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료
약국 복지용구 사업 진출 ‘약’인가 ‘독’인가
최근 대한약사회가 복지용구 사업소 시설기준 완화가 필요하다며 약국의 복지용구 사업 진출을 시사하고 나서, 일선 약국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복지용구 진열 및 체험 공간 33㎡ 확보’와 ‘최소 1개 이상 모든 품목 진열’ 규정을 폐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약국에서 복지용구 취급을 위해 추가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복지용구를 찾는 노인들이 침대나 욕조 같은 부피가 큰 품목들 보다는 미끄럼방지용품이나 안전손잡이 같은 작은 품목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인들이 ‘안전손잡이’ 하나 구입하려고 시설기준을 갖춘 복지용구 사업소를 찾아다녀야하는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약국에서 이러한 품목을 취급하면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요 10만 명 불과…공급자는 난립 치열한 경쟁
대한약사회의 이 같은 주장에는 약국경영 활성화 차원에서의 신규 아이템 확보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 약사회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고 복지용구를 보험수가로 책정해 주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출범한 만큼, 복지용구 판매가 약국 매출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영활성화 측면에서, 약국에서 팔 수 있는 품목을 늘리려는 시도는 성공 여부를 떠나 권장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복지용구 사업이 약국경영 활성화에 도움이 될 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복지용구 수요자가 10만 명 정도인 상황에서, 전국 2만개의 약국이 복지용구 사업에 진출할 경우를 가정하면 과잉 공급에 따른 경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노인요양보험 대상자 20만 명 중 요양기관 입소자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복지용구 수요자는 10만 명에 불과하다”며 “현재 700여개의 복지용구 사업소만으로도 공급과잉과 난립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약국까지 진출한다면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국내 대기업과 일본에서도 우리나라 복지용구 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복지용구 사업이 오히려 ‘레드오션’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국 진출을 위해 복지용구 사업소 시설기준을 완화한다면, 약국이 아닌 기존 사업자들의 신규 점포 확산을 부추기는 현상을 야기할 수 있어 공급과잉이 더욱 가중되는 악순환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실제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복지용구 사업소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전 110여개에 불과했으나 제도 시행 한 달 만에 400여개로 늘어났으며, 현재는 공단 추정 700여개 사업소가 복지용구를 판매하고 있다.
전문가들 “상업주의, 복지서비스 개념 희석이 문제”
공단과는 달리 일각에서는 약국의 복지용구 사업 진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약국이 가진 ‘접근성’이라는 장점이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의 복지용구 사업이 ‘서비스’ 개념보다는 ‘제품판매’로 쏠리고 있어, 자칫 노인복지향상이라는 애초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곳곳에 포진해 있는 약국이 복지용구를 공급하게 되면 그만큼 접근성이 높아져 노인들에게 편리성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복지용구는 노인들에게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물건만 판매하겠다는 생각으로 복지용구 취급소가 난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복지용구 판매를 포함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자체가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이 근본 취지라는 점에서, 복지용구 판매가 상업주의로 흐른다거나 물건 판매만을 위한 시설기준 완화 등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전문가는 “일본의 경우 복지용구를 취급하는데 필요한 자격제도가 마련돼 있어 복지용구 판매와 함께 일정 수준의 복지서비스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기기를 취급할 수 있고 시설기준만 갖춘다면 판매에 지장이 없어, 복지서비스 제공이라는 취지가 희석될 우려가 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체계 개편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이후 제도를 악용한 ‘사기사건’ 등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에만 공단 직원을 사칭, 복지용구 이용한도가 넘었다며 돈을 입금하라는 ‘보이스 피싱’이 빈번히 일어나는가 하면, 지난 1일에는 의료기관이 서류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복지용구 사용에 대한 보험수가를 허위로 청구, 공단이 해당 의료기관을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결국 복지용구 사업소 시설기준 완화와는 별도로 복지용구 판매도 수가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약국이 복지용구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시장상황 파악 등 사업 진출에 대한 면밀한 타당성 검토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복지용구 판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쪽으로 복지용구 판매를 고려하는 인식의 확산도 약국가에 필요한 대목이다.
손정우
200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