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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시보’ 1958년 10월 5일자 1면 하단 왼편을 들여다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의 근고(謹告)가 게재되어 있다. ‘근고’(謹告)란 삼가 아뢴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今般弊社에서는 公報室 當局의 許可를 얻어 발행인 名儀(필자 주: 名義의 오식으로 보임)를 變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從來 本報 創刊以來 于今까지 本報發展을 爲하여 物心兩面 努力하여온 前 發行人 郭仁榮 社長은 健康上 事情으로 勇退하는 同時에 這間社 運營에 實質的 業務를 擔當하여온 咸承基 副社長이 發行人으로서 社長에 就任하게 되었아오니 讀者諸賢께서는 惠諒하시고 今後 倍前 편달하여 주시기를 仰望하나이다.
就, 今次 咸 副社長의 社長就任과 同時에 郭仁榮 前 社長은 本社顧問으로서 今後 社運營에 參與하게 되겠습니다.
四二九一年 十月 一日“
“公報室(공보실) 當局(당국)의 許可(허가)를 얻어..”라고 밝힌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초 개인에게는 신문의 발간을 허가하지 않았던 정부의 정책이 변경됨에 따라 창간작업을 거의 혼자서 주도했고, 창간 이후에도 신문사의 경영을 사실상 나홀로 도맡다시피 했던 함승기 부사장이 다소 뒤늦게라도 사장 겸 발행인직을 맡을 수 있게 되었음을 설명해 주는 게재문이다.
뒤이어 10월 12일자 4면 하단 좌편을 살펴보면 함승기 사장의 취임인사가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今般事情으로 弊社 機構 一部를 變更하옵고 不肖小生이 發行人 兼 社長職에 就任하게 되었음은 오로지 江湖諸賢께서 베푸러주신 積年의 庇護와 聲援의 恩德으로 깊이 感銘하는 바이오며 淺學菲才한 小生이 이 重責을 맡은데 對해서는 畏濫한 마음과 慙愧(필자 주: 참괴‧부끄러워함)한 感을 禁할 바 없습니다. < 중 략 >”
“부모님을 닮지 못한 자식”, “매우 훌륭하신 부모님을 자식이 못나고 모자라서 감히 닮지 못했다”는 극도로 겸양의 뜻을 내포한 불초소생(不肖小生)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인 이 취임사를 직접 작성한 함승기 사장은 당초부터 신문창간을 위한 준비작업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도맡아 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당시 정부가 개인에게는 신문의 발간을 허가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때마침 대한무역약종상협회(현재의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의 한 전신)에서 초대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곽인영(郭仁榮) 조선약농 사장이 편의상 초대사장직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대한무역약종상협회 초대회장이라는 직함이 여러모로 신문을 경영하는 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원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이 곽인영 사장이 ‘약사시보’ 초대사장에 취임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새삼스런 사실이지만, 함승기 사장은 전란 중이었던 1951년 12월 의약품 무역업자들이 대한무역약종상협회를 결성할 당시 전무이사로 참여한 바 있다.
