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현장르포-'소비자 인식부터 변화돼야'
추운 날씨가 어느정도 풀린 지난 1월 7일 강남구 역삼동 온누리 동의당 약국, 송파구 A약국. 일반약 판매 현황조사을 위해 이 두 약국을 연속 방문했다.
동의당 약국은 근처에 병원이 밀집되어 있는 강남의 문전약국이었고, A약국은 인근에 병·의원이 몇 개 있고, 주택가도 있는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A약국은 반경 500M안에 약국이 다섯 개가 넘게 있을 정도로 약국간 경쟁이 심했으며, 동의당 약국은 주 고객이 2-30대 젊은 층인데 비해 A약국은 유아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고객들이 찾아왔다.
<일반약 판매를 위해선 철저한 상담이 필요해요>
낮 12시. 역삼동 동의당 약국에 들어서자 많은 환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미모가 눈에 들어오는 윤명선 약사가 상담을 하고 있었다. 구석에 앉아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손님은 남성 60대 치질 노인 환자.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윤약사는 여러 관련자료를 들고 나와 신체 내부를 보여주면서 10여분에 걸쳐 자세한 상담을 해 주었다.
" 이 순서대로 복용하시면 치료효과를 볼 수 있고, 커피와 음주 자극적인 음식섭취는 피하셔야 합니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하자, 환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 가지 약을 구입해 갔다.
바쁜 와중에 한 환자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질병과 치료약, 일반약에 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일반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들도 무조건 병원부터 찾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지식을 갖춘 약사가 정확하고 상황에 맞는 상담으로 약국을 많이 찾도록 해야 한다."
단지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약사가 아닌, 적극적인 상담을 통해서 환자의 셀프 메디케이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점심시간에는 병원이 진료를 하지 않는 관계인지 비교적 한산했다. 젊은 손님 한명이 들어오더니 미국 FDA 승인이 난 숙취해소제를 요구했다. "FDA승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시중에 나온 숙취 해소제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섭취해도 됩니다"라고 대답한 윤약사는 손님이 나간 후 "의약분업 후 약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서 저런 황당한 질문을 하는 손님들이 오곤 한다. 그럴수록 약사들이 공부를 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해 약사 스스로 직능을 강화해야 한다. 약사들이 고객의 질문에 당황해할 때 그 약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똑 부러진 말투로 상담을 하는 윤약사의 말에 기다리는 손님들도 지루해하지 않고 귀기울인 후에 비슷한 증상이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반약을 사가는 사람이 몇 명 있는 것을 볼 때, 약사의 상담이나 복약지도가 일반약 판매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차별화 된 약국경영 필요>
오후로 접어들자 한가하던 약국이 다시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두 세 번 이상 왔던 '단골'들이었으며, 약에 관한 질문뿐이 아니라 식이요법이나 피부미용에 관한 것도 자세하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윤약사는 "어차피 처방전 조제료만으로 약국 경영을 하는 것은 힘들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으로 차별화된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해야 일반약, 건강보조식품, 기능성화장품들을 통해 수익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약국은 토탈 헬스 케어를 통해 병원 클리닉 시스템과 같이 고객들의 건강체크를 중요시하여 단골 고객을 만들고 있으며, 상담이 많이 필요한 고객을 위해 큰 상담실을 만들어 편안한 상담분위기를 만들어 다른 약국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었다.
<판매할 수 있는 일반약이 없다>
4시가 넘어서 도착한 약국, 주위에 많은 약국이 경쟁을 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약간 외곽지역이어서 그런지 바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첫 번째 방문한 약국보다는 고객이 현저하게 적었다. 일반약 판매는 감기약, 소염진통제, 소화제, 위장약, 항이스타민제, 드링크류로 한정되어 있었다.
"손님들이 사가는 일반약의 종류나 수가 얼마 안 되네요"하는 뜬금없는 기자의 말에 약사는 " 판매할 수 있는 약이 몇 개 되야지 팔죠" 하고 허탈한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분업전에는 일반약대 처방약의 비중이 6:4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막상 의약분업이 시작되고 보니 3.5 : 6.5로 그 비중이 역전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약국 연지 10년이 넘었는데 분업 후 단골들은 몇 번 오다가 전에 복용하던 약이 처방전이 없으면 팔 수 없다는 말을 하면, 결국 문전약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런 식으로 분업전보다 매출이 반 이상 줄었다. 치료약도 재고만 쌓인다."
