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2002년 세계 제약업계 10대 뉴스
2002년은 글로벌 경제가 침체했던 한해로 기록되고 있다. 세계 제약업계도 지난 한해동안 매출부진·신약개발 차질·핵심품목 특허만료 등으로 몸살을 치른 가운데 M&A로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으나, 화이자社의 파마시아社 인수합의를 제외하면 '빅딜'은 물론이고 '스몰딜'조차 활발하게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에 2002년은 신약허가 부진, 분식회계 불똥 등 희소식 보다 악재가 좀 더 눈에 띈 한해로 평가될 전망이다. 다음은 본지가 선정한 2002년 세계 제약업계의 10대 뉴스이다. <편집자 주·無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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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이자, 파마시아 인수 합의
2. 분식회계 의혹 제약업계에 불똥
3. 호르몬 대체요법제 안전성 도마 위에
4. 기적의 항암제 '이레사' 파문
5. 항알러지제 '클라리틴' OTC 스위치
6. 제약 R&D 생산성에 '빨간불'
7. 獨 바이엘 그룹 제약사업 처분 진통
8. 佛 참조가격제 도입 등 유럽각국 의료개혁
9. 일본, 약대 6년제 연장 급진전
10. 美, GMP관리에 허점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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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이자, 파마시아 인수 합의
세계 제약업계는 글락소 웰컴社와 스미스클라인 비챰社가 통합을 단행한 후 불과 1년여만이었던 지난 여름 또 한번의 메가톤급 '빅딜'이 성사되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화이자社가 지난 7월 파마시아社의 주식을 600억달러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한다는데 합의했던 것. 양사의 합병이 최종적으로 완료되면 한해 매출액 480억달러, R&D 투자액만 70억달러를 넘어서는 초대형 제약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에 따라 화이자는 심혈관계 치료제 분야에서 상당한 강점을 확보하면서 세계 제약시장의 11%를 점유케 되는 등 단연 세계 최대의 제약기업으로 발돋움을 예약한 상태이다.
양사의 '빅딜'은 분식회계 스캔들, 주가급략, 경제적 불확실성 증대 등 겹친 악재로 기업들이 저마다 몸을 사리면서 '스몰딜' 논의마저 잦아든 가운데 터져나온 것이어서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화이자의 파마시아 인수작업은 당초 올해 말까지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美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와 유럽 집행위원회의 법적 검토절차가 지연되면서 2003년 1/4분기 중으로 완결될 수 있을 전망이다.
2. 분식회계 의혹 제약업계에 불똥
엔론·월드컴 등의 공룡기업들에서 불거져 한해 내내 미국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패이게 했던 분식회계 의혹이 제약업계에도 불똥을 튀기면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제약기업들은 극심한 이중고를 치러야 했다.
지난 7월 美 증권감독위원회(SEC)는 머크社가 최근 3년 동안 자회사인 메드코 헬스 솔루션社의 매출에 환자들의 본인부담금 124억달러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부적절한 회계처리를 계속해 왔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메드코의 주식공개 계획이 거듭 연기되고, 회사분리 계획 자체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다.
한때 아일랜드 최고의 블루칩으로 상종가를 치닫던 엘란社(Elan)는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가가 96%나 폭락하고, 최고경영자들이 사임하는 등 혹독한 시련이 '현재진행형'이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社(BMS)·獨 머크 KGaA 社와 제휴로 항암제 '에르비툭스'(Erbitux)를 개발해 왔던 임클론社도 최고경영자의 스톡옵션 보장을 위해 회계장부 조작과 내부자 거래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나 주가가 80% 이상 빠져나가고, 관계자들이 법적 심판대에 오르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BMS의 경우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도매실적을 과당계상하는 방법으로 2001년 매출을 10억달러 가량 부풀렸던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주가가 최근 5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좌불안석의 상황이 지속됐다.
이에 따라 SEC는 미국시장에 상장된 외국기업들의 경우 최고경영자들이 재무제표 내역의 정확성을 보증토록 하는 등 보완책 마련에 부심했다.
