹고 살만큼 됐다.자동차 소유율도 선진국에 버금가고, 의식주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청교도들이 생사를 걸고 Compromise를 적절하게 행사한 끝에 세계 제일의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과도 같이, 그리고 변호사 아빠의 끈질긴 인내와 사랑으로 타협점을 찾아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가치를 지켜내고 배양시켜 해맑은 가정을 꾸며가는 정신이 꼭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이제는 작은 폭력이라도 결코 허용해서도 안되고, 이러한 폭력이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는 결코 용납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정의 폭력, 거리의 폭력, 인질극, 포장마차에 가해지는 조무래기 폭력이나 크게는 조직적 금융폭력은 말도 안된다.
가정, 사회, 나라, 세계의 폭력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
대신 Compromise가 이를 대신하여 말로서, 눈짓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바람직하다.
2003-08-08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