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추진 중인 대규모 약가제도 개편안이 11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 상정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건정심 위원 대다수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명분으로 개편안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건정심 소위를 하루 앞둔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며 막판 총력 저지에 나섰다. 이들은 단순한 정책 반대를 넘어, 약가 인하 유예와 함께 1년간의 '민·관 공동연구'를 역제안하며 배수진을 쳤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 정부의 '40%' vs 업계의 마지노선 '10% 인하'
갈등의 핵심은 국산 전문의약품(기등제 의약품)의 약가 산정 기준율이다. 현재 정부는 기존 오리지널 약가의 53.55% 수준인 산정 기준을 40%대까지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노연홍 회장(비대위 공동위원장)은 "기등제 의약품 기준을 40%로 맞춘다고 했을 때,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약업계에 미치는 피해 규모는 최대 3조 6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경고했다.
산업계가 제시한 수용 가능한 최대 한계치는 '10% 인하'다. 현재 상장 제약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전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조차도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주장이다. 노 위원장은 "기존 53.55%에서 10%를 낮추면 48.2%가 되는데, 보험 재정의 어려움을 감안해 국가적 차원에서 이 정도까지는 감내하겠다는 것"이라며 "그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R&D 축소와 시설 투자 감소로 이어져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권기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비대위 공동위원장)은 "2024년 기준 167개 상장사의 설비 투자가 2조 6900억 원, R&D 투자가 4조 7천억 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매출의 20%가 넘는 액수"라며 "지나친 약가 인하는 이러한 투자 활동과 활기찬 생태계 분위기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은 이미 '비상경영'… 중동발 4차 오일쇼크 덮친 '4중고'
제약업계가 이번 개편안을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닌 '생존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악화된 거시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발발한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이른바 '4차 오일쇼크'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원료 의약품의 해외 의존도가 극히 높은 국내 제약산업 구조상, 원자재와 운임 폭등은 고스란히 치명적인 원가 상승 부담으로 직결된다.
현장은 이미 얼어붙었다.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비대위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는 "약가 개편이 단순히 이익이 줄어드는 차원이 아니라 현장에서는 사업이 지속 가능하냐 마냐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와닿고 있다"며 "2026년에 시작하는 새로운 채용이나 R&D 예산 자체를 비상 경영에 맞춰 모두 바꿨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보건안보와 직결되는 '필수의약품' 공급망 훼손이다.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약품의 품목 허가를 기업들이 자진 취소하거나 생산 라인 축소를 검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자칫 '의약품 주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프랑스·일본식 인하 모델의 맹점… "소통 거버넌스가 빠졌다"
정부가 약가 인하의 당위성으로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프랑스와 일본 등 제약 선진국 역시 제네릭 약가를 40~50%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대위는 산업 구조의 차이와 정책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을 꼬집으며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연홍 위원장은 "프랑스나 일본은 이미 국제적인 신약이 많이 나오고 있는 국가이고,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단계로 산업 구조가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국산 신약의 30%가 쏟아져 나오고, 글로벌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보유량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는 등 한창 도약해야 할 '골든타임'에 약가 인하로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노 위원장은 "프랑스나 일본, 영국 등은 약가를 결정할 때 상당한 오랜 기간 동안 산업계와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와 거버넌스를 만들어 신중하게 영향 분석을 거친다"며 "반면 우리는 산업계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보험 약가를 결정하면서 공식적인 문서 전달이나 구체적인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배수진 친 업계의 승부수, '1년 민관 공동연구'와 'CSO 자정'
11일 건정심 통과가 유력해지자, 비대위는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한편 정부에 '3대 민·관 공동연구'를 전격 제안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1년 이내에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사실상 일방적인 정책 강행을 유예해 달라는 요청이다.
공동연구 제안에는 ▲약가 인하의 파급효과 실질 분석 ▲한국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 도출 외에도 업계의 민감한 치부인 ▲CSO(의약품판촉영업자) 등 유통질서 현주소 파악 및 제도 개선이 포함됐다.
무조건적인 '약가 보전'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불법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CSO 문제를 업계 스스로 도마 위에 올리고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의지다. 노 위원장은 "CSO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정착되지 않은 관행들이 있다"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바람직한 방안을 만든다면 산업계와 협력해 유통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은 정부로… 건보재정 vs 산업 생태계, 건정심 선택은?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 속에서 약가 인하는 정부로서도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약가 인하가 단기적인 재정 절감 효과는 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고가의 수입 대체 약품 의존도를 높여 오히려 국민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과거 2012년 일괄 인하 당시의 연구 결과도 뼈아픈 대목이다.
