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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6) / 잃어버린 30년과의 연관성
이종운
입력 2026-08-12 06:04 수정 최종수정 2026-08-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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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6)  / 잃어버린 30년과의 연관성

며칠 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분석한 동영상을 보았다. 내용은 일본이 우리나라와 달리 최근 30년간 정체된 이유를 ① 매뉴얼 중심 문화, ② 연공서열, ③ 일본 내부에서만 인정받는 전문가를 길러내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사회’에서 찾고 있었다. 상당 부분 공감하였다. 다만 나는 이 세 가지 현상의 바탕에는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무라이 시대에는 자칫 잘못하면 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남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 변화나 돌출된 행동을 본능적으로 삼가게 되었고, 그 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얼마 전까지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한 상점이 많지 않았던 것도 변화를 조심스러워하는 국민성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친절함과 예의, 철저한 준비성, 질서 의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부를 때도 "여보세요" 대신 "스미마센 (죄송합니다)"이라고 하고, 헤어질 때는 몇 번씩 돌아보며 인사한다. 이사를 하면 곧바로 이웃에게 선물을 돌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직장이나 연구실 동료들에게 작은 과자를 사다 주는 것도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의 표현일 것이다.

식사 문화도 흥미롭다. 우리처럼 찌개를 함께 떠먹는 음식이 거의 없고, 각자의 음식을 따로 먹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달리 식당에서 도시락 문화가 발달하고, 음식을 쟁반에서 꺼내지 않은 채 그대로 먹는다. 흔히 위생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에도 이러한 특성이 드러난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맞장구를 자주 치며, "안 됩니다"라고 단정하기보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처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능동적인 표현보다 "생각됩니다", "보여집니다"와 같은 완곡한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성향은 매뉴얼을 중시하는 문화로도 이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이재민에게 음료수를 공급하지 못했던 이유가 매뉴얼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고 이후에도 "왜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했는가"보다 "그런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없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보완하려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사고가 나더라도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면 책임을 크게 묻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판단과 융통성을 중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해외 유학을 꺼리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능력 위주의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가 주변의 반발을 사는 것보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안정적이지만 역동성이 부족해 보이고, 반대로 우리는 변화는 빠르지만 때로는 성급하여 사회적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문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연구자가 자리를 자주 옮기지 않고 한 분야를 오랫동안 묵묵히 파고드는 기질이 기초과학에서는 오히려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사회의 역동성은 다소 떨어질지라도 깊이 있는 연구에는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만으로 일본 사회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제도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문화인 경우가 많다. 남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일본을 신중하고 질서 있는 사회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우리는 변화에는 능하지만 때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장점은 언제나 단점의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약점을 돌아보는 일이다.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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