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수십년간 국내 의약품 생산과 신약개발의 숨은 엔진 역할을 해온 제네릭이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산업은 더 이상 내일을 논할 수 없는 국면에 직면했다. 한국 제약바이오의 성장 궤도 역시 급격히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는 산·학·연·병 각계의 경고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국내 제약사의 실적 구조를 뜯어보면, 가장 아래층을 지탱하는 층은 여전히 제네릭이다. 오리지널 특허가 끝난 뒤를 메우는 제네릭, 수십 년간 처방 현장을 채워온 필수 의약품, 이 물량을 돌리면서 유지해온 제조·품질 인프라가 모두 제네릭 위에 얹혀 있다.
보건복지부가 특허만료 의약품과 제네릭의 상한금액을 현행 오리지널 대비 53.55% 수준에서 40%대 초반까지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또 한 번의 ‘구조조정’이 예고된 것.
정부 설명만 보면 취지는 분명하다.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아낀 재원을 혁신 신약에 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오는 질문은 정반대 방향이다. 제네릭이 무너지면 누가 그 신약개발 비용을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한 제약사 임원은 “2012년 약가 인하 때는 최소한 산업이 충격을 흡수할 시간과 여력이 있었으나, 지금은 제조비 폭등, 임상비 부담, 인재 유출까지 겹쳐 방어 능력이 사실상 바닥난 상태”라며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을 계속하면 기초 체력이 약한 회사부터 바로 무너지고, 결국 전체 산업을 한꺼번에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53.55%에서 40%대로…숫자 바뀌면 산업 구조도 바뀐다
이번 개편의 골자는 간단하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과 그 제네릭의 약가를 다시 계산해, 제네릭 상한가를 오리지널의 40%대 수준으로 낮추고, 동일 성분 제네릭이 일정 개수를 넘어가면 계단식으로 추가 인하를 적용하겠다는 방향이다. 지금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 구간을 제도적으로 고정하는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조정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사업 구조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미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무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제네릭 가격이 10%포인트 이상 내려가면 남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인건비와 영업비를 줄이거나, R&D 예산을 줄이거나, 아예 일부 품목을 시장에서 접는 것뿐이다.
특히 특허만료 의약품·제네릭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사일수록 직격탄이다. 다국적 제약사처럼 다수의 글로벌 신약 포트폴리오를 가진 것도 아니고, 대규모 CDMO처럼 수탁 생산으로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이 회사들에게 제네릭은 저부가 사업이 아니라, 회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현금창출원에 가깝다.
한국형 신약개발의 실질적인 ‘자금’은 제네릭
한국 제약산업은 애초에 신약 하나로 회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아니다. 국내 매출의 상당 부분이 제네릭과 개량신약에서 나오고, 여기서 발생한 잉여 현금으로 비임상시험, 임상 1·2·3상, 생산공정(CMC) 개발과 품질관리 시스템에 투자해 온 방식이었다.
후발국 입장에서 보면 이는 나름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독점하는 빅파마와 달리, 국내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제네릭 캐시카우를 기반으로 신약 후보 몇 개를 키워내는 ‘혼합형 모델’을 택해 왔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전제는 단 하나, 제네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정부가 혁신 신약을 강조하는 시점에 수익 기반을 먼저 건드리고 있다는 데 있다. 제네릭 마진이 줄어들면, 회사는 가장 위험도가 높은 영역부터 축소할 수밖에 없다. 단기 실적을 당장 끌어내리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부는 “제네릭에서 절감한 재정을 신약에 재투입하겠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 민간의 신약투자 여력이 함께 줄어들면 시장 전체에서 신약에 투입되는 총량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재정은 오른쪽 주머니에 쌓이는데, 산업은 왼쪽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모순적인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
제약사 신약개발 전문 자회사 임원은 “정부가 제네릭을 깎아 만든 재정을 신약에 쓰겠다는 논리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제 산업 구조를 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다”라며 “국내에서 신약 R&D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자금줄이 제네릭인데, 그 기반을 먼저 잘라버리고 혁신을 요구하는 건 결국 '신약을 만들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제네릭은 복제약이 아니라 제조·품질 생태계의 ‘물량’
정책 담당자들이 종종 놓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제네릭은 단순히 오리지널보다 싼 약이 아니라, 국내 제조·품질 인프라를 지탱하는 실제 물량이라는 점이다.
제제별로 분산돼 있는 수백 개 품목이 생산라인을 돌아가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GMP 설비가 유지되고, 공정·품질 인력이 경력을 쌓는다. 이런 라인이 꾸준히 돌아가야, 같은 설비를 활용해 개량신약과 신약도 실제로 생산·공급할 수 있다.
