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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 경기도약사회 나레연 약사
입력 2004-12-08 11:21 수정 최종수정 2006-09-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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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레연 약사
분업이후 대부분의 약사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여유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처방전 조제에 복약지도까지 도맡아 하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짬을 내기도 힘들고, 다양해진데다 수시로 바뀌는 전문약을 비롯한 전반적인 약국관리 업무도 많아졌다. 당연히 취미생활에 할애할 시간을 찾기란 쉽지 않고, 빡빡한 일상에 여유를 잃기 십상이다. 이번호에는 약국을 운영하며 노래, 글쓰기, 골프, 자동차, 여행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통해 향기 나는 삶을 일구어가고 있는 경기도약 나레연 약사를 만나봤다.

얼마 전 동료 기자로부터 한 개국약사가 낸 음반이라며 노래 CD 한 장을 받았다. 제 2의 주현미 같은 약사가 나왔나 생각하며, 물었더니 경기도약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약사가 직접 부른 노래들을 담은 CD라고 한다. 거기에 티칭프로골퍼 자격증도 있고, 책도 냈단다.

약사회 부회장직을 맡으며 개국약국을 직접 경영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녹록치 않은 일상일텐데,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하는 궁금함을 갖고 약국을 찾았다. 조금은 한적해 보이는 임광 아파트단지 상가에 위치한 **약국. 연락을 하고 찾아가며 몇번의 통화를 했지만 목소리만으로는 좀처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던 나약사. 약국으로 들어서자 조금은 호리호리한 외모에 편안한 인상의 중년 신사가 반갑게 맞는다.

늦은 저녁식사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음식점으로 가는 차안에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카오디오를 통해 CD며 테이프에 녹음한 노래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그의 표정이 생기 가득하다.

인생을 노래하고 자연을 사색하는 음유시인

"지금이야 노래방도 흔하고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 대중화돼 있었지만 70∼80년대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노래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요. 어쩌다 업무상 접대 때문에 들른 바에서 노래를 하면 녹음해 주곤 했는데 그런 정도가 다인 것 같네요. 평소에도 노래를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지만, 제대로 노래를 배우고 내 음반을 녹음해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죠."

나레연 약사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접하게 된 것은 '동두천 노래모임'이라는 약사들의 노래동호회를 통해서다. 지인들과 노래모임을 해 보자는 이야기도 했지만 좀처럼 시간을 내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아 아쉬웠던 차에 지난해 10월24일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노래동호회의 1주년 기념모임에 나가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동호회에 참여하면서 포켓용 수첩에 자신만의 애창곡 리스트를 담은 노래수첩도 만들어 연습하다보니 그 목록만도 수백곡이 넘는다. 모임을 통해 회원 서로간 장단점도 지적해 주며 꾸준한 연습을 이어가다 보니 노래실력도 부쩍 늘었다. 그러던 중 모임의 회장으로부터 개인 음반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이번 노래 CD를 제작하게 됐고, 그렇게 만든 음반 500여장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무슨 음반이냐며 손사래를 쳤죠. 하지만 직접 노래를 녹음해 보면서 이런 작업을 통해 자신의 노래실력도 더 키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됐고, 동료 회원들이 만든 음반들을 들어보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번 도전해 보자'하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만들어보니 스스로도 성취감이 있지만, 내가 직접 부른 나만의 애창곡들을 담은 CD를 지인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데서 또 하나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약사는 특히 업무에서 많은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약사들에게는 노래가 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이미 건강관리와 질병치료에서 음악요법의 효과는 입증되고 있듯이 스트레스 해소에 특효라는 것.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처럼 그의 인생 또한 수많은 삶의 파고를 헤쳐온 나날이었다. 시골출신으로 서울에 상경,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수학하던 중 고3이 되어서야 뒤늦게 마음을 먹고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엄두도 못 낼 처지였기 때문에 재수까지 해 가며 서울대 약대에 입학하게 됐지만, 공고출신인 그에게 약대의 교과목들은 그리 만만치 않은 난제였다. 하지만 이런 불리한 조건들이 그를 더욱 공부에 매진하게 했다.

이렇게 대학을 마치고 제약사에서의 직장생활을 거쳐 87년 개국을 해 이제 웬만큼 기반을 잡았다 싶으니 의약분업이 시작됐고 인근에 병의원이 없으니 약국경기도 많이 침체됐다. 하지만 그는 굳이 약국을 옮기지 않았다. 10년 넘게 자신의 약국을 찾아 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온 건강지킴이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약사는 살아가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아니겠냐며 자신의 인생관을 담담히 전했다. 더불어 그러한 기반 위에서 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을 즐기고, 삶과 자연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 안에 담긴 순리를 깨달아 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그는 이러한 인생관이 말해주듯 약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살아왔다. 열심히 약학과 약국경영, 환자 서비스에 대한 공부를 했고, 여느 약사들처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말도 잊은 채 약국운영에 매진한 적도 있다. 1990년 수원시약사회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약사회활동을 시작해 지금도 경기도약사회 부회장직을 맡아 회 발전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그의 외도도 노래 하나에만 그치지 않았다. 1991년부터 시작한 골프는 취미 수준을 넘어 미국 티칭 프로 자격증까지 취득했고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아 각종 차량들의 성능과 시승기 등 자료를 스크랩하고 인터넷을 통해 동호인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도 이런 활동을 통해 주욱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을 어렵게 수소문해, 조금 무리가 됐지만 덜컥 사버린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뿐만 아니라 올 3월에는 그 동안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 활동을 통해 쌓아온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자연에 대한 사색, 그리고 온갖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대한 글을 모아 수필집 '기억 뒤편으로 세월의 강은 흐르고...'를 내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레연 약사는 어둠에 잠긴 원천호수 가를 지나며 자신의 1급 드라이브코스라고 자랑스레 소개한다.

"매일 출퇴근길에 이곳을 지날 때면 그 아름다운 경관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고, 가끔 좋은 글 소재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죠. 이런 자연을 벗삼아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그속에 담겨진 의미를 곱씹어가는 것, 이게 제가 살아가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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