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료
'재분류'로 초점 이동한 약국외 판매 논란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의약품 약국외 판매 논란이 사실상 의약품 분류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복지부는 지난 3일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 방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갖고 이달 중순부터 의약품 재분류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6월 중순에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현행 의약품 분류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논의를 거쳐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간 분류 조정을 논의한 다음 결과에 따라 관련 고시를 개정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 "재분류 이외 해결 방안 없다"
결과적으로 ‘의약품 약국외 판매’나 ‘일반약 슈퍼 판매’ 등의 표현은 복지부의 브리핑에서 사라졌다. 다만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과 일반약의 의약외품 전환이라는 재분류 논의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복지부는 의약품 재분류 논의를 ‘정공법’이라고 표현했다. 이해 당사자간 합의와 단일안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피력했다.
당장 약국외 판매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의약외품 확대나 특수장소 확대는 쉽지 않은 방안이라 더 이상 검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단일안 도출에 진통을 겪더라도 이해단체가 참여하는 중앙약심을 통한 재분류 이외 방안을 찾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이번 논의는 2000년 이후 실시하지 않은 재분류 논의를 제대로 진행해 의약품 분류를 개선하고 국민 불편사항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통해서는 재분류 뿐만 아니라 ‘약국외 판매 의약품’ 도입 가능성과 필요성, 대상 품목, 판매장소, 판매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 약사회에 당번약국 ‘책임있게 실천’ 주문
“심야, 공휴일 시간대 의약품 구입 불편사항이 상당 부분 해소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당번약국 이행과 홍보가 중요하다.”
복지부는 약사회가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한 당번약국 순환근무제에 대해 약사회 차원의 책임 있는 실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당번약국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출 것도 주문했다.
대한약사회가 특수장소 지정보다 당번약국을 활성화해 의약품 구입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제시한만큼 제대로 정착시키라는 것이다. 당번약국 순환근무제는 평일 24시까지 운영하는 당번약국을 전국 4,000개, 휴일 운영 당번약국을 5,000개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운영에 대해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약사회에 요청한 복지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단체와 협의해 모니터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활성화되면 국민의 불편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면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실천여부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피겠다는 것이다.
◇ 세부운영 어떻게 하나?
평일 5부제, 주말 4부제로 요약되는 당번약국 운영은 전국 약국의 고통을 수반한다. 효율성에서 부담스럽고, 육체적으로는 피곤함을 가져올 방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사회가 이를 의약품 약국외 판매 논의 과정에서 협의안으로 던진 것은 다급함 때문이다. 어지간한 대안으로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의 브리핑 이후에도 순환근무제가 실행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이냐는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회원의 의견수렴 절차가 거의 없었고, 중앙회에서 결정돼 시도 약사회와 시군구 약사회로 전달되는 과정을 거쳤다. 설득의 시간도 부족했다. 순환근무제 이외 어떤 대안이 있느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의약품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만 이어졌다.
앞으로 과제는 회원을 설득해 제대로 평일 4,000개, 주말이나 휴일 5,000개의 약국이 전국적으로 가동하는데 있다. 일부에서는 약사회 임원이 솔선수범해 먼저 순환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렇게라도 해야 회원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운영방식은 제시된 것이 없다. 다만 지역마다 다른 실정을 고려해 일률적으로 5부제 순환근무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현실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 시민단체 ‘재분류 방안 수용 못한다’
시민단체는 복지부가 내놓은 재분류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복지부 장관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가정상비약 시민연대는 이번 발표안이 불편해소를 위한 국민의 염원을 무시한 처사라며 경제조정정책회의의 결정이나 국민권익위원회의 주문과도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상당수 언론과 주변 단체는 ‘순환근무제’의 정착에 부정적인 시각을 계속 보이고 있다. 순환근무에 동참하지 않는 약국에 대한 적절한 징계방안이나 징계권이 없는 상황에서 평일 4,000개 약국이 자정까지 문을 열도록 하겠다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냐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시행한 심야응급약국 운영 시범사업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기 때문에 이같은 전철을 다시 밟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임채규
201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