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까. 원료를 배합해 내용물을 만들고 용기에 담는 작업부터 품질검사, 포장, 출고까지. 소비자가 손에 쥐는 제품 하나에도 여러 단계의 공정과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들어간다.
14일 충북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의 에이치피앤씨(HP&C)와 음성군 코스메카코리아 공장을 찾았다. 오는 22일 개막하는 '2026 오송화장품뷰티엑스포'를 앞두고 충청북도와 오송바이오진흥재단이 마련한 미디어 팩토리 투어를 통해서다. 화장품 제조 과정은 물론, 품질을 관리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다양한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K-뷰티의 해외 판매가 빠르게 늘면서 제조 현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제품을 더 빨리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늘고, 국가마다 다른 품질 기준과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제형과 용기, 포장 방식이 달라 생산공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제약급 설비로 품질관리 강화
1993년 병원 대상 의약품·화장품 유통업으로 출발한 HP&C는 2014년 오송에 공장을 완공하면서 직접 제조에 나섰다. 현재는 화장품은 물론 의료기기, 병원용 소독제, 식품용 살균소독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김홍숙 HP&C 대표는 "화장품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인원들의 노고가 담겨 있다"며 제조업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특히 해외 진출 과정에서 요구되는 품질 관련 자료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어 전문인력과 관리체계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HP&C 오송공장은 생산시설의 위생관리를 위한 세심한 장치들이 구역마다 마련돼있었다. 위생가운과 위생모를 착용하고 들어가자 마자 바로 마주한 것은 거대한 믹서기들이다. 원료를 혼합하는 조제실에선 수상 원료와 유상 원료를 별도로 용해한 다음 배합기에서 혼합·유화해 로션이나 크림 등의 내용물을 만든다. 주문량에 따라 제조 규모는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공정은 같다.
HP&C 관계자는 여러 작업실이 세척·건조 공간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대신, 각 생산실에서 사용한 도구를 별도 동선으로 세척하고 건조하도록 공간을 설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용한 기구가 복도를 오가면서 다른 작업 구역을 오염시키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다.
공기의 흐름도 관리 대상이다. 내용물이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충전 구역과 밀봉된 제품을 다루는 포장 구역의 청정도를 구분하고, 공기가 상대적으로 청정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관리한다. 천장 위에는 공조 설비와 배관이 설치돼 있으며, 프리필터와 미디엄필터, 헤파필터(HEPA Filter)를 종류별로 정해진 주기에 맞춰 교체하고 있다.

배합을 마친 내용물이 곧바로 제품 용기에 담기는 것은 아니다. 시료를 채취해 1차 품질검사를 진행한 뒤 적합 판정을 받은 반제품만 숙성실로 옮긴다. 약 3일간의 숙성 기간 동안에는 내용물이 분리되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지, 미생물 오염이나 이물질이 투입되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이후 충전·포장 공정으로 넘어간다. 1층에는 튜브 전용 자동화 라인 4개가 설치돼 있다. 빈 튜브가 투입되면 내용물 충전과 실링, 절단, 중량 검사 등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다루는 2층에는 7개 생산라인이 있으며, 이 가운데 3개가 자동화 라인이다.
자동화 설비가 모든 작업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화장품 용기는 디자인과 재질, 규격이 제각각인 데다 외관의 미세한 손상도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동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다. 유리 용기가 서로 부딪히면 흠집이 생기고, 플라스틱 용기도 마찰로 표면에 자국이 남을 수 있다.
"기계보다 사람이 더 섬세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필요한 구간이 있어요."

HP&C의 생산시설 자동화율은 약 70%다. 다만 고객사가 어떤 용기와 패키지를 주문하느냐에 따라 실제 자동화 설비 활용 비중은 달라진다. 표준화된 용기를 사용하는 제품은 자동화 라인에서 생산하고, 독특한 형태의 용기나 까다로운 포장 작업에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출고 전까지 반복되는 검증
연구소에선 개발한 화장품이 다양한 환경에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처방으로 만든 시료를 온도가 각기 다른 시험 장비에 넣어 안정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국내와 기후가 다른 동남아나 러시아 등에서도 제품이 변질되지 않는지 검토한다. 제품의 사용기한을 설정할 때도 이러한 시험 결과가 활용된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한 뒤 사용기한까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개발 단계에서부터 살피는 셈이다.
