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살게 되는 것은, 요즘이야 쿨하다고들 생각하지만, 예전 같으면 억센 팔자라 그런다고 했다. 나도 첨엔 그저 한국을 한번 뜨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한동안은 인턴이다 보드시험이다
바짝 긴장하고 살다가, 약사가 된지도 어느새 2년이 넘은 지금은, 가끔씩 내가 여기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개봉영화는 물론 극장에 걸려보지도 못하는 영화들까지 국제영화제, 각종 상영회 등을 통해 꿰고 지내던 생활에서, 지금은 온종일 일하고 쉬는 날 쇼핑하고 격주로 간신히 교회 가는 게 전부인 생활로 전락했고(그건 한국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까?), 또 프리스쿨에 다니는 3살짜리 딸에게서는 함께 놀아주지 않는 엄마라는 불만이 늘 접수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이 생활에서 탈출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자국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외국인에 대한 법 따위는 밥 먹듯이 바꾸는 통에, 약사가 되고 나서도 신분문제는 여전히 갈 길이 멀고, 또 2003년 1월 이후 졸업자에 대해서는 4년제 학제 출신의 외국인 약사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이 조건이 다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닌 듯) 2004년 이후 졸업생들은 배제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늘 약사가 부족해 동동거리는 스케줄러를 볼 때나, 어디서 데려오는지 아무튼 끊임없이 들여오는 외국출신 인턴들을 볼 때면, 아직도 기회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쓰려는 글은 미국약사 되기 가이드, 뭐 그런 건 아니다. WWW.NABP.NET이나 각 주의 보드 홈페이지에 가면 필요한 요건과 절차들은 다 나와 있다.
물론 혼자 힘으로 애써서 찾아 읽고 해석하고 또 여기저기 물어가며 갖가지 요구사항들을 준비하기가 만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 수고도 없이 손쉽게 미국약사가 되고 싶어한다면 이후의 미국생활은 참으로 고달플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란 나라가,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이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이 글이, 막연한 관심을 갖고 계신 한국의 약사님들께는 약간의 생각꺼리로, 다른 분들께는 잠깐의 흥미꺼리로 읽히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미국행을 결심하다>
어머니의 강권으로 약대에 진학은 하였지만 워낙 나의 적성과는 거리가 먼 분야였기에 공부보다는 방과후 활동에 더 열을 올리다가, 5학년째에, 결국은 그전 4년간 했던 공부 양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하고서야 그럭저럭 약사로서의 경력이 시작되었다.
약국, 병원, 제약회사, 광고회사 등을 전전하며 한 직장에 1년 이상을 진득하니 붙어있지 못한 채 7년 차로 접어들던 무렵, 잠시 일하게 된 약국에서 만난 어느 약사님으로부터 약사회관에서 토요일마다 미국약사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수년 전에도 한번 관심이 있어 알아본 적이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무렵 이 모임의 얘기를 듣고, 또 강의료가 저렴해서 내 예산범위에도 맞는 걸 알게 되자 에라, 하고는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각종 문화생활에 수입의 상당액을 탕진하다 보면, 저축을 할 여유는 거의 없어지게 된다. 지금 갖고 있는 음반들과 희귀 비디오들이 다 그때 장만한 것이다.)
워낙 졸업평점이 대단(!)하다 보니 성적표 안 내밀고 발전적인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덜컥 시작은 했지만, 만만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시험을 보려면 일단은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데, 99년 과테말라 여행길에 별 생각 없이 미국관광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어, 재신청을 시도해보려면 일정 기간 이상 적당한 회사를 다녀야 했고, 또 내가 그토록 피해 다니던 약물치료학과 정면 승부를 해야 했는데, 두 강사님의 명 강의가 초기의 나에게는 그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비자를 위해 들어간 회사란 데가 9시에 출근해 2시에 퇴근하는 의료기기 수입업소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약국 일도 시작했고, 또 새길교회 의료봉사팀을 따라 매달 한번씩 나가고 있던 조선족진료 봉사활동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회사에서 약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틈틈이 책을 보았지만, 기초부터가 부실한 나로서는 강사님의 질문에 대답은커녕 그저 그 총알 같은 강의를 받아 적는 옆자리의 동료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래도 졸지 않기 위해 늘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절대 다시 듣지 않을 녹음도 하고, 누군가가 녹음한 테이프를 구해서 아주 가끔 들어보기도 하면서 몇 달이 흐르고 난 어느 날, 강의가 조금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Heart Disease 분야가 끝나고 다음 분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음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어쨌든 내게는 갑자기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제서야 주변의 동료들 모두가 TSE라는 시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체 TSE가 뭐길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FPGEE 시험을 보러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던 터라, 나는 일단 TSE 시험부터 보기로 했다.
시험접수를 해놓고 나서 한 달 동안, 당시 토요반 새벽영어공부시간에 쓰던 TSE 교재를 내 손으로 한번 요약정리를 했다. (지금은 Test of Spoken English가 iBT에 포함되었고 교재도 다양하지만, 2001년 초 그때는 그게 내가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교재였다.)
그리고 1시간에 5만원씩이나 하던 일대일 영어강좌 4시간을 큰 맘 먹고 끊어서, 일주일에 1시간씩 4번 들으러 갔다.
