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의 불편한 진실㊦ "탁상행정, 한국 미래 산업 성장 불씨 꺼뜨리나"
제네릭 약가 선인하로 산업 전반 투자 위축 촉발
보상 체계 불확실성, 파이프라인 중단·지연 위험 확대
풀 밸류체인 붕괴, 신약개발 동력 상실 우려
입력 2025.12.11 06:00 수정 2025.12.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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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약가 인하부터 서두르자 제약바이오 업계의 투자 우선순위가 한순간에 흔들리고 있다. 보상 체계가 뒤따라온다 해도, 이미 멈춰선 파이프라인과 흔들린 자금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먼저 깎고 나중에 보상한다’는 신호가 던지는 리스크

정부는 약가제도 개편과 함께 혁신형 제약기업 가산 확대, 혁신 신약 인센티브 강화 등 긍정적 요소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방향 자체만 놓고 보면 필요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순서다. 현 논의 구조만 보면 제네릭·특허만료 의약품 약가를 먼저 낮추고, 이후에 혁신 신약 보상 체계를 손보겠다는 흐름으로 읽힌다. 시장 입장에서는 일단 ‘줄이고 보자’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의 대응은 비슷해진다. 먼저 비용 구조를 재정비하고,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 신규 파이프라인 투자를 보수적으로 가져간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약가와 제도 리스크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혁신 생태계 전환은 속도가 크게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제네릭 축소는 R&D 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투자 감소와 파이프라인 축소로 이어지는 역의 순환을 먼저 작동시킨다. 이후 약가 인센티브가 도입되더라도, 한 번 줄어든 파이프라인을 원래 수준으로 돌려놓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제약사 사업개발(BD) 담당 임원은 “정책 방향 자체는 동의하지만, 순서와 타이밍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네릭 약가를 먼저 손대면 시장은 당연히 불확실성이 커졌다라고 판단하고, 신약 파이프라인 투자를 멈출 수밖에 없다”며 “보상체계가 나중에 나온다 해도 그 사이 잃은 시간과 기회비용은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혁신 생태계는 신뢰가 바탕인데, 지금처럼 제도 변화가 예측 불가능해지면 기업들은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라고 우려했다.

‘좋은 제네릭’은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제네릭 시장에서 나타난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업계에서는 생동성시험을 최소 요건만 충족한 뒤 다단계 유통 구조 속에서 유사 제형이 반복 생산되는 현상이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이러한 과밀·저품질 구조에 대한 정비 필요성에는 관계자들 역시 공감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지금 필요한 것이 기계적인 일괄 인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핵심은 어떤 제네릭을 시장에 남길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별이다. 생동성시험을 직접 수행하고, 등록 원료의약품(DMF)을 사용하며, 공급 안정성과 품질관리 역량을 갖춘 제네릭은 일정 수준의 가격과 물량을 유지해준다. 반면, 단순 위탁·재포장 수준에 머무르는 품목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기업의 R&D·설비 투자 실적과 약가를 연동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회사 단위로 비임상·임상 투자 규모, 국내 제조·품질 인프라 운영 실적 등을 평가해 일정 기준을 충족할 경우 제네릭·개량신약·신약 전 영역에서 차등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제안이다. 형식적인 혁신형 제약사 지정보다 실제 투자와 실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지원 체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정교한 접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번 정책은 품질이 낮은 제네릭을 정리한다는 목표와 달리 결과적으로는 국내 제조 기반을 가진 대부분 기업의 수익성을 동시에 압박하는 정책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네릭 기반이 꺼지면, 한국 신약의 불도 같이 꺼진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아직 글로벌 강국과는 거리가 있다. 상장사를 모두 합쳐도 전 세계 시장에서 수조원대 블록버스터를 보유한 기업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구조에서 제네릭은 단순한 저가 의약품이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신약개발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온 최소한의 완충장치 역할을 해왔다.

업계에서는 이 완충장치를 대폭 축소한 뒤 혁신 신약 중심 체계로 전환하자는 정부의 기조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약개발은 장기간의 적자 부담과 임상 실패 위험을 견딜 수 있는 재무 구조, 이를 떠받치는 안정적 현금창출 기반이 마련돼야 가능하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제네릭이 해왔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이에 따라 제네릭 약가 인하는 단순한 재정 절감 조치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번 개편은 한국 제약산업이 향후 수입 의약품 유통과 일부 CDMO 역할에 머물지, R&D와 제조를 함께 유지하는 ‘풀 밸류체인’ 모델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선택지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네릭을 값싼 복제약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약개발의 기반을 이뤄온 제네릭의 역할이 약화될 경우, 정부가 말하는 한국형 혁신 신약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인허가(RA) 정책 전문가는 “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이 제네릭 가격을 급격하게 낮춘 뒤 R&D 투자 비중이 줄고, 결국 자국 내 제조 기반까지 약화된 사례를 한국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라며 “제네릭 수익성이 무너지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신약 대신 수입 유통 구조로 이동하게 되고, 한 번 무너진 연구·생산 생태계는 다시 세우는 데 10년, 20년 이상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네릭은 단순 복제약이 아니라 신약개발의 숨은 촉매 역할을 해온 만큼, 이 기반이 꺼지면 한국 신약의 불씨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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