품질관리실에선 원료와 반제품, 완제품에 대한 미생물 검사와 물성 평가, 기능성 분석 등이 진행된다. 제조 단계마다 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원료부터 최종 완제품까지 보관 검체도 별도로 관리한다. 제품 출고 이후 품질 문제가 제기될 경우 같은 제조번호의 제품을 대조하고 생산 이력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관계자는 약 5년간 검체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센터에는 높이 약 20m의 고층 랙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 면적 약 350평에 9단으로 설치된 랙은 약 2800개의 팔레트를 보관할 수 있는 규모다. 높은 선반까지 제품을 적재하기 위해 삼방향 지게차를 사용한다. 바닥의 유도 장치와 적재 위치의 바코드를 활용해 화물을 옮기는 방식이다.
HP&C는 이러한 시설을 기반으로 자체 브랜드 테라비코스(Thelavicos)와 OEM·ODM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화장품과 헬스케어 분야 연구소도 별도로 두고 있다. 연구인력은 전체 인력의 약 13%이며, 회사 측은 매출의 약 10%를 R&D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주요 연구 분야는 히알루론산 가교 기술과 유효성분 안정화, 피부 전달 기술 등이다. 최근에는 필러와 스킨부스터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병원 영업과 의약품 유통으로 쌓은 경험을 화장품 소재·제형 연구와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생산라인을 읽는 통합관제실
코스메카코리아는 국내외 약 600개 고객사의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세계 4위 규모의 화장품 연구개발·제조(OGM) 기업이다. 매월 약 320종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연간 약 1만2000종의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코스메카코리아 음성공장은 생산라인의 실시간 움직임을 대형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는 통합관제실을 운영한다. 벽면엔 공장별 생산 실적과 설비 가동 현황, 에너지 사용량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생산 목표와 실적에 차이가 생기면 화면에 표시되고 담당자에게 알림이 전달된다.
품목이 많다 보니 제품마다 제조 조건이 달라진다. 같은 크림이나 에센스라도 원료의 종류와 함량, 투입 순서, 배합 온도 등에 따라 다른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용기와 포장 방식도 고객사별로 제각각이다.

통합관제실에선 이러한 생산 과정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배합기 내부를 3차원으로 구현한 디지털트윈 화면에선 수상 원료와 유상 원료가 혼합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설비가 가동되는 동안 온도와 회전속도(RPM), 압력 등의 데이터도 초 단위로 기록된다.
태양광 발전량과 전력 사용량, 폐수 처리 상태 등도 확인 가능하다. 설비별 에너지 소비를 감시하고 폐수의 pH 등 관리 항목이 설정 범위를 벗어나면 담당자에게 알림이 전달된다. 제조뿐 아니라 공장 운영 전반에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메카코리아는 2019년부터 생산설비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사적자원관리(ERP)와 제품수명주기관리(PLM) 등 업무 시스템을 고도화했고,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제조조건 분석과 품질관리에 투자하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한 달에 2억 건 이상의 제조 데이터가 저장된다고 설명했다. AI가 이를 분석해 기존보다 나은 제조 조건을 찾아 담당자에게 제안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신제품 개발에도 AI가 활용된다. 코스메카코리아가 보유한 화장품 처방은 약 20만 개다. 새로운 제품의 전성분 정보를 입력하면 기존 처방 가운데 유사한 제품을 찾아 비교하는 '레시피 서브 AI'를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 비슷한 제품을 만들면서 어떤 공정상 문제가 발생했는지, 품질과 관련해 어떤 문제가 제기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량이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로봇도 어려운 화장품 생산
코스메카코리아 음성공장에는 100kg부터 최대 10톤까지 제조할 수 있는 배합 설비가 설치돼 있다. 취급하는 화장품 원료는 약 1만2000종이다. 하나의 제품에 적게는 20종, 많게는 70~80종의 원료가 들어간다.
