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료
의-약 단체간 대립 벗어난 '의약품 재분류'가 해답
약국에서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비중은 한때 70 대 30이라는 것이 통상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80 대 20, 혹은 85 대 15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만큼 조제에 의한 전문의약품 의존도가 높고, 일반의약품 매출은 낮아지다 못해 엉망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피상적으로는 일반약을 취급하는 일선 약국·약사의 의식 전환과 함께 전문성을 강화한 복약지도를 통해 일반약 비중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비중차이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약사회 등 약계에서는 이같은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의약품 재분류이다.
◇ 재분류는 ‘제자리’…의약외품 전환만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된 사례는 거의 없다. 의약분업과 동시에 합의된 사항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진행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외 안전성 보고에 따라 반대로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넘어간 경우만 수건 있을 뿐이다.
복지부는 의약분업 시작과 동시에 1만224개 성분 2만7,962 품목을 대상을 의약품 재분류 작업을 전면적으로 진행했다. 이에 따라 61.5%에 해당하는 전문의약품 1만7,187품목과 38.5%인 일반의약품 1만775품목으로 분류작업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의약품에 대한 재분류는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약사회 입장에서 더욱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재분류가 없는 상황에서 일반약의 의약외품 전환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독제와 스프레이파스, 저함량 비타민·미네랄제 등이 의약외품으로 지난 2000년 전환된 것을 비롯해 2001년에는 치아 세척·소독용제, 코골이방지제가, 2002년에는 치아미백제 등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됐다. 이어 2004년에는 구강세정제와 살충제, 금연보조제가, 2007년에는 땀띠나 피부연화제 등이 같은 절차를 밟았다.
최근 1·2년 사이에는 소화제와 정장제의 의약외품 전환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동안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품목이 군소 품목이었다면 소화제와 정장제의 경우 매출이 상당한 거대품목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국내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염산라니티딘이나 시메티딘, 파모티딘, 염산로페라마이드, 오메프라졸이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이같은 사례를 바탕으로 약사회에서는 의약품 재분류를 위한 정보를 이미 갖춰 놓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 醫-藥 단체간 대립이 ‘걸림돌’
의약품 재분류는 의사·약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사리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을 대표하는 양 단체와 정부의 이해관계 역시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만약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을 전제로 재분류 문제를 약사회 입장에서 먼저 제기할 경우 의사회에서는 임의조제 부분에 이의를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의약품 약국외 판매 부분 역시 도마에 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약국을 방문한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세요'라고 약사가 묻는 단순한 경우까지 의사회 등에서 임의조제라고 강조하게 되면 약국에서 진행할 수 있는 복약지도의 범위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측을 대표하는 대한약사회와 의사협회는 가능한 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뚜렷한 이슈로 부각시켜 봐야 현단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약사회 한 관계자는 "재분류를 통한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을 막기 위한 카드 가운데 하나로 의계 등에서 강조해 온 것이 임의조제라고 볼 수 있다"면서 "최근 이슈로 등장한 의약품 약국외 판매 역시 이러한 맥락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약사회 선거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는 지금 단계에서는 의-약 양단체간의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의약품 재분류와 임의조제, 의약품 약국외 판매와 의약외품 전환, 성분명 처방과 지역처방의약품목록 제출의무화 등 대립의 각을 키워온 각종 현안을 놓고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약사회 또다른 관계자는 "김구 회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최근 의-약 양단체간 다소 유연한 관계를 만드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양 단체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합의 형태의 정책 공조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 복약지도 바탕으로 신뢰감 형성
이같은 제도적 논의와 함께 지적되는 것이 약국·약사의 일반약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약국을 방문하는 환자는 자신이 지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순하다. 비용의 대부분을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일반의약품을 먼저 접근하기 보다는 가능하다면 보험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다 보니 약사가 아무리 일반의약품에 대해 공을 들이더라도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다.
이에 대한 접근에는 약사와 환자간의 신뢰가 우선이다. 환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셀프메디케이션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전문인으로서 약사가 역할에 충실하면서 여기서 생긴 신뢰를 근간으로 일반의약품 활성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
지역 특성에 맞춰 약국을 운영하고, 전문약과 일반약의 보조를 맞춘다면 가능한 복약지도 부분이 있고, 여기서 일반약 활성화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 약국 약사는 “충실한 복약지도는 전문인으로서 약사의 기본 의무라 생각한다”라고 전하고 “복약지도를 열심히 하다보면 일반약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이로 인한 매출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최근 바뀐 규정으로 인해 영수증을 발행하려면 약국 행위료를 표시해야 한다”면서 “규정이 도입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표시되는 행위료를 약사가 자신있게 공개하려면 복약지도를 충실히 해야만 가능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임채규
2010.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