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타이틀 텍스트
내가 아는 동성제약 이선규 회장
입력 2005-11-30 15:27 수정 최종수정 2006-09-04 14:45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머리약과 배탈, 설사약의 원조인 동성제약 이선규 회장은 천로역정과 같은 길에서 성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누구도 할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인생이었다. 양귀비 1호로부터 정로환 배탈 설사약을 만들기까지 삶을 보면 얼마나 힘준산령을 넘었는지 짐작 할 수가 있다. 그가 성공을 한 것은 孝 (효)라고 할 수가 있다.

일찍이 어머님이 카톨릭 신자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선규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가 잘 되기를 빌고 빌었다. 검정콩 두말을 팔아서 교복을 사 입고 무작정 상경하여 곰국 장사집에서 하숙하며 빈대에 물리고 뜯기면서 성공해보려고 애쓰고 힘 쓸때 어머님이 찾아왔는데 이때는 겨우 은단장사를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어머님이 고생하신다는 말을 듣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연을 들었을 때는 나도 편모슬하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어머님의 부탁은 500원 빚진 것을 갚을 것과 집을 뜯고 새 집을 지으라고 하는 것과 그 옆에 성당을 지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로원을 지어서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의 안식할 곳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당시 광목 1통에 이원밖에 안가던 시대인데 500원은 엄청난 거금이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을 하고 고향으로 어머님을 보내고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님의 약속을 위하여 열심히 뛰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머님은 여러 형제중 이선규 회장에게 더 큰 기대를 했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질 때도 참고 과자가 먹고 싶고 호떡이 먹고 싶어도 주전부리 한 번 안 하고 노력하고 애써 빚을 갚았다고 했다.

이때 별명이 왕소금이었다. 언제나 입던 한 벌 옷에 떨어진 운동화 고물같은 자전거를 타면서 벌었다고 했다. 나도 한 때 서울에서 인천까지 기동차를 타고 바늘 장사를 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의형제를 삼았다.

동성제약 회장인 이선규님을 만난지는 햇수로 9년이 되었다. 1997년 가을에 이선규 회장의 누이동생 이을유로부터 오빠가 식물인간같이 되었다고 하며 오빠를 살려달라고 했다. 그때 오빠는 치매와 중풍으로 언어장애와 수족을 쓰지 못한다고 하며 일본의 유명한 병원을 다니면서 수억원의 돈이 들었지만 병을 고치지 못하고 삼성 의료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으로 염려를 하면서 데리고 오라고 했다.

어느날 아침 10시에 이선규 회장이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우리 기독 한의원을 찾아왔다. 진단일지가 한국에 있어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조그마한 체구에 도리우찌 모자를 쓰고 좀 늦은 가을이라 오바를 걸치고 왔다는 것은 기억한다. 진단을 한 결과 뇌졸중으로 중풍이 와서 하지 마비가 되고 언어장애가 되어 뇌신경빈혈로 눈에 물체가 돌면서 어지러워 고개를 못들고 눈도 뜨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력도 없고 사람들도 분간을 잘 못하는 것이었다. 삼성 의료원과 일본을 아홉 번이나 다니면서 더 악화되어 하지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던지라 치료하기가 난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고 의사로서 임상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침과 한약의 치료로 칠 일만에 언어장애가 풀리고 어지러운 빈혈이 사라지고 다리가 힘이 오게 되었다. 당시 내가 개발해서 특허를 얻은 세라믹 HOME-52혈기를 머리에 대어 큰 효과를 보았다.

1개월 쯤 지나서 회복이 되어 자신에게 생명의 은인이 되니 고영한 원장을 자기뿐 아니라 古정일형 박사님의 사모인 이태영 박사가 치매로 집에서 누워있다고 하여 소개받아 정대철 의원 사모와 이태영 박사님의 거하는 집으로 찾아가 치료를 해서 좋은 결과로 효과가 있는 것을 보고 이선규 회장님은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이 치매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동성제약에서 개발한 치매 약을 일본왕실 병원을 통해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자비로 레이건을 초청할 터이니 정박사가 치료를 맡아달라고 하여 그렇게 해보자고 의논해서 이선규 회장님이 미국 국무성을 통하여 레이건 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서울대 병원이나 삼성 의료원에 입원해 두고 치료를 받기로 해서 한국 외무부와 의논한 결과 한국에 있는 동안 신변안전에 문제가 된다고 하여 이선규 회장님이 애쓰고 힘 쓴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지금도 그 때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나는 2005년 11월 18일 예수교 장로회 연합회 총회가 있어 한국에 나갔다. 17일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운 이선규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두고 왔는데 그때도 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이런 좋은 마음을 가진 이 회장님에 대해서 모르는 면을 좀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필리핀에 돌아와서 이 글을 써본다.

이선규 회장님은 왕소금같이 짜게 벌어 모아서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1988년 8월에는 잃을 뻔 했던 생명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시작한 것이 우수한 약품을 개발하려고 이선규 약학상을 제정하여 좋은 약을 개발한 인재들에게 상과 상금을 주고 있다. 나는 양로원을 지으려고 일산에 다 땅을 사서 여러해 동안 무료 양로원을 지으려고 했지만 군사보호지역이라 풀어지지 않아서 어머님의 유언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법인체로 해서 짓도록 했지만 유언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이선규 회장에게 돌려주었는데 취득세가 많이 나와 법정 투쟁에서 승소한 것을 알고 있다.

이선규 회장님의 “가난아 비켜라”라는 책 299페이지에서 “아직 할 일은 많은데 해는 서산에 걸려있고”라는 제목은 뇌졸중으로 희망이 사라지고 남은 절망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병을 고치고 더 남기고 가야 할 것을 깊이 생각한 끝에 이선규 약학상을 제정했고 또 어머님의 마지막 유언인 무료 양로원과 수양관을 건립하려고 하고 있다.

나는 지금 필리핀에 와서 있지만 항시 형님의 건강이 염려되어 한 주일에도 몇 번씩 전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에도 내가 방문 했을 때 인사를 하고 나오려 했는데 서로 눈시울을 적시며 끈끈한 형제애를 느끼며 돌아왔다.

                     정영진(한의원 박사/PHILKOR 동양 의과대학 부속 동양의료원 원장)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AI, 먼 미래 아닌 약국 현장의 도구"…경기약사학술대회가 보여준 변화
연제덕 경기도약사회장 "AI, 약사 대체 아닌 직능 고도화 도구"
“포장은 더 이상 마지막 공정 아니다”…카운텍, 제약 자동화 전략 확대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내가 아는 동성제약 이선규 회장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내가 아는 동성제약 이선규 회장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