일부 기초화장품 생산에는 자동 배합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기존에는 작업자가 공정 중간마다 설비를 조작해야 했지만, 미리 설정한 제조 조건에 따라 배합기가 작동하도록 개선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를 전기밥솥에 비유했다. 조리 조건을 설정하면 기계가 알아서 작동하는 것처럼, 화장품도 배합 조건을 미리 입력해 자동으로 제어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원료 투입까지 완전히 자동화하는 작업은 여전히 개발 과제로 남아 있다. 원료 종류가 워낙 다양해 모든 공정에 동일한 시스템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료마다 들어가는 시점이 다 달라요. 화학적인 공정이다 보니 배합 순서도 중요합니다"
코스메카코리아 관계자는 같은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함량과 배합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현재는 대량으로 사용하는 일부 원료부터 자동 투입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전·포장 구역에서도 자동화 설비와 작업자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내용물이 외부 공기와 접촉하는 충전실은 별도 청정구역으로 관리되고, 용기에 내용물을 담고 캡을 닫은 뒤에는 포장라인으로 이동한다.
일부 라인에선 로봇이 제품을 포장하지만, 작업자가 직접 용기와 포장재를 다루는 구역도 적지 않았다. 브랜드마다 요구하는 용기나 포장 방식이 달라 자동화 설비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스메카코리아는 우선 작업자의 부담이 큰 공정부터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무게 20~30kg에 이르는 포장 상자를 옮기거나 팔레트에 적재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이동형 팔레타이징 로봇과 자율이동로봇(AMR)을 연계하는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고정형 로봇은 설치된 생산라인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동형 로봇은 여러 라인을 오가며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회사 측은 올해 12월까지 이동형 팔레타이징 로봇을 도입하고, 2027년 5월까지 AMR을 연계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생산현장 천장에 설치된 약 40대의 CCTV를 AI와 연결해 작업 상황을 분석하고, 로봇의 이동과 작업 배치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무인화 공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제품과 패키지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아직은 작업자의 손을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제조 조건이 표준화된 공정부터 자동화 수준을 높이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제조 거점에서 수출 기지로
충북에는 현재 225개 화장품 제조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 제조기업의 5.4%로, 청주에 96개사, 음성에 66개사가 집중돼 있다. 화장품 산업 종사자는 1만764명이며 수출액은 3억5700만 달러로 전국 4위 규모다.
오송·오창에는 바이오·연구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청주·음성에는 화장품 제조·원료 기업들이 모여 있다. 특히 오송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등 관련 기관이 자리하고 있어 연구개발과 규제 대응에 필요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충북도 바이오식품의약국 첨단바이오과 화장품엑스포팀 최정섭 팀장은 "수도권과의 접근성도 화장품 기업들이 충북에 자리 잡은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주요 바이어와 관련 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이동하기 편리한 입지가 사업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충북도는 제조 기반을 기업들의 해외 판로 확대와 연결하려 하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청주 오스코(OSCO)에서 열리는 '2026 오송화장품뷰티엑스포'에는 국내외 250개 기업이 참가한다. 해외 참가기업은 중국·일본·독일·불가리아 등 27개사다.
올해는 39개국에서 구매·수입 역량을 검토한 해외 바이어 200명을 초청했다. 현장 등록 바이어 등을 포함하면 약 500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상담 목표는 1200건 이상, 2600억원이다. 초기 화장품 기업을 위한 투자유치·판로 지원 프로그램도 처음 마련했다.
화장품 제조시설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상도 나왔다. 신용한 충북도지사는 이날 오찬에서 "청주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곧바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대신 지역에 머무르며 소비할 수 있도록 K-뷰티 관광 코스를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 지사는 화장품 공장을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니라 관람객이 찾을 수 있는 갤러리나 캠퍼스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청주공항과 화장품 제조시설, 사후면세점 등을 연계하겠다는 장기적인 구상이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한 고기능성 화장품 개발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충북에 구축 중인 방사광가속기를 비롯한 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화장품 소재 연구와 산업화를 지원하겠다는 설명이다.
