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료
“선택의 순간 합의 이끌어내는 기자 되고파”
지난 2009년 4월, 중국산 멜라민, 탈크 파동에서 신종인플루엔자로 이어지며 한창 시끄럽던 몇 달 동안 정부를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여기자가 있었다. 스스로 특종 기자는 아니라며 겸손해 하는 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약사 출신인 그녀는 보건의료계에서 ‘똑’소리 나는 기자로 유명하다.
멜라민, 탈크 파동, 신종인플루엔자로 이어지는 그 몇 달 동안 쉬지 못하고 일하던 당시에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돌이켜 보니 그 당시 기사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뿌듯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대로 약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왜 현장을 누비는 기자가 된 것일까.
“대학원 졸업 후, 6개월 간 외국 여행을 다녀왔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했죠. 그 때 내일신문에서 낸 기자 채용공고를 봤어요. 다행히 제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했지요.”
그 때가 2001년. 지금이 2011년이니 약 10년을 기자로 살았다. 의학, 복지부, 식약청 등 전공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곳을 주로 담당했다. 그래서 지난 2009년 멜라민, 탈크 파동과 신종인플루엔자 사건 때도 중심 현장에 있었다. 기억에 남는 특종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가 특종을 안해 봐서 모르겠는데 하하. 제 자신이 생각할 때, 지난 2002년쯤에 우리나라가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을 때 썼던 기사가 있어요. 다른 곳에서는 출산율에 관심이 없었는데 제가 그런 면에서는 앞섰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기자로 쭉 살아온 줄 알았던 그녀가 잠시 기자를 떠나 근무약사,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했던 시간도 있다. 그래도 결국 다시 펜을 잡는 기자로 돌아왔지만.
이 때 경험은 그녀가 좀 더 넓은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됐다. 기사를 쓸 때 관계자로부터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경험한 것을 토대로 현실과 이상의 차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현장에서 알게 돼서 실체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 현실을 잘 안다는 것과 업계에서 이야기 하는 것들의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게 된 것.
‘겉핥기 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 기자로써 환자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좋은지, 어떤 정책이 좋은 것인지 등 사안을 그전 보다 종합적이고 다방면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다.
약사와 기자. 전혀 다른 성격의 일 같지만 기자 생활을 잠시 쉴 때 근무약사 경험에 비춰보면 비슷한 면이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통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는 것들이다.
“약국근무도, 비서관도, 기자도 다 재미있어요. 그런데 일을 오래해서인지 기자가 저한테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덤벙대는 성격이라 약국에서 좀 힘들었어요, 하하.”
그녀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온유 의료사고를 들었다. 이 사건은 김온유라는 중2여학생이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의료진의 오진으로 갈비뼈가 모두 사라지고 만 사건이다. 취재하며 가슴이 아팠고 온유 사건을 쓴 기사로 사내 노조로부터 ‘참글상’을 받았다.
줄곧 보건의료계를 담당하던 그녀는 지난해 5월 국제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전보다 낙종에 대한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다시 보건의료계 쪽 분야를 맡게 될 수도 있고 앞으로의 일은 아직 모른다.
다만 그녀는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에 제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지향점을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제 막 결정해 나가는 단계인 것 같다고.
사회전반에 걸쳐 갈림길에 서서 ‘무엇을 선택할까’라며 우리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할 때가 왔는데 그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
약사사회만 해도 선택을 통해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과 끊임없이 맞닥뜨린다. 그런 면에서 하채림 기자가 말하는 갈림길에서 방향성을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느 분야든 지금은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그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목표이자 바람이에요.”
이혜선
201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