건정심에서 개편안이 통과될 경우, 제약업계의 거센 반발과 함께 투자 축소,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 등 산업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보재정 안정화라는 명분과 제약주권 수호라는 절박함 사이에서, 정부가 업계의 공동연구 역제안을 대승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내일 건정심의 최종 결과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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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대규모 약가제도 개편안이 11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 상정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건정심 위원 대다수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명분으로 개편안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건정심 소위를 하루 앞둔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며 막판 총력 저지에 나섰다. 이들은 단순한 정책 반대를 넘어, 약가 인하 유예와 함께 1년간의 '민·관 공동연구'를 역제안하며 배수진을 쳤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 정부의 '40%' vs 업계의 마지노선 '10% 인하'
갈등의 핵심은 국산 전문의약품(기등제 의약품)의 약가 산정 기준율이다. 현재 정부는 기존 오리지널 약가의 53.55% 수준인 산정 기준을 40%대까지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노연홍 회장(비대위 공동위원장)은 "기등제 의약품 기준을 40%로 맞춘다고 했을 때,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약업계에 미치는 피해 규모는 최대 3조 6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경고했다.
산업계가 제시한 수용 가능한 최대 한계치는 '10% 인하'다. 현재 상장 제약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전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조차도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주장이다. 노 위원장은 "기존 53.55%에서 10%를 낮추면 48.2%가 되는데, 보험 재정의 어려움을 감안해 국가적 차원에서 이 정도까지는 감내하겠다는 것"이라며 "그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R&D 축소와 시설 투자 감소로 이어져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권기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비대위 공동위원장)은 "2024년 기준 167개 상장사의 설비 투자가 2조 6900억 원, R&D 투자가 4조 7천억 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매출의 20%가 넘는 액수"라며 "지나친 약가 인하는 이러한 투자 활동과 활기찬 생태계 분위기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은 이미 '비상경영'… 중동발 4차 오일쇼크 덮친 '4중고'
제약업계가 이번 개편안을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닌 '생존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악화된 거시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발발한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이른바 '4차 오일쇼크'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원료 의약품의 해외 의존도가 극히 높은 국내 제약산업 구조상, 원자재와 운임 폭등은 고스란히 치명적인 원가 상승 부담으로 직결된다.
현장은 이미 얼어붙었다.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비대위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는 "약가 개편이 단순히 이익이 줄어드는 차원이 아니라 현장에서는 사업이 지속 가능하냐 마냐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와닿고 있다"며 "2026년에 시작하는 새로운 채용이나 R&D 예산 자체를 비상 경영에 맞춰 모두 바꿨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보건안보와 직결되는 '필수의약품' 공급망 훼손이다.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약품의 품목 허가를 기업들이 자진 취소하거나 생산 라인 축소를 검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자칫 '의약품 주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프랑스·일본식 인하 모델의 맹점… "소통 거버넌스가 빠졌다"
정부가 약가 인하의 당위성으로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프랑스와 일본 등 제약 선진국 역시 제네릭 약가를 40~50%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대위는 산업 구조의 차이와 정책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을 꼬집으며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연홍 위원장은 "프랑스나 일본은 이미 국제적인 신약이 많이 나오고 있는 국가이고,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단계로 산업 구조가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국산 신약의 30%가 쏟아져 나오고, 글로벌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보유량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는 등 한창 도약해야 할 '골든타임'에 약가 인하로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노 위원장은 "프랑스나 일본, 영국 등은 약가를 결정할 때 상당한 오랜 기간 동안 산업계와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와 거버넌스를 만들어 신중하게 영향 분석을 거친다"며 "반면 우리는 산업계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보험 약가를 결정하면서 공식적인 문서 전달이나 구체적인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배수진 친 업계의 승부수, '1년 민관 공동연구'와 'CSO 자정'
11일 건정심 통과가 유력해지자, 비대위는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한편 정부에 '3대 민·관 공동연구'를 전격 제안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1년 이내에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사실상 일방적인 정책 강행을 유예해 달라는 요청이다.
공동연구 제안에는 ▲약가 인하의 파급효과 실질 분석 ▲한국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 도출 외에도 업계의 민감한 치부인 ▲CSO(의약품판촉영업자) 등 유통질서 현주소 파악 및 제도 개선이 포함됐다.
무조건적인 '약가 보전'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불법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CSO 문제를 업계 스스로 도마 위에 올리고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의지다. 노 위원장은 "CSO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정착되지 않은 관행들이 있다"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바람직한 방안을 만든다면 산업계와 협력해 유통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은 정부로… 건보재정 vs 산업 생태계, 건정심 선택은?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 속에서 약가 인하는 정부로서도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약가 인하가 단기적인 재정 절감 효과는 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고가의 수입 대체 약품 의존도를 높여 오히려 국민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과거 2012년 일괄 인하 당시의 연구 결과도 뼈아픈 대목이다.
건정심에서 개편안이 통과될 경우, 제약업계의 거센 반발과 함께 투자 축소,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 등 산업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보재정 안정화라는 명분과 제약주권 수호라는 절박함 사이에서, 정부가 업계의 공동연구 역제안을 대승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내일 건정심의 최종 결과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