주 55시간씩 일하고 나면 매주 진행되는 강의를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는데도 집에 혼자 있으면 TV를 보면 봤지 절대로 공부를 못하는 내 나쁜 버릇 때문에, 공부는 거의 버스나 지하철, 혹은 약국에서 틈틈이 했다. 쉬는 날에는 대학로집에서 가까운 정독 도서관에 가기도 했지만 그런 호사를 누리는 날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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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살게 되는 것은, 요즘이야 쿨하다고들 생각하지만, 예전 같으면 억센 팔자라 그런다고 했다. 나도 첨엔 그저 한국을 한번 뜨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한동안은 인턴이다 보드시험이다
바짝 긴장하고 살다가, 약사가 된지도 어느새 2년이 넘은 지금은, 가끔씩 내가 여기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개봉영화는 물론 극장에 걸려보지도 못하는 영화들까지 국제영화제, 각종 상영회 등을 통해 꿰고 지내던 생활에서, 지금은 온종일 일하고 쉬는 날 쇼핑하고 격주로 간신히 교회 가는 게 전부인 생활로 전락했고(그건 한국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까?), 또 프리스쿨에 다니는 3살짜리 딸에게서는 함께 놀아주지 않는 엄마라는 불만이 늘 접수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이 생활에서 탈출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자국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외국인에 대한 법 따위는 밥 먹듯이 바꾸는 통에, 약사가 되고 나서도 신분문제는 여전히 갈 길이 멀고, 또 2003년 1월 이후 졸업자에 대해서는 4년제 학제 출신의 외국인 약사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이 조건이 다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닌 듯) 2004년 이후 졸업생들은 배제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늘 약사가 부족해 동동거리는 스케줄러를 볼 때나, 어디서 데려오는지 아무튼 끊임없이 들여오는 외국출신 인턴들을 볼 때면, 아직도 기회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쓰려는 글은 미국약사 되기 가이드, 뭐 그런 건 아니다. WWW.NABP.NET이나 각 주의 보드 홈페이지에 가면 필요한 요건과 절차들은 다 나와 있다.
물론 혼자 힘으로 애써서 찾아 읽고 해석하고 또 여기저기 물어가며 갖가지 요구사항들을 준비하기가 만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 수고도 없이 손쉽게 미국약사가 되고 싶어한다면 이후의 미국생활은 참으로 고달플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란 나라가,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이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이 글이, 막연한 관심을 갖고 계신 한국의 약사님들께는 약간의 생각꺼리로, 다른 분들께는 잠깐의 흥미꺼리로 읽히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미국행을 결심하다>
어머니의 강권으로 약대에 진학은 하였지만 워낙 나의 적성과는 거리가 먼 분야였기에 공부보다는 방과후 활동에 더 열을 올리다가, 5학년째에, 결국은 그전 4년간 했던 공부 양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하고서야 그럭저럭 약사로서의 경력이 시작되었다.
약국, 병원, 제약회사, 광고회사 등을 전전하며 한 직장에 1년 이상을 진득하니 붙어있지 못한 채 7년 차로 접어들던 무렵, 잠시 일하게 된 약국에서 만난 어느 약사님으로부터 약사회관에서 토요일마다 미국약사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수년 전에도 한번 관심이 있어 알아본 적이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무렵 이 모임의 얘기를 듣고, 또 강의료가 저렴해서 내 예산범위에도 맞는 걸 알게 되자 에라, 하고는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각종 문화생활에 수입의 상당액을 탕진하다 보면, 저축을 할 여유는 거의 없어지게 된다. 지금 갖고 있는 음반들과 희귀 비디오들이 다 그때 장만한 것이다.)
워낙 졸업평점이 대단(!)하다 보니 성적표 안 내밀고 발전적인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덜컥 시작은 했지만, 만만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시험을 보려면 일단은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데, 99년 과테말라 여행길에 별 생각 없이 미국관광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어, 재신청을 시도해보려면 일정 기간 이상 적당한 회사를 다녀야 했고, 또 내가 그토록 피해 다니던 약물치료학과 정면 승부를 해야 했는데, 두 강사님의 명 강의가 초기의 나에게는 그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비자를 위해 들어간 회사란 데가 9시에 출근해 2시에 퇴근하는 의료기기 수입업소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약국 일도 시작했고, 또 새길교회 의료봉사팀을 따라 매달 한번씩 나가고 있던 조선족진료 봉사활동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회사에서 약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틈틈이 책을 보았지만, 기초부터가 부실한 나로서는 강사님의 질문에 대답은커녕 그저 그 총알 같은 강의를 받아 적는 옆자리의 동료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래도 졸지 않기 위해 늘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절대 다시 듣지 않을 녹음도 하고, 누군가가 녹음한 테이프를 구해서 아주 가끔 들어보기도 하면서 몇 달이 흐르고 난 어느 날, 강의가 조금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Heart Disease 분야가 끝나고 다음 분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음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어쨌든 내게는 갑자기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제서야 주변의 동료들 모두가 TSE라는 시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체 TSE가 뭐길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FPGEE 시험을 보러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던 터라, 나는 일단 TSE 시험부터 보기로 했다.
시험접수를 해놓고 나서 한 달 동안, 당시 토요반 새벽영어공부시간에 쓰던 TSE 교재를 내 손으로 한번 요약정리를 했다. (지금은 Test of Spoken English가 iBT에 포함되었고 교재도 다양하지만, 2001년 초 그때는 그게 내가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교재였다.)
그리고 1시간에 5만원씩이나 하던 일대일 영어강좌 4시간을 큰 맘 먹고 끊어서, 일주일에 1시간씩 4번 들으러 갔다.
주 55시간씩 일하고 나면 매주 진행되는 강의를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는데도 집에 혼자 있으면 TV를 보면 봤지 절대로 공부를 못하는 내 나쁜 버릇 때문에, 공부는 거의 버스나 지하철, 혹은 약국에서 틈틈이 했다. 쉬는 날에는 대학로집에서 가까운 정독 도서관에 가기도 했지만 그런 호사를 누리는 날은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