신 지사는 "K-컬처 아레나와 K-뷰티 성지순례 코스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바이오와 결합한 고기능성 코스메틱 위주로 충청북도가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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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까. 원료를 배합해 내용물을 만들고 용기에 담는 작업부터 품질검사, 포장, 출고까지. 소비자가 손에 쥐는 제품 하나에도 여러 단계의 공정과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들어간다.
14일 충북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의 에이치피앤씨(HP&C)와 음성군 코스메카코리아 공장을 찾았다. 오는 22일 개막하는 '2026 오송화장품뷰티엑스포'를 앞두고 충청북도와 오송바이오진흥재단이 마련한 미디어 팩토리 투어를 통해서다. 화장품 제조 과정은 물론, 품질을 관리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다양한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K-뷰티의 해외 판매가 빠르게 늘면서 제조 현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제품을 더 빨리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늘고, 국가마다 다른 품질 기준과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제형과 용기, 포장 방식이 달라 생산공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제약급 설비로 품질관리 강화
1993년 병원 대상 의약품·화장품 유통업으로 출발한 HP&C는 2014년 오송에 공장을 완공하면서 직접 제조에 나섰다. 현재는 화장품은 물론 의료기기, 병원용 소독제, 식품용 살균소독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김홍숙 HP&C 대표는 "화장품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인원들의 노고가 담겨 있다"며 제조업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특히 해외 진출 과정에서 요구되는 품질 관련 자료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어 전문인력과 관리체계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HP&C 오송공장은 생산시설의 위생관리를 위한 세심한 장치들이 구역마다 마련돼있었다. 위생가운과 위생모를 착용하고 들어가자 마자 바로 마주한 것은 거대한 믹서기들이다. 원료를 혼합하는 조제실에선 수상 원료와 유상 원료를 별도로 용해한 다음 배합기에서 혼합·유화해 로션이나 크림 등의 내용물을 만든다. 주문량에 따라 제조 규모는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공정은 같다.
HP&C 관계자는 여러 작업실이 세척·건조 공간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대신, 각 생산실에서 사용한 도구를 별도 동선으로 세척하고 건조하도록 공간을 설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용한 기구가 복도를 오가면서 다른 작업 구역을 오염시키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다.
공기의 흐름도 관리 대상이다. 내용물이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충전 구역과 밀봉된 제품을 다루는 포장 구역의 청정도를 구분하고, 공기가 상대적으로 청정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관리한다. 천장 위에는 공조 설비와 배관이 설치돼 있으며, 프리필터와 미디엄필터, 헤파필터(HEPA Filter)를 종류별로 정해진 주기에 맞춰 교체하고 있다.

배합을 마친 내용물이 곧바로 제품 용기에 담기는 것은 아니다. 시료를 채취해 1차 품질검사를 진행한 뒤 적합 판정을 받은 반제품만 숙성실로 옮긴다. 약 3일간의 숙성 기간 동안에는 내용물이 분리되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지, 미생물 오염이나 이물질이 투입되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이후 충전·포장 공정으로 넘어간다. 1층에는 튜브 전용 자동화 라인 4개가 설치돼 있다. 빈 튜브가 투입되면 내용물 충전과 실링, 절단, 중량 검사 등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다루는 2층에는 7개 생산라인이 있으며, 이 가운데 3개가 자동화 라인이다.
자동화 설비가 모든 작업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화장품 용기는 디자인과 재질, 규격이 제각각인 데다 외관의 미세한 손상도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동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다. 유리 용기가 서로 부딪히면 흠집이 생기고, 플라스틱 용기도 마찰로 표면에 자국이 남을 수 있다.
"기계보다 사람이 더 섬세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필요한 구간이 있어요."

HP&C의 생산시설 자동화율은 약 70%다. 다만 고객사가 어떤 용기와 패키지를 주문하느냐에 따라 실제 자동화 설비 활용 비중은 달라진다. 표준화된 용기를 사용하는 제품은 자동화 라인에서 생산하고, 독특한 형태의 용기나 까다로운 포장 작업에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출고 전까지 반복되는 검증
연구소에선 개발한 화장품이 다양한 환경에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처방으로 만든 시료를 온도가 각기 다른 시험 장비에 넣어 안정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국내와 기후가 다른 동남아나 러시아 등에서도 제품이 변질되지 않는지 검토한다. 제품의 사용기한을 설정할 때도 이러한 시험 결과가 활용된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한 뒤 사용기한까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개발 단계에서부터 살피는 셈이다.
