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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해치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치킨 냄새에 마음이 흔들린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하루 종일 음식 생각이 난다. 배불리 먹고 나서도 아이스크림 콘이 자꾸 떠오른다. 단짠단짠의 루프를 24시간 내내 돌릴 수 있다. 이렇게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반추하는 현상을 음식 소음(food noise)이라고 한다.
과체중·비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음식 소음을 경험하며, 이는 충동적 섭취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그런데 위고비 같은 비만 신약을 사용한 뒤 음식 소음이 조용해졌다는 경험담이 2023년 6월 21일자 뉴욕타임즈 기사로 실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런 효과가 일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연구 결과가 유럽당뇨병학회(Europ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Diabetes)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노보노디스크 연구진은 체중 감량 목적으로 오젬픽·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를 사용 중인 550명을 조사했다. 참가자 평균 나이는 53세, 여성이 86%였다. 대부분의 참가자(81%)는 최소 6개월 이상 세마글루타이드를 사용해 온 상태였다. 약 사용 전에는 참가자들 중 62%가 음식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고 답했지만, 사용 후에는 16%만 그렇게 느꼈다.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한다는 응답은 63%에서 15%로, 통제할 수 없는 음식 생각은 53%에서 15%로 줄었다. 음식 생각 때문에 삶에 부정적 영향이 있다는 비율 역시 60%에서 20%로 떨어졌다.
식욕과 함께 정신도 달라졌다. 참가자 대부분은 약을 복용한 뒤 정신 건강이 나아졌고(64%), 자신감이 높아졌으며(76%), 더 건강한 습관(80%)을 갖게 됐다고 보고했다. 다만 이런 변화가 음식 소음 감소 때문인지, 단순히 체중이 줄어든 덕분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인과 관계를 입증하려면 무작위 대조시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GLP-1 계열 약물이 단순히 먹고 싶은 욕구를 꺼뜨리는 수준을 넘어, 뇌가 음식과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동일 학회에서 발표된 또 다른 연구는 GLP-1 약물이 음식 맛을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켜 식욕과 음식 섭취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독일 바이로이트대학의 오트마 모저 교수 연구팀은 최소 3개월 이상 오젬픽, 위고비, 또는 마운자로를 사용 중인 과체중·비만 성인 411명을 설문 조사했다. 평균 연령은 39세, 여성이 70%였다. 조사 결과, 참가자의 약 20%는 음식이 전보다 더 달게 혹은 짜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쓴맛과 신맛은 변하지 않았지만, 단맛·짠맛에 민감해진 사람들은 식욕이 줄고, 더 빨리 배부르며, 음식에 대한 갈망(craving)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참가자의 58%가 배고픔을 덜 느끼고, 64%가 더 빨리 포만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연구를 주도한 모저 교수는 GLP-1 수용체가 미뢰세포와 중추 미각 경로에서도 발현되므로 기전상 미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GLP-1 수용체 작용제 치료 중 보고된 단맛과 짠맛 인식의 변화가 조기 포만감, 식욕 감소, 음식 갈망 감소 등 식욕과 관련된 긍정적인 결과와 연관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의 미각 변화가 체중 감소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맛의 변화는 특정 음식이 순간적으로 얼마나 만족스럽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에 영향을 미쳐 식욕 조절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체중 감량에는 신진대사·장기 식습관·신체 활동 등 훨씬 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미각 변화만으로 체중 감소를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모저 교수의 설명이다. 이 연구 역시 참가자가 설문조사에 답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다. 참가자의 20%에서 나타난 미각 변화 또한 주관적 답변에 의존한 것으로 실제 증명된 것은 아니다.
GLP-1 호르몬을 모방한 비만 신약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아직 모르는 게 많다. 후속 연구가 이어져 음식과 식욕, 미각의 복잡한 과학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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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해치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치킨 냄새에 마음이 흔들린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하루 종일 음식 생각이 난다. 배불리 먹고 나서도 아이스크림 콘이 자꾸 떠오른다. 단짠단짠의 루프를 24시간 내내 돌릴 수 있다. 이렇게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반추하는 현상을 음식 소음(food noise)이라고 한다.
과체중·비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음식 소음을 경험하며, 이는 충동적 섭취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그런데 위고비 같은 비만 신약을 사용한 뒤 음식 소음이 조용해졌다는 경험담이 2023년 6월 21일자 뉴욕타임즈 기사로 실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런 효과가 일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연구 결과가 유럽당뇨병학회(Europ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Diabetes)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노보노디스크 연구진은 체중 감량 목적으로 오젬픽·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를 사용 중인 550명을 조사했다. 참가자 평균 나이는 53세, 여성이 86%였다. 대부분의 참가자(81%)는 최소 6개월 이상 세마글루타이드를 사용해 온 상태였다. 약 사용 전에는 참가자들 중 62%가 음식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고 답했지만, 사용 후에는 16%만 그렇게 느꼈다.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한다는 응답은 63%에서 15%로, 통제할 수 없는 음식 생각은 53%에서 15%로 줄었다. 음식 생각 때문에 삶에 부정적 영향이 있다는 비율 역시 60%에서 20%로 떨어졌다.
식욕과 함께 정신도 달라졌다. 참가자 대부분은 약을 복용한 뒤 정신 건강이 나아졌고(64%), 자신감이 높아졌으며(76%), 더 건강한 습관(80%)을 갖게 됐다고 보고했다. 다만 이런 변화가 음식 소음 감소 때문인지, 단순히 체중이 줄어든 덕분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인과 관계를 입증하려면 무작위 대조시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GLP-1 계열 약물이 단순히 먹고 싶은 욕구를 꺼뜨리는 수준을 넘어, 뇌가 음식과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동일 학회에서 발표된 또 다른 연구는 GLP-1 약물이 음식 맛을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켜 식욕과 음식 섭취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독일 바이로이트대학의 오트마 모저 교수 연구팀은 최소 3개월 이상 오젬픽, 위고비, 또는 마운자로를 사용 중인 과체중·비만 성인 411명을 설문 조사했다. 평균 연령은 39세, 여성이 70%였다. 조사 결과, 참가자의 약 20%는 음식이 전보다 더 달게 혹은 짜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쓴맛과 신맛은 변하지 않았지만, 단맛·짠맛에 민감해진 사람들은 식욕이 줄고, 더 빨리 배부르며, 음식에 대한 갈망(craving)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참가자의 58%가 배고픔을 덜 느끼고, 64%가 더 빨리 포만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연구를 주도한 모저 교수는 GLP-1 수용체가 미뢰세포와 중추 미각 경로에서도 발현되므로 기전상 미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GLP-1 수용체 작용제 치료 중 보고된 단맛과 짠맛 인식의 변화가 조기 포만감, 식욕 감소, 음식 갈망 감소 등 식욕과 관련된 긍정적인 결과와 연관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의 미각 변화가 체중 감소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맛의 변화는 특정 음식이 순간적으로 얼마나 만족스럽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에 영향을 미쳐 식욕 조절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체중 감량에는 신진대사·장기 식습관·신체 활동 등 훨씬 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미각 변화만으로 체중 감소를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모저 교수의 설명이다. 이 연구 역시 참가자가 설문조사에 답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다. 참가자의 20%에서 나타난 미각 변화 또한 주관적 답변에 의존한 것으로 실제 증명된 것은 아니다.
GLP-1 호르몬을 모방한 비만 신약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아직 모르는 게 많다. 후속 연구가 이어져 음식과 식욕, 미각의 복잡한 과학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