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과 화학무기
1990년 8월 발발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걸프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원래 전쟁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이 경우에는 조금 더 특별했다. 전장이 원유 생산의 중심지라는 측면에서 경제적 관심이 있었고, 아라비아 해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역이란 점에서 지정학적 관심도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군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점이 많았다. 대규모 탱크부대와 스커드 미사일을 자랑하는 이라크가 자신의 진영에서 치르는 전쟁이었다. 직전까지 이란과 7년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전투원들의 경험치도 충분히 쌓였다. 전략적 목표가 상이한 다국적 군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라크에는 화학무기가 있었다.
화학무기는 금지된 무기다. 주성분은 대부분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신경가스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다. 비가역적으로 이 효소를 억제해서 아세틸콜린 농도를 급격하게 올려 호흡곤란과 심장마비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망시킨다. 이런 금지된 무기를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이미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란과 전쟁을 치르면서 접경지대인 할라브자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을 집단 학살한 것이다. 이때가 1988년. 불과 2년 만에 벌어지는 걸프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해독제는 없을까? 있다. 아트로핀이다. 화학무기의 대표적인 물질이다. 화학무기는 1930년대 독일에서 개발한 타분(tabun) 가스를 모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분 가스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인 까닭에 그 후로 나온 많은 화학무기도 동일한 기전을 통해 부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기원전부터 알려졌던 부교감신경 차단제, 아트로핀이 시대를 거슬러 각광받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아트로핀도 어쨌든 독극물이다. 따라서 독극물에 노출된 후에 써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때를 놓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사후 대비약보다는 사전 예방약이 더 좋다. 질병을 막기 위해 치료제와 백신을 구비하는 사람들처럼, 미군도 이라크의 화학무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약을 더 원했다. 모든 독을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라크가 무슨 독을 쓸지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면 예방약도 미리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피리도스티그민 브로마이드(Pyridosigmine bromide)가 이런 약이다. 이 예방약은 중증근무력증 치료제로 쓴다. 기전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다. 이 기전은 이라크의 화학무기와 동일하다. 그런데 어떻게 예방약으로 쓴다는 말인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가 피리도스티그민과 결합하면 타분 가스와 같은 비가역적인 화학무기와 결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효소를 잠깐이나마 덮어둘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쨌든 이 효소도 잠깐이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시간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독가스에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잠깐 사용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 타이밍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 지휘관들이 택한 방식이 평소에 그냥 먹어두는 것. 예방약이라는 데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국적군의 병사들은 피리도스티그민에 중독되었다. 예방약이라고 해도 어쨌든 독이다. 이런 독을 꾸준히 먹는다면 이라크의 화학무기에 노출된 정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몸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정작 이라크군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반전. 다국적군은 스스로 중독되었다. 걸프전 증후군(Gulf war’s syndrome)이라고 부르는 질병이다. 당시 미군 참전 군인 70만 명 중 1/3 정도가 호소한 증상이다. 종전 후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제대 군인이야 항상 있었지만, 걸프전 이후에는 그 비율이 특이하게 높아서 관련 연구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그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걸프전이 두 달도 안 되는 단기간에 끝났기에 망정이지, 수년씩 이어졌다면 그 비율은 특히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약은 독이고 독은 약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 |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 인기기사 | 더보기 + |
| 1 | 상장 제약바이오 3Q 누적 평균 R&D비...전년비 코스피 7.0%, 코스닥 9.1%↑ |
| 2 | 에이비프로,셀트리온과 HER2 양성암 치료제 미국 FDA IND 제출 |
| 3 | “규제의 속도가 산업의 속도”…식약처, 인력·AI·현장으로 답하다 |
| 4 | 보건복지부, '바이오·돌봄'에 올인... 5년 만에 대대적 조직 개편 |
| 5 | 의약외품을 발톱무좀 치료제로?…대한약사회, 과장광고 ‘경보’ |
