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위기탈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2008년 기대
◇ 구조조정 삭풍 확산
현재 세계 제약업계의 정상을 고수하고 있는 화이자社는 2007년 1월이 하순으로 접어들던 무렵이던 22일 대대적인 구조조정 플랜을 내놓아 귀를 의심케 했다.
전체 재직인력의 10%에 달하는 10,000여명을 감원하고, 일부 공장과 R&D센터도 매각 또는 폐쇄하는 조치 등을 골자로 한 이 방안을 발표할 당시 제프리 B. 킨들러 회장은 "우리는 지금 도전기에 직면해 있다"는 말로 사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회사의 펀더멘틀 전반에 걸쳐 큰 폭의 개혁이 추진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발표는 글로벌 제약업계에 화이자發 다운사이징의 확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社가 곧바로 2월 1일 향후 3년간 전체 재직자의 5%에 육박하는 3,000여명을 감원할 받침임을 공표해 다운사이징에 동승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 후 아스트라제네카측은 7월 들어 감원규모를 당초 제시했던 수준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로 확대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심지어 제조 부문을 100% 아웃소싱하는 방안까지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내비쳐 적어도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면 제약(製藥)기업임을 포기하는 시나리오까지 언급한 셈이어서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3월에는 바이엘 그룹이 제약사업 부문에서 1,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감원하겠다는 몸집줄이기 방침을 공개했다. 노바티스社는 4월 유아식 사업부 거버(Gerber)를 메이저 식품업체 네슬레社에 매각정리했다. 7월에 접어들자 존슨&존슨社가 120여년의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인 688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2005년 이후로 미국시장 영업인력의 11%를 이미 감원한 상태였던 사노피-아벤티스社도 8월 영업인력에 대한 추가감원 가능성을 시사해 제약업계에 바야흐로 오뉴월 한랭전선을 드리웠다.
항당뇨제 '아반디아'(로시글리타존)의 안전성 문제로 올 한해 홍역을 치러야 했던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 또한 10월 일부 공장의 폐쇄, 제조 부문의 아웃소싱 확대, 인력감원 등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착수를 예고했다. 노바티스社 역시 같은 달 마케팅 영업 부문의 1,260여 재직자들에 대한 인력감원 칼날을 빼들더니 급기야 12월 인력감축의 폭을 2,500명 수준으로 확대하는 후속조치를 제시했다. 심지어 넘버원 BT 메이커 암젠社조차 빈혈 치료제의 안전성 문제라는 예기치 못했던 암초에 부딪혀 대대적 감원과 공장신축 백지화 등의 구조조정 플랜을 8월과 10월 제시했다.
한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社(BMS)는 전체 재직인력의 10%에 해당하는 4,300여명을 감원하고, 생산공장의 절반 이상을 폐쇄하는 내용 등의 혹독한 구조재편 프로그램에 착수할 예정임을 12월 초 발표해 2007년 한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대미를 갈무리했다.
◇ M&A, 위기탈출 넘버원 '원기소'?
사실 미국의 예를 되돌아보면 올해 1/4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주요 제약기업들이 저마다 당초 예상치를 훌쩍 웃도는 경영성적표를 손에 받아쥐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06년의 관성효과 등에 따른 일시적인 착시현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어느새 상승세는 잦아들고 화이자社와 노바티스社를 비롯한 상당수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2007년의 성장전망을 하향조정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5월을 기점으로 메이저 제약기업들의 주가도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역력히 감지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화이자社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 존슨&존슨社 등 상당수 메이저리그 제약기업들은 6~7월 주가가 최근 5년 새 최저치에 근접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제약기업들의 경영성적표에 일제히 적신호가 켜진 것은 줄이어 돌출된 안전성 문제와 특허만료, 후속신약 개발의 차질, 제약업계에 대한 규제수위를 높이려는 태도로 일관한 각국 약무당국의 움직임, 제네릭 제형의 경쟁가세,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지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한 예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의 경우 3/4분기 순이익 매출이 3~6% 뒷걸음질쳐 항당뇨제 '아반디아'(로시글리타존) 안전성 논란에 따른 여파를 짐작케 했다.
바야흐로 메이저 제약업계의 분위기는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원기소' 또는 자양강장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형국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오늘날 경영일선에서 위기탈출 또는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위한 양대전략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고 있는 전략이 바로 인력감원과 비용절감 등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 프로그램, 그리고 M&A이다.
이 중 M&A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세계 제약업계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한 동안 붐을 조성했다. 화이자社가 지난 2000년 워너램버트社를 총 1,1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조건으로 인수한 데 이어 2년 뒤 파마시아社까지 600억 달러에 매입하면서 일약 세계 최대 제약기업으로 급부상했던 것은 단적인 사례이다.
