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병·의원, 연말회식 '제약사 카드 계산' 옛 말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된지 1년을 맞이 했다.지난해 11월 28일부터 도입된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는 의약품 처방과 관련해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거나 받는 쪽 모두를 처벌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존에는 리베이트만 제공하는 제약(도매) 등을 처벌했으나 쌍벌제 시행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약사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인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으로 제약업계의 영업환경이 바뀌게 됐으며. 요양기관의 경영도 큰 변화를 가져 오게 됐다.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1년간 어떤 변화가 의약계에 있었는지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 - 글 싣는 순서 - -①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1년, 무엇이 바뀌었나② 제약업계 - '뿌리째 흔들린 영업활동' ③ 도매업계 - '뒷마진-금융비용' 논란 여전 ④ 다국적 제약업계 - 시장 점유율 쑥쑥 '승승장구' ⑤ 약국가. 경영수지 악화는 '현재 진행형' ⑥ 의료계, 연말회식 '제약사 카드 계산' 옛 말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1년, 의료계는 그야말로 격변(?)의 한해를 보내야 했다.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무더기로 의사가 구속되는가 하면 이를 비관한 의사가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등 쌍벌제 여파로 의료계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리베이트 수사에 의사의 이미지는 실추됐고,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지던 제약사의 지원이 불법 행위로 간주되면서 하루아침에 의사에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의료계 전체가 떨고 있는 현실이다.
쌍벌제 시행, 달라진 의사들 “안 받고 말지…”지난해 11월 28일 쌍벌제 시행이 될 당시, 의료계는 “쌍벌제 시행은 의사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 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위기의식은 느끼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관행으로 이어진 리베이트는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일부 의사들은 쌍벌제가 시행된지 몇 개월이 지나도 노골적으로 영업사원에게 금품이나 물품지원 등을 요구하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때문에 당분간 분위기를 지켜보자며 리베이트 중지를 선언한 제약사와 여전히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의사들 사이에서 영업사원만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등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도 잠시, 쌍벌제 시행발표와 함께 지난 1년동안 정부는 수사기관과 공조해 대대적인 리베이트 수사를 벌였고,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의사가 구속되고, 면허정지 및 취소되는 강도 높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에 의료계 현장에서는 내부적인 자정노력으로 의사뿐만 아니라 사무국장, 간호사들에게도 제약사 영업사원들로부터의 ‘접대 금지’ 명령을 내려 리베이트로 의심될 어떠한 행위도 아예 차단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 개원의 의사는 “어렵게 공부해 취득한 의사면허가 리베이트로 취소된다면 의사로서의 자존심의 상처를 입게 될 것은 물론이며 무척 억울할 것”이라며 "리베이트 혐의를 받을만한 어떠한 일도 피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돼 부도덕한 의사로 낙인찍히게 된다면 어렵게 이룬 환자와의 신뢰까지 바닥에 떨어져 문을 닫아야하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쌍벌제 이후 달라진 병원 풍경에 대해 “쌍벌제 이전에는 회식이나 연말행사에 제약사의 협찬이나 지원이 당연했다.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2, 3차로 회식을 해도 영업사원이 법인카드로 계산을 하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지난해 쌍벌제가 시행되면서 처음으로 연말회식에서 참석자들이 돈을 걷어 2차를 가야 했다”며 “쌍벌제를 의식해 모두 조심하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학술제 타격…제약사 지원 축소, 회비로 충당쌍벌제 시행으로 달라진 의료계 풍속은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한의학회 산하 학회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변화를 겪었야 했다.
특히, 관련 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사가 앞 다퉈 지원을 해오던 예전과는 달리 제약사로부터의 부수적인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국내 학술대회뿐만 아니라 국제학술대회의 개최도 어려움을 겪었다.
쌍벌제로 제약사의 부수적인 지원이 끊기고, 리베이트 수사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제약사의 부스참여조차 적어지자 학회들은 할 수 없이 학술제의 규모를 줄이고, 비용절감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에 학회 관계자들은 “몇 년을 준비한 국제 학술대회가 비용절감을 위해 기간을 줄어들고 개최에 의의를 두는 형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며 “쌍벌제 시행으로 연구활동과 더불어 의사들의 정보교류의 기회를 주기위한 학술대회의 취지가 유명무실해 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각 학회는 춘추 학술대회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분야가 다른 두 개 학회가 공동 학술제를 개최하고, 매년 호텔에서 열던 학술제 장소를 대형병원 강당이나 대학교 강당으로 옮기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한 비용충당을 위해 올해 많은 학회가 회비와 학회 등록비를 올리며 회원의 비용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하는가 하면, 학회를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의료계, 쌍벌제 헌법소송 강수로 맞대응시행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쌍벌제’에 대한 의료계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고 불만은 더욱 쌓여가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의료계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대타협을 추진, 의료계가 스스로 자정노력을 할 것을 촉구하며 리베이트 처벌강화 방침 등 밝혀 의료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쌍벌제에 대응한다는 목적으로 발족한 ‘불합리한 쌍벌제 개선대책 소위원회’를 통해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모색, 강도 높은 맞대응으로 쌍벌제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의협은 당초 시행 2년 후에 하위법령이나 공정경쟁규약에 대한 개정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쌍벌제 시행된 지 1년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하위법령이나 공정경쟁규약 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개정 요구 근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쌍벌제 시행 1년을 맞이해 의료계는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한번 돌아보고, 의료계와 제약이 상생을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를 다시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재경
201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