3. 호르몬 대체요법제 안전성 도마 위에
2002년은 시장에 출현한지 어느덧 60여년이 경과한 스테디-셀러 호르몬 대체요법제(HRT)의 퇴출 가능성이 고개를 든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HRT의 안전성 문제는 美 국립보건연구원(NIH) 산하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가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병용요법이 건강한 폐경기 여성들에게 미치는 효과와 위험성을 평가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연구를 지난 7월 초 갑자기 중단키로 결정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시험중단의 사유는 HRT가 유방암과 관상동맥심장질환 등의 발병률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중간평가 결과가 도출되었기 때문. 물론 HRT 복용群의 유방암 발병률은 인구 10,000명당 10명 이하 수준이어서 절대수치로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비 복용群에 비하면 25% 가량 높은 수준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에서만 매년 약 600~800만명의 여성들이 폐경기 증상 완화, 심장질환 및 골다공증 등의 예방을 위해 HRT를 장기복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급기야 2년마다 발암물질 리스트를 발표해 온 NIH 산하 국가독성프로그램(NTP)는 지난 12월 11일 최초로 에스트로겐을 암 유발 가능물질(carcinogen)에 포함시킨 신규 리스트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4. 기적의 항암제 '이레사' 파문
비소세포 폐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약물인 아스트라제네카社의 '이레사'는 한 동안 노바티스社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의 항암제'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일본의 경우 허가신청 후 6개월여만이었던 지난 7월 16일 이례적으로 신속한 심사절차를 거쳐 세계 최초로 발매되기 시작하면서 화제를 이어갔을 정도다.
그러나 곧이어 간질성 폐렴 부작용 발생사례들이 속출했던 데다 이로 인해 지난 12월 4일 현재까지만 81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레사'와 사망자 발생의 연관성과 이 약물이 간질성 폐렴을 유발한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스트라제네카측은 "일본에서 발매가 시작된 후 '이레사'를 복용한 암환자들이 10,000명을 넘어서는 만큼 연관성을 단정적으로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당초 2003년 초로 전망되었던 미국·유럽 및 국내시장 발매시기가 좀 더 미루어질 것으로 사료된다는 점이다. 허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층 면밀한 검증절차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5. 항알러지제 '클라리틴' OTC 스위치
톱-셀링 비 진정형 항히스타민제 '클라리틴'이 지난 11월 27일 마침내 FDA의 최종심의를 통과했다.
'클라리틴'은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31억6,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던 블록버스터 품목. 이 중 미국시장 매출실적이 27억달러에 달했었다.
12월 말로 특허가 만료된 '클라리틴'은 OTC로 스위치되기까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이 약물을 발매해 온 쉐링푸라우社가 법정소송을 불사하는 등 당초 불가입장을 고수했기 때문. 그러나 후속약물 '클라리넥스'를 발매하고, 제네릭 메이커들의 도전에 오히려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에 따라 지난 3월 방침을 바꿔 FDA에 OTC 스위치를 요청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와이어스社가 '알라버트'(Alavert)라는 이름으로 12월 23일부터 OTC 카피제형 발매에 들어간 데다 앤드르스社·밀란社 등 제네릭 메이커들도 정면승부를 선언한 상태여서 향후 새롭게 형성될 '클라리틴'의 약가수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6. 제약 R&D 생산성에 '빨간불'
엄청난 비용이 제약 R&D에 투자되고 있음에도 불구, 정작 새로 개발되어 나오는 신약의 숫자는 매년 감소일로를 치닫고 있다.
실제로 제약기업들은 2001년에만 300억달러 이상을 R&D에 투자했음에도 불구, 정작 FDA의 허가를 취득한 후 시장에 선을 보인 신약의 숫자는 오히려 10년 전 수준으로 U턴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SG 코웬 증권社는 "올해 신약 허가건수가 40건에 그쳐 지난 1998년의 127건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미쳤다"고 지적했다. 40건이라면 지난 2000년의 66건, 2001년의 52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
이같은 상황은 유럽도 매한가지여서 유럽의 FDA에 해당하는 기구인 유럽 의약품감독국(EMEA)은 지난 10월 2002년도 예산을 당초 책정했던 규모에서 감축키로 결정했다. EMEA가 예산을 감축키로 한 것은 제약기업들이 허가를 신청한 신약의 숫자가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58종의 신약이 허가를 취득했으나, 2002년에는 9월까지 불과 25종만이 발매를 허가받았던 것.
