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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한 백골부대 용사들!
남양주시 카이로약국 김재농 약사 에세이
입력 2005-07-07 10:38 수정 최종수정 2006-09-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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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농 약사
죽어서야 백골이 살아도 백골(白骨), 백골이 되련다 나라 위하여….

이 노래는 백골사단 부대가(部隊歌)의 첫 음절이다. 처음 들을 땐 약간 기분 나쁜 구절이지만 행군을 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부르면 정말 애국심이 일어난다. 해골 마크를  단 가슴은 뿌듯하고 두 주먹엔 불끈불끈 힘이 솟는다.

지난 겨울 약국이 한가로운 어느 날이었다. 문득 몇몇 전우(戰友)가 생각났다. 40년이 흐른 세월이다. 그들은 지금 무얼 하며 또 어떻게 변했을까? 만나지는 못하고 살아왔지만 가끔씩 되살아나는 추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정적을 깨뜨리고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목소리는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자기를 아느냐고 한다. 오, 알고 말고! 내가 키 크고 잘 웃기는 신 상병을 왜 몰라. 그리고 나는 대뜸 그의 선배인 조 병사의 안부를 물었고, 그는 나에게 '허스키 보이(Boy)' 허 상병의 안부를 물었다. 이렇게 하여 삽시간에 서로 통화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그래 모두들 살아있었구나. 정말 살아있었어….

몇 개월이 흐른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노인 한 사람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온다. '헤즐레한' 낚시꾼 차림의 그는 바로 조 병사였다. 빠진 이도 아랑곳 않고 함박웃음이다. "조 병사 이게 얼마 만인가!!" 부둥켜 않은 나의 가슴이 찡하다. 드링크 한 병을 권하니 손을 저으며 사양한다. 그 사양하는 모습이 예전의 선비 모습 그대로다. 잠시 후 키다리 신 상병이 손을 흔들며 씩씩하게 나타난다. 특유의 웃음에 소탈한 신 상병! 아직도 유머가 넘친다. 바로 뒤이어 허스키 보이 허 상병이 빛나는 이마를 앞세우고 들어선다. 그때도 이마가 유난히 넓었는데 지금은 광채까지 난다. 그러나 허스키 한 목소리는 아직도 힘이 있다.

팽팽했던 얼굴들이 많이도 변했다. 긴 세월 거친 세상 살아오느라 주름도 많다. 그러나 기백만은 살아있어 약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첫 만남은 걸쭉했다. 우리는 서로 계급으로 불렀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렇게 해야 잃어버린 40년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내린 천(川) 상류에는 미산 계곡이라는 풍치 좋은 곳이 있다. 이곳은 물이 맑고 산수가 수려하여 천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우리는 해질 무렵에야 이곳에 도착했다. 자주 다니던 닭갈비집을 찾았다. 온갖 채소를 섞어 요리하는 철판구이는 이곳의 명물이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부터 서서히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김화읍 와수리 계곡에서 M1 소총으로 피라미를 잡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 천렵을 오게 되어 기쁘다고 내가 운을 떼었다. 그러자 대뜸 신 상병이 "그 된장과 술은 내가 가져갔지" 하고 말을 받는다. "그래 맞아, 자네가 부식을 담당하는 1종 계를 보았잖아!"라며 조 병사가 받아넘긴다. 한 순간에 40년을 뛰어넘어 백골부대의 용사가 된 것이다. 케네디 시절의 '쿠바 위기' 때에는 실제상황이 벌어져 죽을 고생을 했다고 대대 작전을 담당했던 허 상병이 털어놓는다. 그때 진지에 투입되어 달을 보니 고향생각 간절하더라고 내가 이었고, 신 상병은 트럭에 밥을 싣고 부대를 찾아 헤맨 이야기를 한다. 20대 초반, 그 꽃 같던 나이의 군대 이야기가 60이 넘어서도 즐거운 이야깃거리다. 어느 땐 불같이 열을 내고 또 어떨 땐 폭소를 터뜨린다.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다.

분위기를 끊고 싶지 않았지만 숙소를 정하기 위하여 아쉽게도 자리를 떠야만 했다. 그리고 가게에 들러 먹음직한 수박 한 덩어리와 안주 그리고 술은 복분자 2병으로 했다. 우리 나이에는 복분자 술이 좋다고 하니까….

개울가 민박집에 숙소를 정했다. 방으로 들어서니 지저분한데다 썰렁한 기운마저 감돈다. "이런데 오면 다 그런 거야" 하고 누군가 분위기를 잡는다. "그럼! 금방 따뜻해질 텐데 뭘" 하고 또 누군가가 거든다. 그리고 제각기 배낭을 풀어 정돈하느라 바쁘다.

나는 노인 증후군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깨끗이 날려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티셔츠 하나를 걸쳤다. 투망을 집어들면서 "고기 잡으러 가야지!" 하고 의향을 떠본다. 모두들 이 밤중에 무슨 고기를 잡아! 하는 눈치다. "어부가 고기 잡는데 밤낮이 따로 있냐?"며 다그쳤다. 재치 있는 신 상병이 분위기를 일별하고 얼른 고깃바구니를 들고나선다.

말이 야망(夜網)이지 밤에 투망을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말소리는 물론 발걸음 소리마저 죽여 가며 물 속을 걸어 다녀야 한다. 더구나 투망을 던지고 재빨리 훔치는 일은 숙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동작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이루어져야하니 더욱 그렇다. 신 상병이 의외로 보조를 잘 맞춘다. 어둠 속에 펄쩍펄쩍 뛰는 피라미를 고깃바구니에 주워 넣는 기분이 얼마나 짜릿했을까.

"정말 고기를 잡았구나,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감탄을 한다. 한 밤중에 고기를 장만하느라 수돗가가 부산하다. 고기를 씻고 배를 가르고 헹구고 청소하고, 모두가 맡은바 일을 척척 알아서 잘 한다. 아직도 군대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렇게 해서 방 가운데 버너가 차려지고 코펠엔 기름이 부어졌다. 튀김가루에 묻힌 고기를 한 마리씩 넣으니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익는다. '노랑노랑 한' 것이 보기도 좋거니와 먹음직스럽다. 입에 넣으니 사각사각 감미로운 소리와 함께 머리도 뼈도 바스러지면서 녹아든다. 어두육미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던가.

복분자 술잔이 돌아가면서 또 다시 까마득한 과거로 빠져든다. 하사관에서부터 소대장 중대장에 이르기까지 인물평도 재미있고, 학보 병이라고 학대받던 이야기도 대단한 인기다. 어쩌면 그때 일들을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있을까. 누가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모두가 자기 이야기나 되듯이 맞장구를 친다. 심야의 파티지만 모두 혈기왕성하다.

그렇다. 백골용사로 돌아가면 우리는 젊어지는 거야. 다 같이 강가로 나가자! 가서 젊음을 외쳐보자. 밤하늘의 별들은 우리들의 만남을 축복하고, 흐르는 강물은  젊음의 기백을 북돋아 준다. 스크럼을 짜고서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사랑하던 그 노래.

죽어서야 백골이 살아도 백골, 백골이 되련다 나라 위하여….

노랫소리는 계곡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우리들의 우정과 젊음을 싣고….

(e-mail; cairo4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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