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제약바이오 업계가 전례 없는 '노사 연대'를 형성하며 강력한 저항에 나섰다.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위기감 앞에 노사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반면,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는 오히려 파열음이 감지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려는 ‘보험 라인’과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산업 라인’ 간의 정면충돌이다.
"생존 앞에 적은 없다"... 제약업계, 이례적 노사 공동 전선
임금과 복지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던 제약업계 노사가 이번 약가 개편안 앞에서는 완벽한 '운명공동체'가 됐다. 이번 개편안이 단순한 영업이익 감소를 넘어, 국내 제약 산업 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노사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사측인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는 곧장 매출 급감과 R&D 투자 여력 상실로 이어진다"고 호소한다. 정부가 주문하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필요한데, 원가 보전도 힘든 약가로는 공장 가동조차 어렵다는 비명이다.
노동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약 노조 측은 "매출 감소는 필연적으로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며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실패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노사가 한목소리로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만큼 현장이 느끼는 타격이 실존적 위협임을 방증한다.

복지부의 딜레마... '곳간 지기' vs '산업 육성' 엇박자
업계의 제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단호해 보이는 복지부의 태도 이면에 내부 갈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려는 '보험 라인'과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산업 라인'의 태생적 목표 차이가 이번 개편안을 두고 수면 위로 드러났다.
보험 라인의 최우선 과제는 '비용 통제'다.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약제비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이들에게 제약사는 육성의 대상이라기보다,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통제가 필요한 '공급자'에 가깝다.
반면, 국정과제 중 하나인 제약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워야 하는 산업 라인은 속이 타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약가 인하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결국 산업 경쟁력 약화와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부 갈등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복지부 실무 과장들의 발언을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임강섭 제약바이오산업과장의 발언 핵심은 '현실론'이었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복제약) 판매 수익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한국형 R&D 선순환 구조'를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과장은 "혁신형 제약기업조차 매출의 40% 이상이 제네릭에서 나오고 있다"며 "제네릭을 통해 번 8조 원의 돈으로 2.7조 원을 R&D에 투자하는 것이 우리 산업의 현주소이자 인정해야 할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즉, 무조건적인 제네릭 때리기보다는 기업들이 R&D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산업 보호' 논리를 펼친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임 과장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 개편'을 제시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 중 인증제를 개편해 R&D 비중과 해외 진출 지표를 강화하겠다"며, 약가 인하라는 충격 요법 대신, 인증 기준 고도화를 통해 기업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육성 중심'의 로드맵을 밝혔다.
반면, 김연숙 보험약제과장의 시선은 '구조조정'에 꽂혀 있었다. 김 과장은 업계의 '위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번 약가 개편이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닌 '비효율의 정상화'임을 분명히 했다.
김 과장은 "2012년 이후 13년간 제네릭 약가가 높게 유지되어 왔다"며 "이번 개편은 기형적인 제네릭 중심 구조를 혁신 생태계로 바꾸기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업계가 우려하는 R&D 위축 가능성에 대해서도 "과거 약가 인하 때도 R&D 투자는 오히려 늘었다"며 선을 그었다.
김 과장의 논리는 명확하다. 제네릭 약가 인하로 줄어드는 매출은 R&D 축소가 아니라, 과도한 영업비용(CSO 수수료 등) 절감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약가 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은 신약과 필수의약품 보상으로 환원될 것"이라며, 제네릭 수익에 안주하는 기업들에게 강제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설익은 정책의 공포... '산업 고사' 막아야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바이오 강국 도약"을 외치며 지원책을 쏟아내고, 다른 쪽에서는 "약가 인하"로 수익 구조를 악화시키는 모순된 신호가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현재의 갈등 구도는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과 '제약 산업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정부의 고뇌를 보여준다. 그러나 재정 논리만 앞세워 산업 생태계를 훼손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의약품 공급망이 붕괴되어 환자들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해법은 기계적인 약가 깎기가 아니라, '가치 기반의 약가 결정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복지부는 산업을 죽이지 않으면서 재정을 효율화하는 정교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내부 정리조차 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으로는 똘똘 뭉친 업계의 저항을 돌파할 수도, 산업 육성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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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위기감 앞에 노사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반면,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는 오히려 파열음이 감지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려는 ‘보험 라인’과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산업 라인’ 간의 정면충돌이다.
