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밸리데이션’ 규제개혁 선물 보따리에 포함되나
정기 약사감시 폐지, 소포장 의무율 완화, 생동성 시험 예외인정 범위 확대 등 식약청이 비즈니스프렌드리를 강조하며, 규제개혁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제약업계에 내놓은 가운데 이제 관심은 선물 보따리에 밸리데이션도 추가될지 여부로 쏠리게 됐다.
특히 그동안 밸리데이션 추진에 변함없는 의지를 보여 왔던 식약청이 지난 24일 개최된 CEO 초청, 의약품 안전관리 개선대책 설명회에서 “전문의약품 밸리데이션의 유예를 놓고 깊이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어떠한 스탠스를 취해야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고 입장을 밝힘에 따라 밸리데이션은 경우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식약청이 최근 실시한 밸리데이션 실시 여부 조사 결과가 허수가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식약청의 유예 여부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에 빠질 것으로 보여, 그 결과는 더욱 궁금해지고 있다.
<밸리데이션, 2009년까지 많이 해야 4,000개>
업계를 비롯해 밸리데이션을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이 가장 크게 얘기하는 부분은 지금 로드맵으로는 도저히 2009년까지 전문약 밸리데이션을 마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식약청이 정책 판단을 위해 최근 실시한 밸리데이션 실시 여부 조사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현재 밸리데이션을 실시하고 있다고 답해 정책 결정을 해애 하는 식약청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해 식약청 한 관계자는 “너무 놀라운 결과가 나와 식약청도 그저 놀라울 따름” 이라며 “08년 09년 완료예정 품목이 70% 이상 된다는 것은 업체들이 70% 이상 적어도 1배치 이상 밸리데이션을 실시하는 것으로 봐야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같은 식약청의 분석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자료 자체 신빙성이 우려스럽다”고 전제하며 “알기로는 많은 업체들이 아직까지 1배치도 실시하지 않았으면서도 진행 중인, 08년 09년 완료품목에 상당수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A 사는 대상 품목 132개 가운데 완료된 품목은 하나도 없는 가운데 진행 중인 품목에 08년 완료 42개, 09년 완료 64개라고 응답.
또한 B 사는 42개 대상 품목 가운데 완료 2개, 진행 40개, 이 중 08년 완료품목은 42개라고 대답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C 사는 200개 대상품목 가운데 20개를 완료한 가운데 08년 09년 각각 80개와 100개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밸리데이션이 1년에 잘해야 20~30품목 정도인데 1년에 40~50개 심지어 100개씩을 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되는 얘기” 라며 “대다수 업체들이 그저 식약청의 제도에 반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현실과 너무도 어긋나는 답변을 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전문약 밸리데이션 품목은 급여청구 15,000 품목 중 약 12,000~13,000여 품목이 해당 되는데 식약청이 밝힌 현재까지 완료된 수치인 800품목은 전체비율로 따지면 6.1% 해당되는 아주 미비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금 추세대로라면 다시 말해 4개월 동안 800품목을 밸리데이션한 상황을 본다면 09년까지 시행중인 70% 채우기 위해선 64.9%를 마저 채워야 하는데 이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수치” 라며 “잘해야 09년까지 밸리데이션이 완료될 수 있는 품목은 많아야 4,000개 정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관계자 모두 “이번 조사 결과는 허수가 많은데다 전체 제약사의 의견을 대표한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며 “중소제약은 물론 상위제약사들도 인력 수급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에 밸리데이션을 척척 해낼 수 있는 곳은 정말 손가락에 꼽힐 정도인 만큼 정부가 제도 시행에 있어 보다 여유롭게 진짜 비즈니스프렌들리 차원에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밸리데이션 지금 안하면 제약산업 ‘퇴보’>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일단 시동이 걸린 밸리데이션이 멈춤 없이 계속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가장 큰 주장은 밸리데이션이 지금 멈추면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뒷걸음 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H 사 생산본부 한 책임자는 “자사 실험 물량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인력확보 등 밸리데이션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라며 “특히 품목수가 백화점처럼 많은 중소제약사들에겐 원가 상승 압박 요인까지 더해져 더욱더 힘들겠지만 밸리데이션이 다름 아닌 품질보증체계라는 이유 하나라만으로도 당연히 시행되고 가야하는 제도” 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밸리데이션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품목 소량 생산의 형태가 이제는 전환돼야 한다” 며 “또한 밸리데이션 제도를 1~2년 미룬다고 상황이 더 나아진다거나 기준 자체가 느슨해지는 것은 결코 아닌 단지 시간만 연장 되는 만큼 과감한 결단으로 밸리데이션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밸리데이션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 재밸리데이션을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적격성평가도 다시 해야 하는 진행형 제도” 라며 “어쩌면 빠르면 빨리 시작할수록 업계에게는 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밸리데이션 제도가 업계가 수긍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적격여부도 그렇고 일률적인 잣대가 아닌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할 것”이라며 “규정에 얽매이기 보다는 업체의 자율에 맡기고 식약청은 지도만 해 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다시 말해 식약청이 밸리데이션 제도를 지도하고 격려하는 방향, 특히 승인에 대한 부담도 줄여주는 방향으로 이끌어야지 규제하고 심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 다는 것.
식약청 한 관계자도 “지금 제도가 멈춘다는 것은 국내 제약산업이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퇴보하는 것”이라며 “식약청도 제도 추진에 있어 처벌 중심이 아닌 계도와 지도 중심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생각인만큼 힘들더라도 업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한편 식약청의 최종 판단만 남겨둔 밸리데이션의 향방과 모습은 빠르면 이달 늦어도 다음달 안에는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임세호
200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