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수수혐의로 경찰의 구속수사를 받아왔던 한 의사가 결국 진료실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애석한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지역 K모 원장은 인천지검 리베이트 수사에 연루돼 45일간 구속 수사를 받은바 있다. 그 의사는 지난달 초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또 형벌 집행과 함께 3년간 의사면허정지 처분도 함께 받았다.K원장의 자살에 대해 의료계 주변에서는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 첫번째 희생자로서 그가 받은 그동안의 심각한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하고 있다. 앞서 제약회사 일부 직원들이 검찰 경찰의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있었다. 물론 두사건 모두 자살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된바 없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의료환경속에서 금전적 유혹과 미망에서 모든 의사들이 자유스러울수는 없다. 하지만 환자진료를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을 다루는 의약인들이 리베이트 올가미에 빠져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일은 재발되어서는 안될것이다. 한 의료인의 자살소식을 접하며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헌신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다. 장기려박사는 평생 무소유를 실천했다. 서울대 부산대교수를 역임했고 부산의 큰 병원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그는 평생 집한 채 없었다고 한다. '바보의사'라는 애칭으로도 기억되는 장기려 박사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 탄생100주년을 맞았다.그는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해 이듬해부터 부산 영도구에 천막을 치고 복음병원을 세워 거처가 없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1959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술’을 성공해 이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1975년 정년퇴임 뒤에도 집 한 채가 없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다가 1995년 지병인 당뇨병으로 별세했다. 의료인이면서도 다양한 의료봉사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을 수상했다.모두가 장 박사와 같은 삶을 살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시작으로 인명존중의 의업을 지켜온 그의 후배들이 더 이상 리베이트의 굴레에 빠져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애석한 일이 두번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