"의약분업이 정착한 외국에서는 안전성이 검증된 처방약은 바로 일반약으로 바뀌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아직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어, 처방도 되지 않는 약들이 사장되고 있다"면서 " 보험재정을 살리기 위해서나 제약회사, 개국가, 그리고 국민건강증진을 위해서도 일반약 확대는 눈에 보이게 필요한 일인데도, 지지부진한 이유를 모르겠다."
" 제약회사의 일반약 개발 소홀도 여기에 한 몫 한다. 치료약 시장이 커지자 일반약 개발을 소홀히 하여 팔 수 있는 약을 줄어들게 한다. 소비자가 일반약에 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제약회사에서 투자와 홍보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로선 일반약에 대한 마케팅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참 얘기 도중 제약회사직원이 약국에 들어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 우리 회사는 의약분업 이후 운영해 왔던 병. 의원 영업부서를 통합했다. 지금 같아서는 약국영업이 소홀할 수 밖에 없다. 치료약으로는 수익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약판매를 활성화 하고 다시 영업부서를 분리하려고 하지만 치료약과 일반약의 비율이 바뀌지 않는 이상 뭐 크게 달라지겠는가. 당연히 투자도 치료약에 편중될 수 밖에 없다"라고 반문했다.
강남 동의당 약국에서 느꼈던 희망적인 느낌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OTC판매는 구조적으로 다듬어야 할 문제>
저녁이 되어 병원문이 닫을 시간이 되자 일반약을 사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이 약국은 개설약사외에 약사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젊은 남자 약사, 다른 한명은 중년의 여약사였다. 군부대 근처에 있어서 군인들도 많이 왔는데, 고객들은 한결같이 호칭을 아저씨, 아주머니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약사는"왜 의사들은 선생님이고 우리는 아저씨 아주머니냐. 벌써 인식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약사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일반약 비중이 처음대로만 됐어도 이렇게 어렵게는 안 됐을 것 아니냐"고 대화를 시작했다.
"의사들은 우리가 4년만 배우기 때문에 6년을 배운 의사들보다 자질이 떨어질거라고 말들을 하면서 그런 논리로 모든 것을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켜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도 약대 6년제는 꼭 이루어야 할 필수 과제이다"
"약을 만드는 사람, 약을 파는 사람이 모두 의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일반약 판매확대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일회성 구호에 그칠 수 있다"
그는 또 일반약의 편의점 판매에 대해서도 " 두통약, 소화제, 드링크제 등은 어차피 마진이 남는 약들은 아니어서 경영에 큰 부담은 없을 수 있지만, 단지 약이 판매된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생기고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하면서"의사들은 간호조무사들이 성형수술 불법시술을 하면 마치 세상이 망한 마냥 펄쩍 뛰면서 같은 전문직종이고 자격시험을 보는 우리들의 권리는 인정 안 해 주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처럼 약국이 일곱시에 문 닫는 것도 아니고, 약국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깔린게 약국인데 해도 너무한다"고 말하면서"이런 상황을 봤을 때 약대 6년제, 성분명 조제, 처방약의 일반약 전환의 규제완화 등 큰 그림을 그리고 나면 일반약 판매 확대 같은 사안은 자연히 해결 될 것이다."
일반약 판매가 활성화 되기 위해선 소비자의 인식변화, 제약회사의 마케팅 전략, 일반의약품 확대, 소포장 판매, 광고와 홍보, 정부규제등을 개선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일반약 판매문제에만 국한 시켜서는 문제해결이 요원하다는 말이다.
오후 늦게 약사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밖에 나가 답답한 마음에 사거리의 약국들을 둘러보았다. 아직 문 닫을 시간이 두, 세시간 남았는데도 약국들은 손님들보다 약사들이 많았다. 다시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유석훈
200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