신문창간을 위한 준비작업을 도맡았던 함승기 주간은 그 후 1957년 7월 6일 부사장에 취임했고, 곽인영 초대사장은 명예사장으로 추대됐다. 이때 김천민(金天民) 주간, 최영래(崔榮來) 편집국장이 함께 발령됐다. 함승기 부사장은 이때부터 사실상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1958년 공보처에 법인(法人)에서 개인(個人)으로 발행인 등록변경을 필하고 10월 1일부로 사장 겸 발행인을 맡게 되면서 신문의 경영이 비로소 본궤도 위에 올라서기 시작한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요즘 회자되는 유행어를 빌려 표현하면 “비정상의 정상화”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곽인영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건강 악화 뿐 아니라 대한무역약종상협회의 운영이 어려워 해산 단계에 이른 현실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결과로 보인다. 1960년 9월 11일자 2면 하단에 숙환으로 인해 6일 5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요지로 “郭仁榮氏(곽인영씨) 逝去(서거)” 제목의 부음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경기도 개성(開城) 출신의 郭仁榮(곽인영) 前 사장은 30여년을 약업계에서 보내면서 1939년 조선한약수출입조합 이사, 1940년 조선생약통제주식회사 상무취체역, 1944년 조선약농주식회사(朝鮮藥農株式會社) 취체역 사장, 1946년 개성상공회의소 회두(會頭), 1946년 고려은단주식회사 취체역 사장, 1948년 개성 송도중학교 재단이사, 1951년 대한무역약종상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편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사내에서조차 함승기 부사장이 1956년에 사장에 취임한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 잘못 알려져 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함승기 사장의 취임년도가 잘못 알려졌던 것은 본지가 창간한 이후 1961년 말까지 당시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관행에 따라 발간년도를 단기(檀紀)로 표기했던 것에서 연유한 착오가 아니었을까 사료된다. 아마도 단기를 서기(西紀)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번의 착오가 그대로 굳어져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본지 1974년 3월 11일자 3면에 게재된 함승기 사장의 부음기사를 보면 “東巖(동암) 咸承基(함승기) 사장은 1911年 江原道(강원도) 杆城(간성)에서 出生(출생), 解放 前(해방전)까지 江原産業(강원산업)(株) 常務(상무)로 근무해 오다가 해방과 함께 保社部(보사부) 保健局(보건국)에 근무했고, 53年 貿易藥種商協會(무역약종상협회) 常務理事(상무이사)를 거쳐 54年에는 現(현) 藥業新聞(약업신문) 前身(전신)인 藥事時報(약사시보) 創刊(창간)에 참여, 主幹(주간)으로 本紙(본지)를 이끌어 오다가 56年에 藥業新聞社(약업신문사) 社長(사장)으로 취임, 20年間을 오로지 藥業界(약업계) 發展(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고 게재되어 있어 함승기 사장의 취임연도가 1956년으로 잘못 알려져 온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비단 사장 취임연도 뿐 아니라 출생지 또한 사실과 다르게 잘못 게재되어 있고, 강원산업 상무로 근무해 왔다고 언급한 부분 역시 강원약업 전무의 오식이어서 갑작스러운 부고로 인해 여러모로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음을 은연중 시사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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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시보’ 1958년 10월 5일자 1면 하단 왼편을 들여다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의 근고(謹告)가 게재되어 있다. ‘근고’(謹告)란 삼가 아뢴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今般弊社에서는 公報室 當局의 許可를 얻어 발행인 名儀(필자 주: 名義의 오식으로 보임)를 變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從來 本報 創刊以來 于今까지 本報發展을 爲하여 物心兩面 努力하여온 前 發行人 郭仁榮 社長은 健康上 事情으로 勇退하는 同時에 這間社 運營에 實質的 業務를 擔當하여온 咸承基 副社長이 發行人으로서 社長에 就任하게 되었아오니 讀者諸賢께서는 惠諒하시고 今後 倍前 편달하여 주시기를 仰望하나이다.
就, 今次 咸 副社長의 社長就任과 同時에 郭仁榮 前 社長은 本社顧問으로서 今後 社運營에 參與하게 되겠습니다.
四二九一年 十月 一日“
“公報室(공보실) 當局(당국)의 許可(허가)를 얻어..”라고 밝힌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초 개인에게는 신문의 발간을 허가하지 않았던 정부의 정책이 변경됨에 따라 창간작업을 거의 혼자서 주도했고, 창간 이후에도 신문사의 경영을 사실상 나홀로 도맡다시피 했던 함승기 부사장이 다소 뒤늦게라도 사장 겸 발행인직을 맡을 수 있게 되었음을 설명해 주는 게재문이다.
