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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8> '교수가 되다' - 삶 속의 작은 깨달음13
18) 하나님 은혜로 서울대 약대 조교수가 되다
학위를 받고는 곧장 귀국하였다. 1982년 9월이었다. 할 일도 없는 나는 틈틈이 모교의 약제학연구실에 나가 실험실 후배들을 지도하곤 하였다. 약제학실에는 K,L 교수님이 재직하고 계셨고, 몇 년 전 정년퇴직하신 우종학 교수님의 후임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그때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어려워 신임 교수 채용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어 있었다. 다음 해인 1983년이 되자 다행히 신임교수 채용이 재개되었다. 나는 약제학 전공에 원서를 냈다.&n...
2022-10-27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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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7> '유학 중 연구실 안팎' - 삶 속의 작은 깨달음12
(16) 자기 연구 주제에 대한 주인 정신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자기가 연구할 주제를 스스로 정해 제안하게 하셨다. 학생은 전 교실원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의 주제와 배경 그리고 의의를 발표해 지도교수의 승락을 받아야 했다. 독창성이 없거나 의미가 없는 주제는 교수님을 설득할 수 없었다. 학생이 발표를 잘 해도 대개는 ‘네 제안에 문제가 많은데 잘 극복할 자신이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소극적인 승낙을 해주실 뿐이었다.
나중에 내가 교수가 되고 보니 이 방법은 지도교수로...
2022-10-13 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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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6> '박사 학위를 받다' - 삶 속의 작은 깨달음11
(15) 이온대 화합물의 소장 흡수
박사 과정 첫 번째 과제인 이 주제에 대해서는 교토(Kyoto)대학의 세자키(Sezaki) 교수팀이 활발히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극성(極性)을 띠고 있는 양(陽)이온성 약물에 음(陰)이온성 물질을 첨가하면 극성이 낮은이온대 화합물(ion-pair complex, IP complex)을 형성하기 때문에 약물의 소장 투과(흡수)성이 높아진다는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나는우선 IP complex의 참분배계수(分配係數) 등을 정확히 구하여 IP complex형성이 약물의 소장 흡수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파악...
2022-09-29 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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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5> '박사 과정을 시작하며'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10
(13) 박사과정 입학
유학을 갔지만 6개월 후에 박사과정 입학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생화학이었다. 대학 다닐 때 학장이셨던 K교수님으로부터 효소(酵素)한 챕터밖에 배운 것이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 할 수 없이 일본어로 된 생화학책 하나를 사서 열심히 공부했더니 다행히 합격되었다.
마침내 1979년 9월1일, 나의 박사 과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제제학(製劑學) 교실의 교수님은 하나노(花野?)셨다. 드물게 도쿄대학 출신이 아닌 교수님은 약주를 좋아하고 학생들과 담소하기를 좋아하셨다. 매주 목요일 ...
2022-09-14 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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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4> '일본 유학을 떠나다'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9
(11) 유학의 길이 보이다
영진약품에 다닐 때 대학 동기이자 약대 조교인 C군이 일본 문부성(文部省) 장학생 시험에 붙어 도쿄 대학으로 유학 가는 것을 보았다. 우연히 유학가는 방법을 발견한 나는 그 길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험은 정식 조교(助敎) 발령을 받은 사람만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당시 약대 전체에 조교 TO가 3~4명밖에 없어 조교 발령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는 1년이상 대학원 분석실에서 백의종군하며 기다린 끝에 1977년 12월 9일 조교 발령을 받았다.
다음 해인 1978년 문부성 시험에 ...
2022-08-25 2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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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3> '학교 연구실에서'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8
(10) 박사 학위의 위력을 깨닫다.
영진약품에 다니던 어느 날, 대학 동기K의 약혼식에 갔다가 한 초등학교 여교사를 만났다.충청도 공주(公州)에서였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1975년 11월 2일, 종로 5가에 있는 이화예식장에서 결혼하였다. 그때 나와 아내는 만 27세였다. 그리고 수유동 화계사 아래 작은 기와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이 집은 초등학교 졸업 후 줄곧 떠돌이였던 내가 ‘이제는 서울에 거점(據点)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그해 7월에 사주신...
2022-08-11 1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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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2> '회사에서'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7
(9) 평가기술이 제조기술이다
제대 후 대학원에 복학하여 약품분석 연구실에 나갔다. 당시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며 대학원에 다닐 수 있을까’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영진약품에 다니는 2년 선배 J가 학교로 찾아와, ‘영진약품에 취직하면 대학원에 다니게 해 준다’며 입사를 권유하였다. 이 말에 바로 영진약품을 찾아가 취직하였다. 1974년 7월 2일이었다.
입사부터 하고 얼마 후에 김생기 사장님의 면접을 보았다. 10분간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C 부장님이 봉투 ...
2022-07-27 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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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1> '군대에서'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6
(8) 부조리와 세월에 대한 인내를 배우다.