당시 자고 일어나면 터져나왔던 빅딜급 M&A는 줄줄이 사탕式 새로운 공룡 메이커들의 출현으로 이어지면서 짧은 시일 내에 세계 제약업계의 판도를 재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 올 한해 글로벌 제약무대에서는 구조조정이 시리즈로 등장했을 뿐, 메가톤급 또는 빅딜급 M&A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나마 올해 성사된 대형 M&A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3월 쉐링푸라우社가 네덜란드의 종합화학그룹 악조 노벨社(Akzo Nobel)로부터 제약사업부 오가논 바이오사이언시스社(Organon BioSciences)를 110억 유로(144억 달러)에 인수키로 전격합의했던 것과 아스트라제네카社가 4월 BT 메이커인 미국 메드이뮨社(MedImmune)를 152억~156억 달러에 인수한 사례 정도를 꼽아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중 아스트라제네카의 메드이뮨 인수합의와 관련해서는 내부적으로 상당한 비토 기류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M&A 소요비용이 1,0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던 화이자社의 사례 등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빅딜급이라 하기에는 함량미달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이라 하겠다.
◇ 준척급 M&A도 가물에 콩나듯...
올 한해 세계 제약업계에 확연히 부각된 M&A 트렌드는 준척급 또는 그 이하의 소규모 성사사례들이 주류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7년 한해 동안 성사되었던 M&A 사례들을 대략 살펴보면 화이자社의 BT 메이커 바이오렉시스 파마슈티컬 코퍼레이션社(BioRexis) 인수(2월) 아스트라제네카社의 영국 BT 메이커 애로우 테라퓨틱스社(Arrow) 인수(2월) 일라이 릴리社의 중추신경계 전문제약사 히프니언社(Hypnion) 매입(3월) 다께다社의 영국 바이오벤처 파라다임 셀라뷰텍社 인수(3월) 산쿄社와 다이이찌社의 전문약 부문이 통합한 다이이찌산쿄社의 출범(4월) 인도 자이더스社(Zydus)의 일본 유니버셜약품 인수(4월) 밀란 래보라토리스社(Mylan)의 독일 머크 KGaA社 제네릭 부문 인수(5월) 로슈社의 BT 메이커 님블젠 시스템스社(NimbleGen) 인수(6월) 인도 루핀社(Lupin)의 일본 제네릭업체 쿄와社 인수(10월) 다나베社와 미쯔비시웰파마社의 합병으로 다나베미쯔비시社 출범(10월) 기린社와 쿄와발효社의 내년 10월 합병 합의(10월) 아스텔라스社의 미국 벤처기업 아젠시스社(Agensys) 인수(11월) 화이자社의 미국 바이오제약사 콜리 파마슈티컬스社(Coley) 인수(11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의 미국 심혈관계 치료제 전문제약사 릴라이언트 파마슈티컬스社(Reliant) 인수(11월) 에자이社의 미국 BT 메이커 MGI 파마社 인수(12월)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 사례는 M&A 합의에 따라 당사자들 사이에 오고간 금액규모가 100억 달러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예 10억 달러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케이스가 빈번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세계 제약업계의 흐름을 주도했던 'M&A 붐'의 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에 매진해야 할 때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확산된 데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었다. '규모의 경제'가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는 믿음에도 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조짐을 역력히 내보였던 것이다.
◇ 제품력 수혈 보강 위한 파트너십 활기
올 한해 '孫잡기'가 관심을 끌어모은 것은 비단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의 정치판만은 아니었다.
