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새롭게 뜨는 해피드럭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의약의 패러다임은 단순히 삶을 위협하는 질병을 제어할 뿐 아니라, 수명을 늘린다거나, 늘어난 수명을 고통 없이 살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의 약들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삶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해 `Life quality improving drug', `Lifestyle drug' 또는 `Happy dru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약물이란 질병이 아니면서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고통과 불편의 중간쯤 되는 증상들”을 해소하는 신약들을 말한다.
의약이 발달한 지금, 의사가 마취 없이 이빨을 치료한다든가 제왕절개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하지만 마취약이 없던 시절에 극심한 통증이 따르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면,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꼼짝 못하게 붙든다든가, 강하게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다든가, 술을 잔뜩 먹여서 정신을 잃게 한다든가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밖에 경구용 피임제의 발명이 여성을 성적인 억압과 임신의 불안에서 해방시켜주는 등 의약개발사 속의 해피드럭은 무수히 많다.
미래에는 어떤 해피드럭들이 등장할까. 21세기에는 의학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더욱 연장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류의 수명연장이라는 동전의 한쪽 면과 함께 암, 심장병, 알츠하이머병, 골조송증이나 전립선 비대와 같이 노화(aging)와 관련된 질환들도 급격히 늘어나게 될 것이다.
노화는…질병? 자연적 현상?
해피드럭이 삶의 형태 바꾼다
불가(佛家)에서 인간은 생로병사의 고(苦)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의 첫 발자국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늙는다는 것 즉, 노화(aging)는 과연 질병일까, 아니면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할까. 또 영양섭취가 좋아짐에 따라 점차 비만해 지는 것, 나이를 먹거나 유전적으로 머리카락이 희어지거나 빠져서 대머리가 되는 것, 임신이 되면 입덧이 심해지는 것들도 과연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약의 정의는 `질병의 진단, 치료, 경감, 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람에게 약리학적 영향을 주는 화합물'이었다. 미래의 약물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불편한 점을 개선하거나 없애 주는데 까지 이를 것이다.
해피드럭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비아그라를 필두로 우울증 치료제, 월경전 증후군 치료제, 피부노화 방지제, 기억력 증강제, 비만방지제, 대머리치료제 등 인간의 불편한 삶을 개선해야 하는 개발분야는 수 없이 많다.
치매치료제
알츠하이머병은 인간수명의 연장에 대한 반대급부로 `육체적 죽음의 이전에 맞게 되는 정신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은 갑상성기능의 저하, niacin의 결핍, 뇌외상, 뇌종양 등 여러 가지가 제기되고 있으나, 노화가 주된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뇌세포가 죽으면서 아미로이드 섬유(amyloid fibers)나 광질화된 때(mineralized plaques)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뇌가 위축(atrophy), 대뇌의 운동영역, 언어영역, 감각영역중 한가지 또는 두 가지 이상의 뉴런이 변성되어 장해가 나타나는 것이다. 증상이 일단 나타났다면 8년 이상 생존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으며 심장질환, 암에 이어 미국의 사망원인 3위로 올라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과거 인간의 평균수명이 오늘날 처럼 길지 않았을 때는 다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병은 현재의 의료기술로서는 완치시킬 수 없으나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적절한 식이로 적어도 10년 이상 발병을 억제시킬 수 있고 새로운 세기에는 치료약이 반드시 개발될 것으로 믿고 있다.
적절한 식이란 말초신경이나 뇌신경말단에 존재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acetylcholine'의 작용을 도와주거나 자유활성기(free radical)에 의한 세포손상을 억제하는 항산화제(antioxidant)를 투여하는 것이다.
수명연장 넘어 연장된 삶만큼 `삶의 질' 개선
미래 약물범위 불편 개선·해소까지 아울러
뇌신경전달 물질인 acetylcholine은 체내에서 합성되어 유리된 후 cholinesterase에 의해 신속하게 파괴되어 10만배나 약한 choline으로 분해되는데 신경전달 물질을 강화하기 위해 acetylcholine을 투여하면 cholinesterase라는 효소에 의해 신속하게 파괴되어 버리므로 이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저해제(acetylcholinestrase inhibitor)가 개발되어 있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제로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에서 허가된 약물은 2종으로 Tacrine과 Donepezil이고 이들은 모두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저해제에 속한다.
