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허봉이 금강산에서 유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초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배다른 큰오빠 허성(許荿·1548~1612)이 있으나 나이가 워낙 차이가 많아 서먹서먹하였다. 하지만 같은 어머니의 오빠 허봉(許葑·1551~1588)과는 오누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연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다정한 모습니다.
또한 초희는 허봉으로 인해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과 매곡 최순치를 알게 되었다. 손곡은 동생 허균(許筠·1569~1618)의 스승이었으나 초희도 함께 배웠다. 최순치는 이달의 친구이자 허봉과도 막역한 관계다. 허봉이 손곡을 허균의 사부로 초빙할 때 초희도 동석하도록 배려하였다.
매곡은 손곡과 바늘과 실 관계다. 그들은 모두 서출이다. 허균도 조강지처의 출신이 아니다. 허엽의 조강지처는 청주 한씨다. 세조(世祖·1417~1468)를 도와 계유정난(癸酉靖難·수양대군의단종 왕위 찬탈)의 설계자로 권력의 실세로 등장한다.
허엽의 조강지처는 한명회(韓明澮·1415~1487)의 후예다. 한편 후취 김씨는 신라 종성(宗姓·왕실의 성) 명원군 김주원(金周元)의 뿌리다. 허엽의 여자들은 모두 명문대가의 여식이었다. 하지만 김씨(金氏)는 조강지처가 아닌 후취였다. 초희는 어머니 김씨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무엇이 아쉬워 후취가 되었다?” 라며 애석해 하였다. 강릉 김씨는 요조숙녀에 재기(才氣)까지 뛰어나 초희가 언행(言行)을 쏙 뺐다.
초희는 시어머니 송씨(宋氏)의 구박에 조각 같은 표정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오히려 굳은 의지로 화석화(化 石化)된 표정이 더욱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속 쌍꺼풀진 눈매에 조금은 솟은 듯한 오뚝한 콧날, 살포시 다물린 입술선이 그림처럼 정갈하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졸함을 풍긴다. 말하거나 웃지 않으면 말간 육색이 자칫 시리도록 차가워 보인다.
요즘 초의 안색에 그늘이 졌다. 1585년 어느 봄날이다. 그의 붓끝에선 시가 탄생한다.‘푸른 바다 물결은 구슬바다 물결에 젖어가고/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부용꽃 스물일곱에 시들어 가고/ 붉게 떨어진 꽃 달밤에 찬서리 맞네’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다. 초희의 27세로 요절하기 3년 전의 시다.
천재는 요절이 숙명인가 보다. 초희는 비몽사몽에 ≪몽유광상산≫을 쓸 때 눈앞에서 최순치가 어른거렸다. 함을 받던 날 새빨간 동백꽃 꽃다발을 주던 장면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남편 김성립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는 사내다. 신분이 맞으면 남편으로 맞이하고 싶었던 상대다. 지금 그의 모습이 김성립 대신 클로즈업 되어 오고 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부터 그의 헌헌장부 모습이 더욱 자주 등장했다. 함을 받던 날의 화관과 새빨간 동백꽃 꽃다발을 받던 장면이 마치 어제일 같이 생생하다.
천재는 외롭고 질투를 받는다. 초희는 그 도가 어느 천재보다 높았다. 더욱이 남녀칠세부동석의 사대부 나라 조선의 여류 천재는 환경적 제약이 심하였다. 초희의 고독은 그 상상을 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초희는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이방(李昉·925~996)의 ≪태평광기≫(太平廣記)를 펼쳤다.
≪태평광기≫엔 꿈과 희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신선(神仙)·여선(女仙)·도술·방사(方士)·신(神)·귀(鬼)·요괴(妖怪) 등 인간이 상상하고 삶의 다양한 스토리들이 있어 천재들의 공상의 메가라 하겠다.
초희도 외롭고 쓸쓸할 때는 서슴없이 ≪태평광기≫로 숨어들었다. 그곳에 가서 여선이 되어 조선의 남존여비 세상에서 기를 펴지 못했던 것을 마음껏 꿈과 이상과 남녀상열지사까지도 욕심껏 투정을 부렸다.
그곳에선 조선사회에서 이상적 사내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고 선망하며 입 밖에도 소리 내보지 못했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을석류 같이 빨갛게 농익은 사랑이란 말을 주저 없이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조선사회에선 언감생심 결합이 불가능하였던 매곡과도 정답게 만나 스스럼없이 수창(酬 唱)도 즐겼다. ‘꽃다운 나무는 물이 올라 푸르고/ 궁궁이 싹도 가지런히 돋아났네/ 봄날이라 모두들 꽃피고 아름다운데/ 나만 홀로 자꾸만 서글퍼지네/ 벽에는 오악도를 걸고/ 책상머리엔 참동계를 펼쳐 놓았으니/ 혹시라도 단사를 만들어 내면/ 돌아오는 길에 순 임금을 뵈오리라. ≪순 임금을 뵈오리라≫다. (시옮김 허경진)
순 임금에겐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란 두 왕비가 있었다. 아황과 여영은 요(堯 )임금의 두딸로 순 임금의 됨됨이를 보고 시집보냈다. 아황은 황후가 됐고 여영은 황비가 됐으나 질투하지 않고 금실이 좋았다.
두 자매의 알뜰한 보필로 순 임금은 백성들에게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주고 전국을 순시 중 창오산(蒼梧山)에서 절명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황과 여영은 서둘러 순 임금에게로 달려가 소상(瀟湘)에서 순사(殉死)했다. 저승길도 두 자매는 따라간 것이다.
초희도 시에서 순 임금은 남편 김성립을 비유(比喩)했으리라... 아황과 여영처럼 살뜰한 내조로 남편이 과거에 장원급제 하여 어사화를 복두(幞頭)뒤에 꽂고 행차하는 모습을 오매불망 기원했을 터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났다. 초희의 별당과 시어머니 송씨의 거처는 같은 담 안의 지척이지만 그녀는 늘 고도(孤島)에 갇혀있는 신세였다.
초희는 고아상산 신선세계로 가더라도 이승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씻지는 못할 것이다. 13년이란 짧은 결혼생활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다면 멋있는 금실을 꾸릴 대안이 있어서다.
아황과 여영같이 내조를 하여 성공한 남편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높은 학문을 고스란히 전수한다면 과거에 장원급제는 따 놓은 당상으로 ‘아름다운 원앙’을 생각했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