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약학회지 최근호 (제51권 제6호, 361-382, 2007)에 실린 한국약학사 라는 논문을 통하여 우리나라 4년제 약대의 효시가 이화여대 약대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9월 경성약전 (서울대약대의 전신)은 사립서울약학대학(이하 사립서울약대) 으로 개명하고 동년 10월 초 약학대학 중 가장 먼저 개강하여 정상 수업을 시작하였다.
학제는 여전히 전문부 3년제였으나 1948년에 전문부와 학부로 개편되면서 희망자는 1년을 더 수학하여 총 4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1948년 8월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되었다. 사립서울약대 전문부(3년제)는 1948년 6월 제1회(92명), 1949년 2월 제2회(97명), 1949년 7월 제3회(94명), 1950년 5월 제4회(110명)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 존재를 마감하였다.
한편 4년제 학부는 1950년 3월에 제1회(11명), 1950년 5월에 제2회(11명)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로부터 4년을 빼면 1946년에 4년제가 도입된 셈이다. 물론 1946년 당시에는 4년제라는 제도가 없었다.
즉 당시에 3년제 전문부로 입학했던 학생 중 일부가 1948년에 추가로 생긴 학부(4년제)로 옮겨 1년을 더 공부(총 4년)하고 1950년에 졸업한 것이 최초의 4년제 졸업생이 아닌가 한다.
사립서울약대는 1950년 한국전쟁 (6.25)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 있었는데 1950년 9?28수복 후 문교부(文敎部)는 아직 부산의 가교사를 쓰고 있던 사립서울약대를 4년제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에 편입시키고 전문부는 폐지하였다 (9월 3일 각의 결정).
그래서 1951년 9월 29일 졸업생(18명)부터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생(제5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로써 약학교육은 4년제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서울대약대는 1953년 9월부터 을지로 6가에 있던 교사로 복귀하였고, 1959년 5월 종로구 연건동에 있던 서울대음대와 교사를 교환(이전은 8월)하여 1975년 7월 말까지 16년 간 사용하다가, 1975년 8월부터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종합캠퍼스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는 1945년에 행림원(杏林院, 의약대학을 이렇게 부름) 약학과(정원 100명)를 신설하였다.
1945년과 1946년 신입생은 전문부(3년제)와 학부(4년제)의 이중 구조로 모집하였다가 1947년 6월 20일, 21일 양일간에 걸쳐 편입시험을 시행하여 응시자 전원을 4년제 학부에 편입시켰다.
편입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 43명은 1948년 7월에 3년제로 졸업(3년제 제1회 졸업생)하였는데, 이로써 전문부는 끝나게 되었다. 1949년 7월에 첫 4년제 약학사 졸업생(55명, 제2회 졸업생이라 부름)을, 1950년에는 제3회 졸업생 44명을 배출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화여대의 약대 4년제는 49년 7월에서 4년을 뺀 1945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1946년 4년제를 시작하여 1950년 3월에 첫 4년제 졸업생을 배출한 사립서울약대보다 입학에서는 1년, 졸업에서는 8개월 정도 앞선 것이다.
이화여대 행림원(의약대학) 약학부는 1954년 약학대학으로 승격하였다. 요컨대 이화여대를 우리나라 약대 4년제의 효시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4년제 약학교육의 효시는 서울약대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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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약학회지 최근호 (제51권 제6호, 361-382, 2007)에 실린 한국약학사 라는 논문을 통하여 우리나라 4년제 약대의 효시가 이화여대 약대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9월 경성약전 (서울대약대의 전신)은 사립서울약학대학(이하 사립서울약대) 으로 개명하고 동년 10월 초 약학대학 중 가장 먼저 개강하여 정상 수업을 시작하였다.
학제는 여전히 전문부 3년제였으나 1948년에 전문부와 학부로 개편되면서 희망자는 1년을 더 수학하여 총 4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1948년 8월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되었다. 사립서울약대 전문부(3년제)는 1948년 6월 제1회(92명), 1949년 2월 제2회(97명), 1949년 7월 제3회(94명), 1950년 5월 제4회(110명)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 존재를 마감하였다.
한편 4년제 학부는 1950년 3월에 제1회(11명), 1950년 5월에 제2회(11명)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로부터 4년을 빼면 1946년에 4년제가 도입된 셈이다. 물론 1946년 당시에는 4년제라는 제도가 없었다.
즉 당시에 3년제 전문부로 입학했던 학생 중 일부가 1948년에 추가로 생긴 학부(4년제)로 옮겨 1년을 더 공부(총 4년)하고 1950년에 졸업한 것이 최초의 4년제 졸업생이 아닌가 한다.
사립서울약대는 1950년 한국전쟁 (6.25)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 있었는데 1950년 9?28수복 후 문교부(文敎部)는 아직 부산의 가교사를 쓰고 있던 사립서울약대를 4년제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에 편입시키고 전문부는 폐지하였다 (9월 3일 각의 결정).
그래서 1951년 9월 29일 졸업생(18명)부터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생(제5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로써 약학교육은 4년제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서울대약대는 1953년 9월부터 을지로 6가에 있던 교사로 복귀하였고, 1959년 5월 종로구 연건동에 있던 서울대음대와 교사를 교환(이전은 8월)하여 1975년 7월 말까지 16년 간 사용하다가, 1975년 8월부터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종합캠퍼스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는 1945년에 행림원(杏林院, 의약대학을 이렇게 부름) 약학과(정원 100명)를 신설하였다.
1945년과 1946년 신입생은 전문부(3년제)와 학부(4년제)의 이중 구조로 모집하였다가 1947년 6월 20일, 21일 양일간에 걸쳐 편입시험을 시행하여 응시자 전원을 4년제 학부에 편입시켰다.
편입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 43명은 1948년 7월에 3년제로 졸업(3년제 제1회 졸업생)하였는데, 이로써 전문부는 끝나게 되었다. 1949년 7월에 첫 4년제 약학사 졸업생(55명, 제2회 졸업생이라 부름)을, 1950년에는 제3회 졸업생 44명을 배출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화여대의 약대 4년제는 49년 7월에서 4년을 뺀 1945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1946년 4년제를 시작하여 1950년 3월에 첫 4년제 졸업생을 배출한 사립서울약대보다 입학에서는 1년, 졸업에서는 8개월 정도 앞선 것이다.
이화여대 행림원(의약대학) 약학부는 1954년 약학대학으로 승격하였다. 요컨대 이화여대를 우리나라 약대 4년제의 효시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4년제 약학교육의 효시는 서울약대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