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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 달라' vs '심하다. 참는데 한계 있다'
인영약품 부도 이후 제약사와 도매업계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
후폭풍을 염려해 압박에 나서는 제약사와 ‘너무 심하다’는 도매업계의 신경전이 감정 대립으로까지 연결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갈등이 계속될 경우 자칫 양쪽에 모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일단 제약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했던 도매상에서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며 상당수 제약사들이 피해를 본 상황이고, 여기에 연말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이해해 줘야 한다는 것.
부도 건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고, 경영진에서도 외국계 투기자본과 경동사(인영약품 영업권만 인수)가 연루된 이번 건이 미칠 파급력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담당자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얘기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도매상으로부터 심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를 해줘야 한다. 도매상은 오너지만 우리는 직원으로 잘못됐을 경우 문책을 받아야 한다”며 “제약계에서 인영약품 부도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하지만 도매상들은 당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상황을 이해하지만, 압박이 너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시도 때도, 이유도 없이 걸려오는 제약사들의 결제 관련 전화로 피곤하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규모가 크든 적든 건실한 도매업소도 사실 유무에 관계없이 회사 명이 거론되는 자체가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며, 제약사들의 입방아 경계령이 내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압박은 제약사들이 밀어넣기를 통해 도매상에 쌓아 둔 약을 회수하는 상황도, 문제가 있어서 약을 빼내고 있다는 쪽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 상태서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
유통가 한 인사는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방귀를 끼었는데 변을 봤다고 난리를 치는 상황인데, 서로 힘들어지고 피해는 제약사에게도 간다.”며 “옥석을 구분해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의 압박이 계속될 경우, 제약사들이 오히려 건전한 도매상의 위기를 야기하고, 이에 따른 영향을 제약사도 짊어져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른 인사는 “자존심이 상한다. 문제가 없는데도 여기 저기 건드리면 버틸 도매상이 있겠나”며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통가 일각에서는 옥석 구분없이 너무 심하게 압박하는 제약사 경우,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새어 나오고 있다. ‘이상이 없는 데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며, 제약사와 도매상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약사 경우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대량생산, 도매상 건전성을 따지지 않고 여기저기 밀어넣으며 안기는 관습에서 벗어나는 등 근본적으로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계획 생산과 맞춤 마케팅을 통해 필요한 양만 팔고 이 부분에 대해 담당자가 능력으로 종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위험부담을 줄이며,상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도매상도 매출을 위해 여기저기 약을 ‘지르는’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특정 도매상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경우, 이 도매상의 규모에 관계없이 연루된 도매상이 많다는 점에서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권구
200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