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학대학을 입학했을 때, 약사국시에 합격했을 때, 내 약국을 개국했을 때 약사로서 가지는 자부심과 사명감은 소중한 기억이다.
그 자부심을 간직한 채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이라는 기적을 팔 수 있는 약사이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아침마다 되뇌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약국도 소매업이다 보니 약국을 경영하면서 느끼는 후회나 어려움은 보람을 만끽하는 만큼에 비례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일까.
약국경영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어려움, 기쁨과 슬픔을 인터넷이나 소모임등을 통해 공유하는 약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연 내가 잘한걸까' '그 영업사원 밉더라'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등등...
내 이웃 약사들이 경험한 일견 재밌고 일견 화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살짝 한번 들여다보자.
△드링크 안 주나요.
A약사는 천식으로 인해 2~3일 마다 처방전을 갖고 오시는 할머니가 안쓰럽다.
더구나 집도 꽤 먼 탓에 다녀가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스러우시겠다 싶어 비 의약품 드링크를 한병 씩 드렸다.
그런데 최근 이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돌아가신거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던 차에 같이 다니시던 할머니가 근황을 일러주신다.
"그 할머니 저 위 약국에서는 드링크를 두병씩 준다고 거기로 옮겼다우"
헛 웃음만 나온다.
하긴 어떤 약국은 대일밴드 하나 구입하고는 드링크 안주냐고 큰 소리치는 환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복약지도보다 드링크 한병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환자들을 보며 '사람들이 약사들을 장사꾼으로 인식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거짓말탐지기를 설치할 수도 없고...
어느 약국이나 무책임하고 일 못하는 직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가 보다.
B약국의 한 직원은 봉급 받은 다음날 출근해서 '점심 먹고 올께요'하고 나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C약국 약사는 3주전 채용한 직원이 너무 무뚝뚝해 좀 친절하게 하면 안되겠냐고 부탁했더니 바로 그만둔다고 엄포를 놓고는 그동안 일한 임금이 적다며 난동까지 부리는 통에 민망했다.
D약국 약사는 약국근무가 처음인 여직원을 고용한 후 보름동안 열심히 교육시키고 있는 데 어느날 돈이 급하다며 월급을 미리 줄 수 없냐고 하길래 할 수없이 줬더니 역시 다음날부터 출근을 안한다.
겨우겨우 연락했더니 더 좋은 직장을 구했다며 돈 생기면 미리받은 월급은 꼭 갚겠다고 한다.
'여직원 고용하는 데 선불주고 나중에 계산하는 건 술집에서나 하는 일 아닌가' D약사는 자조섞인 농담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아무리 사람관계가 힘들다지만 그렇다고 직원을 쓰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직원들 온갖 비위 다 맞춰가며 일하기도 힘들고, 20평 남짓한 공간 속 사장님도 아닌 약사들은 괴롭다.
△의사 선생님 갖다드려야 돼요
며칠전 거래하던 회사 담당자가 와서는 요즘 처방이 많이 나오냐고 하면서 병원 원장님 갖다주게 드링크 한박스 달라고 한다.
E약사는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순간 나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고객인데 차별받는다는 느낌에 화가 치밀었다.
슈퍼가서 사 갖다주라고 하고 그 회사 재고정리하고 거래를 중단해 버렸다.
이후 그 영업사원에게 잘잘못을 설명해줬지만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모습이 너무 얄밉다.
그리고 이젠 관행화되다시피 하고 있는 영업사원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추락하는 약국의 위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약 부작용 난동 현금 갈취…약국이 봉이냐
F약국은 얼마전 발생한 황당한 사건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느날 갑자기 한 남자가 약국에 나타나선 '약을 먹고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린 것이다.
다른 환자들도 많이 있는 시간임에도 이 남자는 막무가내로 소란을 피우며 약 부작용 사건발생에 따른 법적문제까지 들먹이며 약사를 위협했다.
더구나 약사회 관계자 이름까지 들먹이며 결국 십여만원을 갈취당하다시피 뺐겨버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관내에 몇몇 약국이 똑같은 수법으로 당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약사감시에다 얼마전에는 1회용봉투 팜파라치까지 속을 섞이더니 이제는 부작용을 들먹이며 돈을 갈취하는 파렴치범까지 등장했다.
'약국이 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