뒤이어 10월 12일자 4면 하단 좌편을 살펴보면 함승기 사장의 취임인사가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今般事情으로 弊社 機構 一部를 變更하옵고 不肖小生이 發行人 兼 社長職에 就任하게 되었음은 오로지 江湖諸賢께서 베푸러주신 積年의 庇護와 聲援의 恩德으로 깊이 感銘하는 바이오며 淺學菲才한 小生이 이 重責을 맡은데 對해서는 畏濫한 마음과 慙愧(필자 주: 참괴‧부끄러워함)한 感을 禁할 바 없습니다. < 중 략 >”
“부모님을 닮지 못한 자식”, “매우 훌륭하신 부모님을 자식이 못나고 모자라서 감히 닮지 못했다”는 극도로 겸양의 뜻을 내포한 불초소생(不肖小生)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인 이 취임사를 직접 작성한 함승기 사장은 당초부터 신문창간을 위한 준비작업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도맡아 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당시 정부가 개인에게는 신문의 발간을 허가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때마침 대한무역약종상협회(현재의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의 한 전신)에서 초대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곽인영(郭仁榮) 조선약농 사장이 편의상 초대사장직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대한무역약종상협회 초대회장이라는 직함이 여러모로 신문을 경영하는 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원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이 곽인영 사장이 ‘약사시보’ 초대사장에 취임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새삼스런 사실이지만, 함승기 사장은 전란 중이었던 1951년 12월 의약품 무역업자들이 대한무역약종상협회를 결성할 당시 전무이사로 참여한 바 있다.
신문창간을 위한 준비작업을 도맡았던 함승기 주간은 그 후 1957년 7월 6일 부사장에 취임했고, 곽인영 초대사장은 명예사장으로 추대됐다. 이때 김천민(金天民) 주간, 최영래(崔榮來) 편집국장이 함께 발령됐다. 함승기 부사장은 이때부터 사실상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1958년 공보처에 법인(法人)에서 개인(個人)으로 발행인 등록변경을 필하고 10월 1일부로 사장 겸 발행인을 맡게 되면서 신문의 경영이 비로소 본궤도 위에 올라서기 시작한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요즘 회자되는 유행어를 빌려 표현하면 “비정상의 정상화”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곽인영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건강 악화 뿐 아니라 대한무역약종상협회의 운영이 어려워 해산 단계에 이른 현실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결과로 보인다. 1960년 9월 11일자 2면 하단에 숙환으로 인해 6일 5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요지로 “郭仁榮氏(곽인영씨) 逝去(서거)” 제목의 부음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경기도 개성(開城) 출신의 郭仁榮(곽인영) 前 사장은 30여년을 약업계에서 보내면서 1939년 조선한약수출입조합 이사, 1940년 조선생약통제주식회사 상무취체역, 1944년 조선약농주식회사(朝鮮藥農株式會社) 취체역 사장, 1946년 개성상공회의소 회두(會頭), 1946년 고려은단주식회사 취체역 사장, 1948년 개성 송도중학교 재단이사, 1951년 대한무역약종상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편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사내에서조차 함승기 부사장이 1956년에 사장에 취임한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 잘못 알려져 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함승기 사장의 취임년도가 잘못 알려졌던 것은 본지가 창간한 이후 1961년 말까지 당시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관행에 따라 발간년도를 단기(檀紀)로 표기했던 것에서 연유한 착오가 아니었을까 사료된다. 아마도 단기를 서기(西紀)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번의 착오가 그대로 굳어져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본지 1974년 3월 11일자 3면에 게재된 함승기 사장의 부음기사를 보면 “東巖(동암) 咸承基(함승기) 사장은 1911年 江原道(강원도) 杆城(간성)에서 出生(출생), 解放 前(해방전)까지 江原産業(강원산업)(株) 常務(상무)로 근무해 오다가 해방과 함께 保社部(보사부) 保健局(보건국)에 근무했고, 53年 貿易藥種商協會(무역약종상협회) 常務理事(상무이사)를 거쳐 54年에는 現(현) 藥業新聞(약업신문) 前身(전신)인 藥事時報(약사시보) 創刊(창간)에 참여, 主幹(주간)으로 本紙(본지)를 이끌어 오다가 56年에 藥業新聞社(약업신문사) 社長(사장)으로 취임, 20年間을 오로지 藥業界(약업계) 發展(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고 게재되어 있어 함승기 사장의 취임연도가 1956년으로 잘못 알려져 온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비단 사장 취임연도 뿐 아니라 출생지 또한 사실과 다르게 잘못 게재되어 있고, 강원산업 상무로 근무해 왔다고 언급한 부분 역시 강원약업 전무의 오식이어서 갑작스러운 부고로 인해 여러모로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음을 은연중 시사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