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탈크의약품 공포 과학적 실체를 해부한다
석면함유 탈크의약품 사태를 접하며 의사 약사 등 전문 직능인과 약대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일반인들과는 분명 다른 시각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다.
중앙약심의 심의결과와 이에 뒤따른 식약청의 조치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탈크원료 속의 석면 함유량은 분명 외국보다 많지만 제품에 함유된 석면은 극미량으로 인체에는 무해하다는 것이 일관된 판단이다. 또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과학자의 안전성 판단이 존중돼야 하며 과학적 결과를 근거로 한 합리적 사회합의를 이끌어내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정규혁 성균관대 교수는 이번 석면 탈크 파동이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이슈 뿐 아니라, 과학적 이슈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접근 방식에 있어 여러 시사점을 남겼으며 이는 안전성 문제로 제기된 이슈가 다양한 형태로 국민 여론 속에 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석면 탈크 논란의 실체를 정확히 바라보고,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을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사태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해당업체들은 회수 명령이 내려진 대상 의약품중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의약품에 대해 재활용방안 등 구제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으며 현재 각사별 회수대상 의약품의 회수율 파악에 나서고 있는 식약청은 현재로서 폐기의약품과 관련 확정된 방침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자의 ‘안전 위해도’와 국민들 ‘안심 위해도’ 차이
석면함유 탈크의약품으로 인한 사람들의 불안감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과학적 지식의 부족과 인식의 차이로 인해 위해성에 대해 실제와는 다른 과장된 오해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위해도 관리’에 있어서 국민들의 ‘안심 위해도’와 전문가들의 ‘안전 위해도’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위해도 관리’는 과학적으로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를 근거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경제?사회 ?과학적으로 모든 정보를 통합하여 적절한 규제대책을 선택하는 의사결정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위해성 물질을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 것인가, 규제에 따라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는가, 대중은 위해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등을 고려하게 된다.
여기에서 ‘안전 위해도’와 안심 위해도‘의 개념이 나온다.
‘안전 위해도’는 과학적 근거에 의해 제시되는 위해도를 말하고, ‘안심 위해도’는 개인적 인지에 따른 위해도를 뜻한다.
대개 위해도 관리 단계에서는 안심위해도를 고려하게 되는데, 어느 경우에는 안전 위해도가 무시할 정도의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안심위해도가 매우 커져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이 더 위험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항공기의 경우 안전위해도가 무시할 정도의 수준임에도 안심위해도는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해도 그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아 자신에게 먼저 닥쳐올 수 도 있다는데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대로 이용하는 것이 복권이다. 복권은 당첨될 확률이 무시할 정도로 낮지만 자신에게 먼저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사람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안심위해도는 선입견에 의해 높아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회피할 수 없거나, 언론을 통해 비극적인 결과를 접한 경험이 있거나, 자신의 자녀에게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등은 두려움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하여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하게 한다. 이번에 베이비파우더는 유아 용품이기에 이러한 선입견이 가미되어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이것이 의약품에까지 번져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석면 파동을 놓고 보면, 전문가는 ‘얼마나 노출되는가’ 즉, 노출량과 기간을 따져 안전한 수준인가를 따져보고, 여러 가지 위험요인을 비교하여 안전 위해도를 판단한다. 하지만 일반인은 석면 자체가 발암물질이라는 점에 위협을 더 느끼게 된다.
▲과장된 여론 눈높이 쫓아가는 정책
우리는 안심 위해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광우병 사태와 멜라민 파동 등을 통해 이미 경험했다.
사실(fact)에서 비껴난 대중의 인식과 이 같은 여론을 근거로 정부를 향한 대중의 요구는 사회적 악순환을 빚어내게 된다.
국민 여론을 의식하는 정부에서는 과학적 근거보다는 안심 위해도에 치중하여 정책 결정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발암물질 ‘자체’에 대해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것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리는 언론보도가 있게 되면 국민은 실제 위해도 보다 과장된 판단을 하게 되며, 이에 따른 법제도 정비를 촉구하게 되면 정부는 과학적 결정보다 대중의 요구에 맞춘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반대중은 발암물질이 있을 경우 노출되는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것이 발암물질이라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라고 말한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폴 슬로빅(P. Slovic) 교수의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나 언론이 다수 대중의 이러한 속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정보 제공에 신중을 기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위기인식은 부풀려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는 이같은 악순환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식약청은 이번 사태에서 “안전에는 문제가 없으나, 국민정서를 고려하여” 의약품을 판매금지 및 회수 조치했다. 이는 실제 안전 위해도보다 안심 위해도가 높기 때문에 이에 대응한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안심 위해도에 치중하여 결정하게 되면 피해를 입게 되는 상대측에서는 비과학적 결정이었음을 들고 또다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안심 위해도를 낮추려면 시간을 갖고 과학적 결과를 토대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 비슷한 전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사회는 과학적 결과가 나오기까지 차분히 기다리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차분한 대응이 결국 국민과 정부, 그리고 산업계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학’ 토대로 한 국민 의사소통 방식 절실
대중적 인식에 휘둘리는 정책적 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위해도 관리 과정에서 의사소통(risk communication)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과 그룹, 그리고 조직 사이에서 리스크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충분히 교환해야 한다.
정보를 공유하여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상호이해하고 합의점을 형성하기 위해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과학적 결과를 근거로 신뢰와 상호이해의 결과물로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이슈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 과학적 판단을 배제하거나 유리한 측면만 부각하여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되풀이 하는 일방성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우리의 소위 주입식 교육방식이 의사소통 기법(communication skill)의 부족을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국민 개개인의 성장 과정서부터 문제를 과학적으로 판단하고 상대방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이해?설득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앞으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 전문가가 많이 양성되고 이를 제도적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 판단이 존중되고 이를 사회 구성원의 동의 속에서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성숙한 선진사회가 아니던가.
▲과학적 규명을 합리적 정책으로 연결해야
이번 석면함유 탈크의 문제는 우리사회에 경종과 진통을 준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임시변통으로 석면에 국한된 문제로서 해결하려 든다면 제2, 제3의 문제를 안고가게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점검하고 이에 대해 미리미리 의사소통하는 기구를 두어 신뢰를 기반으로 기준을 마련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국민정서에 따라 전문가의 과학적 견해가 빛을 바래지 않도록 과학적 규명을 합리적 정책으로 연결하는 융합 학문의 육성이 필요하다.
셋째, 국내 기업이 값싼 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 통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육성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는 도입되었으나 전문가가 없어 갑작스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사후에 외국의 사례에 의존함에 따라 국내의 피해가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위해성평가 및 관리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를 구성하는 기초학문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은 과학의 달이었다. 과학의 달에 과학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일면을 보면서 이번 일을 거울삼아 앞으로 과학적 근거가 존중되고 충실히 활용되는 사회로 진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운
20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