품질관리실에선 원료와 반제품, 완제품에 대한 미생물 검사와 물성 평가, 기능성 분석 등이 진행된다. 제조 단계마다 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원료부터 최종 완제품까지 보관 검체도 별도로 관리한다. 제품 출고 이후 품질 문제가 제기될 경우 같은 제조번호의 제품을 대조하고 생산 이력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관계자는 약 5년간 검체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센터에는 높이 약 20m의 고층 랙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 면적 약 350평에 9단으로 설치된 랙은 약 2800개의 팔레트를 보관할 수 있는 규모다. 높은 선반까지 제품을 적재하기 위해 삼방향 지게차를 사용한다. 바닥의 유도 장치와 적재 위치의 바코드를 활용해 화물을 옮기는 방식이다.
HP&C는 이러한 시설을 기반으로 자체 브랜드 테라비코스(Thelavicos)와 OEM·ODM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화장품과 헬스케어 분야 연구소도 별도로 두고 있다. 연구인력은 전체 인력의 약 13%이며, 회사 측은 매출의 약 10%를 R&D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주요 연구 분야는 히알루론산 가교 기술과 유효성분 안정화, 피부 전달 기술 등이다. 최근에는 필러와 스킨부스터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병원 영업과 의약품 유통으로 쌓은 경험을 화장품 소재·제형 연구와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생산라인을 읽는 통합관제실
코스메카코리아는 국내외 약 600개 고객사의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세계 4위 규모의 화장품 연구개발·제조(OGM) 기업이다. 매월 약 320종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연간 약 1만2000종의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코스메카코리아 음성공장은 생산라인의 실시간 움직임을 대형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는 통합관제실을 운영한다. 벽면엔 공장별 생산 실적과 설비 가동 현황, 에너지 사용량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생산 목표와 실적에 차이가 생기면 화면에 표시되고 담당자에게 알림이 전달된다.
품목이 많다 보니 제품마다 제조 조건이 달라진다. 같은 크림이나 에센스라도 원료의 종류와 함량, 투입 순서, 배합 온도 등에 따라 다른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용기와 포장 방식도 고객사별로 제각각이다.

통합관제실에선 이러한 생산 과정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배합기 내부를 3차원으로 구현한 디지털트윈 화면에선 수상 원료와 유상 원료가 혼합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설비가 가동되는 동안 온도와 회전속도(RPM), 압력 등의 데이터도 초 단위로 기록된다.
태양광 발전량과 전력 사용량, 폐수 처리 상태 등도 확인 가능하다. 설비별 에너지 소비를 감시하고 폐수의 pH 등 관리 항목이 설정 범위를 벗어나면 담당자에게 알림이 전달된다. 제조뿐 아니라 공장 운영 전반에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메카코리아는 2019년부터 생산설비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사적자원관리(ERP)와 제품수명주기관리(PLM) 등 업무 시스템을 고도화했고,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제조조건 분석과 품질관리에 투자하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한 달에 2억 건 이상의 제조 데이터가 저장된다고 설명했다. AI가 이를 분석해 기존보다 나은 제조 조건을 찾아 담당자에게 제안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신제품 개발에도 AI가 활용된다. 코스메카코리아가 보유한 화장품 처방은 약 20만 개다. 새로운 제품의 전성분 정보를 입력하면 기존 처방 가운데 유사한 제품을 찾아 비교하는 '레시피 서브 AI'를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 비슷한 제품을 만들면서 어떤 공정상 문제가 발생했는지, 품질과 관련해 어떤 문제가 제기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량이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로봇도 어려운 화장품 생산
코스메카코리아 음성공장에는 100kg부터 최대 10톤까지 제조할 수 있는 배합 설비가 설치돼 있다. 취급하는 화장품 원료는 약 1만2000종이다. 하나의 제품에 적게는 20종, 많게는 70~80종의 원료가 들어간다.
