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5대 강국 도약, "AI·규제·약가 삼박자 맞아야"
정부, 임상 3상 특화 펀드 등 9500억 규모 정책 펀드 조성 및 240일 신속 심사 약속
산업계 "CDMO 상생 바우처 도입, 심사 인력 독립성 보장, 선진국 대비 2.4배 낮은 약가 개선해야"
중국 시장의 경고… 폭발적 신약 허가 이면엔 '최대 90% 약가 인하'로 인한 R&D 동력 상실 존재
입력 2026.10.14 06:00 수정 2026.10.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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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이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과 첨단 바이오의약품 시대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바이오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주기 펀드 지원,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규제 심사, 그리고 혁신 신약에 대한 합리적인 약가 보상이 맞물려야 한다는 산·학·연·관의 뼈있는 진단이 쏟아졌다.

13일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임상시험 학술대회 '2026 KoNECT-MOHW-MFDS 국제 콘퍼런스(KIC 2026)'에서는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 속 K-바이오 전략: 성과 평가 및 향후 과제'를 주제로 기조강연 및 토크쇼가 진행됐다.

이날 세션은 반준우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이소라 사이네오스헬스 대표, 김영욱 한국릴리 이사의 공동 진행 아래, 보건복지부와 국내외 제약·바이오 산업계를 대표하는 주요 협회(한국제약바이오협회·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및 학계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한국 바이오 산업의 현주소와 생존 전략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왼쪽부터) 성창현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정부 '자금·규제' vs 산업계 'AI 허브'

K-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도약을 위해 정부는 막대한 자금 지원과 규제 혁신을, 산업계는 AI 기반의 디지털 전환을 생존 무기로 꺼내 들었다.

보건복지부 성창현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정부가 신약 개발의 든든한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2조 7000억원 규모의 바이오헬스 R&D 예산을 투입하고, 연내 7호 펀드와 임상 3상 특화 펀드 조성을 완료해 총 9500억원 규모의 메가 정책 펀드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신약 허가 기간을 240일로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신속 심사 체계와 바이오헬스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전폭적인 제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 산업계는 급감하는 신약 개발 생산성에 주목하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촉구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신약 1개당 R&D 비용이 2014년 14억 달러에서 최근 25억 달러로 급증했지만, 임상 진입 후 최종 허가를 받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며, 위기 타개를 위한 돌파구로 'AI와 분산형 임상시험(DCT)의 융합'을 지목했다.

노 회장은 구체적인 해법으로 국가 차원의 '한국형 글로벌 임상 혁신 허브' 구축을 제안했다. 

민감한 개인정보는 각 기관에 둔 채 AI 학습 모델만 공유하는 연합 학습 기반의 'K-멜로디(K-MELLODY)' 사업과 로봇이 연구를 수행하는 '자율주행 실험실(SDL)'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한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단일 기관 중심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 기술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신약 개발 효율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왼쪽부터) 이영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부회장, 최정민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KoBIA) 본부장, 신주영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전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 출신인 칭화대학교 첸 샤오위안(Chen Xiaoyuan)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중국, 맹추격 이면의 그림자 '약가 삭감'

이날 토론에서는 글로벌 임상 강국으로 한국을 턱밑까지 추월한 중국 바이오 생태계의 민낯도 공개되어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전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 출신인 칭화대학교 첸 샤오위안(Chen Xiaoyuan) 교수는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개혁으로 최근 100개 이상의 혁신 신약이 쏟아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다. 

첸 교수는 "혁신 신약이 국가 의료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될 경우 가격이 기본적으로 60% 삭감되며, 일부 품목은 90% 이상 깎이기도 한다"며, "수익성이 지나치게 떨어져 기업들이 후속 R&D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혁신을 이어가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중국 내 임상 자원 쏠림 현상도 문제로 지적됐다. 

첸 교수는 "2000개가 넘는 병원이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지만, 실제 임상은 극소수의 대형 글로벌 임상 기관과 소수 핵심 연구자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며, "이로 인해 하위 지역 도시나 소형 병원의 환자들은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에 접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양적 팽창에만 집중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으로, 한국 바이오 생태계에도 묵직한 교훈을 남겼다.

"CDMO 상생·심사 독립성 보장해야"

국내 바이오 투자 생태계와 규제 시스템의 질적 고도화를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최정민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KoBIA) 본부장은 정부의 국민성장 바이오 펀드가 신약 개발사 뿐만 아니라 CDMO 기업을 1호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 "국내 제조 및 생산 역량을 견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최 본부장은 "많은 중소 벤처기업들이 CDMO를 이용할 때 막대한 비용과 생산 슬롯 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지원을 받은 CDMO 기업들이 중소 벤처기업을 위해 일정 생산 슬롯을 할애하거나 바우처 제도를 운영한다면, 단순한 기업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이 상생하는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규제 개혁이 단순한 '속도전'에 그치지 않으려면 식약처 심사 인력의 '질적 담보와 독립성'이 필수적이라는 날카로운 지적도 나왔다. 

신주영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240일(8개월) 신속 허가'와 '195명 심사 인력 확충' 방향성에는 깊이 공감하면서도, "가장 핵심은 그 기간 안에 '과학적인 심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고도의 과학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심사 인력 채용에 있어 일률적인 공무원 블라인드 심사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이를 면제해 주는 등의 정부 차원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심사자들이 민원인들과 유연하게 소통하며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행정적 외압 없이 과학적 근거에만 기반할 수 있도록 심사자의 완전한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합리적 약가 보상 없이 신약 없다"

이날 토론의 방점은 결국 글로벌 혁신 신약 창출을 위한 '약가 보상 체계'로 귀결됐다. 규제 단축과 인프라 확충이 이루어지더라도, 최종 단계에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면 신약 개발의 생태계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영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부회장은 "임상을 끝내고 최종 허가를 받는 5%의 신약 중에서도 R&D 투자 비용을 온전히 회수하는 약물은 20%에 불과하다"며 "제약사가 그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새로운 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결국 '약가'"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제시한 협회 자체 조사(2023년~2025년 117개 신약 가격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신약 가격을 1로 두었을 때 경제 수준이 엇비슷한 선진국의 신약 약가는 무려 2.4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선진국에서는 한국과 똑같이 100원을 투자해도 2.4배 더 빨리 투자금을 회수해 이를 다음 신약 R&D에 재투자할 수 있는 구조"라며, "대한민국이 임상 수행 국가를 넘어 진정한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개발해 낸 혁신 신약에 대해 그에 합당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선순환 약가 구조'를 반드시 깊이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션의 좌장을 맡은 반준우 교수는 "더 빠르고 예측 가능한 규제와 혁신에 대한 적절한 가치 인정,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바이오 투자 생태계 구축이 하나로 연결될 때 우리의 연구 기술은 글로벌 신약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의 강한 지원 의지와 산업계의 역량이 합쳐진다면 지금의 중요한 갈림길을 K-바이오의 도약기로 만들 수 있다"고 당부했다.

세션의 좌장을 맡은 반준우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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