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약효 없다던 제네릭 ‘무분별 처방’
성분명처방과 관련된 논쟁의 핵심은 단연 「제네릭 의약품의 약효 및 안전성」 문제이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이 부분과 관련, 성분명처방이 시행되면 약사들이 오리지널 대신 약효가 불확실한 값싼 약을 마음대로 선택, 국민건강에 크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약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스스로 약효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한 제네릭 의약품을 처방하고 있어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다. 이에 실제 약국으로 들어오는 처방전 분석을 통해 의사협회 주장의 모순점을 조명해 본다.
◆무분별한 처방행태 환자불편 심각
서울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A약사는 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올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동네약국이다보니 어느 병원에서 무슨 품목이 처방될지 예상하기 어렵고, 행여나 약국에 없는 의약품이 처방됐을 경우에는 아픈 사람을 돌려보내야하는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 안면이 있는 동네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어, A약사의 약국에는 한 성분당 많게는 10품목 이상의 제네릭 의약품을 구비해놓고 있다.
특히 처방이 빈번한 ‘시메티딘’ 성분의 경우, 총 12품목의 서로 다른 의약품들이 A약사의 약국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A약사는 “의사들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로 다른 품목을 처방을 하는데다 대체조제도 금지하고 있다”며 “약이 없을 경우 그냥 돌아가야 하는 환자들의 불편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적으로도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취재 당일에도 비만치료제 ‘리덕틸’의 제네릭인 리덕타민을 처방받은 환자가 약국에 약이 없어 30분 이상 약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제네릭 못 믿겠다던 의사들이 제네릭 처방
이 같은 처방행태는 ‘약효가 불확실한 값싼 약을 조제해 국민건강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는 의사협회의 주장과도 크게 동떨어져 있다.
지난 1년간 A약국의 ‘시메티딘’ 성분에 대한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 처방약수를 비교해보면, 오리지널 격인 에취투(중외제약)나 타가메트(유한양행)는 전체 처방약수의 5분의1에도 미치지 못 한다(위에 표 참조).
또한 지난 8월 한 달간 6개 성분의 오리지널과 제네릭 의약품 처방약수를 비교한 B약국의 사례는 의사들의 제네릭 처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왼쪽 표 참조).
의사들이 스스로 ‘저질’이라고 표현했던 제네릭 의약품을 무분별하게 처방하고 있는 것.
물론 이는 의사들의 고유 권한인 처방권에 속하는 문제일 수 있지만, 스스로가 제네릭 처방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네릭 의약품을 저질, 저가약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A약사는 “성분명처방이 아니더라도 대체조제목록 제출 등을 통해 의사들의 처방권을 존중하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일차적인 문제”라며 “무분별한 제네릭 처방은 개선하지 않은 채 제네릭 약효만을 문제 삼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A약사는 “의사들이 약사들의 의약품 선택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약효가 떨어지는 약을 조제했을 경우 그 결과는 고스란히 약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그 어느 약사도 저질약을 조제해서 환자로부터 외면받게 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네릭 처방…종합병원까지 이미 ‘보편화’
두 약국의 사례가 일부 약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동네약국이 아닌 종합병원 앞의 문전약국의 경우 오리지널 처방이 높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03~2005년 요양기관 종별 분기별 고가약 처방 비중 현황’을 살펴보면, 고가약 처방은 줄고 있는 반면 제네릭 처방은 증가해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처방이 많은 종합병원에서조차 제네릭 처방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며, 병의원급의 경우 사실상 오리지널 처방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아래 표 참조).
이에 대해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이미 종합병원에서조차 제네릭 처방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고 의원급은 전부 제네릭 처방인 곳도 많을 것”이라며 “지금당장 제네릭 약효에 문제가 있어 성분명처방을 시행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전혀 잘못된 논리”라고 지적했다.
손정우
2007.09.12