제네릭 가격을 일괄적으로 낮추고, 채산성이 떨어지는 품목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첫 번째로 줄어드는 것은 국내 생산되는 물량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몇 년 후에는 특정 성분의 공급 불안, 단가 경쟁력 상실, 수입 의존도 증가라는 형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결국 값싼 제네릭을 더 싸게 만들겠다는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 국내 제조 기반 축소와 해외 의존도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곧 한국에서 R&D와 제조를 동시에 수행하는 풀 밸류체인 기업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상업생산과 글로벌 공급망은 자연스럽게 해외 CDMO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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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사의 실적 구조를 뜯어보면, 가장 아래층을 지탱하는 층은 여전히 제네릭이다. 오리지널 특허가 끝난 뒤를 메우는 제네릭, 수십 년간 처방 현장을 채워온 필수 의약품, 이 물량을 돌리면서 유지해온 제조·품질 인프라가 모두 제네릭 위에 얹혀 있다.
보건복지부가 특허만료 의약품과 제네릭의 상한금액을 현행 오리지널 대비 53.55% 수준에서 40%대 초반까지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또 한 번의 ‘구조조정’이 예고된 것.
정부 설명만 보면 취지는 분명하다.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아낀 재원을 혁신 신약에 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오는 질문은 정반대 방향이다. 제네릭이 무너지면 누가 그 신약개발 비용을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한 제약사 임원은 “2012년 약가 인하 때는 최소한 산업이 충격을 흡수할 시간과 여력이 있었으나, 지금은 제조비 폭등, 임상비 부담, 인재 유출까지 겹쳐 방어 능력이 사실상 바닥난 상태”라며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을 계속하면 기초 체력이 약한 회사부터 바로 무너지고, 결국 전체 산업을 한꺼번에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53.55%에서 40%대로…숫자 바뀌면 산업 구조도 바뀐다
이번 개편의 골자는 간단하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과 그 제네릭의 약가를 다시 계산해, 제네릭 상한가를 오리지널의 40%대 수준으로 낮추고, 동일 성분 제네릭이 일정 개수를 넘어가면 계단식으로 추가 인하를 적용하겠다는 방향이다. 지금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 구간을 제도적으로 고정하는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조정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사업 구조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미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무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제네릭 가격이 10%포인트 이상 내려가면 남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인건비와 영업비를 줄이거나, R&D 예산을 줄이거나, 아예 일부 품목을 시장에서 접는 것뿐이다.
특히 특허만료 의약품·제네릭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사일수록 직격탄이다. 다국적 제약사처럼 다수의 글로벌 신약 포트폴리오를 가진 것도 아니고, 대규모 CDMO처럼 수탁 생산으로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이 회사들에게 제네릭은 저부가 사업이 아니라, 회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현금창출원에 가깝다.
한국형 신약개발의 실질적인 ‘자금’은 제네릭
한국 제약산업은 애초에 신약 하나로 회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아니다. 국내 매출의 상당 부분이 제네릭과 개량신약에서 나오고, 여기서 발생한 잉여 현금으로 비임상시험, 임상 1·2·3상, 생산공정(CMC) 개발과 품질관리 시스템에 투자해 온 방식이었다.
후발국 입장에서 보면 이는 나름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독점하는 빅파마와 달리, 국내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제네릭 캐시카우를 기반으로 신약 후보 몇 개를 키워내는 ‘혼합형 모델’을 택해 왔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전제는 단 하나, 제네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정부가 혁신 신약을 강조하는 시점에 수익 기반을 먼저 건드리고 있다는 데 있다. 제네릭 마진이 줄어들면, 회사는 가장 위험도가 높은 영역부터 축소할 수밖에 없다. 단기 실적을 당장 끌어내리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부는 “제네릭에서 절감한 재정을 신약에 재투입하겠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 민간의 신약투자 여력이 함께 줄어들면 시장 전체에서 신약에 투입되는 총량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재정은 오른쪽 주머니에 쌓이는데, 산업은 왼쪽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모순적인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
제약사 신약개발 전문 자회사 임원은 “정부가 제네릭을 깎아 만든 재정을 신약에 쓰겠다는 논리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제 산업 구조를 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다”라며 “국내에서 신약 R&D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자금줄이 제네릭인데, 그 기반을 먼저 잘라버리고 혁신을 요구하는 건 결국 '신약을 만들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제네릭은 복제약이 아니라 제조·품질 생태계의 ‘물량’
정책 담당자들이 종종 놓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제네릭은 단순히 오리지널보다 싼 약이 아니라, 국내 제조·품질 인프라를 지탱하는 실제 물량이라는 점이다.
제제별로 분산돼 있는 수백 개 품목이 생산라인을 돌아가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GMP 설비가 유지되고, 공정·품질 인력이 경력을 쌓는다. 이런 라인이 꾸준히 돌아가야, 같은 설비를 활용해 개량신약과 신약도 실제로 생산·공급할 수 있다.
제네릭 가격을 일괄적으로 낮추고, 채산성이 떨어지는 품목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첫 번째로 줄어드는 것은 국내 생산되는 물량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몇 년 후에는 특정 성분의 공급 불안, 단가 경쟁력 상실, 수입 의존도 증가라는 형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결국 값싼 제네릭을 더 싸게 만들겠다는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 국내 제조 기반 축소와 해외 의존도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곧 한국에서 R&D와 제조를 동시에 수행하는 풀 밸류체인 기업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상업생산과 글로벌 공급망은 자연스럽게 해외 CDMO로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