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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알렉세이 나발니 중독 사건
편집부
입력 2025-10-28 11: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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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나발니 중독 사건 

현대적 화학무기의 기원은 타분(tabun) 가스다1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무기 연구가 금지된 독일이었지만 작물 생산을 위한 살충제 연구는 가능했다그런데 살충제는 결국 사람도 죽일 수 있다위험한 것은 매한가지다.

1936년 게르하르트 슈레이더는 자신이 만든 살충제를 보고 의문에 잠겼다이렇게까지 벌레를 잘 죽인다고그전까지 사용하던 살충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살상력을 무서워하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타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금지라는 의미의 타부(taboo)’라는 영어 단어와 같은 뜻이다.

금지할 거면 처음부터 비밀로 하던가하면 됐을텐데 그는 이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다당시 전쟁 분위기가 무르익던 상황에서 나치 정권과 독일 군 당국이 이 결과에 주목했다이후 이 물질은 전략 무기로 개발되어 미사일에 탑재까지 된다다행히도 발사된 적은 없다.

금지할 거면 이후에도 연구를 하지말던가 하면 됐을텐데슈레이더는 이후에도 관련 연구를 지속했다타분을 개발한 공로로 상금까지 받으면서 성취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어쨌든 슈레이더는 연구팀과 함께 타분의 구조를 개선(?)해서 더욱 강력한 살상 무기를 만들었다이 물질에 붙은 이름은 사린(Sarin). 사린의 ‘S’는 슈레이더의 이름에서 따왔다사린의 이름 그 자체가 연구원들의 이름에서 한두 글자씩 따서 붙은 이름이다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웠을까?

타분처럼 사린도 실전에 사용된 기록은 없다다행이다그래도 기록은 남는 법. 1945년 베를린이 함락되고 연합군이 진격하면서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이 무시무시한 물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화학무기의 작용기전도 나름 새로웠다그전까지의 화학무기가 질소 겨자처럼 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물질이었다면사린은 효소에 작용하는 독이었다효소는 적다따라서 적은 양으로 치명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후 대처는 나라별로 다르다영국은 독일과 치른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트라우마였는지자체적으로 사린을 연구했다대처법을 연구하기 위해 방독면을 테스트하는 형태였다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을 주도해야 했다미국은 사린을 미사일에 장착하기까지 했지만 사용한 적은 없다.

소련은 달랐다화학무기를 전략적으로 연구했고 나름의 목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했다소련 뿐 아니라 소련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도 해당하는데 자국민을 학살하는 용도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이라크도 여기에 해당한다물론 소련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2020년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쓰러졌다나발니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푸틴과 정권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푸틴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그 정적이 때마침 쓰러진 것이다. 44세의 건장한 젊은이가 갑자기 쓰러질 일이 뭐가 있었을까?

당시 나발니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이동할 예정이었다비행 예정 시간은 대략 세 시간정작 나발니는 이륙 직후부터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그리고 실신했다응급환자가 생기면 비행기는 곧바로 착륙해야 한다비행기는 인근의 공항으로 긴급 회항했고 기다리던 의료진에게 인계되었다당시 나발니의 체온은 34시급한 대처가 필요했다하지만 나발니의 가족은 러시아 내에서의 진료를 거부했고 독일로 이송하여 치료를 시작하였다처음 증상이 나타난지 대략 30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독일 의료진이 파악한 원인은 독극물 중독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나발니는 노비촉(Novichok)이라는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노비촉은 사린과 같은 계열의 독극물이지만 효과는 훨씬 더 강력하다다만 실체가 불분명했는데 나발니가 중독되면서 만천하게 공개되었다다행히 나발니는 독일 의료진을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였고자신의 회복 사례는 같은 해 12월 학술 논문의 사례 보고(case report)로도 발표되었다계속해서 중독될 수 있으므로 대처법을 공개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결국 죽었다이후 활동을 재개한 나발니는 결국 러시아의 감옥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돌연사하였다그 직전까지도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것에 많은 의문이 제기됐지만 나발니의 죽음에 대해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독극물과 함께 그를 떠올릴 따름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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