이 약물은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한 후라도 인식능력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어느정도 개선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Tacrine의 경우는 간장에 대한 독성이 심하고 Donepezil은 속이 울렁거리거나 설사를 하는 등 부작용이 있어서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의해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무엇보다 매월 240달러에 이르는 비싼 약값이 들기 때문에 가난한 환자는 그대로 방치되기도 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는 이미 20년 전부터 본격화돼 현재까지의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으면서 효과는 훨씬 크고 비용은 싼 약물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약물 중 하나가 와이즈만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나 부룩해븐 국립연구소(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에서 연구하고 있는 `Hup A'로 정식명칭은 `huperizine A'다. 동양의 식물에서 분리된 천연물질로 중국에서 많은 환자를 임상대상으로 하여 연구 중인데, 부작용이 거의 없고 알츠하이머에 대한 치료효과는 가장 높은 이상적인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저해제로 기대되고 있다. 늘어난 육체적 수명만큼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는 실데나필(sildenapyl)이 주성분으로 원래 화이자사에서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던 것이었다. 혈관이완제가 뜻하지 않게 음경의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발기부전치료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실데나필은 인체내의 산화질소(NO)를 활성화 시켜 발기를 유지시킨다. 우리가 흔히 대기오염 물질이라고 알고 있는 산화질소가 인체 내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혀낸 미국의 약리학자 3명이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인체내 산화질소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방지하는 항동맥경화 물질이다.
성적자극이 있으면 음경의 해면체에서 이 산화질소가 분비되어 해면체의 효소인 구아닐레이트시클라제(cGMP)라는 물질을 활성화시킨다.
이 cGMP가 산화질소를 활발히 움직이도록 해 음경의 혈관이 확장되고 넓어진 혈관으로 혈액이 많이 유입되어 해면체가 부풀어오르는 것이 발기의 메카니즘이다.
그런데 해면체에는 PDE-5라는 효소가 또한 존재하여 cGMP를 제거하는데, cGMP가 제거되면 발기가 잘되지 않는다. 실데나필은 이 PDE-5의 활동을 방해하여 결과적으로 발기가 잘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미국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약 20분간의 효과가 있으며 통증이 없고 성적자극이 없으면 발기가 되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전체 임상시험 대상 환자 중 약 80%의 만족률을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비아그라는 의학적·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부부관계 등 인간의 생활양상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연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성기능부전을 치료하는 약물에 대한 연구도 급진전, 향후 수년 이내에 남성의 비아그라에 필적하는 여성용 비아그라도 등장할 전망이다.
대머리치료제
대머리가 되는 원인은 아직까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소인이 강해서 성염색체 우성유전으로 남성에게서 많이 발병한다거나,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에 의해 탈모가 된다거나 그밖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든가 하는 현상적 연구는 많이 있지만 결정적인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미국의 머크사에서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연구 중이던 `피나스테라이드(Finasteride)' 라는 약물이 이 약을 복용한 대머리 환자 중 일부에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현상을 발견하고 재빨리 대머리치료제로 개발방향을 선회하여 프로페시아(Propecia)라는 신약을 발매하였다.
또 미국 업죤사에서 고혈압치료제로 연구 중이던 미녹시딜(minoxidil)이 머리를 자라게 하는 부작용이 발견되어 역시 대머리치료제로 개발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되고 있다.
'복음과 재앙' 해피드럭의 두 얼굴
고통의 해방인가? 내재된 재앙인가?
다만, 미녹시딜의 경우에는 약 40%의 탈모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낮은 유효율과 약물이 두피에 잘 스며들도록 충분히 마사지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고, 피나스테라이드의 경우는 기형아를 출산할 위험이 있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가 모두 해독될 21세기에는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자자체를 치료함으로서 단순히 두피의 탈모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시의 유전자 결함으로 눈썹이나 체모가 자라지 않는 선천성 질환도 정복될 것으로 보인다.
