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깬 신약개발 규모의 법칙 “직원 12명, MSD와 3억4900만 달러 규모 계약”
BIX 2026서 베리에이셔널 AI·바이오박스·텔레스코프, AI 신약개발 경쟁력과 실전 전략 제시
바이오박스 “AI가 기존 연구 판단 뒤집어도 수용해야…데이터 넘어 지식 주권 중요”
베리에이셔널 AI “직원 12명으로 MSD와 최대 3억4900만 달러 계약…중소기업 경쟁력은 속도”
텔레스코프 “수작업 로봇 대체만으론 한계…실험 설계부터 바꿔야 AI 투자 효과”
입력 2026.10.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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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프로비던스 헬스케어 벤처스 김소연 디렉터, 베리에이셔널 AI 김한돌 공동창업자 겸 CEO, 바이오박스 크리스토퍼 리 CEO, 텔레스코프 이노베이션스 팔로마 프리에토 운영 담당 부사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6(BIX 2026)’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AI가 어떤 신약개발 프로그램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파이프라인이 한두 개뿐인 바이오기업은 이를 믿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AI를 잘 활용하는 기업들은 그런 결과를 받아들이고 연구 방향을 조정합니다.”

바이오박스(BioBox) 크리스토퍼 리(Christopher Li)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 신약개발에서 기술 성능보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후보물질의 실패 가능성을 예측하더라도 기업이 기존 연구개발 전략을 고수한다면 기술 도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AI 신약개발 경쟁이 후보물질 발굴을 넘어 연구개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을 개발하고, 어떤 연구를 중단하며, 어디에 자본과 인력을 집중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한국과 캐나다 바이오기업에는 AI를 활용한 개발 속도와 자본 효율성이 주요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6(BIX 2026)'에서는 '무엇을 개발하고 어디에 집중할까, AI가 바꾸는 바이오제약의 선택(From Algorithms to Impact: AI-Driven Decision-Making in Biopharma)'을 주제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프로비던스 헬스케어 벤처스(Providence Health Care Ventures) 김소연 디렉터가 좌장을 맡았다. 베리에이셔널 AI(Variational AI) 김한돌 공동창업자 겸 CEO, 바이오박스 크리스토퍼 리 CEO, 텔레스코프 이노베이션스(Telescope Innovations) 팔로마 프리에토(Paloma Prieto) 운영 담당 부사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패널들은 AI의 기술적 가능성에는 공감했지만, 데이터와 연구 지식의 소유권, AI 도입 우선순위, 실제 실험에서의 활용 전략에서는 서로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AI가 기존 결정을 부정해도 수용해야”…연구 판단 체계부터 전환

리 CEO는 AI 신약개발에서 예측 정확도 못지않게 '판단의 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박스는 기업의 실험 데이터와 연구자의 전문지식, 판단 근거를 AI 추론 시스템에 연결한다. 신약 표적 선정부터 적응증 결정, 외부 신약 후보물질 도입(In-licensing)까지 일관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업이다.

그는 “AI가 이 연구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할 때, 한두 개 파이프라인에 모든 것을 건 바이오기업이 이를 믿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며 “AI를 잘 활용하는 기업은 이러한 결과에 대응해 실제로 연구 방향을 조정한다”고 말했다.

대형 제약사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프로젝트를 둘러싼 내부 이해관계가 객관적인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다.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승인한 의사결정권자가 기존 판단을 번복하기 어렵고, 프로젝트 중단이 인사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리 CEO는 “AI가 과거의 결정을 부정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과학적 근거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며 “AI를 처음부터 연구개발 체계에 통합할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주권(AI Sovereignty)도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누가 소유하는지, 기반모델을 누가 개발했는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이 축적한 과학적 판단과 연구 경험에 대한 통제권까지 확보해야 한다.

그는 “연구자가 AI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거부하고, 무엇을 수정했는지는 조직이 축적한 전문지식”이라며 “최신 AI 모델을 활용하더라도 기업 내부의 지식에 대한 통제권은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안으로는 특정 기반모델에 종속되지 않는 '모델 비종속형(Model-agnostic)' 인프라를 제시했다. 여러 AI 모델을 필요에 따라 활용하면서도 기업이 자체 데이터와 판단 체계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리 CEO는 “모든 기업이 자체 기반모델을 처음부터 개발할 필요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외부의 우수한 모델을 활용하면서 기업 내부의 지식과 판단 체계에 대한 주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2명이 MSD와 최대 3억4900만 달러 계약”…AI 경쟁력은 속도와 효율성