| 6 | 오스코텍, 사노피에 1.5조 규모 기술이전 성공…타우 타깃 신약후보 'ADEL -Y01' |
| 7 | “한국은 북아시아 혁신 전략 핵심 시장…환자 접근성 개선이 가장 중요한 과제” |
| 8 | "마약 원료 감기약을 쇼핑하듯?"... 약사회, 창고형 약국 '슈도에페드린' 대량 판매에 강력 경고 |
| 9 | 노바티스, 미국 제조시설 확대 쇠뿔도 단 김에.. |
| 10 | 메디콕스, 조태용-윤종근 각자대표 집행위원 체제 돌입 |
| 인터뷰 | 더보기 + |
| PEOPLE | 더보기 + |
| 컬쳐/클래시그널 | 더보기 + |
걸프전과 화학무기
1990년 8월 발발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걸프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원래 전쟁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이 경우에는 조금 더 특별했다. 전장이 원유 생산의 중심지라는 측면에서 경제적 관심이 있었고, 아라비아 해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역이란 점에서 지정학적 관심도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군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점이 많았다. 대규모 탱크부대와 스커드 미사일을 자랑하는 이라크가 자신의 진영에서 치르는 전쟁이었다. 직전까지 이란과 7년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전투원들의 경험치도 충분히 쌓였다. 전략적 목표가 상이한 다국적 군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라크에는 화학무기가 있었다.
화학무기는 금지된 무기다. 주성분은 대부분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신경가스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다. 비가역적으로 이 효소를 억제해서 아세틸콜린 농도를 급격하게 올려 호흡곤란과 심장마비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망시킨다. 이런 금지된 무기를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이미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란과 전쟁을 치르면서 접경지대인 할라브자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을 집단 학살한 것이다. 이때가 1988년. 불과 2년 만에 벌어지는 걸프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해독제는 없을까? 있다. 아트로핀이다. 화학무기의 대표적인 물질이다. 화학무기는 1930년대 독일에서 개발한 타분(tabun) 가스를 모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분 가스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인 까닭에 그 후로 나온 많은 화학무기도 동일한 기전을 통해 부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기원전부터 알려졌던 부교감신경 차단제, 아트로핀이 시대를 거슬러 각광받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아트로핀도 어쨌든 독극물이다. 따라서 독극물에 노출된 후에 써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때를 놓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사후 대비약보다는 사전 예방약이 더 좋다. 질병을 막기 위해 치료제와 백신을 구비하는 사람들처럼, 미군도 이라크의 화학무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약을 더 원했다. 모든 독을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라크가 무슨 독을 쓸지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면 예방약도 미리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피리도스티그민 브로마이드(Pyridosigmine bromide)가 이런 약이다. 이 예방약은 중증근무력증 치료제로 쓴다. 기전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다. 이 기전은 이라크의 화학무기와 동일하다. 그런데 어떻게 예방약으로 쓴다는 말인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가 피리도스티그민과 결합하면 타분 가스와 같은 비가역적인 화학무기와 결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효소를 잠깐이나마 덮어둘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쨌든 이 효소도 잠깐이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시간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독가스에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잠깐 사용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 타이밍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 지휘관들이 택한 방식이 평소에 그냥 먹어두는 것. 예방약이라는 데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국적군의 병사들은 피리도스티그민에 중독되었다. 예방약이라고 해도 어쨌든 독이다. 이런 독을 꾸준히 먹는다면 이라크의 화학무기에 노출된 정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몸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정작 이라크군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반전. 다국적군은 스스로 중독되었다. 걸프전 증후군(Gulf war’s syndrome)이라고 부르는 질병이다. 당시 미군 참전 군인 70만 명 중 1/3 정도가 호소한 증상이다. 종전 후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제대 군인이야 항상 있었지만, 걸프전 이후에는 그 비율이 특이하게 높아서 관련 연구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그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걸프전이 두 달도 안 되는 단기간에 끝났기에 망정이지, 수년씩 이어졌다면 그 비율은 특히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약은 독이고 독은 약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 |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