대학 졸업 후 석사 과정에 들어가 1학기를 마칠 즈음인 6월 20일 원주 38사단의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였다. 7월 2일 군번(65023447)을 받고 8월 15일까지 6주간 신병 훈련을 받았다. 내가 받은 M1 소총, 판쵸 우의(雨衣), 군복, 훈련화 등은 다 내게 너무 컸다. 구보 때 신발이 맞지 않아 발에 피가 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워낙 더운 때라 다른 훈련병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6주 후 훈련소 문을 나설 때는 모두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진짜 사나이&rsquo...
2022-07-13 1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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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0> 삶 속의 작은 깨달음 5
(7) 대학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1967년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인천에 있던 집을 파셨다. 그때부터 인천과 서울에서 가정교사 입주, 자취,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교에 다녔다. 주 3~5회 가정교사를 해서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무대는 주로 인천이었지만 서울 서교동의 한 교회 종탑방에서 입주 과외를 하기도 했다. 가정교사 자리가 없는 방학에는 그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집에서 보냈다. 지루한 생활이었다.
학기 중에는 인천이나 부평에서 경인선을 타고 연건동에 있는 약대까지 통...
2022-06-22 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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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9> 삶 속의 작은 깨달음4
(5) 선생님이 잘 가르쳐야 한다.
양영학원에 다니며 눈만 뜨면 공부하는 생활을 3개월 정도 해서 12월이 되니, 이제 시험 범위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항을 다 알게 되었다. 특히 여태껏 나를 괴롭혔던 수학에 100% 자신이 생겼다. 그것은 전적으로 학원의 수학 선생님의 덕분이었다. 어찌나 간단 명쾌하게 잘 가르쳐 주시는지 듣고 보는 대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그분은 소수(少數)의 전형적인 문제를 정선(精選)하여 풀고 그 문제 유형(類型)을 기억하도록 가르치셨다. 이 선생님을 통해 선생님의 역할이 정말 지대(至大)하...
2022-06-08 2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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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8> 삶 속의 작은 깨달음3
제물포고(제고)는 다녀볼수록 훌륭한 학교였다. ‘양심(良心)은 민족의 소금, 학식(學識)은 사회의 등불’을 교훈으로 갖고 있는 학교였다. 모자에 달린 모표(帽標)도 소금 결정 3개 위에 등대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도서관은 완전 개가식(開架式)으로 늘 열려 있었고, 시험은 무감독(無監督)하에서시행되었다.이런 명예로운 제도하에서 공부하는 것이 제고 학생들의 큰 자부심이었다. 제고에서 배운 양심이 평생 내 삶의 방부제가 되었다.
제고는 1학년이 300명이고 이과(理科)가 세 반으로 총 240명이었는데...
2022-05-25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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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7> 삶 속의 작은 깨달음2
(2)불합격에 낙심하지 마라, 축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1960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인천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길영희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시는 이 학교는 인천은 물론 경기, 충청도의 인재들이 몰려드는 최고의 명문 공립 중학교였다. 그런 학교에 나와 동창 2명(L군, N군)이 겁도 없이 원서를 냈다. 내가 3명 중에 가장 성적이 좋았다. 입학시험날, 시험지를 받아보니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내 시험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나는 우리 세 명이 다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셋 중 ...
2022-05-12 0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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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6> 삶 속의 작은 깨달음1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는 해마다 명예교수 6명의 글을 모아 『학문 후속세대를 위한 ‘나의 학문, 나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을 낸다. 나는 지난해(2021년)에 발간된 제4권에 ‘한 칸씩 오른 사다리길’ 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내가 그 글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1983년 3월에 모교 약학대학 제약학과에 조교수로 임용되어 2013년 8월 말 교수로 정년퇴임 할 때까지 30년 6개월간 교수직에 재직하였다. 그동안 나는 머리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고, 체력이나 노력...
2022-04-27 2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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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5> 교지(校誌)의 부활
대부분의 약대는 교지를 발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 어떤 것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발간이 중단된 것도 있을 것이고, 다시 발간되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교지에 애틋함을 느낀다. 어렵거나 기뻤던 당시의 상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마다 중단없이 교지를 발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이런 마음에서 올해 초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교지 약원(藥苑) 제47호에 동창회장 자격으로 쓴 나의 ‘축하의 말씀’을 소개한다.
약원 제47호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ls...
2022-04-13 1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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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4> 김수만(金壽萬) 선생
2022년 1월 18일, 조선약학교 특별과 7회 졸업생 고 김수만 선생의 후손들이 그의 저서인‘鮮漢藥物學(선한약물학, 행림서원)’과 ‘藥物學講義(약물학강의,경성약학강습소)’, 그리고 사진 등 총 7점을 서울대학교 약학역사관에 기증하였다.
이날 학장실에서 열린 기증식에는 선생의 차남 김창선님, 장손 김명환(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인문대학 영문과 교수), 손자 김명준(김창선님의 아들, 한남대 교수), 증손녀 김아영(김명환 교수의 딸, 서울대 대학원생)양과 오유경 약대 학장, 주승재 약학역사관장, ...
2022-03-30 1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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