일부 기초화장품 생산에는 자동 배합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기존에는 작업자가 공정 중간마다 설비를 조작해야 했지만, 미리 설정한 제조 조건에 따라 배합기가 작동하도록 개선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를 전기밥솥에 비유했다. 조리 조건을 설정하면 기계가 알아서 작동하는 것처럼, 화장품도 배합 조건을 미리 입력해 자동으로 제어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원료 투입까지 완전히 자동화하는 작업은 여전히 개발 과제로 남아 있다. 원료 종류가 워낙 다양해 모든 공정에 동일한 시스템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료마다 들어가는 시점이 다 달라요. 화학적인 공정이다 보니 배합 순서도 중요합니다"
코스메카코리아 관계자는 같은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함량과 배합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현재는 대량으로 사용하는 일부 원료부터 자동 투입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전·포장 구역에서도 자동화 설비와 작업자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내용물이 외부 공기와 접촉하는 충전실은 별도 청정구역으로 관리되고, 용기에 내용물을 담고 캡을 닫은 뒤에는 포장라인으로 이동한다.
일부 라인에선 로봇이 제품을 포장하지만, 작업자가 직접 용기와 포장재를 다루는 구역도 적지 않았다. 브랜드마다 요구하는 용기나 포장 방식이 달라 자동화 설비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스메카코리아는 우선 작업자의 부담이 큰 공정부터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무게 20~30kg에 이르는 포장 상자를 옮기거나 팔레트에 적재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이동형 팔레타이징 로봇과 자율이동로봇(AMR)을 연계하는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고정형 로봇은 설치된 생산라인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동형 로봇은 여러 라인을 오가며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회사 측은 올해 12월까지 이동형 팔레타이징 로봇을 도입하고, 2027년 5월까지 AMR을 연계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생산현장 천장에 설치된 약 40대의 CCTV를 AI와 연결해 작업 상황을 분석하고, 로봇의 이동과 작업 배치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무인화 공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제품과 패키지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아직은 작업자의 손을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제조 조건이 표준화된 공정부터 자동화 수준을 높이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제조 거점에서 수출 기지로
충북에는 현재 225개 화장품 제조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 제조기업의 5.4%로, 청주에 96개사, 음성에 66개사가 집중돼 있다. 화장품 산업 종사자는 1만764명이며 수출액은 3억5700만 달러로 전국 4위 규모다.
오송·오창에는 바이오·연구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청주·음성에는 화장품 제조·원료 기업들이 모여 있다. 특히 오송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등 관련 기관이 자리하고 있어 연구개발과 규제 대응에 필요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충북도 바이오식품의약국 첨단바이오과 화장품엑스포팀 최정섭 팀장은 "수도권과의 접근성도 화장품 기업들이 충북에 자리 잡은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주요 바이어와 관련 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이동하기 편리한 입지가 사업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충북도는 제조 기반을 기업들의 해외 판로 확대와 연결하려 하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청주 오스코(OSCO)에서 열리는 '2026 오송화장품뷰티엑스포'에는 국내외 250개 기업이 참가한다. 해외 참가기업은 중국·일본·독일·불가리아 등 27개사다.
올해는 39개국에서 구매·수입 역량을 검토한 해외 바이어 200명을 초청했다. 현장 등록 바이어 등을 포함하면 약 500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상담 목표는 1200건 이상, 2600억원이다. 초기 화장품 기업을 위한 투자유치·판로 지원 프로그램도 처음 마련했다.
화장품 제조시설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상도 나왔다. 신용한 충북도지사는 이날 오찬에서 "청주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곧바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대신 지역에 머무르며 소비할 수 있도록 K-뷰티 관광 코스를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 지사는 화장품 공장을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니라 관람객이 찾을 수 있는 갤러리나 캠퍼스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청주공항과 화장품 제조시설, 사후면세점 등을 연계하겠다는 장기적인 구상이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한 고기능성 화장품 개발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충북에 구축 중인 방사광가속기를 비롯한 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화장품 소재 연구와 산업화를 지원하겠다는 설명이다.
신 지사는 "K-컬처 아레나와 K-뷰티 성지순례 코스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바이오와 결합한 고기능성 코스메틱 위주로 충청북도가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