이에 따라 FDA는 의약품 심사기간을 단축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7. 獨 바이엘 그룹 제약사업 처분 진통
독일 바이엘 그룹은 지난 2001년 여름 콜레스테롤 저하제 '바이콜'이 회수조치된 이래 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자 그룹 차원의 잇단 인력감원과 비용절감, 비 핵심사업 부문의 구조조정, 중견급 제약기업과의 파트너십 관계 구축을 통한 헬스케어 사업부문 강화 등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적절한 파트너를 찾지 못하자 지난 11월 12일 베르너 베닝 회장이 제휴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위를 포기할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로슈·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아벤티스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파트너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12월 초 제약사업 부문의 처분 불사방침이 만만치 않은 내부 반발에 직면하고 있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즉, 노조는 물론 심지어 경영진 내부에서 조차 바이엘 그룹의 심장(heart)과도 같은 존재인 제약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대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아스피린'의 메이커로 제약업계에서는 상징적인 존재로 통하는 바이엘의 향배에 궁금증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8. 佛 참조가격제 도입 등 유럽각국 의료개혁
지난 10월 프랑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참조가격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는 약사의 대체조제 허용·보험약 축소·획기적 신약의 조기발매 허용 등 사전 경지작업을 속속 실행에 옮겼다.
독일은 보험약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약가 6% 인하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유사한 조치들이 실행에 들어갔다. 영국도 처방약의 OTC 전환 소요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하고, 약사·간호사에게 처방권을 확대부여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유럽 각국이 국민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면서 심각한 재정적자에 직면한 현실을 타개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의료개혁 조치들의 실행은 불가피하게 제약업계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상당한 반발이 뒤따르고 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3개국에서 추진하는 의료개혁만으로 제약업계가 한해 22억달러의 매출감소를 감수해야 하고, 유럽의 메이저 제약기업들은 저마다 매출 1%·영업이익 3%가 감소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유럽 제약사들이 투자의 무게중심을 미국시장으로 전환하는 추세가 눈에 띄게 감지되고 있다.
9. 일본, 약대 6년제 연장 급진전
지난 가을 열렸던 일본 자민당 약사문제 의원간담회에서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약대 교육연한 연장이 자명한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제는 실시시기와 실시방법, 교육연한을 5년제로 할 것인지 또는 6년제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남은 문제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약사문제 의원간담회 산하의 약사교육검토팀은 내년 3월까지 새로운 교육제도를 제시할 방침으로 있다. 여기서 제시되는 案은 문부과학성 검토회를 거쳐 내년 가을까지 결론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약제사회 나카니시 회장도 11월 "2003년 중으로 약대 6년제 문제를 마무리짓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일본약제사회는 같은 달 약학교육법 55조를 개정해 약대 6년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일본의 제 1야당인 민주당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의약분업이 확산됨에 따라 약사의 업무가 복잡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난 30여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는 지적에 따른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10. 美, GMP관리에 허점 노출
올해 미국의 제약업계는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GMP)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의약품 품질관리에 문제가 속속 발생했다.
얼핏 국내 제약업계의 현실과 동병상련격 고민거리를 안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FDA의 2인자인 레스터 크로퍼드 차장은 지난 11월 초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한 회의에서 "미국의 일부 제약기업들은 품질관리 인력이 공백상태를 보이고 있어 규격미달의 의약품들이 시장에 공급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일부 제약기업들이 경기가 침체될 때면 평소 품질관리·보증 관련인력을 감원대상 1순위에 올려놓고, 과감히(?) 정리하는 단견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
실제로 올 한해동안 FDA는 일부 제약기업들의 생산공장에 대해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일라이 릴리社, 쉐링푸라우社, 와이어스社 등이 이로 인해 FDA의 현장조사를 받고, 상당한 금액의 벌과금을 납부하는 등 후유증을 치렀다.
FDA는 지난 8월 21일 실로 25년만에 GMP 개정에 착수한다고 발표해 문제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덕규
200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