덩치 큰 빅딜급 M&A보다는 오히려 제품 파이프라인을 수혈 보강하기 위해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저마다 미래의 기대주를 보유한 메이커들에게 앞다퉈 손을 덥석 내밀면서 고만고만한 수준의 파트너십 구축에 열을 올리는 현상이 올 한해 무척이나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이 확산된 배경에는 2006년 말 화이자社의 기대주 콜레스테롤 저하제 토세트라핍 개발이 무산된 이후로 모노드라마式 R&D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각되었던 현실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수조사 성격의 나열은 어렵겠지만, 얼핏 반추해 보더라도 아케믹스社(Archemix), 마이러스 바이오 코퍼레이션社(Mirus Bio), 바로폴드社(BaroFold), 시그마-올드리치 코퍼레이션社(Sigma-Aldrich), 일루시스 테라퓨틱스社(Elusys therapeutics) 등의 BT 메이커들과 1월 초 잇따라 제휴계약을 체결한 화이자社의 파트너십 릴레이 삭사글립틴 및 다파글리 플로진 등의 항당뇨제 공동개발을 위한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社와 아스트라제네카社의 제휴(1월) 신경퇴행성 질환 진단용 조영제 공동개발을 위한 바이엘 쉐링 파마社와 다이쇼제약社 등과의 제휴(1월) 2개 항암제 공동개발을 위한 제넨테크社와 애보트 래보라토리스社의 제휴(6월) 유망백신 보강을 위한 노바티스社와 인테르첼社(Intercell)의 전략적 제휴(7월) mTOR 항암제 공동개발을 염두에 둔 머크&컴퍼니社와 아리아드 파마슈티컬스社(Ariad)의 제휴(7월) 호흡기계 치료제 R&D를 위한 아스트라제네카社와 사일런스 테라퓨틱스社(Silence)의 제휴(7월) RNAi 기술 확보를 위한 로슈社와 앨나이램 파마슈티컬스社(Alnylam)의 라이센싱 제휴(7월) 항암제 및 항염증제 공동개발 진행에 목적을 둔 일라이 릴리社와 아시아 최대 재벌기업 청쿵(長江) 그룹간 제휴(8월) 비만 당뇨 등 대사장애 치료제 개발을 위한 화이자社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社의 제휴(8월) 항우울제 공동개발을 위한 다께다社와 룬드벡社의 제휴(9월) 애보트 래보라토리스社와 솔베이 파마슈티컬스社(Solvay)의 콜레스테롤 저하제 '심코'(서방형 니아신+심바스타틴) 코마케팅 제휴(10월) B형 간염 예방백신 공동개발을 위한 머크&컴퍼니社와 다이나박스 테크놀로지스 코퍼레이션社(Dynavax)의 R&D 제휴(11월) 치료용 휴먼항체 신약 개발을 위한 사노피-아벤티스社와 레게네론社(Regeneron)의 제휴(11월) 줄기세포를 이용한 항암제 개발을 위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와 온코메드社(OncoMed)와 전략적 제휴(12월) 항감염증 천연물 신약 공동개발을 위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와 갈라파고스社(Galapagos)와 제휴(12월) 등 R&D 파트너십 구축은 일일이 그 사례를 헤아리기 어려웠을 정도로 활기를 띄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BT 메이커들과 제휴관계를 구축하는 사례가 줄을 이어 "제약기업 같기도, BT 메이커 같기도" 하다는 풀이가 뒤따랐다.
◇ 빅딜 무용론 vs. 돌파구 일환 M&A 유용론
그러면 이처럼 글로벌 제약무대에 빅딜급 M&A가 자취를 감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줄이은 기존 핵심제품들의 특허만료와 R&D 차질에 따른 후속신약의 결핍, 제네릭업계의 도전 등 공통된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현실 속에서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내용(유망신약)은 없으면서 몸집(매출 회사규모)만 키워봤자 '속빈 강정'을 면키 어렵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2007년 세계 제약업계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지난 1990년대에 대세를 주도했던 'M&A 붐'의 시대는 종막을 고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매진해야 할 때라는 분위기가 대세를 주도하고 있는 흐름이 역력히 엿보이고 있다.
이쯤에서 한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치게 한다. 과연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는 믿음의 시효에 만료시점이 임박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비록 최소한 2007년말 현재까지는 '헛방'에 그칠 개연성이 농후해 보이지만, 사노피-아벤티스社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社(BMS)의 통합 추진사례는 빅딜의 효용성이 아직 완전히 소진된 것은 아니며, 불씨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실제로 사노피 BMS 빅딜說은 노바티스社가 바이엘社에 인수를 제안했다는 루머와 함께 올 한해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안팎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바이오젠 Idec社(Biogen)와 젠자임 코러페이션社(Genzyme) 등 미국의 메이저리그 BT 메이커들을 인수하는 시나리오에 화이자社를 비롯한 빅 메이커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도 되새김질이 무의미하지 않은 사례에 속한다.
특히 사노피와 BMS의 경우 양사가 통합을 실현하면 화이자社를 제치고 일약 세계 최대의 제약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되는 데다 사노피측이 미국시장 공략확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고, BMS도 제임스 M. 코넬류스 회장이 과거 의료기기 메이커 가이던트社(Guidant)의 매각을 주도했던 장본인이어서 빅딜說의 신빙성을 높여줬다는 평가가 따랐다. 양사가 블록버스터 항혈소판제 '플라빅스'(클로피도그렐)와 항고혈압제 '아바프로'(이르베사르탄) 등의 코마케팅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창출해 왔을 정도로 이미 독돈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위기를 타개하거나, 한 계단 더 높이 올라설 수 있는 돌파구의 일환으로 M&A가 갖는 유용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들이다.
과연 2008년에 M&A의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이덕규
2008.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