"생존 앞에 적은 없다"... 제약업계, 이례적 노사 공동 전선
임금과 복지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던 제약업계 노사가 이번 약가 개편안 앞에서는 완벽한 '운명공동체'가 됐다. 이번 개편안이 단순한 영업이익 감소를 넘어, 국내 제약 산업 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노사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사측인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는 곧장 매출 급감과 R&D 투자 여력 상실로 이어진다"고 호소한다. 정부가 주문하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필요한데, 원가 보전도 힘든 약가로는 공장 가동조차 어렵다는 비명이다.
노동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약 노조 측은 "매출 감소는 필연적으로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며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실패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노사가 한목소리로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만큼 현장이 느끼는 타격이 실존적 위협임을 방증한다.

복지부의 딜레마... '곳간 지기' vs '산업 육성' 엇박자
업계의 제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단호해 보이는 복지부의 태도 이면에 내부 갈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려는 '보험 라인'과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산업 라인'의 태생적 목표 차이가 이번 개편안을 두고 수면 위로 드러났다.
보험 라인의 최우선 과제는 '비용 통제'다.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약제비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이들에게 제약사는 육성의 대상이라기보다,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통제가 필요한 '공급자'에 가깝다.
반면, 국정과제 중 하나인 제약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워야 하는 산업 라인은 속이 타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약가 인하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결국 산업 경쟁력 약화와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부 갈등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복지부 실무 과장들의 발언을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임강섭 제약바이오산업과장의 발언 핵심은 '현실론'이었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복제약) 판매 수익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한국형 R&D 선순환 구조'를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과장은 "혁신형 제약기업조차 매출의 40% 이상이 제네릭에서 나오고 있다"며 "제네릭을 통해 번 8조 원의 돈으로 2.7조 원을 R&D에 투자하는 것이 우리 산업의 현주소이자 인정해야 할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즉, 무조건적인 제네릭 때리기보다는 기업들이 R&D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산업 보호' 논리를 펼친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임 과장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 개편'을 제시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 중 인증제를 개편해 R&D 비중과 해외 진출 지표를 강화하겠다"며, 약가 인하라는 충격 요법 대신, 인증 기준 고도화를 통해 기업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육성 중심'의 로드맵을 밝혔다.
반면, 김연숙 보험약제과장의 시선은 '구조조정'에 꽂혀 있었다. 김 과장은 업계의 '위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번 약가 개편이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닌 '비효율의 정상화'임을 분명히 했다.
김 과장은 "2012년 이후 13년간 제네릭 약가가 높게 유지되어 왔다"며 "이번 개편은 기형적인 제네릭 중심 구조를 혁신 생태계로 바꾸기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업계가 우려하는 R&D 위축 가능성에 대해서도 "과거 약가 인하 때도 R&D 투자는 오히려 늘었다"며 선을 그었다.
김 과장의 논리는 명확하다. 제네릭 약가 인하로 줄어드는 매출은 R&D 축소가 아니라, 과도한 영업비용(CSO 수수료 등) 절감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약가 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은 신약과 필수의약품 보상으로 환원될 것"이라며, 제네릭 수익에 안주하는 기업들에게 강제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설익은 정책의 공포... '산업 고사' 막아야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바이오 강국 도약"을 외치며 지원책을 쏟아내고, 다른 쪽에서는 "약가 인하"로 수익 구조를 악화시키는 모순된 신호가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현재의 갈등 구도는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과 '제약 산업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정부의 고뇌를 보여준다. 그러나 재정 논리만 앞세워 산업 생태계를 훼손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의약품 공급망이 붕괴되어 환자들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해법은 기계적인 약가 깎기가 아니라, '가치 기반의 약가 결정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복지부는 산업을 죽이지 않으면서 재정을 효율화하는 정교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내부 정리조차 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으로는 똘똘 뭉친 업계의 저항을 돌파할 수도, 산업 육성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