김한돌 CEO는 중국 바이오산업과의 경쟁을 근거로 AI 도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신약개발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캐나다 바이오기업이 기존 방식만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그는 “중국 이외 지역의 파트너들에게 중국과 어떻게 경쟁할 것이냐고 묻는다”며 “AI를 대규모로 활용해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경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베리에이셔널 AI는 생성형 AI 신약발굴 플랫폼 '엔키(Enki)'로 새로운 소분자 화합물을 설계하고 선도물질을 최적화한다. 엔키는 분자 구조와 특성을 학습한 AI 기반모델을 활용해 목표하는 약리학적 특성에 맞춰 화합물을 설계하는 플랫폼이다.

회사는 2025년 9월 미국 머크앤드컴퍼니(MSD)와 미공개 신약 표적 2개에 대한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과 향후 단계별 마일스톤을 포함한 최대 잠재 계약가치는 3억4900만 달러다. 향후 계약 조건을 충족해야 받는 금액이 포함돼 있어 확정 수령액과는 구분된다.

김 CEO는 “MSD와 계약을 체결할 당시 직원은 약 12명이었다. 현재도 약 20명이며, 인력을 크게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며 “중소기업에 AI가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속도와 효율성”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과의 협력 사례도 있다. 베리에이셔널 AI는 온코크로스와 아토피 피부염 소분자 치료제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이달에는 SK바이오팜의 미국 연구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와 신규 선도물질 발굴 협력을 발표했다.

김 CEO는 한국과 캐나다 바이오기업이 임상 초기 단계에서 다국적 제약사에 인수되거나 기술을 이전하는 구조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재산권과 연구 경험, 핵심 인력까지 해외 대형 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중요한 것은 바이오기업의 가치를 지금보다 10배 높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운영비와 설비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고도 반복적으로 신약개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며, AI가 이러한 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 주권을 바라보는 관점은 리 CEO와 달랐다. 김 CEO는 초기 소분자 신약발굴에서는 AI 모델의 국적이나 소유권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독점적인 연구 데이터를 대량 보유한 대형 제약사에는 데이터 보호와 AI가 생성한 분자의 지식재산권 확보가 핵심 과제다.

김 CEO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데이터는 중요한 자산이며, 다른 기업이 이를 활용해 학습하는 상황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력계약을 통해 AI가 생성한 분자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봇으로 수작업만 대체해선 한계”…AI 실험 자동화가 성패 가른다

팔로마 프리에토 부사장은 AI가 설계한 후보물질을 실제로 합성하고 분석하는 과정의 병목을 짚었다. 알고리즘이 새로운 분자를 빠르게 설계하더라도 실제 실험과 검증이 뒤따르지 못하면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

텔레스코프 이노베이션스는 로봇과 자동화 장비, 실시간 분석기기, AI를 결합한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을 개발하고 있다. AI가 실험 조건을 정하면 자동화 장비가 실험을 수행하고, 분석 결과를 다시 AI에 반영해 다음 실험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다.

프리에토 부사장은 “AI 모델에서 얻은 정보와 연구 전략을 실제 화학 실험 결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로봇과 자동화, 분석기기를 결합해 연구개발의 순환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수작업을 로봇으로 단순 대체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이 수행해 온 실험 절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로봇만 대신하도록 하는 방식은 거의 최적의 자동화 전략이 아니다”라며 “실제 병목이 어디에 있고, 어떤 과정에서 처리량을 높일 수 있는지부터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에 대한 경영진의 기대와 실제 기술 구현 수준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고 생산성이 일률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실험 방식과 병목 구간에 따라 개선 효과가 달라진다.

프리에토 부사장은 “기술 공급기업이 단순히 장비를 판매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제약바이오기업과 공동으로 실제 연구 목적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기대한 투자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구축 사례도 소개했다. 텔레스코프 이노베이션스는 2025년 12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서울 소재 AI 신약개발 연구·교육시설에 국내 첫 제약 연구개발용 자율실험실을 구축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시스템을 직접 시험하고 각자의 연구개발 과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거점이다.

그는 “기업들이 기술을 직접 사용하고 시험하면서 각각의 연구개발 과정에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교육과 협력은 AI 자동화 도입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CEO도 신약개발 전 과정을 하나의 기업이나 AI 모델이 담당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분자를 확보하면 우리의 역할은 끝난다”며 “신약개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AI 파트너는 없다. 각각의 문제에 적합한 기술과 협력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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