비만치료제
비만은 심장병 고혈압 등의 발병률을 높일 뿐 아니라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근육이나 골관절 등에도 무리를 주게 되어 관절염의 발생 빈도도 높인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약간 오동통한 것이 복스럽다는 통념을 깨고 요즘은 다른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일종의 1차적인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의 개발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매우 오래되었다. 현재까지의 비만치료제는 주로 과도한 영양섭취를 소화기계에서 흡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런 약물들은 심장이상을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어 왔다. 최근에는 과도한 체중을 줄일 뿐 아니라 적절한 만큼의 식사를 절도 있게 하게 하는 덱스펜푸루라민(dexfenfluramine 상품명 Redux)과 펜푸루라민 (fenfluramine), 제니칼(XenicalTM), 리덕틸(ReductilTM) 등의 약물이 개발되어 있다.
살이 찌게 되는 원인은 주로 과도한 지방인데 미국 `프록터 앤드 갬블(Proctor & Gamble)'사는 지방과 똑같이 고소한 맛을 내면서도 소화기계에서는 몸에 이용될 수 있는 지방으로 인식되지 않고 그대로 통과되어 배설되는 올레스타(Olestra, 상품명 Olean)라는 물질을 개발, 쿠키나 아이스크림 등에 넣어서 지방의 부드럽고 풍부한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은 찌지 않는 대체 물질들을 개발 중이다. 곧 우리나라에서도 실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만의 또 한가지 원인은 과다한 당분이다. 당분은 충치를 유발하기도 하기 때문에 설탕을 대체하는 물질의 연구도 무척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흔히 뉴슈가(New sugar)라고 불리던 설탕 대체 물질에서 출발, 오늘날 설탕보다 약 200배나 강한 단맛을 가지는 아스파탐(Aspartame)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신장염이나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논란이 따라 다니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부작용은 전혀 나타내지 않으면서 설탕보다 약 600배나 강한 단맛을 나타내고, 아무리 먹어도 살은 찌지 않는 아세설팜(Acesulfame)과 수크랄로스(Sucralose) 등도 현재 개발 중이다.
부작용 속출·내성증가로 또 다른 질병 출현
수명연장의 꿈, 예측불허 아비규환 우려
이 밖에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신약으로 우울증 치료제, 월경전 증후군 치료제, 피부의 노화방지제, 기억력 증강제 등 수 없이 많다. 연구의 범위도 넓지만 앞으로는 성별에 의해 특이성이 있는 맞춤 의약연구 (Gender specific drugs)도 시작되는 등 그 깊이도 더하고 있다.
Happy drug의 복음과 재앙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책에는 `소마(soma)'라는 알약이 나온다. 미래의 인간은 식사대신에 조그만 알약인 `소마'를 먹음으로서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또 질병도 예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나 약사는 미래에 없어져야 할 직업이 되겠고, 이런 발상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곧 해독되고, 드디어 인간이 생명을 창조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미래의 신약은 생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고 가정의 행복도 되찾아 줄뿐 아니라 성별의 차이에 의한 요구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해피드럭이 복음만을 가져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받는 비아그라도 경우에 따라서 두통, 피부홍조, 복통 등이 일어나거나 드물게는 시력장애와 목숨을 잃는 부작용 등이 보고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시판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수의 인간에게 장기간 투여로 어떤 부작용을 나타낼지 예측이 충분치 않다.
의약의 개발사를 살펴보면 인류에게 복음이 되었던 약이 곧 재앙으로 바뀐 경우는 많이 있다. 세균과의 전쟁에서 인류에게 결정적인 무기가 되었던 항생제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지구상의 모든 감염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 되었지만, 무절제한 항생제의 남용으로 내성이 증가하고 어떤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 병원균이 출현했다. 인류가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수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될 때, 인구폭발로 인해 이 세상은 또 다른 아비규환에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
편집부
2003.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